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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동행
출처 세계일보 :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104513050?OutUrl=naver
함기석
우산도 없이 빗길을 가는데
누군가 다가와 같은 보폭으로 걸었다
곁눈질로 보니 희망이다
그도 온몸이 빗물에 젖어 떨고 있었지만
처량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깨우친 자의 얼굴처럼 고요했다
어딜 가는 길이오?
내 물음에 희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이 진흙탕 빗길이 끝나는 곳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소
그와 함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오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졌다
내리막 빗길 따라 코스모스가 따라 걸었다
나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길이 끝나는 강가를 향해 계속 걸었다
우산도 없이 빗길을 걸을 때, 유난히 외롭고 고단할 때, 그럴 때는 절망보다 희망이 좀 나서 주면 좋겠다. 마음 한구석 가만히 숨죽이던 희망이 보란 듯 일어나 동행해 준다면. 꼭 만나야 할 귀한 사람, 그 사람과의 새로운 여정 같은 걸 상기시켜 준다면. 보다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흙탕 빗길이 끝나는 곳을 향해.
여태껏 나는 대체로 희망보다 절망이나 좌절과 더 친하게 지낸 것 같다. 때문에 내 안의 희망은 갈수록 숫기를 잃고 나서기를 저어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제는 희망과도 좀 친해져야겠어,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한다. 친해지는 데에는 으레 노력이 필요할 텐데…. 매사 “깨우친 자의 얼굴처럼 고요”한 희망과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우선은 가벼운 질문을 건네 보는 것도 좋겠지. 어딜 가는 길이야? 모처럼 용기를 내어 건넨 나의 물음에 희망은 희망답게 조용히 입을 열 것이다.
박소란 시인
빛명상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가 행운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정광호 선생님, 저는 10년 전 이곳 미국으로 이민 와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수라고 합니다. 제가 이처럼 펜을 든 것은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 뵌 적도 없고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에도 선생님의 저서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로 인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에 앞서 길게 느껴지시겠지만 먼저 제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누추한 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을 통해 입은 은혜가 얼마나 제게 커다란 힘이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저와 제 가족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이 얼마나 큰 힘으로 서게 되었는지를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야 하겠기에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펜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누추한 제 글을 읽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가운데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던 아주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로 망하고 저는 몇 개월간 실직 상태로 있다가 친구의 소개로 작은 오퍼상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1년여만에 실직하고 다시 다른 중소기업으로, 다시 오퍼상으로, 또다시 중소 무역회사로 너댓 번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덧 나이는 마흔을 바라보고 아이들은 커 가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니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도 않고 드난꾼처럼 또 언제 직장을 옮겨야 할지 불안감이 앞서 착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혼 12년 동안 죽도록 아끼고 줄였대도 모아 놓은 것이라고는 아이들의 교육부금 붓던 것과 폐차 직전의 중고차, 그리고 변두리에 위치한 서른 두 평형의 아파트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도저히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범했지만 저희 집안은 난리가 났었지요. 명색이 장남이고 결혼까지 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던 형편에 아예 타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니 누구라 반기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자 제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습니다. 미국에 간다고 해도 정해진 일자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를 반기어 도움 줄 일가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두 아이 뿐이었습니다.
희망이 없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미국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기막혀 하시던 부모님을 다시 뵐 면목이 서기도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아내와 저는 밤낮을 바꿔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형 슈퍼마켓 청소에서 접시 닦기, 햄버거 굽기 등 해 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영어를 배웠지요. 미국에서 그나마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억울하게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럭저럭 이민 4년 만에 작은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당을 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번번이 걸리는 등급제 때문에 설움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가 아는 분이 하던 슈퍼마켓을 인수 받은 것이 4년 전입니다.
하지만 슈퍼마켓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몰려들어 어수선한 가운데 물건을 훔쳐 가는 불량한 아이들을 경계하는 일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총을 든 도둑들도 하루하루를 외줄타기처럼 힘들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를 위로하는 한 가지는 오로지 교회였습니다.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누군가 절대자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위안과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는 기도 같은 것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가족이 평안하고 효도 한 번 못한 제 한국의 부모님이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무리 이국땅에 정착했더라도 결코 한국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은 하지 말자, 더구나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힘을 주십사 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나날로 어느새 이민을 온 지도 10년을 맞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분들과 교회가 마치는 시간을 틈타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저는 처음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그분들도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지 못했기에 선생님의 저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참 동안을 선생님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민 생활에 힘들고 외로운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중에는 정말 몸이 아파 병원 생활이 집에서의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모두에게 선생님의 이야기는 솔깃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곧장 선생님의 책을 사야겠다는 의견으로 모아질 무렵, 마침 선생님의 책을 갖고 계시던 분이 저희 집과는 가까운 터라 염치 불구하고 저는 그 분께 책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힘들고 외로운 이민 생활이었지만 가족 중 누가 특별히 아프거나 아이들이 속 썩이는 일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닌 저로서는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선생님의 책을 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책을 빌린 다음 날부터 틈나는 대로 조금씩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 지나치게 과장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한 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뭔가를 실제로 느끼는 것도 없었으니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매한 의구심이었지요.
그런데 제 아내에게는 오랜된 지병이 있었습니다. 이민을 오면서부터 생긴 병인데, 노이로제 같은 것이었지요. 특별한 계기도 없이 아내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밤잠을 잘 못 자곤 했습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집안에서 살림에 재미를 붙이면서 아내는 45킬로그램의 몸무게에서 무려 60킬로그램까지 불었었습니다. 아내는 걱정을 했지만 마른 것보다는 넉넉해 보여 오히려 몸이 불은 아내가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민을 온 후부터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습니다. 심할 때에는 무려 39킬로그램까지 빠졌으니까요.
처음에는 큰 병인 줄 알고 온갖 검사를 다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노이로제였습니다. 불안증과 노이로제 때문에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었죠. 지금은 계속되는 치료와 교회 일을 맡으면서 44킬로그램까지 불기는 했지만, 아일 둘을 낳은 주부로서는 지나치게 마른 체구임은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그때까지도 심한 불면증으로 병원에서 처방하는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약을 먹었나보다 생각하고 그냥 두었는데, 아내는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에 빠져 있더군요. 문득 걱정이 된 저는 지나치게 약을 많이 복용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아내의 입가에 귀를 대 보며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고르고 평온했으며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잠든 모습은 이민 온 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내는 제게 호들갑스럽게 선생님의 책을 내밀었습니다.
“이 책 정말 기적을 주는 책이에요. 당신도 읽어 보세요. 당신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니까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제, 저 자는 것 못 보셨어요? 저는 지금 날아갈 것만 같다구요. 이젠 병원 약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병원에 다니지도 않을 거라구요.”
뜨악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는 내게 아내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슈퍼마켓에 나오던 일도 그만두었던 아내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자신의 문제를 빌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르르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쏟아지더라는 것이죠. 열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고 일어난 아내는 단 한 번의 꿈도 없이 아주 깊고 평온한 잠을 잤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내가 굳이 손에 들려주는 선생님의 책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나왔습니다.
그 동안 읽었던 부분부터 다시 읽으려다가 다시 처음부터 그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진정 이 책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찬찬히 잘 읽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저는 점점 책의 내용에 빠져 헤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퇴근을 서둘렀지요. 하루쯤 일찍 문을 닫는다고 굶어 죽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서둘러 슈퍼마켓의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흑인 네 명이 나를 밀치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에 의해 카운터로 밀려갔습니다. 퍼뜩 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떨리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들었다면 돈은 물론 목숨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그저 저는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멍하니 그들이 끊임없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 두엇은 슈퍼마켓을 돌며 물건들을 마구 주머니에 쑤셔 넣고 두엇은 제게 돈을 내 놓으라고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했습니다.
“선생님 도와 주실 거죠?”
저도 모르게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그렇게 외쳤습니다.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던 흑인 두 명은 내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총구를 들이대며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와장창!
반쯤 열린 셔터문을 부수며 트럭 한 대가 질주해 들어왔습니다. 저를 협박하던 강도 둘이 그 트럭에 부딪혀 진열대로 쓰러지고 물건을 훔치던 두 명은 달려 나오다가 쓰러지는 진열대에 깔렸습니다.
정말 단 몇 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리만치 그 일을 찬찬히 아주 자세하게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슬로비디오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트럭 운전사와 강도들이 잡혔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결코 졸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 지점에서 핸들이 이쪽으로 꺾였다.”
어쨌든 강도도 당하지 않았고 슈퍼마켓도 보험에 들어 있었기에 오히려 깨끗하게 새 단장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보상 문제다 진술이다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의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꼭 가지고 다녔지요. 그것은 분명 도움을 청하는 제게 선생님께서 응답을 주신 것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어쩌면 하늘의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그날의 사건과 제 자신의 변화를 깊이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은혜와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 되곤 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이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기에 곰곰 생각한 결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힘이란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를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저서 한 권 달랑 들고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이런 기적을 행사하시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과 놀라움은 점점 커져 갑니다.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은 한 것일까? 그러나 이젠 그런 우문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제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만을 믿고 의지하며 남은 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가정에는 따뜻한 안정감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부부간의 갈등이나 아이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팍팍한 이민 생활은 우리 가족들에게 늘 바쁜 하루하루를 강요하고 그로 인해 집안에는 늘 삭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물론 아내도 틈틈이 슈퍼마켓에 나와 일을 도와 줄 정도로 대인 공포증도 없어졌구요. 아이들도 예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합니다.
저희 가족은 잠들기 30분 전이면 조명을 낮추고 마음을 비운 후 선생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평안과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존심 있는 한국인으로 살기를 그렇게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작은 병에 지폐를 조금씩 모으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뵈로 한국으로 갈 비용을 모으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비용을 모으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나가려면 우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슈퍼마켓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이나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외출 후, 혹은 퇴근 후에 귀가하면 주머니에 있던 지폐를 그 병에 넣기로 한 것이지요. 그냥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에 대한 저희 부부만의 예의와 믿음에 대한 약속 같은 겁니다.
곧 선생님을 찾아뵙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먼저 드려서 저를 알려 두는 것이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뵈었을 때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희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편지입니다. 워낙 글 쓰는 재주가 없는 터라 두서도 없고 그저 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기에 급급해 산만하더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그 동안 평안하시고 다음에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LA에서 김동수 드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144~153
초광력超光力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먼저 어려웠던 시간을 대 우주의 마음으로 무사히 넘기셨음을 저 자신도 우주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러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머나먼 타국 땅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이겠지요. 어려운 가운데에도 그만큼이라도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사시는 선생의 의지에 마음 깊은 곳에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낯설고 물설고, 거기에 말도 설은 땅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겪은 어려움이 선생이 보내 주신 편지글 행간 행간마다 그리고 자간 자간마다 느껴졌습니다. 잘 이기고 헤쳐나가며 열심히 사셨습니다. 충분히 우주의 마음을 움직이실 만큼 열심히 살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초광력超光力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초광력超光力의 힘을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디 우주의 마음은 선하고 맑은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원할 때마다 그 힘을 보여주곤 한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광대한 힘이 사악한 곳에도 쓰이고 사회와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은 제게 감사를 하실 것이 아니라 선생 자신이 얼마나 착실하고 반듯하게 살았는지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습니다, 그려.
그리고 제가 책을 낼 때마다 초광력超光力 씰을 봉입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책만 가지고도 언제든지 초광력超光力과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과학학회에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니,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이것은 특수한 공간의 형태에 의해 형성된 에너지와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인데, 3차원적인 피라미드나 석굴암, 첨성대, 아자방, 그리고 2차원적인 히란야, 음양태극, 삼태극, 팔괘, 각종 부적, 각종 만다라 등의 형태는 각자 여기에 공명될 수 있는 특수한 우주에너지(機)의 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겁니다.
예로부터 우주에 있는 모든 만물은 그 형상이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형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이나 감각을 통하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 열거한 공간의 구조나 문양은 바로 우주의 이러한 상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우주에너지(氣)의 흐름을 제어하고 유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책에 봉입하는 초광력超光力 씰도 그런 것들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선생의 경우와 같이 제 책만 가지고도 초광력超光力의 신비한 힘을 느끼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우주의 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책에 봉입된 씰로 인해 선생께서 봉변을 면하셨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즉, 그 책에 봉입된 씰이 초광력超光力의 안테나 역할을 했다면 설명이 될까요?
아울러 그 책에 씰을 봉입한 것은 그 씰을 통해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가게 하기 위함이지요.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들이야 한국에 나오시기로 했다니 그때 직접 뵙고 해도 되는 얘기지만 굳이 펜을 든 것은 선생의 편지 중에 정광호의 초광력超光力이라는 말씀을 바로잡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저 정광호의 초광력超光力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 우주의 마음이고 힘이며 뜻입니다. 그것이 저를 빌어 빛으로 행사하실 뿐인 것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제가 만들어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저 자신도 우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한 함부로 아무 곳에나 초광력超光力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스스로 만들어 행사하는 것이 초광력超光力이라면 저도 삿된 욕심의 일에도 쓰고 더러 내키지 않지만 두둑한 봉투를 내밀며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는 맑지 않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봉투를 탐해 병을 낫게 해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주의 마음은 결코 그런 일에 마음을 돌리지 ㅇ나습니다. 주어진 삶에 열심히 살고 정직하며 남을 기만하지 않고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굳이 제가 청하지 않아도 우주의 마음은 언제든지 찾아가 주십니다.
반대의 경우 만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저를 붙잡고 아무리 애원해도 저는 요령부득입니다. 우주의 마음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제게 응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쁘게 말하면 고리 대금업을 하면서 숱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눈물 어린 돈을 빼내어 갑부 소리를 듣던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말기 암이었지요. 그런데 우주의 마음에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고통은 조금 덜어 드리되 죽음을 막을 방도는 없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그분은 가방에 가득 돈을 넣어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원하면 더 줄 수도 있으니 살려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마음은 더 굳게 입을 닫았습니다. 물론 저는 초광력을 주면서 그저 극심한 고통을 덜어 주기만 했지요. 다음 날, 그분은 더 큰 가방에 돈을 가득히 넣어 제게 찾아왔습니다. 고통이 준 것으로 보아 분명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다 줄 테니 목숨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한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초광력超光力의 힘으로 엄청난 고통과 싸울 필요는 없었지요.
이렇듯 초광력超光力은 그저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청하면 나타나기도 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즉, 사람을 읽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초광력超光力의 힘은 죽음을 연장해 주기도 하고 모른 척 고통만 줄여주어 예정된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합니다.
이것만 봐도 초광력超光力은 일개 인간인 제가 만들어 행사하는 힘이 아닙니다. 그저 저는 그분께 선택된 전령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행사하고 감사를 드릴 뿐인 것입니다.
저는 저를 찾는 모든 분들게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 초광력超光力의 힘으로 건강이든 가정의 화목이든 어떤 은혜를 입었다면 그분께 감사를 드리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분이 부처님이어도 좋고 천주님이어도 좋습니다. 하느님이어도 괜찮고 예수님, 상제님, 조물주여도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 나’ 안에 있는 우주의 마음이신 그 어떤 분에게라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이 이제껏 사셨던 것처럼 열심히 착실하게 사신다면 초광력超光力은 언제고 선생이 청하실 때마다 선생에게 힘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시길 저도 이곳에서 깊이 기원 드리겠습니다.
좋은 날, 정광호 드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153~157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하는 삶이 감사합니다 .
빛명상을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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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안에서 희망을 마주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수님의 귀한 체험사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빛 안에서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초광력의 신비, 감동의 글 감사합니다.
김 동수님 체험사례 올려주셔서감사 합니다.
LA 김동수님의 감동적인 글과 학회장님의 답장 오랫만에 다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빛VIIT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감동이 가득한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체험사례입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드립니다.
초광력의 힘 감사의 마음을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내 안의 마음이 이젠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지고 저와 함께 동행해주니 너무나 기쁩니다.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제 안의 병들고 아팠던 마음이 맑게 치유되어
이젠 건강한 마음으로 밝고 행복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받은 너무나도 큰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맑은 마음 순수한 마음일 때 초광력이 잘 교류되는 진리
다시한 번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김동수님에게 우주마음께서 초광력을 보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시고 축복된 삶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학회장님의 편지글도 감동적입니다.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드립니다 .*
초광력의 힘
감사드립니다.
김동수님 글을 읽는내내 눈물이 흐르네요.
간절함에 기적이 일어난것을...
빛은 항상 함께 합니다.
희망이 절망이 되는 순간이 아닌 올해는 희망이 현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을다해 초광력을 청원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체험자의 글
귀한글 감사합니다^^
기적의 빛책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김동수의 가족 이야기 감사합니다.
늘 마음이 한결 같지는 않지만 늘 감사의 마음으로 지내길 노력하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