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뭔가 모를 정체성의 혼돈(?)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져서 한번 써갈겨 봅니다.
2002년, 한국이 4강에 진출할 때 당근이지만 엄청 좋았지요. 관련된 뉴스를 같은 것인데도 몇번씩이나 보며 혼자 흐뭇하게 생각할때도 많았고 당시 한국의 4강진출은 굉장한 자부심으로 남았습니다. 이 이상의 축구에 대한 감정이입이 있을까 생각하던 때, 독일월드컵에 호주가 출전했습니다. 하필 브라질이 같은 조에 걸리냐 라며 불안한 생각이 들었죠. 일본을 3대1로 역전시켜 잡았을때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한국분들과 마찬가지로 히딩크가 일본을 무찔러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지만 브라질, 크로아티아와 대결하게 되면서 그것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더군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이변이 일어나서 이겨주기를 바랬고 2대0으로 지자 매우 아쉬웠습니다.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는 말그대로 손에 땀을 쥐었던 순간...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종료 3초 전에 페널티로 골로 먹혔을 때의 억욱함과 허탈감... 쉬워저 골키퍼님, 제발 막아주세요 라고 그 순간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릅니다.
저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한 감정이입이 없었다면 품지 못했을 감정들입니다. 월드컵에서 빅매치 때 시청률이 높아지듯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야 자기와 상관없는 나라들의 시합을 말그대로 즐기기 위해 볼수도 있는 거지만 제가 그때 호주의 경기들을 보면서 느꼈던 기분은 2002년에 느꼈던 한국의 경기를 볼때 이상의 감정이입이었습니다.
그뒤 시간이 흘러 베어벡 감독이 이끌던 호주대표팀이 한국과의 평가전을 위해 방한해서 경기를 치뤄 3대1로 진적이 있었지요. 전 그때까지만 해도 축구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던 터라 그냥 결과만 뉴스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대1이 뭐냐 라는 언짢은 기분...
남아공 월드컵 때, 집의 안테나가 맛이 가버려 집앞의 리그스 클럽(캔터베리 불독)에서 경기를 봤습니다. 그때 봤던 경기가 호주 대 독일... 전반을 2대0으로 마쳤지만 그래도 후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거란 기대를 하며 계속 보는데 결과는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케이힐 퇴장에 4대0;;; 클럽에 있던 사람들은 침묵만을 지키는데 옆 테이블에서 아마도 자포자기했는지 독일이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를 하더군요. 그사람도 어이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때 제게 들었던 생각은 '저 색히는 호주가 지고 있는데 저 지랄이야?-_-^' 그뒤 가나와의 경기 때 큐얼을 퇴장시킨 심판에 대한 분노와 세르비아를 이겼음에도 골득실에서 밀려 결국 탈락하고 말았을 때의 허탈감이란... 호주의 탈락 이후 전 이제 한국이나 응원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이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반대가 되야하는거 아닌가?
남아공 월드컵은 제가 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가 되었고 그뒤 호주축구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지요.
시간이 흘러 아시안컵이 다가왔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서 저는 둘이 붙으면 누구를 응원할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한건 아니지만 딱히 결론은 나질 않더군요. 그런데 확실한건 한국은 호주와의 경기에서 져도 상관이 없겠지만 호주가 지는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기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결과가 1대1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는 내심 안심이 되었지요. 그리고 호주가 이기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저는 내내 호주를 응원했고 한국이 4강에서 떨어지자 '뭐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주가 이충성한테 골먹고 준우승에 머물자 허탈해지고 아깝더군요.
그 이후로 호주축구에 관련된 뉴스들은 빠짐없이 모니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상당한 감정이입이 이뤄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구요. 호주가 원정에서 독일 잡았을 때는 통쾌했고 아챔에서 호주팀들이 부진할 때는 안타까웠으며 호주선수들이 해외리그에서 맹활약할 때는 뿌듯했고 유망주들의 등장과 그들의 유럽진출, 활약상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 등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축구는 어떠했을까요? 솔까말 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냥 대략 지나가는 인터넷기사로 이겼느니 졌느니 조광래가 잘했니 못했니 이런 것만 몇번 보고 대략적인 것만 파악했을 뿐이죠.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박주영, 지동원, 구자철 등이 벤치에만 앉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가 더 낫구나라면서 은근한 우월감(!)마저 느꼈습니다. 이번에 지동원이 맨시티를 상대로 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뤄냈을 때도 제게 든 생각은 뭘 그 정도가지고 난리법석이냐라는 것이었죠.
만약 지금 호주와 한국이 축구경기를 벌이게 되면 제가 어디를 응원하게 될지는 며러분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지금이야 한국국적은 없지만 저는 분명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대체 왜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이 생기는 걸까요? 한국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살아서 그런가?
첫댓글 저는 한국살아도 한국대표팀을 그다지 응원하진 않습니다. 보다 속터져서... 그래서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저는 한국살지만 국대따위 알게뭐냐 클럽만 잘되면 되지인데요 감독님이 국대로 차출되가서
제가 볼땐 지극히 정상입니다. 걱정마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가 최고인 법입니다.
그래서 연고지가 중요한 겁니다 ㅎ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