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원에게는 신사의 풍모가 있다. 고딕스런 이목구비가 만들어낸 단정함과 곧고 바른 몸이 어우러져 참으로 반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신사라 함이 단지 외모만을 두고 판단되는 것은 아닐 터. 그가 내뱉는 말들로 ‘최시원’이란 인물을 재구성해보기로 하자. 그에게서 새롭게 발견될 신사의 자질들
“신사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타협할 줄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신사죠. 저는 아버지에게서 신사의 미덕을 배웠어요. 특히 형제간의 배려와 이유가 분명한 타협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우리가 이 인터뷰를 읽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슈퍼 주니어’라는 깜찍한 13명의 소년 무리에서 ‘최시원’을 분리시켜두는 일이다. 슈퍼 주니어란 타이틀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13개의 알록달록한 사탕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는다. 하나를 골라 입에 넣어야 그것은 비로소 우리에게 분명한 ‘존재’로 부각된다. 우리는 최시원이라는, 제법 근사한 남자를 선택했다.
이제 그는 단체 컷이 아닌 단독 컷 혹은 클로즈업 컷이 된 셈이다. 그의 면면에 대한 지식이 절실한 순간. 우선 최시원은 올해로 21살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포기의 한숨을 내뱉어선 안 된다. ‘ 무 어리잖아’라고 고개 돌리기 전, 조금 더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특이한 점은 최시원이 슈퍼 주니어 이전에 연기자로 데뷔한 경력을 갖고 있다는 것. 최근 개봉한 영화 <묵공>도 사실은 슈퍼 주니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촬영에 들어갔던 작품이다. 2005년에 드라마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고교 킹카, 강봉만으로 등장해 잔잔한 파문(그러니까, 저 잘생긴 남자아이는 또 누구란 말인가…라는 식의 웅성거림)을 일으켰으며 2006년에는 윤석호 감독의 <봄의 왈츠>에서 극중 박은영(한효주)의 남동생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마 이 드라마들이 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면, 최시원 역시 연기자로서 안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 아직 제가 시작도 안 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인 내 목표가 무 멀기 때문에 섣불리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을 거예요. 어떤 단계에 왔다고 규정짓고 싶지도 습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많아서….” 그는 21살의 남자가 갖기 힘든 먼 미래에 대한 목표까지 정해두었으며, 그곳에 도달하려는 신념에 차 있다. 25살에 이룰 목표, 30살에 이룰 목표처럼 근미래에 대한 설계도 해두었다. 그리고 그 분명한 시작을 조용히 실천 중이다.
“신사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타협할 줄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신사죠. 저는 아버지에게서 신사의 미덕을 배웠어요. 특히 형제간의 배려와 이유가 분명한 타협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전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늘 평온하시지만, 강하세요. 어머니만이 유일하게 아버지를 약하게 만드시죠.” 가끔 훤칠하게 잘생긴 사람인데, 생각하는 것도 괜찮으면 ‘저 사람 부모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들곤 하는데, 최시원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 얘기를 할 때마다 조금 다른 표정을 지었다. 약간은 자랑스럽다는 제스처. “그런데 전 아직 아버지가 무서워요. 특히 중고등학교 때 가장 무서웠는데, 그만큼 기대치가 높으셨기 때문이겠죠. 한 번은 제가 말썽을 부려 아버지께서 용돈을 끊어버리신 적이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한 지 4일 정도 지났을 때, 차 한 대가 오더군요. 전 그냥 평소처럼 ‘뚜껑 열어주세요’ 했죠. 차 옆 유리가 열리는데 아버지이신 거예요. 그 자리에서 재킷 벗고 바로 도망쳤어요. 정말 있는 힘껏 달렸다니까요. 참,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도 했었어요.” 모범생 스타일일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는 의외로 털털한 부분도 있는 사람이었다.
최시원에게서 발견한 신사의 자질은 그의 나이에 비해 좀 무거운 것이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160억원이 투자된 한·중·일 합작 영화 <묵공>에서도 발휘된 듯 보였다. “영화에 대한 책임감은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어요. 폐를 끼치고 싶지 았거든요. 안성기 선배님, 유덕화 선배님을 비롯한 많은 스태프들에게요. 또 이 영화를 보게 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 배우로서 부끄럽지 아야 했으니까요. 워낙 큰 대작이라 책임감을 넘어 사명감까지 들었어요.” 신인 배우인데 사명감까지 들 요가 있을까, 게다가 안성기와 유덕화까지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처음엔 지나치다 싶었지만, 그의 성격을 파악하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그의 신사적 자질은 여기서 끝나지 았다. 그가 <묵공>의 프로모션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 팬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던 중 여성 팬 한 명이 넘어지는 것을 최시원이 민첩하게 부축, 큰 사고를 막았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이것은 신사의 자질 중 빠질 수 없는 기사도 정신의 일환이라고 해두자.
“눈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자라면 함부로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도 개인적으로 참 힘들고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꾹 참았어요. 안 울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요즘 남자답지 은 면모다. ‘우는 남자’들이 결코 밉상이 아닌 세상인데, 그는 굳이 눈물을 감추겠다고 한다. 이것 역시 상대방을 배려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시원은 <묵공>에서 조나라 10만 대군과 대치하는 조그마한 양성의 왕세자 ‘양적’으로 등장한다. 소수집단에서 권력을 가진 양적, 그리고 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 “솔직히 미국이란 나라를 조군으로 바꿔 생각해보곤 했어요. 이건 강자와 약자의 이야기이니까요. 제 개인적으로 전쟁을 하는 원인은 ‘트러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트로이전쟁이나 장미전쟁이 남녀간의 질투나 사소한 감정 대립으로 시작되었던 것처럼요. 저는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말로써 다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화로 풀면 될 일을 그렇게 하지 못해, 쌓이고 쌓여 결국 터지는 게 전쟁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대화로 모든 것을 풀자는 주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는 매몰차게 선을 긋는 편이다. “섣불리 판단했다가 후회한 적도 있지만,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을 피하지는 아요. 우유부단한 태도가 오히려 서로에게 마이 스가 되거든요.”
신사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 맹세. 약속보다 뭔가 더 비장해 보이는 이 말 역시 신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저는 연예인 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맹세가 있어요. 그건 처음 모습을 잃지 말자는 거예요.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바뀌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건 내 본연의 모습을 잃지 도록 노력하자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노력을 해요. 하지만, 중간에 포기해버리곤 하죠. 저는 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맹세를 떠올려요. 그건 사람 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기 안의 순수성을 잃지 는 것이기도 해요. 제 생각엔 순수함이 없는 사람은 영혼을 잃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봐요. 순수한 영혼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나오니까요.” 누구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하는 맹세지만, 심을 지키는 것은 쉽지 은 일이다. 심으로 돌아가 반성하지 는 자는 결코 진실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시원은 아직 자신이 시작도 하지 은 단계라고 했지만,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은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제가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만약 성공을 위한 세 가지를 선택하라면, 끈기와 열정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믿음인 신앙심이라고 답하겠어요. 70살이 되면 어려운 나라로 선교하러 나가는 게 꿈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그런 꿈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요.” 무 바르다 못해 재미없는 사람일 거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엉뚱한 질문들을 던져봤더니, 흥미로운 답변들이 돌아왔다.
“요즘 연구하는 게 있죠.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 스타들이 있잖아요.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조니 뎁, 주드 로 등등의. 베테랑을 포함한 스타 연기자들을 가만히 관찰하면 이미지의 특징이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어떤 계기로 몇 살 때 그런 컨셉트를 찾았고, 또 몇 년 경에 어떤 이유로 대중에게 어 했으며,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 그런 걸 연구하고 있어요. 그런 법칙들, 해답을 찾기 전까진 한동안 관심사가 변하지 을 것 같아요.” 그가 연기자임을 감안하더라도 제법 재밌는 발상이다. 그는 혹시 할리우드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이미 중국 진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상태). 하지만, 언어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제 생각엔 어떤 나라에서 활동을 하건 고국이 아니라면 그 나라의 언어를 써야만 제대로 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으면 굉장히 생명력도 짧고, 인정받기도 힘들다고 봐요. 그 나라에도 그 나라의 스타가 있는데, 다른 나라 스타가 그 사이에 끼어든다는 건 솔직히 힘든 일이거든요.” 하지만 최시원의 언어능력은 중국어의 자유로운 구사로 이미 검증된 상태. “제가 언어적 능력은 좀 되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영어랑 수학 시험의 점수가 확연하게 대조가 되었으니까요.”
최시원에게는 ‘태능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곱상한 얼굴과는 다른 남성미가 그의 복근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는 오히려 스케줄이 없는 날 더 바쁘다. 게으른 저녁형 인간(모든 저녁형 인간이 게으르단 말은 아니다)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 아침잠이 없단다. “스케줄이 없을 때도 보통 아침 8시 전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요. 수영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거든요. 그리고 낮에는 주로 연기수업을 받고 나서 사무실에 가서 영어랑 중국어도 배워요, 저녁이나 밤에는 혼자 영화 보러 돌아다니곤 해요. 집 앞에 멀티플렉스가 있어서 자주 가요. 맨 뒷좌석에서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밤이나 새벽엔 사람이 얼마 없어서 더 좋아요. 며칠 전에 주드 로, 잭 블랙, 카메론 디아즈,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로맨틱 홀리데이>를 봤어요. 좋아하는 배우들이거든요. 그걸 보는 날 정말 죽을 정도로 피곤했었는데, 지금 안 보면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봤죠. 한 번 더 보려구요.”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첫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며 그 이상은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최시원의 영화 사랑 역시 영화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았다. “지금 제 컴퓨터 속에는 제가 쓴 시나리오가 15개 정도 보관되어 있어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나중에 완벽하게 다듬어지면 내놓으려구요. 시나리오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혼자 시놉시스 끄적이는 것도 즐긴답니다. 작사도 하곤 하는데, 나중에 작곡을 배워 내가 만든 노래를 후배들에게도 주고 싶어요. 중3 때 드럼을 쳤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나이 들면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밴드 같은 거 만들어서 그냥 순수한 의미에서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서 장소에 구애받지 고, 길거리나 지하철 같은 데서 공연하고… 그런 소박한 꿈들이 몇 개 있어요.” 시간이 날 때면 한밤중에도 운동을 하러 나서는 최시원은 보기 드물게 밤잠도 별로 없는 젊은이였다.
최시원은 지난해 11월에 운전면허증을 땄다. 한 번에 붙었다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굉장히 쉽게 땄어요. 운동신경이 그래도 좀 있거든요. 운전을 직접 하긴 하는데, 집에서 많이는 못 나가지만, 몇 번인가 밤에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좀 멀리 다녀왔어요. 차 안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머리가 복잡할 때 좋아요.” 그러고 보면 그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참 많다. 조만간 떠나게 될 뉴욕 여행도 그런 의미다. “보름 정도 뉴욕에 다녀올 예정이에요. 쉬는 거 반, 일 반…으로 다녀오는 거죠. 휴식과 답사를 위한 여행이 되겠네요. 뜻 깊은 여행의 시작인 것 같아요. 되게 재밌는 게 저는 중국에 가면 사람들이 중국인인 줄 알고, 미국에 가면 재미교포인 줄 알아요, 물론 입을 열기 전까지 말이죠(웃음).” 그는 웃거나 장난을 칠 때도 왠지 진지해 보이는 이상한 매력을 지녔다. 이런 느낌들이 그의 신사적 풍모의 바탕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사는 그 안에 개구쟁이 소년을 한 명 품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 ‘소년’을 결코 서툴지 은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또 신사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최시원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 보여준다. “이거 ‘Burt’s Bee’라는 입술 보호제인데요, 저는 이걸 사계절 내내 왼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제 주위의 사람들도 다 알 정도예요. 이게 마치 내 몸 같아요.” 이럴 땐 또 천진한 소년 같다. 그런 그에게 아름다운 여성의 조건을 슬쩍 물었다. “진실된 사람이어야죠. 거짓말하지 고, 가볍게 행동하지 는. 참, 눈이 맑은 것도 좋겠네요. 그래요, 맑은 눈 아주 좋아해요.”
최시원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경쟁력은 무얼까 생각했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가 대중에게 어 할 수 있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그의 신사적인 매력과 나름대로의 승부욕 그리고 열정, 인내심이 아닐까 싶었다. 추위 속에서 저녁 게까지 진행된 인터뷰 촬영에서 그는 그리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았고, 진행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재빠르게 움직여줬다. 괜찮은 상태에서 인터뷰와 촬영을 마쳤다고 생각했고, 그는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급히 현장을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날 6개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 나는 아직도 추위 속에서도 맑게 웃던 그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신사이기도 했지만 근성 있는 프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