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
해남 우항리 공룡화석 및 고생물화석 산출지는 해남읍에서 20Km, 황산면에서 2Km 떨어진 한반도의 서남단 화원반도의 동북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해남읍은 나주- 영암 - 해남 - 왼도를 연결하는 18번국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이에 따라 영암.진도.완도 등 인접지역의 중심상권이 되고 있으며 대흥사, 녹우당, 우수영(명량대첩기념공원)등이 자리하고 있어 문화유적지로서의 향토적 정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다. 고생물화석 산출지가 소재한 황산면의 면적은 81.55㎢, 인구는9,579명이며 연평균 기온은 12.8℃(최고 33.4℃, 최저 영하 8.3℃)이고 강수량은 796.9㎜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화원반도 북쪽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백악기의 우항리 지층은 1953년 세일층이 협재되어 있음이 밝혀졌고 1963년 정밀지표조사가 실시된 바있으며 1970년대에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석유탐사 작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과거에 이곳은 해남만의 남쪽에 위치한 바닷가였으나 지금은 금호 방조제에 의해 막혀진 대규모의 담수호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화원반도와 목포를 연결하는 금호방조제가 조성된 후 수면이 낮아짐에 따라 노출된 지역으로 푸른색, 검은색, 흰색의 퇴적층이 색종이를 쌓아 놓은 듯 층층이 쌓여 있어 보는 이를 경탄케 한다. 공룡발자국은 석유 매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질탐사를 하던 한국자원연구소 손진담 박사에 의해 최초로 언론보도 되었으며 이후 문화재관리국과 해남군의 노력에 의해 자연사유적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남대학교 박물관(관장 전형택 교수)에 의뢰하여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수행된 발굴 및 종합학술조사와 국제 심포지움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우항리 지역은 상부와 하부 퇴적층의 수평노출이 평균 30cm에 불과하였고 지층의 경사가 해안의 반대방향으로 놓여 있어 발굴 및 복원연구에 의하지 않고는 오늘날 같이 세계적 규모의 고생물 화석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우항리 공룡화석지의 가치는 지금으로부터 8천 300만년전에 형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발자국 1,000여점과 미국 콜로라도 대학 록클리 교수에 의해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의 발자국 300여점, 그리고 세계적으로 정교한 공룡의 발자국 500여점이 한지역에서 발견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으로 공룡의 생태환경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외에도 공룡의 뼈, 나무가 굳어서 화석이 된 규화목, 퇴적층에 형성된 물결화석,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된 바다게의 발자국 등도 함께 관찰되고있다. 발자국의 길이는 20cm에서 90cm에 걸쳐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으며 소규모 공룡에서 대형 공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공룡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발자국의 모양, 크기, 보행간격을 고려해 볼때 8,300만년전 우항리 일대에는 네발로 걷는 초식공룡과 2발로 걷는 육식공룡의 낙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경상도의 진동층, 또는 함안층에 비하여 지질연대가 젊으며 이러한 지질시대에 따른 공룡의 변천사를 밝히는데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전세계적으로도 그 산출이 흔지 않아 학술적 보존가치가 크며 국제적인 지질학 퇴적명소로 알려져 있다. 해남군에서는 이러한 공룡화석지를 보존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자연사 학습장을 조성할 계획으로 있다. 올해부터 2008년까지 10개년 계획으로 추진될 자연사 학습장에는 공룡화석지 보호각과, 전시관, 관람시설, 지질 생태학습장, 공룡야외전시장 등 세계적인 자연사학습장이 조성되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탐구욕을 한층 고취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산품 : 참다래, 김, 미역, 옥석공예, 밤고구마, 고려청자, 간척지쌀, 진양 주, 녹향주, 느타리버섯, 알타리, 돌산갓, 한과 |
첫댓글 해남 참 가고 싶은 곳인데... 학바우 님과 연계되니 더더욱 가고 싶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자랑스런 학바우 님~ 더위에 힘드시죠? 힘내세요!언제 낙향하신더랬더라?
1990년 11월에 우항리해안 절벽에서 공룡발자국화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 수행한 인부(?)는 현재 해남 대흥사 입구의 전주식당 주인(김성한)임을 밝혀 둡니다. 그런데 완전한 연구가 끝나기도 전에 섯불리 발설할 수가 없어서
공식조사보고서(1991년 2월 발간)가 나올 때까지 함구령을 내렸는데 그걸 잘 참아 주었으며, 1994년에야 그가 평소 알고 지내던 해남신문 편집국장(박상일)에게 제보하게 되었고, 이어서 신문사 취재요청에 응하여 조사 보고서를 해남신문사에 보내게 된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랍니다.
좋은자료 잘 봅니다. 참말로 한번 가 보고싶네.
그리운 학바우님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지가심에 묻어둔 이사랑을 그무엇으로 다 표현하리오ㅎㅎㅎㅎ 아침 향기님한테 끄댕이 뽑혀도 막을수가 있을까 의문입니다ㅋㅋㅋㅋ 나라를 위해 몸바치시는 그대님을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예^^^*
그거 참으로 귀한 자료네요,,,,공룡이라,,,,우리나라 남단에 그런 동물들이 있었다니,,,신기합니다,,앞으로도 더욱 많은 자료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자랑스런 학바우 님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