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군(曹操軍)의 낙양성(洛陽城) 입성(入城) -
헌제 일행은 수많은 파란곡절을 겪은 뒤에 간신히 낙양(洛陽)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낙양은 이미 옛날의 낙양이 아니었다. 호화찬란하던 궁전은 불에 타버려 폐허처럼 변했고 성안에는 인가조차 없어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잡초가 우거진 폐가(廢家) 뿐이었다.
때는 가을도 저물어 겨울이 가까운 가운데 폐도(廢都)에는 닭소리는 물론 개짓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이런 낙양(洛陽)의 모습을 돌아본 헌제가 한탄을 한다.
"여기가 과연 낙양이란 말인가? 그토록 번성했던 낙양(洛陽)이 이처럼 변하다니!..."
그러자 동승이 실망을 금치 못하는 헌제에게 아뢴다.
"동탁을 치려고 의군(義軍)들이 들이닥치자 동탁이 이곳 낙양성(洛陽城) 곳곳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도 일줄은!..."
"이건 그야말로 폐허가 아닌가?"
헌제가 다시 한탄을 하자, 양표가 말한다.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헌제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헌제는,
"아니오 ... 짐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소. 동 태사가 강제로 짐을 장안으로 데려갔지만 낙양(洛陽)이야말로 우리 황실의 역사가 있을뿐더러 내가 태어난 고향이 아니오?"
"그러시다면 저희들이 폐하께서 이곳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폐하께서 낙양(洛陽)으로 돌아오신 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각지에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달려올 것이옵니다."
양표가 말한 대로, 황제가 낙양(洛陽)으로 돌아왔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황제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낙양성(洛陽城)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물어진 집을 고치고 밭을 일구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나갔다.
양표는 급한 대로 작은 궁전 한채를 짓게 하고, 그 앞에서 문무백관들의 조회(朝會)를 열게 하였다.
이렇게 낙양성(洛陽城) 재건(再建)이 시작되고 있을 때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이각과 곽사의 무리가 또다시 대군을 이끌고 낙양(洛陽)으로 쳐들어 온다는 것이었다.
헌제는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떨며 태위 양표에게 물었다.
"각지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도우러 오지 않았건만, 이각의 무리가 다시 쳐들어온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소?"
"이제는 도적의 무리와 죽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러자 동승이 즉석에서 고개를 흔든다.
"대항할 군사도 없으면서 도적들과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제는 어가를 모시고 산동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 상책일 것 같소이다."
헌제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어가는 그날로 산동을 바라보고 낙양(洛陽)을 떠났다.
뒤따르는 무리들은 말없이 모두 걸어서 황제의 뒤를 쫓았다.
낙양(洛陽)을 떠나서 십 리쯤 갔을 때였다. 문득 저 멀리 들판에서 먼지 구름이 자욱이 일면서 햇빛을 가리고 북소리, 징소리가 아득히 울려오며 무수한 군마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냐?"
헌제 일행이 몸을 떨며 감히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많은 군사 중에 평복을 입은 한 사람이 말을 달려 이쪽으로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앗! 저 사람은 산동에 갔던 칙사가 아닌가?"
"아, 틀림없는 그 사람입니다!"
칙사는 나는 듯이 달려오더니, 헌제 앞에서 말을 내리기가 무섭게 부복하면서,
"폐하! 지금 돌아오는 길이 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저기 보이는 대군은 어떤 군사인가?"
"조조 장군이 폐하의 부르심을 받자옵고 대군을 일으켜 낙양(洛陽)으로 오는 중에 이각, 곽사의 무리가 낙양을 범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사옵고, 하후돈(夏侯惇) 장군에게 정병 오만을 주어 폐하를 호위하도록 보내온 군사이옵니다."
헌제와 백관들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안도하였다.
얼마 안 있어, 하후돈과 허저, 전위 등의 장수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헌제 앞에 부복한다.
"신 하후돈이 폐하를 호위코자 선봉으로 달려왔사옵니다. 조 장군께서는 대군을 이끌고 하루 이틀 늦게 도착하실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하오니 폐하께서는 안심하시옵소서!"
"원로에 대군을 거느리고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짐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오."
그러자 헌제를 수행하던 백관과 시종들이 일제히 만세를 높이 불렀다.
"조 장군 만세~!" ...
"하 장군 만세~!" ...
"황제 폐하 만만세~!" ...
그런데, 그 만세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쪽에서 대군이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은 웬 군사냐?" 하후돈이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다가오는 군사들의 군기(軍旗)를 유심히 살피더니,
"저 군사들도 우리 편이옵니다. 조 장군의 영제(令弟)인 조홍 장군이 이전, 악진 등 두부장과 함께 삼만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의 뒤를 따라온 후군(後軍)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헌제는 더욱 기뻐하면서,
"아, 우리 편이 삼만이나 또 온단 말이오!"
이윽고 조홍(曺洪)은 어가 앞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천자 앞에 부복한다.
"신의 형은 적병이 낙양(洛陽) 가까이 이르렀음을 알고, 하후돈 장군을 선봉으로 보내옵고, 다시 신을 후군으로 보내었사옵니다."
천자가 감격하며 말한다.
"아아, 조 장군이야말로 참으로 사직지신(社稷之臣)이오!" 천자는 감격과 칭송을 마다않았다.
이리하여 일시는 멸망의 비명에 직면했던 헌제는 일약 팔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다시 낙양(洛陽)으로 향했다.
정세가 이렇게 변한 줄을 모르는 이각과 곽사는 낙양(洛陽)을 점령하는 즉시로 헌제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해 왔다. 그리하여 조조의 대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후돈과 조흥은 군을 좌우익으로 나누어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과 싸웠다.
그러나 도적의 무리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인데 다가 조조군은 워낙 훈련이 잘 된 임전무퇴의 정예부대인 지라, 싸움의 승부는 알아볼 것도 없었다.
"이 기회에 도적의 무리를 씨알머리도 없이 사정없이 베어라!"
명령 일하, 조조의 군사들은 도적의 무리들의 머리를 만여 급이나 베었다. 그리하여 이각과 곽사는 재빠르게 도망을 쳤지만, 전장은 피바다를 이루었고 적들이 흘린 피는 대지를 적시고, 그 피는 십여 리 떨어진 낙양성(洛陽城)에까지 이르렀다.
이날 황혼 무렵에 헌제는 낙양(洛陽) 궁전으로 다시 돌아왔고, 군사들은 성 밖에 진을 치고 횃불을 밝혔다.
조조가 낙양(洛陽)에 도착한 것은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조조가 상경하였다."
"조 장군이 드디어 낙양(洛陽)에 돌아왔다!" 천자를 호위하는 백관들과 시종들은 너 나 없이 기뻐하였다.
낙양(洛陽)에 도착한 조조가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장락궁(長樂宮)으로 들어가다가 순욱에게 묻는다.
"순욱?"
"예!"
"잊은 게 있소."
"뭡니까?"
"예법에 따르면 천자를 알현할 때에는 예물을 바쳐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못 했으니 어찌해야 할까?"
순욱은 조조의 뒤를 따라가며 말한다.
"이러면 어떨까요?"
"뭐요?"
조조가 발걸음을 멈추고 순욱을 돌아 보며 물었다.
"지금 천자와 백관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있을 테니, 가장 필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바로, 고깃국과 밀떡이겠지요. 이럴 땐 고깃국 한 모금이 황금 만 냥보다 나을 것입니다."
"맞소! 나도 어려운 시절에는 고깃국이 그 어떤 것보다 그리웠지, 조인?"
그러자 조조를 수행하던 조인이 즉각 대답한다.
"네!"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그러자 순욱이 즉석에서 조조에게 간한다.
"주공께서 한 가지 더 유의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요?"
"천자를 알현하실 때에 조정의 예법에 따라 주셔야 천자를 비롯해 백관들이 안심할 것이옵니다."
"알겠소, 알겠소!"
"순욱? 한 가지 더 고려 할 게 있네"
"뭡니까?"
"낙양(洛陽)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으니, 수도(首都)를 옮겨야 한다면 어디가 좋겠소?"
"연주부의 허창입니다."
"어째서?"
"허창은 주공의 근거지가 아닙니까? 천자를 곁에 둬야 안심이 되실 거라고...
아마 주공께서는 그리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다만 말씀을 안 하셨다 뿐이지..."
"순욱 당신은 어찌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아는 거요?"
"주공, 그게 소관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으흐흐 흠!...." 조조는 자신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순욱이 너무도 기쁘고 좋아서 크게 웃어 보였다.
어느덧 조조는 황제가 좌정해 있는 장락궁(長樂宮) 앞에 이르렀다. 황제는 비록 옷을 갈아입고 용상에 좌정해 있었지만 불타고 부서진 집정전(執政殿) 내부는 타다 남은 재와 흐트러진 전각 쪼가리로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조조는 황제의 먼 발치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부복한다.
"신, 연주 자사 조조가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려 세 번 절한 뒤에 다시 몇 걸음을 걸어가, 다시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세 번 절한다.
황제 유협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채로 조조의 거동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충신이로다, 환란 속에 충신을 만났도다!" 하며 치하의 말을 읊조렸다.
조조는 다시 황제의 가장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다시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세 번 절했다.
그러자 황제는,
"아, 그만 일어나시오!" 하며 감격 어린 명을 내렸다.
그러자 조조는 부복한 채로 두 손을 마주 잡아 읍한 뒤에, 양손을 들어 외친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황제를 향해 절을 하고 일어서 돌아서며 손바닥을 마주쳐 딱딱 두 번 소리를 내자 뒤에 서 있던 순욱이 황제에게 올릴 예물을 들고 조조의 곁으로 다가와 상자를 조조에게 정중히 건네었다.
조조는 예물 함을 두 손으로 정중히 떠받들고 황제가 앉아있는 용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자 앞에 무릎 꿇고 예물함을 들어 올리며 아뢰었다.
"폐하! 받으십시오!"
"조 장군, 이게 뭐요?"
조조는 천자와 눈을 맞추며, 나직이 말했다.
"맞춰 보십시오."
양 눈에 눈물이 가득한 천자 유협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조조에게,
"옥새?"
천자는 조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눈을 슬며시 감은 채 고개를 살살 좌우로 흔든다.
"만호?"
"호박?"
천자가 예물 함 속에 든 물건을 말할 때마다 조조는 두 번 세 번 고개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황제 유협은 당황한 빛을 보이며,
"하, 짐은 모르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침착한 음성으로,
"열어 보십시오." 하고 말하면서 예물함을 천자의 무릎 위로 옮기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황제는 예물 함을 덮은 비단 보자기를 걷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조조가 따듯한 음성으로,
"폐하, 지금 막 끓인 고깃국입니다. 어서 한 숟가락 뜨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굶주렸던 황제는 고깃국을 보자, 눈물을 글썽이며 숟가락을 잡아 다짜고짜 국을 떠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하, 조 장군! 짐은 벌써 반년 동안이나 고기 맛을 보지 못했소." 하며 감격 어린 말을 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러면서,
"어서 드십시오. 백관들의 고깃국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허겁지겁 고깃국을 연속하여 입에 넣었다.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조가 단하를 내려오며 손짓해 보이자, 근신과 시종들이 도열한 장락궁 안으로, 조조의 군사들이 고깃국과 밀떡을 담은 광주리를 들고 들어와, 백관들과 시종 앞에 차례로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조조가 말한다.
"여러 대인들 어서들 드십시오."
"아 먹을 거다!"
"아이, 죽다 살아나네!"
"아, 아! 이게 뭔가?"
"자자, 밀지 마십시오. 음식은 충분히 있습니다."
황제는 물론 백관들과 시종들은 고깃국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백관들과 시종들은 물론, 황제조차 체면을 가리지 않고, 고깃덩이를 급히 손으로 건져내 바쁘게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삼국지 - 76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