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동사니와 돌피
그렇게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폭염도 절후 앞에서 공손해짐은 자연의 이치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나니 맹렬하던 더위 기세는 확연하게 꺾였다. 근래 날씨는 장마철처럼 연일 낮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닷새 뒤 처서가 기다리는 팔월 셋째 수요일 새날이 밝아왔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어둠이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여섯 시 반에 와실 문을 나섰다.
짧은 셔츠를 입고 나서니 서늘한 느낌이 들어 다시 와실로 들어 양복 윗옷을 걸쳐 입었다. 어제보다 반 시간 늦추어 나왔더니 날이 완전히 밝아와 주변 사물이 모두 식별되었다. 전날 비가 흩뿌리다 그쳐서인지 대기는 무척 쾌청했다. 연사삼거리에서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향했다. 길섶에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가을은 소리로부터 먼저 와닿았다.
차도 갓길에서 농로 들머리로 드니 습지에는 부들이 쓰러질 듯 자라 있었다. 부들이 피운 꽃은 모양이 특이했다. 갈색으로 핀 꽃은 꼬챙이에 소시지를 끼워놓은 듯했다. 들녘의 논과 인접한 습지는 벼를 가꾸는 영양분이 스며들어 잎줄기 세력이 왕성하게 자랐다. 한여름을 지난 벼들은 이삭이 패는 즈음이었다. 현재까지 작황은 좋으나 앞으로 닥칠 태풍을 무사히 넘길 일이 남았다.
연사마을 앞 들녘은 바둑판처럼 정리된 농지라 수로도 시멘트로 되어 직선형으로 반듯했다. 수로에는 수초가 엉켜 자라면서 개구리밥이 동동 떠 있었다. 논두렁에는 논바닥에서 밀려난 방동사니가 꽃을 피워 열매를 달았다. 방동사니는 예전 벼 논에서 돌피와 함께 대표적인 문제 잡초다. 요새는 이앙기로 모를 내고 나면 논바닥에는 제초제를 뿌려 생장하지 못해 밖으로 밀려났다.
들녘 한복판을 걸으니 전방에는 약수봉 산등선과 수월지구 아파트가 드러났다. 고현 시가지 뒤는 계룡산이 둘러쳐 있었다. 들녘에는 이삭이 패는 벼들이 자랐는데 유일하게 한 구역은 밭으로 바뀐 곳이 있었다. 배수가 잘되도록 두둑을 높여 무화과나무를 심어 키웠다. 밭뙈기 가장자리는 벼 논에 밀려난 돌피가 무더기로 자랐는데 이삭이 패었다. 잡초는 어디서나 절로 잘 자랐다.
아까 본 방동사니도 그렇거니와 피는 벼농사에서 문제 잡초 제 1호였다. 생김새도 벼 포기와 비슷해 예사로 보면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한참 커서 출수기가 되면 벼 이삭과 구분되었다. 피는 좁쌀처럼 자잘한 열매를 맺어 알곡 구실을 하지 못하는 밉상이었다. 나는 어릴 적 벼가 자라는 논에 들어 김을 매 봐 피를 잘 알고 있다. 그 시절은 제초제가 없었기에 저절로 친환경 농사였다.
방동사니와 돌피는 논바닥에서 밀려나 논두렁이나 수로 가장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해마다 그 자리에 씨앗이 떨어지니 대를 이어 종을 보존했다. 어릴 적 허리를 굽혀 논을 매면 벼 잎줄기가 턱이나 팔뚝에 스쳐 상처가 나면 따가웠다. 제초제가 없던 당시 논매기를 네 차례나 했다. 우리 집에는 농사를 많이 짓지도 않았는데 그 시절 농사일은 뭐든지 거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들녘 한복판 농로를 따라 걸어 연초천 둑으로 올라섰다. 둑 너머 조정지 댐엔 노랑어리연이 동동 잎을 펼쳐 자랐다. 냇바닥에는 부들과 갈대가 무성했다. 천변 언덕은 밤에도 화사하게 꽃잎을 펼쳤을 달맞이꽃이 한창이었다. 여름 이맘때면 제철을 맞아 피는 달맞이꽃이었다. 산책로 길섶은 당국에서 금계국이 저문 자리에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는데 생육이 더뎌 꽃이 피긴 일렀다.
날이 밝아온 지 시간이 제법 흐른지라 천변엔 산책객들이 다수 보였다. 연효교를 건너 연사천 둑길을 걸으니 길섶에는 푸른색 나팔꽃이 꽃잎을 펼쳐 있었다. 나팔꽃은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만 피었다가 한낮이면 꽃잎을 오므려 닫았다. 연사마을 동구는 간밤 저녁에 꽃잎을 펼친 분홍색 분꽃이 눈길을 끌었다. 분꽃은 아침이 오면 꽃잎을 닫아 해질 무렵 다시 피는 특성이 있다. 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