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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 정각 스님
누구나 살면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살다 보면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은 잊은 채 그저 살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여러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서 삶은 달라진다. 1987년 출가한 정각 스님은 40여 년 가까이 종교인으로 살아온 삶을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관조하듯 말했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 원각사 주지 정각 스님(64)을 만났다. 대학 시절 스님은 플라톤의 이데아(감각 세계의 너머에 있는 실재이자 모든 사물의 원형)와 같은 ‘이념의 세계’를 동경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내 내면의 목표, 지향점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읽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속 유토피아 ‘카스탈리엔’이 자신이 가야 할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자신이 동경하던 “미지의 장소에 다가서기 위해” 절로 들어갔다.
스님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세계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던 까닭에 전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됐다”고 이야기할 뿐, 그 선택이 어땠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매사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다고 분별하는 게 습관인 중생에게는 신선하고 낯설지만, 이런 모습이 수행자가 아닐까.
“이제 어느덧 중(僧)이 되어 있고, 이후 기쁨도 슬픔마저도 존재치 않아야 한다.”(정각 스님, “빈곤한 자의 초상”, 79쪽)
“불교 수행자는 나(我)와 존재(法)에 대한 집착을 떠난 아법이공(我法二空)의 지혜를 성취한 채 선행의 과보인 덕을 쌓아가야 할 것으로, 이를 통해 지혜의 완성(paramita)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경지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정각 스님, <불교신문> 2010년 8월 11일 자)
정각 스님. (사진 제공 = 정각)
정각 스님은 종교란 모든 강물이 흐름은 달라도 결국 바다에 도달하는 것처럼, 불리는 이름이 다를 뿐 종교 즉 세상의 진리는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스타들의 말 한마디가 더 종교가 되는 것 같다”며, 대중을 사로잡는 선동가들의 말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나면 행운이지만,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주어진 대로 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시인 횔덜린(F. Hölderlin)의 “오직 사냥꾼만이 숲속 오솔길을 알고 있다”는 구절을 종종 인용한다. 여기서 사냥꾼은 ‘진리의 사냥꾼’이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만이 숲속 오솔길을 알고 어디에 징검다리가 몇 개 있고, 냇물이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숲속’이라는 삶의 여정에서 진리의 길을 가도록 자신의 진실한 경험을 들려준다면 제대로 된 종교인 또는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 그것은 세속과의 타협이 아닙니다. 조건 지어진 삶의 상황 가운데 우리를 만족케 해 주는 질서가 아닌, 나의 삶에 만족하지 말고 또 다른 삶의 조건을 향해 무수히 나아가기를 촉구하는 것, 거기에 종교의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의 참된 의미는 현실적 조건의 충족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상황은 단지 우리에게 영원한 길의 모상만을 스크린에 비춰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스크린 속에 나 있는 오솔길을 찾아 끝없이 길을 가는 ‘나그네’가 될 수 있기를 종교는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2001년 2월 11일 능인선원 일요 법회 법문 내용 중)
더불어 신앙은 그저 바라고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매 순간이 기도여야 합니다. 내 모든 생각과 움직임이 기도입니다. 내 생각과 행하는 바가 좋을 것 같으면 그에 따라 좋은 결과가 생겨날 것이고 그것이 기도에 대한 보답입니다. 기도는 무언가 생겨나게 해 달라고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원각사. ⓒ배선영 기자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종교 지도자 모임인 고양종교인평화회의에 함께하고 있는 정각 스님에게 불교와 천주교가 함께할 길을 물으니 ‘평화’를 이야기했다.
“평화의 ‘평’(平)은 공평하다는 뜻이고,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를 써서 ‘밥을 먹는다’는 뜻이에요. 즉, 서로 공평하게 나눠 먹으면 거기에 평화가 있는 거예요. 어느 한쪽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불화가 되죠. ‘욕심을 버리고 공평하게 먹는다’를 기본으로 갖고 있으면 돼요. 나아가 내 것을 조금 양보하려고 한다면 모든 곳에 평화가 있어요.”
이어 “종교 간의 평화도 마찬가지다. 자기주장만 하지 않고 남을 인정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 먹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리 없다”고 덧붙였다. 스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단순함 속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재에서 40여 분간 인터뷰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와 짧고 정갈한 점심을 먹으며 이데아, 저 너머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스님은 이데아를 경험했는지 묻자 “누구나 다 한다. 다만 자신이 인식하고 못 하고의 차이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렇다. 틱낫한 스님도 말했듯이 ‘깨달음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정각 스님은.... 1987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앙승가대 교수로 내년 정년을 앞두고 있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제자를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덕이 높은 승려)로 위촉된 바 있다. <불교신문> 논설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2001년부터 일산 원각사 주지로 있다. “한국의 불교의례”, “천수경 연구” 등 10여 권 책과 논문 40여 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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