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은 길고도 길다.
긴 겨울밤 무엇을 할 것인가?
예전에는 농촌에서 새끼도 꼬고 사랑방에 모여 화투놀이 나이롱뻥도 하고 사랑방 손님이 적으면
둘이 육백을 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혼자일 때는 오관을 뛰며 무료함을 달랬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이슥해 동네 어느 집에서 기제사로 불을 밝히면
제삿방 치기라고 해서 몰려가 밤참을 얻어 먹던 훈훈한 빈곤 시절이었다.
부잣집이나 라디오가 있지 대개는 거미줄처럼 안테나를 세우고 귀에 광석 레시버로 혼자 하던 시간들!!
후래쉬인가 군인덴찌를 들고 동네 초가지붕에 참새를 찾아나선 몹시 추운 고향의 밤-.
특히 묵은 집에 참새가 둥지를 틀고 있어 초가삼간보다 종갓집을 찾는다.
잠시 양해를 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같이 나와 사다리를 잡아준다.
긴 밤 숙향전이란 얘기책도 읽고,충렬전이란 책도 서로 돌려가며 읽던 등잔불 시대-.
밤이 깊어 출출하면 텃밭에 저장한 무 구덩이 짚마개를 뽑고 날카롭게 깎은 긴 작대기 끝으로
무를 찍어올려 깎아 먹기도 하고, 먼 동네까지도 가서 막국수를 사 먹으러 가곤 했다.
어제(1/19) 저녁이었다.
겨울밤이 길다. 텔레비젼에 매달려 훨씬 다양해진 채널사냥에 나섰다.
11시 반-.된장찌개맛 같은 채널을 봐둔 게 있어 긴 밤을 애써 참다가 찾아갔다.
-나는 누구인가? 설 특집으로 23년만에 다시 선 포크 가수 이장희 스페셜이다.
세시봉 멤버로 세간에 잘 알려진 가수 이장희, 그 어느 멤버보다 음악성에 끼가 넘치는 독무대였다.
오랜만에 체널을 고정하고 전신으로 특집 프로를 마신 100분간의 겨울밤이었다.
울릉도에 살고 있다. 그의 노래는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혼자 독백의 가사들이 심금을 울린다.
그는 말했다. 왜 이세상에 던져진 존재일까? 그는 답을 절대자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왜 선악과를 치워주지 않았느냐고 한풀이하는 이장희 그는 콧수염이 아니고 대머리다.
그의 노래는 익히 알지만 그의 사연들이 나를 감동케 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은 엄니가 13살때 "장희야! 우리 나가살까?"
오죽 견딜 수 없으면 아버지를 피해 나가살자고 까지 한 어머님의 그 이슬맺힌 말한마디-.
결국 엄니는 이장희가 가수로 70년대 인기 절정의 영광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가셨다.
그 한마디 나가살까가 평생 아들 가슴에서 한이 서리고 어머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 때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가 "어머님의 자장가 "이다.
순간 나 역시 총각선생을 할 때 홀어머님을 모시고 객지로 다니던 생각이 나서 한참을
멈추었다. 단칸 방-.어쩌다 애인이라도 찾아오면 추운데 밖에서 서성이며 들어오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에 방해를 주지않기 위해 배려한 바다같은 어머님의 모습에 눈물진다.
이장희가수는 이민생활로 미국에 가서 세탁소도 하고, 한인 방송국에 근무하면서 일약 스타로 대통령까지 찾아올 정도였다고 하면서도 그 때 아내와 이혼한 아픔을 토로한 이장희-.
누구나 일세기를 살지 못하면서 저마다 아픈 추억들을 간직하며 살아들 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푸근하다.청국장 끓는 내음이 나고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말이 비단결 같고
표정 또한 취해있어 그저 좋다.
이순(耳順)이 훌쩍 넘어 65세 쯤 되었으리라.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그애와 나랑은, 불 꺼진 창,그건 너!!
아이러니하게 이 프로에 사회는 세시봉의 홍일점이자 초등학교 친구인 윤여정이다.
쇼처럼 긴 여정-. 얼룩진 생의 옷들을 입고 나온 자들의 표정을 본다. 긴 터널을 헤쳐나온 표정들-.
70 고희(古稀)가 되면 아직 친구가 있다는 것이 자랑이라고 했다.
이장희는 그 때의 보컬그룹 밴드를 울리던 자랑스런 친구들과 모두 함께 나왔다.
강근식-. 백발에 수염을 나부끼며 묘한 여운을 남기는 기타리스트의 선율과 몸짓이 너무 좋았다.
세월은 가도 친구들은 그를 찾고 함께 생을 노래한 그의 생애가 아름답다.
백 분동안의 마지막 공연에 무대엔 빈 의자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에 우린 사랑을 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싸우고, 이혼을 하고, 노력을 해
다시 성공을 하기도 하고 천길 벼랑속으로 떨어지지 않는가! 모두는 여하튼 사랑의 대상인
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생각케 한 70년대의 그건 너를 긴 겨울밤에 모처럼 따라 불러보았다.
이제 우리가 모두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긴 겨울밤 설 명절을 앞두고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한 시간이었다(글-德田)
첫댓글 제사가 끝나면 제사음식 얻어 먹으러 가는 것을 저희마실에서는 "벌지"간다 하였습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 벌지-.ㅎㅎ 감사
공감어린 글, 숨죽이며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