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주요 인물로 알천랑에 대해 네티즌은 물론 시청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동안 알천랑에 대해 잘모르고 있던 세상사람들이 극중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대역배우인 이승효군의 분장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실존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지식인 코너 및 기타 인터넷 창에 답변형식을 통하여 공개기록을 했었습니다.
또한 이미 진주소씨 홈페이지와 씨족 카페에 소알천(蘇閼川)공에 대한 유사(遺事)가 올려져 있었지만 그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가 탤런트 겸 배우인 소지섭이 알천랑의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해 갑론을박하였고, 그 과정에서 진주소씨대종회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소지섭은 알천랑의 47세손이 확실하다는 증명과 함께 같은 배우 소유진양과 가수 소명씨, SBS방송의 찬란한유산 연출자 소현경, MBC방송의 에덴의 동쪽 연출자 소원영씨도 알천공의 후손임을 확인 해주었습니다.
하여 그 이후 공개된 정보에 의해 대다수 사람들은 소알천공은 진주소씨 시조로 알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과 시청자는 아직도 우리 시조이신 할아버지 가문(가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것 같아 다시 한 번 알천(경)공에 대한 조상과 후손에 대하여 공개합니다. 아울러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단계별 시대별로 공개하려 하니 잘 헤아려 이해하시고 각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주소씨대종회 종사관리 위원장 소태섭 배
진주소씨 시조(晉州蘇氏 始祖) 신라국 상대등(新羅國 上大等)
소알천(蘇閼川=蘇慶)공 가문(家門=家系)에 대하여...
진주소씨 시조 소알천(蘇閼川=蘇慶)공은 아버지 아찬(阿飡) 소휴곤(蘇休昆:初諱 蘇武殷)공과 가미노부인(加美老夫人) 사이에서 서기 577년 신라 진지왕(眞智王) 2년 5월 6일 경주 사량부(沙梁部)에서 탄생하여 서기 686년 신문왕(神文王) 6년 10월 12일 진주 구시동(현 상대동)에서 서거(逝去)하시기까지 110세의 천수(天壽)를 누리셨다.
알천공은 아달라이사금(阿達羅抳師今)의 14세손이고 상대등 총지국사장(上大等 摠知國事長) 박선(朴宣)공의 따님인 영아부인 박씨(玲阿夫人 朴氏)와 혼인하여 자식 한 명을 두었으니 이가 곧 소이벌(蘇利伐 :호는 山史, 改諱:老欣)공이고, 독자 이벌(利伐)공은 예부령(禮部令) 석경태(昔京太)공의 따님인 이우부인 석씨(利雨夫人 昔氏)와 혼인하였다.
알천공께서는 화랑(花郞), 국선(國仙)을 거쳐 장군(將軍)과 대장군(大將軍), 이찬(伊飡), 각간(角干)으로써 충성을 다하고 문무(文武)를 겸비한 일인지하 만인재상인 상대등(上大等)으로 재임 중 서기 654년에 진덕여왕(眞德女王)께서 등극 8년만에 승하를 맞는다.
화백회의 의장인 공은 군신들의 결의로 왕위에 추대 받았으나 사양하고, 김춘추(金春秋)공을 추대하여 신라왕으로 등극시키니 소벌도리(蘇伐都利)공이 박혁거세대왕을 신라국 초대왕으로 등극시킨 이후 두 번째로 신라천년사직(新羅千年社稷)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 공적으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金春秋)은 소벌도리공을 문열왕(文烈王)으로 봉하였다. 이유는 상대등 소알천(소경)공의 신라에 대한 충성과 공적이 가히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弗矩內)을 신라 초대왕인 국조로 세운 소벌도리공과 같기 때문이었다.
소벌도리공께서 문열왕으로 추대받던 날 밤, 알천공은 영아부인 박씨(玲阿夫人 朴氏)와 며느리 이우부인 석씨가 이상동몽으로 소벌도리공께서 꿈에 나타나 도사곡에 구시목이 있는곳(현재 진주시 상대동)으로 이거(移居)를 하게 되면 후손을 이을 것이며 구치자(九豸者:九將軍)를 얻을 것이란 현몽을 하게 된다.
현몽대로 660년 3월 3일 삼짇날 진주 구시동으로 이거하여 진주를 관향으로 하는 진주소씨의 문호를 열게 되는 계기가 되고, 상대등 알천공은 천복(天福)을 받아 독자 소이벌(蘇利伐)공에게 후손이 없어 대가 끊길 뻔하는 문중의 최대 번민(煩悶)에서 득손(得孫)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거 이듬해인 661년 1월 독자이신 소이벌공과 며느리 이우부인 석씨(利雨夫人 昔氏) 사이에 손자 소복서(蘇福瑞)공을 얻게 되고, 학수고대하던 집안의 경사를 맞이하니 알천공은 경사로울 경(慶)자를 쓰는 소알천(蘇閼川)에서 소경(蘇慶)으로 개명을 한다. 또한 독자 소이벌(蘇利伐)공도 늙어서 아들을 얻은 기쁨으로 늙을 노(老)자에 기쁠 흔(欣)자를 쓰는 소노흔(蘇老欣)으로 개명을 하고 이후 차남 병부사(兵部史) 소복상(蘇福祥)공, 삼남 사공(司空) 소복정(蘇福廷)공 등 삼형제를 두며, 현몽한대로 상대등공 직계로 9대 동안에 모두 행정과 군사권을 가진 9대 9장군(九代 九將軍)을 낳게 되었으니 이는 어느 성씨에도 결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이다.
구대 구장군의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로써 알천공의 3세손 소복서(蘇福瑞 : 청주총관)공으로부터 대대로 9대에 걸쳐 4세손 소억자(蘇億慈:한주총관)공, 5세손 소후준(蘇後俊:상주총관)공, 6세손 소검백(蘇劍白:웅주도독)공, 7세손 소상영(蘇尙榮:청주도독)공, 8세손 소목(蘇穆:청주도독)공, 9세손 소은(蘇恩:웅주도독)공, 10세손 소송(蘇淞:강주도독)공, 11세손 소격달(蘇格達:하동태수)공에 이르기까지 진주소씨의 힘찬 출발이었으며, 중흥을 이룬 명문벌(名門閥)로 대대로 영예로운 문중이었다. 이로써 9대 장군은 무예에 뛰어난 장군뿐만 아니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알천공은 태상계조상(太上系祖上)으로 적제 축융(赤帝 祝融) 소복해(蘇復解)공의 157세손이며, 부소갑(扶蘇岬) 부족국가를 세운 상상계조상(上上系祖上)으로 태하공 곤오(太夏公 昆吾) 소풍(蘇豊)공의 97세손이고, 중상계조상(中上系祖上)으로 후진한(後辰韓)을 세운 진공(辰公) 소백손(蘇伯孫)공의 29세손이다. 또한 박혁거세 거서간을 신라왕으로 세운 신라개국의 원조 소벌도리(蘇伐都利)공의 25세손으로 신라국초부터 대대로 명문 충신가문에서 자랐다.
공의 6대조 소강선(蘇强宣)공에게는 소고구(蘇高矩:初諱 德智)공과 소자구(蘇自矩:初諱 伐智) 두 아들이 있었다.
소고구(蘇高矩)공은 신라장군으로 463년 자비왕(慈悲王) 6년에 왜병이 삽량성(歃良城)에 침투하자 동생 자구공과 함께 복병(伏兵)으로 요격하여 물리치고 우장군(右將軍)이 되었다.
소고구(蘇高矩)공의 증손(曾孫) 소광종(蘇光宗:初諱 比次夫)공은 대아찬(大阿飡)이다.
공은 서기 551년 진흥왕(眞興王) 12년에 왕명으로 거칠부(居柒夫) 김황종(金荒宗) 등 7장군과 함께 백제군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과 고현(高峴)사이의 10군을 빼앗았던 명장이다.
대아찬 소광종공의 아들 아찬(阿飡) 소휴곤(初諱 武殷)공 역시 신라의 장군으로 597년 진평왕 19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할 때 왕명으로 건품(乾品)공과 함께 이를 방어했다.
소휴곤공의 차남 소귀산(蘇貴山)공은 서기 602년 진평왕 24년에 백제군이 다시 아막성을 에워싸고 공격함으로 소감관직(少監官職)을 띠고 출전하였다. 아버지 휴곤공이 복병(伏兵)의 급습을 받고 말에서 떨어져 병졸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아들 귀산(알천공의 동생)공이 달려가 자기의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원광법사에게 배운 세속오계(世俗五戒)의 임전무퇴(臨戰無退)를 생각하며 친구 추항(箒項)공과 함께 적과 싸워 크게 이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다가 죽음을 맞았다. 진평왕은 아나벌(阿那伐)까지 마중 나왔다가 애도하고 내마(奈麻)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아찬(阿飡) 소휴곤(蘇休昆:蘇武殷)과 가미노부인(加美老夫人) 슬하에는 5형제를 두셨으니 장남은 상대등(上大等) 소알천(蘇閼川:改諱 蘇慶)공으로 진주소씨 시조이며, 차남은 조부령(調部令) 소태호(蘇太乎)공이고, 삼남은 신라충신 소감(少監) 내마(奈麻) 소귀산(蘇貴山)공이요, 사남은 창부령(倉部令) 소외사부(蘇外斯夫)공이며, 오남은 소문우(蘇文宇)공이다.
이와 같이 진주소씨 시조 소알천공의 가문과 가계는 뚜렷하며 태상계의 선조와 그 이하 후손에 대해서도 가계가 확실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명문집안이다. 앞으로 알천공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시대별로 언급하기로 한다.
※ 참고문헌 : 진주소씨 대동보, 진주소씨사, 진주소씨 회지, 현파가승보
첫댓글 蘇氏의 가문 잘보았습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보는데 참고가 되겠습니다
진주시 상대동에서 살다보니 진주소씨 대종회 모임때 떡 잘 얻어 먹고 있습니다..감사
저도 함양서 진주시제에 해마다 갑니다. 시립도서관 앞에 제각이 있지요.
고려때 거란 장수 소정방도 알천랑 후손인가요??
소(蘇)정방은 당나라 때 장수, 고려때의 만주 거란장수 소(蕭)배압은 타성임, 중국의 소씨도 대만의 박물관 씨족사에 보면 백두산쪽에서 서쪽으로 간 후손이고 신라 소씨는 동쪽으로 내려온 씨족으로 보며 알천랑은 원조상 축융 소복해의 후손으로 봄..
대부분의 성씨 즉 족보는 조선 중기쯤에 만들어 집니다.씨족의 시조가 신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대부분이 가짜일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그런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씨족의 현조(즉조상중 가장 으뜸인 인물)가 누구냐에 따라 명문세가가 나타납니다
님의 말씀이 맞긴한데 각가정의 가승보는(家承譜) 삼국시대 와 고려 시대에 권문 세가에서 내려 왔고 그에 준해 족보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소씨는 고려때 동근보(東根譜)라는 족보가 있었고 그기에 위의 내용의 대부분이 기록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와 같은 내용이 많음. 소알천 공이 선더왕 재임시 각간(총리)을 오래 했지요. 드라마 때문에 부각된 것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