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기록도 많지 않아서 거의 소설을 쓰 듯 추적을 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태조 대조영부터 시작할 수가 없더군요.
발해를 건국한 장소를 정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발해가 멸망하는 시점에서 거꾸로 시간을 돌려 봤습니다.
925년 12월에 거란은 발해의 부여부를 공격해 점령하고 그 이듬해 발해왕 대인선의 항복을 받아 냅니다.
발해는 거란과 만나는 국경이 무너지면서 허무하게 왕이 잡혀 멸망한 경우인데요.
거란은 발해왕의 왕자를 내세워 동난국을 건국하고 서둘러 안정을 꾀하려 하지만...
당시 발해는 당시 5경 15부 62주의 대국이었기에 단숨에 꿀꺽하기에는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거란이 접수한 곳은 부여부와 발해왕이 있었던 상경지역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의 상황을 지도로 그려 보았습니다.
* 그림에서 어두운 부분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산악지역과 사막 지역을 표시한 것입니다.
거란은 916년~917년에 서쪽의 돌궐, 토혼, 당항, 소번, 사타제부를 평정한 상태입니다.
당나라는 907년에 멸망하였고, 후당이 연과 후량을 공격하던 5대 10국 시대입니다.
신라는 900년에 견훤이 반기를 들어 후백제를 세웠고,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였지만 918년에 왕건에게 축출된 상황입니다.
여기서 잠시...
신라와 발해의 국경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면...
이 내용은 요양 북쪽에 평양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설정된 것입니다.
당은 신라에게 평양 이남을 주기로 약속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까지 먹어 치울 계획이었기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거란의 이진충이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신라의 운명도 결코 장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731년에 발해가 당의 등주를 공격해 점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깜짝 놀란 당은 신라에게 평양 이남의 땅은 너네 것이라고 승인하면서 발해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때 비로서 평양 남쪽에 해당하는 요동반도의 땅이 신라에게 귀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요동반도에서 궁예가 반기를 들게 되고요.
발해와 흑수말갈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면...
말갈의 일곱 부족중에 흑수부는 만주지역에서 통제하기가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흑수부는 대흥안령산맥 서쪽과 동북부에 거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란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북해 유역을 계속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림을 그리다보니 발해의 상경이 말갈의 흑수부와 꽤 가깝게 인접해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부여부의 부여성이 함락되고, 홀간성에서 발해왕 대인선이 항복하고 죽으면서 각지에서 거란에게 항전을 합니다.
기록에 등장하는 곳이 장령부, 압록구, 남해부, 철리부, 정리부, 안변부 등인데요.
기록에 나온 설명대로 국경 지역에 위치시키면 위 그림처럼 됩니다.
1. 장령부 : 영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목저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
2. 부여부 : 거란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강한 군대를 두어 거란을 방어했다.
3. 남해부 : 옥저의 옛 땅이다.
4. 정리부 : 읍루의 옛 땅이다.
5. 압록부 : 고구려의 옛 땅이다. (국내성이 있었던 곳)
6. 용천부 : 숙신의 옛 땅이다. (속주 : 용주, 발(渤)주, 호주)
7. 현덕부 : 상경의 남쪽에 위치 (속주 : 노주, 현주, 철주, 탕주, 영주, 흥부)
8. 철리부 : 철리의 옛 땅이다. (속주: 광주, 분주, 포주, 해주, 의주, 귀주)
9. 안변부 : 확인 불가.
거란은 해당 지역의 발해의 유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세력을 확장합니다.
고려는 판금과 선양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발해의 동남쪽의 발해 유민들은 거란에게 쫓겨 고려에 투항합니다.
상경과 중경 동쪽의 발해의 유민들은 여진이 되어 거란과 투쟁을 합니다.
철리부를 해당 지역에 위치시킨 이유는 요하(옛 압록강)를 따라 동쪽에 위치시켰을 때 강동 6주가 만들어기 때문입니다.
상경 용천부의 용주 + 중경 현덕부의 철주 + 철리부의 의주와 귀주는 강동 6주에 속함.
고려와 거란의 대화를 보면 고려가 강동 6주를 빼앗은 후 거란과 통교하겠다라는 내용입니다.
당시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발해의 유민인데, 거란에 속하지도 않고, 고려에 속하지도 않으니 여진에 속하게 되는거구요.
이후 거란과 고려의 전쟁은 반드시 다음 국경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참고로, 발해를 대진국이라고 하는데요.
震 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왜냐하면 震 의 의미는 지진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란 뜻이니 비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50년 후에 백두산이 폭발했으니 그 시대에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것 같은데요.
아무튼 진국은 震 보다는 振 으로 하심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해의 발(渤)은 상경 용천부의 속주인 발(渤)주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발해의 상경이 발주에 있었던 것 같은데요.
중국인들은 발주에 상경이 있고, 주변에 큰 바다가 있으니 이를 발해만과 비슷하다 하여 발해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첫댓글 당과 신라의 관계에서 합의된 국경선은 대동강 이남입니다
한반도 고구려 영토변화라는 글을 통해 수나라 전쟁 이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 대동강일 수 있다는 글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내용과 고구려 연정토가 신라에게 평양성 남부 12개성을 바친 사실을 고려하면 평양성이 위치가 만주 지역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이는 신당서의 영주 동남쪽 800리에 평양성이 있다는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평양성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 가설을 세웠고, 설득력이 없었다면 스스로 포기했을 것 입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그 반대입니다. 자료를 보면 볼 수록 계속 나옵니다. 틀린 내용이라고 단정하시지 마시고 새로운 역사 해석 정도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카론 대동강 이북으로는 고고학적 흔적이 안 나옵니다... 새로운 역사해석은 지향해야 하나... 기존의 학설이 굳이 반대될 근거가 없다면 새로운 학설보다는 기존 학설을 믿는게 합리적이지요
@하균횽을내작품에 기존의 학설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혹은 이해되지 않는 기록들이 있어서 근거를 제시하고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