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들녘으로 나가
간밤은 개학 이틀째 수요일 저녁이었다. 퇴근과 함께 곧장 와실로 들어 샤워를 끝내고 저녁을 지어 먹었다. 반주는 대금산 주막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서너 잔 자작으로 들었다. 방학에 태평스레 지내다 교실 수업을 하루 서너 시간 다녀오니 몸이 고단했다. 평소는 여물을 먹고 되새김질만 하던 농우가 모내기 철을 맞아 논갈이 쟁기의 멍에를 걸치고 뚜벅뚜벅 걷는 형상이었다.
좁은 와실로 들어 저녁을 지어 밥상을 차려 곡차 잔을 비우니 단절과 고립감이 엄습해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밥상을 물려 설거지를 마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새 음용할 약차를 달이면서 몇몇 지기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날이 채 어두워 오기도 전인 저녁 일곱 시 잠에 들었다. 일찍 잠드니 일찍 일어남은 당연하다. 잠을 깨보니 날짜변경선을 살짝 넘긴 한밤중이었다.
뉴스 전문 채널에서 세상이 달라진 소식이라곤 수도권과 지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음과 탈레반 반군이 카불에 입성했다는 외신이었다. 기상 뉴스까지 접하고 ‘자연인’ 재방송을 두세 편 보며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그때가 새벽 세 시 무렵이니 누구 말대로 제삿밥 수준인 아침이었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다섯 시에 와실을 나서니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와실 골목에서 연사삼거리로 나가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도와 인접한 농로 길섶은 풀이 무성했다. 아직 대기 중 습기를 이슬방울로 맺게 하는 결로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절기가 처서를 앞두고 있는지라 백로가 되려면 스무날 남짓 남았다. 한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클 때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 대신 가을은 소리로 먼저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날이 밝아오는 길섶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그 자리 한여름에도 귀뚜라미가 서식하고 있었겠으나 절기가 가을이 가까워지니 본색 본성을 드러냈다. 내가 잠을 청한 와실 벽틈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자연의 음향이었다.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이라도 비가 올 때나 걷힌 직후는 들을 수 없다. 수컷이 날개를 몸통에 비벼 소리를 내어 암컷을 유인해 짝짓기를 위함이다.
농로를 따라 들녘 한복판으로 드니 날이 밝아오는 하늘은 모처럼 구름이 적었다. 요새 며칠은 구름이 낮게 낀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낮이 되면 하늘의 구름이 걷혀 맑아질 듯했다. 아침저녁 기온도 선선해 더위는 물러간다. 전방 약수봉 산기슭 교회 첨탑에는 아직 네온 불이 켜진 상태였다. 대기가 맑으니 수월지구 아파트와 고현 시가지가 가까워진 듯했다. 계룡산도 그렇게 보였다.
연사 들녘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라섰다. 산책로 길섶에는 제철을 맞아 핀 달맞이꽃이 화사했다. 조정지 댐으로 가두어진 냇물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떼지어 날아와 헤엄쳐 다였다. 갈대가 무성한 건너편 천변에는 밤을 새운 태공이 던져둔 낚싯대 찌를 응사하고 있었다. 날이 점차 밝아오니 천변으로 산책을 나온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양복을 입은 채 걷는 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연효교를 건너 연사천 둑길에서 연사마을 동구로 드니 ‘벌초를 해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곧 선산의 벌초 철이 다가왔음과 함께 품삯으로나마 힘든 생계를 이으려는 이들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동구에서 교정으로 드니 적막하기만 했다. 방학 마치고 당직 노인 얼굴을 아직 뵙지 못했는데 방학은 잘 보냈는지 궁금했다. 전에는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던 노인이다.
앞뜰에서 서성이다 서편 울타리로 가 가장자리에 가꾼 봉숭아를 살폈다. 비탈에서도 잎줄기를 키워 꽃을 피운 봉숭아가 대견했다. 이제 그 꽃은 절정에서 하강하고 있었다. 뒤뜰 산언덕 절개지 옹벽에는 더 많은 봉숭아가 꽃을 피웠다. 임무를 다해 가는 듯해 엊그제 맨드라미 모종을 바꾸어 심었다. 서리가 오기까지 가을이 이슥하도록 한동안 붉게 핀 맨드라미꽃을 볼 수 있으려나. 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