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글쓰기, 수변의 뿔논병아리 관찰 등 근래 흥미를 잃었다. 그림 때문이다. 아트 페어나 쇼에서 소위 대세시류를 읽고 미술경매를 보며 전문가의 작품의 해설을 듣는 것이 요즈음의 새로운 소일거리다. 매체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거나 유명 화가들의 스튜디오 인터뷰는 흥미진진이다.
그림을 생업으로 살아야하는 그들의 언어는 고대 철학자 공자 노자의 말씀을 인용하는 대학교수의 인문학강의 보다 훨씬 마음에 닫는다.
모든 것이 일산에서 본“내재율”부터의 영향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안타게도 지난 4일 돌아가신 김태호 화백의 100호크기로 물감을 여러 번 발라 층을 쌓아 입체 음영은 물론 칼로 파내어 밑바탕의 오묘한 색이 층층이 우러나오는 사차원적 작품이다. 이 작품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치 내림을 받아야 만 하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시작해야겠다고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유화는 돈도 많이 들고 특히 냄새와 실내오염 때문에 안된다했다. 동내 문구점의 화방코너에서 조사한 물성을 감안 동양화로 정했다.
집에는 아내가 결혼물품을 실어오며 같이 가져온 작품 두 점이 있다. 사십호와 삼십호 크기의 실크위에 나염 작품을 크게 표구한 것으로 무거워 걸지도 못하고 이제껏 보관해 왔던 것인데 진작부터 버리려던 것이다.
이것을 뜯고 흰색페인트로 전체를 발랐으니 그림도 그리기 전에 판넬 표구가 마련됐다. 하는 김에 배접도 배웠다. 아내는 면허 없이 자동차를 먼저 사는 꼴 이라며 웃음진다.
처음에는 친구가 보내준 작품을 임서(臨書)를 하듯 따라 했지만 세밀 묘사를 할 수 없었고 특히 준비된 사십호 판넬에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독자적인 추상에 채색으로 범위를 좁혔다.
먹 대신 아크릴 물감과 붓을 사들였다. 구상 스케치 없이 무엇에 홀린 듯 매달려 30호 크기의 작품 1호가 나오고 바로 2호를 완성 시켰다. 성취감 자존감에 들떠 잠을 설쳤다.
카톡 프로필 사진에 작품을 넣는 것으로 시작 요즘은 자칭 화가 행세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퇴근한 아들이 정색을 하며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내리라는 것이다. 콜라주 형식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의 작품과 유사성을 증거로 댄다.
미술 대중화 브랜드 프린트베이커리에서 문제의 김환기 작품을 사진판으로 상품화 하여 올렸는데 곧 퍼질 것이라 했다.
나는 이제껏 남을 글은 읽지만 글을 베끼거나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내 이름이 붙는 SNS나 카페에 옮긴 적이 없다했다. 태생적으로 절대 모작은 할 수 없다며 일 년 후 그 작품을 없앨 것이란 계획을 설명 했다.
아들은 설사 모작이 아니라도 세상은 아버지를 이해하지도 않고 편도 없다며 극구 내리기를 주장했다. 이 갈등으로 아들과 여러 날 째 냉전 중이다.
사십이 넘은 아들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더구나 우리 집 경재 활동자이다 보니 그를 무시할 수 도 없다. 결국 칠십년 지조를 접고 대체 작을 모색 중이다.
아내가 이를 알았는지 응원을 보낸다. 아내도 아들과의 갈등이 불안했고 싫었던 것이다.
10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