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曹操)의 지혜(智慧), 원소(袁紹)의 무지(無智) -
한편, 연주(兗州)의 조조(曹操)는 모사(謨士) 순욱(荀彧)과 함께 국정(國政)을 논의(論議)하고 있었다.
그때, 장군(將軍) 조인(曺仁)이 들어와 아뢴다.
"주공(主公), 태위(太尉) 양표(楊彪)가 장안(長安에서 밀사(密使)를 파견(派遣)해 천자(天子)의 조서(詔書)를 가져왔습니다." 하고, 밀서(密書)를 내 보이며 보고(報告)하는 것이었다.
조조(曹操)는 밀서(密書)를 받으며,
"밀사(密使)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인(曺仁)은,
"밀사(密使)는 굶어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해 들어오자마자 기절(氣絕)해 버렸습니다. 제가 죽(粥)이라도 먹이라고 후원(後園)에 보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조(曹操)는 천자(天子)의 조서(詔書)를 유심(有心)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다 본 밀서를 순욱에게 건네주고 자리에 가 앉았다.
순욱(荀彧)은 조조로부터 받은 천자의 조서를 읽어보고 미간(眉間)을 찌푸리며 한탄(恨歎)한다.
"이럴 수가!..."
그러자 조인(曺仁)이 순욱에게,
"순 대인(荀大人)! 무슨 일입니까? 소장(小將)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순간(瞬間), 순욱(荀彧)은 조조(曹操)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욱이 자신을 쳐다보는 의미를 깨달은 침통(沈痛)한 표정의 조조는 순욱을 향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순욱이 조인을 향하여 입을 연다.
"조 장군, 우리가 여포(呂布)와 교전(交戰)을 하는 동안 장안(長安)에서는 세상이 깜짝 놀랄 변고(變故)가 일어났소. 동탁(董卓) 수하(手下)였던 이각(李傕)과 곽사(郭汜)가 전자(天子)를 납치(拉致)하면서 둘이 원수(怨讐)가 되어 싸움이 벌어졌고 천자와 백관(百官)들마저 인질(人質)로 잡혀 두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장안(長安)이 온통 폐허(廢墟)로 변해 버리고 백성(百姓)들이 흘린 피가 넘쳐흐르고 양식(糧食)도 끊겼다고 하니 천자께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백관들이 굶어 죽는다 합니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냉철(冷徹)한 어조로 순욱(荀彧)에게 충고(忠告)한다.
"요점(要點)만 말씀하시오."
순욱의 말이 이어진다.
"관건(關鍵)은 미오성(郿塢城)으로 끌려갔던 천자(天子)께서 동승(董承)의 도움을 받아 낙양(洛陽) 쪽으로 피신(詔書)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자께서는 피신(避身) 중에 이런 조서(詔書)를 내려 친(親)히 천하 제후(諸侯)들에게 근황(近況)을 말씀하시면서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의 제압(制壓)을 명하셨습니다."
조조(曹操)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 입을 열어 말한다.
"이런 기회(機會)는 다시 오지 않소!"
그러자 조인(曺仁)이 순욱(荀彧)을 돌아보며 조조(曹操)에게 만문(反問)한다.
"기회요? 주공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면서 조조가 대답한 말의 의미(意味)를 모르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순욱이 대답한다.
"주공(主公)의 말씀은 장안(長安)에서 낙양(洛陽)은 필히 망탕산(芒砀山)을 거쳐야 하며 그 산이 우리 연주(兗州 )에서 오백 리 내에 있으니 천자를 구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천자를 손에 넣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瞬間) 조조(曹操)가 순욱(荀彧)의 말을 자르며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외치듯이 말했다.
"세상(世上)을 품에 안고 제후(諸侯)들을 호령(號令)하는 무기를 갖게 된다! 이거 아니오?"
한편, 기주(冀州)의 원소(袁紹)에게도 천자(天子)의 밀서(密書)가 도착(到着)하여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집정전(執政殿)에 모여들었다.
원소(袁紹)가 무백관(文武百官)들에게 말한다.
"천자가 장안(長安)에서 도망(逃亡)치면서 각(各) 제후(諸侯)들에게 구원 요청(救援要請)해 왔는데 말해 보시오. 내가 이 조서(詔書)를 받들어야 하겠소?"
그러자 백관들은 저마다,
"아이, 참.
"이걸 어째."
"참 내, 큰일이군 ." 하면서 이렇다 할 대책을 말하지 못하고 수군대고 있었다.
그러자 모사 허유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주공, 소관 생각으론 조서를 받들어 천자를 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더 앞서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천하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제후들이 난립해도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엔 누가 되든 간에 천자를 등에 업는 것이 천하제일의 권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원소는 허유의 진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삐딱하게 앉은 채로 빤한 얼굴을 하면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허유의 진언에 원소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바로 그때, 모사 전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면서 허유를 향하여 따지듯이 아뢴다.
"허유의 이론은 타당치가 않습니다. 지금 천하의 대세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지금의 천자는 허명에 불과할 뿐이며, 한 실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천자를 불러들이신다면 그저 귀찮은 짐만 떠안는 결과가 될 것이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자가 온다면 기주의 주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주공입니까. 아니면 그 애송이입니까? 게다가 그 애송이가 자기가 황제랍시고 이런저런 명령을 함부로 내리면 그에 따르겠습니까, 거역하시겠습니까?"
전풍의 말을 탁자의 손을 두드리며 듣던 원소가 입을 열어 한마디 한다.
"일리 있는 말이오. 지금의 천자는 확실히 짐덩이오. 놔둡시다." 하고 천자의 조서를 받들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였다.
그러자 허유가 얼굴을 찡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다시 아뢴다.
주공, 방금 전풍의 말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못 보는 좁은 소견일 뿐이옵니다. 한 실이 비록 추락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붕괴된 것은 아니옵고, 천자의 나이가 비록 어리고 허명뿐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황실의 황제임이 분명합니다. 주공께서는 지체 높은 기주의 주인이시지만 또한 한 실의 신하이십니다. 옛말처럼 명분이 없으면 설득력이 없고, 설득력이 없으면 패하기 마련입니다. 주공! 천자는 짐덩이가 아니라 오히려 천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명분이자 삼군을 통솔할 수 있는 깃발로써 그 쓰임새가 무한할 것이오니 천자를 버렸다가 만일 다른 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절대로 아니 되는 일이옵니다."
"으잉? 누굴 말하는 거요?" 원소는 그제서야 눈이 휘둥그레지며 허유에게 반문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연주의 조조, 형주의 유표, 둘 다 가능합니다. 더구나 조조라면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뺏으려들 것입니다."
그러자 허유의 옆에 서 있던 전풍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뢴다.
"허유의 말은 매우 지나칩니다. 깃발은 무슨 깃발입니까? 지금의 천자는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이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조조가 원한다면 데려가라 하면 그뿐, 주공께서는 허명을 쫓지 마시고, 실리를 택하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큰 실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주공께서 속히 공손찬을 제거하시고 청주와 유주를 병합해야 합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중원 천하 중에 네 개 주를 얻는 것이 되니, 이게 진정한 천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오니 주공께서는 속히 군을 재정비해 청주와 유주를 병합하는 것, 그것이 실리일 것이옵니다."
전풍의 말을 들은 허유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헉!.. 주공!..." 그 순간 원소가 손을 들어 허유의 말을 막는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결정했소! 천자의 조서를 받지 않고, 온 힘을 집중해 군을 재정비하고, 추수가 끝나고 양곡이 완비되면 즉각 여주로 출병할 것이오!"
"....." 원소의 명을 하달 받은 허유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자신의 주군이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입을 닫았다.
그러자 그 순간, 원소의 명을 받은 만조 백관들은 일제히,
"알겠습니다!" 하고 원소의 명령에 일동이 따르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집정전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던 허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독백하듯이 한탄이 가득 담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주공의 어리석음이, 대사를 그르치는구나!.. 그깟 전국 옥새 하나에 각지 제후들이 목숨을 걸고 뺏으려고 다투더니, 이제는 버젓이 살아 있는 황제를 왜 아무도 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음~ 어리석은 군주야! 간신배들 뿐이구나... 허헛!)
한편, 조조는 자신이 선두에 서서 낙양으로 군사들을 휘몰아쳐 말을 달렸다.
그리하여 망탕산에 이르러 말을 멈추며 말한다.
"시원하오, 시원해! 자, 보시오, 우리가 태양과 함께 망탕산에 올랐소. 음~!" 조조의 일성(一聲)은 앞으로 전개될 희망에 가득 찬 음성이었다.
그러자 조조의 뒤를 숨 가쁘게 따라온 순욱이 숨차 하면서 말했다.
"하루 반나절 만에 오백 리를 달려왔습니다. 사람도 말도 지쳤으니 좀 쉬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조가 대답한다.
"좋소. 그럼 잠시 쉬어 갑시다. 해가 중천에 뜰 때 출발하겠소."
순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겠습니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바로 마상(馬上)에서 조조가 순욱에게 묻는다.
"아 참, 원소 쪽의 동정은 어떻소?"
순욱(荀彧)이 대답한다.
"기주의 척후병의 보고에 의하면, 원소가 천자의 조서를 받들질 않았답니다."
"망탕산에서 제일 가까운 원소가 천자를 구하러 오지 않겠다고 했다고? 원소가 그 정도로 어리석다니 마음이 아주 가벼워지는군 하하하 핫!"
"원술과 유표는?" 조조가 이어서 묻자,
순욱이 대답한다.
"남양의 원술과 형주의 유표는 전혀 움직임이 없습니다. 아마 양쪽 다 나설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면, 천자는 내 차지로구먼!"
"네?" 순욱이 반문하자
조조가,
"지금 상황이라면 천자를 구하는 것은 나밖에 없질 않은가? 으 하하하 핫!..."
조조는 자신감에 넘치는 웃음을 호탕하게 웃어댔다.
그 순간,
"주공~!" 하며 뒤에서 조인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조인은 조조 앞에서 급히 말을 멈추며 아뢴다.
"주공, 산 밑에 수레바퀴 자욱이 있습니다."
"바퀴 간격이 얼마나 되나?"
조조가 재촉하듯이 되물었다.
"육 척, 육 촌 정도입니다."
"육 척 육 촌이라면 천자가 탄 수레가 벌써 지나갔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당장 전력으로 쫓아라!"
그러자 조인은,
"주공, 주변을 살펴보니 이미 지나간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급히 쫓기에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화를 발칵 내며,
"무슨 소리야! 지금 그 수레가 낙양성으로 갔든, 장락궁으로 갔든, 하늘로 솟고 땅으로 꺼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자를 뒤쫓으란 말이다! 알겠나?"
명령을 받은 조인이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말한다.
"주공, 모두 너무 지쳤습니다. 조금 쉬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자,
조조(曹操)는 채찍을 들어 조인을 겨누며 매섭게 말했다.
"빨리 안가?"
그러자 조인이 황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다급하게 외친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곤 군사들을 이끌고 천자가 탄 마차가 지난 간 자리로 말을 달려 나갔다.
조조도 급히 조인의 뒤를 따라 출발할 태도를 보이자 순욱이 말한다.
"주공, 그래도 조금 쉬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에 주공께서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 출발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순욱의 말꼬리를 자르며 야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중천에 해가 떴소!"
그 말을 듣고, 순욱(荀彧)이 손가락을 세워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 제가 보기에는 아직 해가 중천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번에도 순욱의 말꼬리를 자르며 냉정한 어조로 말하였다.
"내가, 중천에 떴다면 뜬 것이오! 여러 말 말고 어서 갑시다!"
그러면서 조조(曹操)가 앞장서서 조인(曺仁)이 달려간 방향으로 말을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순욱(筍彧)을 비롯한 병사들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조조의 뒤를 따라 말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삼국지 - 75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