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카트만두 → 인천 (11월 18일 ~20일)
예정대로 귀국이 어려워 오랜만에 집에다 전화를 합니다. 전화 사정도 좋지 않아서 최고급 호텔인데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합니다.(통화요금 비쌉니다. 안 걸려도 접속료는 호텔비에 포함)
좀 이른 시각이었지만 지하의 식당에 내려가 언제 시작하느냐고 물어 보니 지금 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즉석 요리코너로 가서 계란 두 개로 야채 넣고 파이를 만들어 달래서 과일과 함께 먹으며 아침을 해결합니다.
오늘은 결코 떠날 비행기가 없으니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화장터로 더 알려진 파슈파티나트에 갑니다. 그 곳은 힌두 최고성지이지만, 죽음을 맞이하여 네팔 인들이 가고싶어하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돈이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신청 순서에 의해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 있고 그 앞에 시신을 태우는 화장터가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원 옆으로 강물이 흐르는데 강가에는 화장터가 둥그렇게 원통형으로(지름 4~5m) 지어져 있으며 그 곳에서 시신을 화장합니다. 작은 네모형도 있습니다.
힌두인들의 죽음에 대한 장례절차는 매우 엄숙합니다. 널빤지에 올려져 기다리던 시신은 먼저 강물가로 운반되어 장손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씻깁니다. 그 다음 화장터 옆에 시신을 모시고 벌거벗은(팬티만 입고 있슴) 가족들에 의해 시신 주위를 맴도는 행사를 거친 후, 바로 옆에 있는 원통형 화장터의 나무단 위로 올려집니다. 그리고 불이 붙여집니다. 가끔 우는 모습도 보입니다만 영생의 길로 가는 망인에 대한 기원의 엄숙함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시신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찌를 듯 하고 못 참겠다고 코를 움켜쥐고 황급히 그 곳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묵묵히 그들의 장례 절차를 관심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다행히 저는 감기 끝물이라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행운을 가집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상류 쪽의 화장터에서 화장된다고 하는군요. 삶의 마지막에 까지도 세속의 지위와 돈의 위력이 나오나 봅니다.
삶과 죽음의 차이에 대한 생각으로 경건해진 마음을 안고 파슈파티나트를 나오는데, 젖먹이 어린아이가 제때 빨지 못 해 가슴이 부풀어 있는 젊은 아낙이 예쁘게 수놓은 헝겊 주머니를 팔아 달라고 내 밉니다. 양쪽으로 가게도 많고 행상들도 많습니다만 집에 두고 왔을 아이와 못 살았던 우리 어머니들도 그랬으리라는 생각에 콧등이 찡해져 얼른 두 개를 삽니다. 딸아이가 없어서 그것을 건네줄 사람도 없지만 그들에겐 삶의 밑천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들른 곳은 덜발 광장입니다.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가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한참을 기다려도 창문 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군요.
그들의 문화재는 대부분 목조 건축입니다. 수 백년을 비 바람에 버티어 왔었을 텐데도 여전히 원형대로 그 모습이 보존된걸 보면 건조한 기온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거리는 하릴없는 사람들로 붐비어 복잡하기만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지 모두들 나와서 앉아 있거나 오갑니다. 광장 주변엔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노점상이 많습니다.
다음엔 파탄으로 갑니다. 다양한 목각조각이 유명하기도 한데 칼리바이라브 상 뒤편 있는 조그만 팔각정 사원의 처마에는 남녀의 사랑 행위를 그대로 묘사한 ‘카마수트라’ 조각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남녀의 성기까지 묘사되어 있는데 그 사실적인 모습이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오후엔 몇 가지 기념품을 사기 위해 우리나라의 이태원 같은 타멜 지역으로 갑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슈미나(히말라야 산양털로 만든 목도리 인데 털의 굵기가 사람 머리카락의 1/5로 가늘어 가볍고 따스함이 세계적이라고 함)를 사기 위해 몇군데 가게를 들러 가격 조사를 합니다. 물건이 생산자마다 틀려서 똑 같은 품질이 아니지만 상품인 경우 5,000루피 달라고 하는군요. 물건 살 때의 가격 협상은 우선 제시하는 가격의 반 정도부터 깍고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담배도 권하며 한참을 실갱이 한 끝에 여러 개를 사는 조건으로 2,000루피씩에 사기로 합의합니다.
네팔에서는 양털로 만든 양탄자가 싸고 수제품이라서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양탄자 가게에도 들렀습니다만 다탁자 밑에 까는 조그마한 것인데도 US$ 500을 달라고 하여 포기합니다. 가게를 나오자 쫓아 나오며 US$ 300에 주겠다고 합니다. 남대문 시장에 가면 질이 좀 떨어지지만 몇 만원에 살수 있는 것을 여기서 구태어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산다는 게 외화낭비란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결국엔 금년 봄에 타클라마칸 사막 여행을 하면서 더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ㅋㅋ)
다음엔 내가 사고 싶었던 아로마집을 찾습니다. 서울에서 약도를 인쇄하여 가지고 갔는데 약도가 정확치 않아서 찾기가 몹시 힘들더군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약도를 보여주며 물어봐도 잘 모릅니다. 한 시간 여를 헤맨 끝에 타멜 끝부분에서 드디어 찾습니다. 가게 주인은 인도사람인데 3대째 아로마집을 운영하는군요. 다른 곳의 가게 주인과는 달리 기품이 있고 점잖습니다.
아로마향을 종류대로 다 내어놓아 보라고 하니까 스무 종류가 넘네요. 마음 같아서는 모두 사서 가지고 가고 싶지만 우리나라 사람 취향에 안 맞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서 가장 보편적인 걸로 몇 개 추천해 달라고 하니 라벤다 등 세 가지를 추천해 줍니다. 아로마 비누(천연 재료와 향으로 만든 것이라 좋다는 군요)도 몇 장 삽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 식사를 위해 아리랑식당으로 걸어 가는데 등산용품 가게에 세일 광고가 크게 붙어 있습니다. (등산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위해 타멜지역에는 등산용품가게가 많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대여도 하고 팔기도 함) 들어가서 보니까 고어텍스로 만든 윈드자켓이 노스페이스등 유명상표가 붙여진 것인데도 US$ 30 정도 밖에 안 합니다. 서울선 50~60 만원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 선물로 두 개를 얼른 삽니다.
호텔로 돌아와 선물로 산 물건들을 카고백에 정리해 넣으며 뿌듯한 시간을 갖고 있는데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막막합니다. 이대로 일주일동안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카트만두에 오려면 네팔항공이나 태국 혹은 인도항공을 이용해야 하는데 인도를 거쳐 귀국할 수는 없고 태국항공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판국에 좌석이 있을 리 없지요. 더구나 태국항공 좌석을 구한다 해도 태국에서 인천으로의 연결 편을 바로 구할 수 있을런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헤매는 것 보다 네팔항공을 좀 기다렸다 이용하는 게 낫겠단 생각을 합니다.
다음 날엔 고장난 항공편이 언제 재개될지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TV를 봅니다. 다행히 거기에서도 재탕 삼탕이긴 하지만 한국의 ‘아리랑TV’ 가 나와서 심심치는 않고 National Giographic 과 Discovery 채널이 있어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저녁 8시가 넘자 다음 날 새벽 3 시반에 태국행 네팔항공이 뜬단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제라도 떠날 수 있어 무척 반갑습니다. 열두시까지 짧은 잠을 자고는 공항으로 나갑니다. 입국 시와는 달리 군인들에 의한 복잡한 세관통관 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야 돌아가게 되는구나 하고 안심이 됩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니 인천행 타이항공 출발 시간이 두시간이나 남습니다. 그래서 공항 내에 마련된 맛사지 센터에 가서 US$ 10을 주고 발 맛사지를 받으며 트레킹으로 고생한 발을 호강시킵니다. 드디어 타이항공으로 인천을 향해 출발합니다만 이게 또 웬 일입니까. 타고 가던 타이항공도 고장이 나서 홍콩에 중간 기착하는군요. 다시 항공사측에서 대체해준 CPA편으로 갈아타고 인천을 향합니다. 복잡한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다음날 아침 7시에야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긴 히말라야 트레킹의 여정을 마칩니다.
히말라야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랑탕 계곡과 네팔 힌두인의 성지인 코사인쿤드 호수(해발 4,800m)를 일주하는 트레킹을 다시금 계획해 봅니다.
< 재미 없는 여행기 인데도 끝까지 읽어주신 우리방 님들게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히말라야로 여행 하실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흐미 시신을 저렇게 태우나봐요 ~~켁켁~~히말라야로 여행갈일은 아마도 내생애에는 없을거 같은데요 ~~여행기 쓰시느라구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힌두인의 화장 모습은 경건하지요. 윤회의 환생을 위해 빨리 소골해야 하는 불교의 다비식과 다름이 없어요. 여기는 규모가 작지만 인도 인더스강 중류의 바라나시(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해결 하기위하여 수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에 가면 규모도 방대하고 저녁 무렵 해질 때 부터 하는 힌두 종교예식은 얼마나 경건한지 몰라요. 구경할 만 하지요. 저는 그 화장장과 30m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식사하고 하룻밤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담에 기회 있으면 이야기 해드림.. ㅋㅋ
좋은 여행정보 잘익히고갑니다
밑천 안들고 좋은 여행 하셨지요? ㅋㅋ
좋은 여행기 올려 주시느라고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여행갈 때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성한 세계의 최고봉에서 느끼는 감정은 신비스러운 점과 다른 곳으로의 여행과는 좀 다른 면이 있을거 같아서 올려 드렸는데 참고가 될만 하다니 다행입니다.
여행기 잘 읽엇어요 처음엔 머리속에 들어도지도 않고 그림도 그려지지않았는데 점차좋아지더니 이부분은 넘넘 쏙쏙들어오네요 역시 여자들은 쇼핑에 약하다니까 ㅎㅎㅎ 파슈미나,,,그거 욕심나네요 ㅋ 왠지아시죠? 화장장도 이채롭구요^^
물건 사는 부분만 쏙쏙? ㅋㅋ... 흥정하는 재미도 물론 있지요. 좋은 파슈미나는 옷 한벌 보다 더 따뜻하다고 하네요.(와이프 말) 파슈미나라고 이름 붙인 목도리는 인도에서 부터 중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이름으로 모두 판매 하는데 그 중 네팔산이 그래도 품질이 제일 우수합니다. 담에 가서 하나 사세욧! ㅋㅋㅋ
뭐든 그 나라에 풍습으로 행해 지는건 그 나라에 풍습 이지요... 문명과 모든게 뒤 늦은듯 하지만 우리네 보다 못할바도 없는것 같습니다.건축등의 사진을 보면 공법이 울네 보다도 앞서는듯 합니다. 조각도 어찌 저렇게 견고하고 완벽함을 추구 하였는지 ..! 기회되면 가봐야 겠습니다...................... 돌다리님 감사 합니다.
어디를 가건 보고 배울게 많지요. 오래된 건축물을 세밀히 살펴 보시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건축을 하시니까 타지마할 묘를 함 가 보시지요. 대칭성과 거대한 아름다움.. 보석에 의한 내부장식..정원.. 참고될게 많을 거 같습니다. 샤 자한 왕이 노년에 감금당하여 타지마할묘가 내려다 보이는 별궁의 거처한 방에 이르면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가슴 울림도 겪으실 수 있고 궁전 뒤 먼 곳 강변의 멋진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자꾸 읽어도 젬있습니다 ~근데요 왜 부인선물은 엄나요 ~~ㅋㅋㅋ나같으면 아이들거보단 남편것을 먼저 살거 같은데요
파슈미나 비싼 걸루 사 줬는디요? 그리고 귀한 석청도 사주구... ㅋㅋ
ㅎ.. 비행기 고장 덕에 주머니돈 다 떨어젔내요. 이 글 세번 읽느라 고생한것 알고 계셔야 할듯 합니다.
ㅋㅋ.... 더 머무르는 바람에 개털 되었지요. 관심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