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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청소년은 어떤 기술을 배우고 무엇을 학습해야 하나요?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요?
한국의 농촌에 점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했는데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정토회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나요?
어제 스님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워싱턴 D.C. 를 방문하고 온 영상을 보았는데, 남한이 선진국이 된 것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장애가 되고 있나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나요?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 질문은 VCIL의 리더인 티엔(Thien) 님이 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은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하면 좋을까요?
“이틀 전에 베트남 청년들과 정토회 청년들이 함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베트남과 한국은 매우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매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투자국 중 하나로 삼성이 베트남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한국에 30만 명의 베트남 사람이 살고 있고, 베트남에는 15만 명의 한국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을 가면 가게를 열어서 사장님을 하거나 기업을 운영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대표를 하는데, 베트남 사람이 한국을 오면 일용직 노동자를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베트남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합니다. 한국은 노동 인구가 부족하니까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만약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베트남도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요?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두 나라 사이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양국의 협력은 경제적인 가치를 위한 협력이었는데, 제가 궁금한 것은 사회적인 연대를 위한 협력으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적인 격차가 크기 때문에 양국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베트남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본과 한국 간의 관계도 그러했고, 미국과 한국 간의 관계도 동일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들이 1970년대에 일본 남자, 미국 남자, 유럽 남자들과 결혼해서 이주했습니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과 많이 결혼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하원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이나 일본 사이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일본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습니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도 한국이 더 높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일하러 일본으로 많이 가다가 최근에는 한국으로 많이 오는 이유가 한국의 임금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30년 정도 흐르면 베트남과 한국 간의 관계도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도기적 시기인 지금은 양국이 노력한다면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크게 보면 불균형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부의 외교는 아직 미국 일변도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하여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덜 휩쓸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직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비전을 못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위의 많은 민족들이 협력도 하고 경쟁하기도 했는데, 현재 살아남은 민족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입니다. 일본은 섬이었기 때문에 중국과의 직접 충돌이 거의 없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나라 중 현존하는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뿐입니다. 천년 전에는 한국인의 활동 무대가 만주 일대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로 밀려 내려와서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베트남도 광저우 지역에서 살다가 현재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의 독자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양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제국주의에 끝까지 저항했고, 베트남도 그랬습니다.
현재 저는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남한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도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서 경제 개발을 하려고 할 때 한국과 중국은 모델로 삼기에 부적절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너무 발전해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베트남을 참고해서 경제 개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남북 관계에 숨통이 트이면 베트남에 북한 관리자를 초청해서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해 주거나, 베트남 사람도 북한에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 저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 베트남 JTS 활동가로 북한에서 활동할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청년들 간의 교류가 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발전한 한국의 문화나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한국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무기력한 상태에서 교류를 통해서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요즘 한국 청년들은 지식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앞설지 몰라도 용기가 부족하고 진취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트남 청년들과 교류하고 협력하면 서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마지막으로 베트남 청년들의 두북 수련원 방문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스님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12명의 청년들이 각자 하나씩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망고, 커피, 초콜릿, 코코넛 사탕, 완두콩, 후추 등 베트남 전역에서 가져온 선물들이었습니다.
아동 문학 작가인 후이(Hu) 님은 본인이 만든 동화책을 스님에게 선물한 후 동화책 속에 있는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스님은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은 후 스님도 베트남 청년들에게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사용하라고 용돈을 모두에게 나눠주었습니다.
“Thank you.”
선물을 앞에 두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VCIL 단체에서는 가을에도 두북 수련원을 찾아와 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두북 공동체 대중들이 운동장까지 배웅을 했습니다.
“Bye bye! See you next time.”
스님은 잠시 휴식을 했다가 오후 4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경주 망월사에 잠시 들렀습니다.
주지 스님과 잠시 차담을 나눈 후 차로 세 시간을 달려 저녁 7시가 넘어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대전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강연이 열리는 대전 서구청 앞에 스님이 도착하자 많은 시민들이 스님을 향해 인사하고 환호를 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강연이 열려서 그런지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전 신청을 좌석 수만큼 받으면 빈자리가 많이 생겨서 강연준비팀에서는 좌석수보다 사전 신청을 더 많이 받아두었습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강연장에 와서 되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입장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향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못 들어오시는 분들은 유튜브로라도 강연에 참석해 주세요.”
스님은 돌아가야 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주 평화 2.0 포럼에서 만난 충남대학교 평화안보연구소 소장 김지운 교수님이 찾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포럼에서 발제를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내용도 좋았고, 발표도 아주 잘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워싱턴 D.C. 를 방문하여 직접 발로 뛰는 영상을 보고 저는 단지 학문적인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닌가 반성이 되었습니다.”
”네, 활동하는 분야가 서로 다르니까요. 다만 학문을 위한 학문, 논리를 위한 논리는 지양해야지요. 현실의 변화를 감안해서 정책을 연구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교류를 해나갑시다.”
한편 강연장에서는 사전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흥겨운 노래에 이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는 동안 400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왜 이래요? 충청도 사람은 웃음소리가 담장 밖을 안 넘어간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여기에는 전부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만 오신 것 같습니다. (웃음)
경상도 사람들의 인사법 아세요? 먼 데서 벗이 찾아오면 ‘아이고, 그 먼 데서 어떻게 왔나? 고맙다’ 이렇게 말을 안 하고 ‘어지간히 할 일도 없다. 그 먼 데서 뭐 하러 오노?’ 이렇게 말해요. 또 선물을 사 오면 ‘아이고, 돈도 없는데 이렇게 선물도 사 오고 고맙다’ 이렇게 말을 안 하고 ‘돈도 샜다. 그걸 와 사오노?’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경상도식 감사 인사법입니다. 저도 방금 그런 식으로 인사한 거예요. 다시 한번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리가 다 차서 못 들어오신 분들께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뒤쪽에 서 계시는 분들도 있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서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는 서서 말까지 해야 되잖아요? (웃음)
즉문즉설은 어떤 이론을 얘기하거나 지식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마음의 어려움이나 고통, 스트레스 또는 의문들을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그냥 얘기하는 자리입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는 4,6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여덟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가지각색의 사연이 담긴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자신의 마음에 공감을 전혀 해주지 않아서 야속하다며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제 마음에 공감을 1도 안 해줘서 야속합니다
“제가 노력을 한다고 하는 일들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괴롭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복에 겨워 제 사랑을 집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사춘기의 큰 딸아이는 저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하는 자괴감에 빠져 2년째 행복하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맘으로 집과 회사만을 반복해 오가며 가족만을 생각하고 자식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정말 인성이 좋고 남에게 싫은 말은 조금도 듣지 않는 착한 사람이며, 근면하고 성실하여 남들은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조차도 남편을 칭찬합니다. 저도 남편의 그런 인품에 반하여 적어도 맘고생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둘도 없는 아빠이며 사랑을 끊임없이 주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제 마음에 공감해 준 적이 ‘1’도 없습니다. 남편은 제가 직장 동료와 싸웠다고 하면 ‘왜 남들과 싸워?’ 하며 저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을 두둔하기 바쁩니다. 한 번은 제가 아프다고 하니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내가 의사냐?’ 하고 반문합니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인품 하나만을 보고 결혼을 하였는데 이제는 배신감마저 듭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남편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그래도 남편의 얼굴을 보면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저도 괜찮은 사람이고 남편도 괜찮은 사람인데, 왜 둘이 만나면 서로 고통스러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나 자녀들이 질문자에게 ‘엄마 이것 좀 해주세요’, ‘여보 이것 좀 해 줘요’ 하고 요청하지 않는 것은 일절 하지 말아 보세요.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해결이 좀 될 겁니다. 오늘부터 당장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 가서 잠만 잡니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 배고픈데 밥 좀 줘’ 하면 나가서 밥을 차려주세요. 내일 아침에도 먼저 일어나서 밥을 하지 말고요.
아이가 ‘엄마, 밥 줘’ 이러면 ‘밥이 필요하니? 네가 해 먹지’ 이렇게 말하고, 그래도 아이가 ‘엄마가 밥을 해줘야지’ 그러면 그때 나가서 밥을 해준다면 아이도 엄마의 필요성을 좀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질문자는 아이가 밥을 먹기 싫은데 밥을 해놓고 깨웠던 겁니다.”
“맞습니다.”
“안 먹겠다는데 억지로 먹이니까 고맙기는커녕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질문자가 지금까지는 일종의 과잉 친절을 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 고생을 자기가 사서 하는 겁니다. 남편이나 아이가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질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남편이 100% 맞는 말만 했어요. 남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직장에 갔으면 그냥 자기 일만 하면 되지 동료하고 왜 싸우는지, 또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왜 의사가 아닌 남편한테 의지하려고 하는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 아니에요?
이것은 질문자가 남편으로부터 약간의 관심을 받고 싶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남편이 볼 때는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피우면 귀여운데 다 큰 성인이 어리광을 피우니까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는 거예요. 그건 남편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아닙니다. 남편이 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어떤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하게 제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말을 안 들어줍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독재자형 스타일입니다. 남편이 자기 얘기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재자의 사고방식입니다. 남편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소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독재자형 소통이에요. 민주주의형 소통은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나의 말이나 설명은 짧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야 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통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은 남편이 원하지 않는 말을 질문자가 먼저 한다는 것 아니에요? 남편이 ‘이것에 대해 말 좀 해줘’ 이렇게 얘기할 때 가서 말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자꾸 뭐라고 하지 말고요. 남편이 뭐라고 하는 말을 내가 들어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어주거나, 남편이 뭐를 해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을 해주는 것 외에는 내가 먼저 나서서 뭘 해주거나 내가 먼저 말을 하면서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누가 나를 좋다고 따라다니면 옛날에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요즘은 스토킹이라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데 자꾸 가서 뭐라고 말하고 무엇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애들하고 남편한테 스토킹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밥과 반찬을 많이 떠주면서 ‘많이 먹어라’ 하면 그것을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귀찮다고 생각해서 안 가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뀐 거예요.
갓난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 두 살, 세 살이 될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 때는 100%의 도움이 필요하고, 한 살 때는 99%의 도움이 필요하고, 두 살 때는 95%의 도움이 필요하고, 세 살 때는 90%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밥도 먹여주고 똥오줌도 갈아주고 무엇이든 다 해 줘야 해요. 이 때는 따뜻한 게 사랑이에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다음에는 갈수록 도움을 받아야 하는 비율이 적어져요. 사춘기가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고 해요. 그래서 엄마가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하면 귀찮아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계속 돌봤기 때문에 그게 습관이 되어서 애한테 뭐든지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애는 엄마하고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스님,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왔어요’ 하거나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늦네요’라고 말할 때 그렇게 진단하는 기준이 뭔지 제가 가만히 들어보면, 내 말을 안 들으면 사춘기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해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의 말을 그대로 잘 듣는 것은 어린아이 때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사춘기가 됐는데도 엄마와 아빠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 아이는 자립심이 없어져서 마마보이가 돼요. 이렇게 크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져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말을 안 듣고 반론도 제기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우리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자꾸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에요. 그것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사춘기 때의 부모의 사랑은 지켜봐 주는 거예요.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가능하면 자기가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방을 치우는 것도 엄마가 일체 손을 안 대어야 해요. ‘방 좀 치워라’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안 치운다고 야단도 치지 말고, 자기 스스로 3일 있다 치우든 5일 있다 치우든 알아서 하게 두어야 합니다. ‘엄마 제 방 좀 치워주세요. 제가 바빠서요’ 하고 부탁하면 그렇게 하지만, 그전에는 절대로 해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한 발 떨어져 주는 것이 이 시기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아이한테 뭘 계속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집착이고 습관입니다.
20살이 넘으면 자립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성인과 성인으로서 맺는 사회적 계약관계로 바뀝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성인으로서 대우해야 해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겨울에는 아이의 방에 장작 10개를 피워주어야 따뜻하다고 합시다. 그런데 봄이 되어도 계속 10개의 장작을 때면 안 돼요. 그러면 애가 더워 죽는다고 그래요. 5개로 줄여야 합니다. 여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을 안 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다가 사춘기를 넘어가며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뉘우칩니다. 스님의 ‘엄마수업’ 책을 읽고 나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난리를 치는데, 이것은 마치 겨울에 10개의 장작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름에도 10개를 다 때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의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아이도 똑같은 아이가 아니고 매일매일 다른 아이라는 것입니다.
남편도 연애할 때의 남자와 결혼하고 난 후의 남자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좋아한다면서 결혼하자고 따라다닐 때의 남자와 결혼하고 난 후의 남자는 다른 남자예요. 그런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여자가 좋아서 따라는 다니는데 여자가 계속 거부하면 남자가 스트레스를 받겠죠. 그럼 오기가 생겨서 ‘결혼하기만 해 봐라’ 하면서 결혼한 다음 날부터 팽 돌아섭니다. 그런데 여자는 ‘네가 그렇게 나를 좋아하니까 결혼해 준 것이니까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하긴 뭘 잘해요.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니 항상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어느 시점에는 급격하게 변할 때도 있고, 어느 시점에는 거의 안 변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음을 녹여봐도 알잖아요? -20° 되는 얼음을 녹이면 0°가 될 때까지 얼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불을 계속 때도 얼음은 그대로 있다가 어느 순간에 녹기 시작하죠. 이렇게 상태는 변화합니다. 변화는 하는데 변화가 일정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어느 순간에 급격한 변화가 올 때도 있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변화는 일어나는데 드러나는 현상은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지금 기후위기도 마찬가지예요. 기온이 좀 상승했다고 갑자기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일정한 온도 이상 오르면 해수면의 온도가 달라지고, 해수면의 온도가 달라지면 증발량이 달라지고, 해류의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게 되고, 또 북극에 있는 제트기류의 방벽이 무너져서 냉기가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 평균온도는 높아지는데 겨울은 더 추운 현상이 생깁니다. 반대로 한쪽에는 가뭄이 일어나고, 한쪽에는 폭우가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면 기후 변화가 더욱 심해지겠죠. 그러나 우리는 일정한 수준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프레온 가스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어요? 무색, 무취, 무해라고 해서 ‘기적의 가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다가 그 양이 50년 넘게 축적되니까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버려서 어마어마하게 큰일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결국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도 변한다는 거예요. 남편은 처음 연애할 때의 그 남자가 아닙니다. 같이 살다 보면 자꾸 바뀌게 됩니다. 가만히 놔둬도 바뀌고, 옆에 있는 사람과 주고받으면서 또 바뀌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의 문제는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면 너는 그걸 다 들어줘야 하고, 내가 먹으라 하면 너는 먹어야 하고, 내가 입으라 하면 너는 입어야 하고, 완전히 독재형이에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독재를 하면 다 싫어합니다. 질문자는 독선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남편도 떠나고, 아이들도 떠나버려요. 그러면 자기 혼자 외롭게 남게 되는 겁니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딱 침묵을 지키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 밥해줘’ 해서 밥 해주고, 남편이 뭐라고 해서 들어주고. 이러면 자기들에게 엄마는 필요한 존재로 인식이 됩니다.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면 감사하게 되죠. 질문자가 가만히 있으면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질문자가 먼저 나서서 뭘 해주려고 하면 가족들은 하나도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저를 위한 기도문을 하나 주시면...”
“기도문이 필요 없어요. 그래도 기도문이 꼭 필요하다면 ‘가만히 있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웃음)
“네, 가만히 있겠습니다.”
“절대로 나서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질문자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도 다 좋아합니다. 그리고 해달라고 할 때는 또 해줘야 해요. 그러면 내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여깁니다. 그런데 해달라고 안 했는데 해주면 귀찮게 여겨요. 그러면 자기는 자기대로 힘들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질문자를 귀찮게 여깁니다. 그렇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자기를 너무 하찮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항상 고맙게 여기는 존재가 되려면 우선 열심히 하지 말고 입을 다물어야 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질문을 다 받고 현장에서도 두 명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손을 든 사람이 더 많았지만 이미 2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일이 일어난 그때는 엄청나게 큰일 같은 일도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니에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대학시험에 떨어져서 재수한 게 큰일이었지만, 30년 뒤에 돌아보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연애하다가 헤어졌을 때는 서로 안 보면 죽을 것 같았지만, 다른 남자와 여자를 만나 한 30년 살고 난 뒤에 다시 돌아보면 아련한 기억은 있지만 별로 큰일은 아니에요. 이렇게 지나 놓고 보면 다 큰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짧은 순간에 나에게 빠져있기 때문에 그게 큰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문제를 남 보듯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에 빠지지 말고 ‘이 일도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니다’ 하고 살펴야 사실에 더 근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없는 일을 겪게 됩니다. 지나 놓고 보면 다 별일 아니에요. 설악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개울도 건너고, 가파른 데도 올라가고, 산 능선도 타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가파르게 올라왔든 완만하게 올라왔든 그건 하등 중요하지 않고 올라왔다는 게 중요하죠. 그것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안 죽고 살아있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오늘 여기 살아있다는 건 무엇을 말할까요? 설악산 정상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을 되돌아보니까 홀어머니 밑에서 아버지 없이 살았든 가난하게 살았든, 그건 다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한 거예요. 이혼을 두 번 했든 세 번 했든 그것도 별로 안 중요해요.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은 항상 스님한테 자랑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스님은 결혼 한 번도 못 했죠? 나는 세 번이나 해봤어요' 이렇게요. (웃음)
왜 돈은 많으면 좋다고 자랑하면서 이런 건 자랑을 안 해요? 그리고 개울을 건널 때 신발을 벗고 건너느냐, 누가 업어줘서 건너느냐 하는 것도 그 순간에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개울을 건너고 나서 한참 걸어가다 보면 방금 전에 신발을 벗고 건넜느냐, 업혀서 건넜느냐가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사실을 여러분들이 조금만 알면 지금 여러분들의 인생 하나하나가 다 산의 정상에 오른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여곡절을 자꾸 이야기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여기 살아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지금 내가 살아있고, 나는 그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는 자책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하루를 살더라도 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면서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대전충청 지역 행복시민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모두 뿌듯한 얼굴로 ‘행복시민 파이팅’을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스님은 수고했다며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차 앞까지 마중을 나온 강연준비팀에게 스님이 부탁을 했습니다.
“지난번 부산도 그렇고 오늘도 너무 많은 분들이 강연장까지 왔다가 돌아가셨네요. 돈이 들더라도 사전에 신청했는데 강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에게 사과 문자를 모두 보내주세요. 그리고 지역에서는 서울처럼 강연이 많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참석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 앞으로는 사전 신청을 너무 많이 받지 않도록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밤 10시에 대전을 출발하여 차로 세 시간을 달렸습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6.13만인대법회 준비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후 두북 수련원에 찾아온 스님들과 함께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