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 마을
강상윤
조천면 와산리 종남밭에는 아직도 12여 가구
60여 명이 오손도손 모여 사는 것 같네
통시에는 돼지가 꿀꿀 거리고, 하얀 엉덩이를
내보이기 부끄러워 어두울 때만 화장실에 가는
처녀도 보이는 듯하네
푸른 이끼가 가득한 집담에는 나무 서까래
초가 지붕, 대들보는 없지만, 누가 올려 놓았는지 조선 막사발 파편과 항아리와 독의 깨진 조각들이 올려져 있네
무쇠솥은 녹슬고 깨졌지만 아직도 쓸 만하다고 버티고 있네 알루미늄 주전자는 찌그러져 누워 있지만, 엊그제 술 취한 아저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술 주전자로 쓸 만하네
영희야 철수야 놀던 올레 길에는 왕대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길을 가로 막고 있네
왕대나무 긴 마디가 마디를 타고 마침내
파란 하늘로 솟아 오르고 있네 76개의 마디가 마디를 타고 내일의 4.3을 보여 주고 있는 듯하네
한 씨 친척들이 모여 새미 떡에 인절미, 빙떡, 침떡, 기주 떡 만들고, 쉰다리, 감주 준비하여 추석 명절 준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기침소리 커렁커렁 하던 구장 할아버지
목소리도 두런두런 들려오는 듯하네
*조천읍 와산리 잃어버린 마을 ‘종남밭’마을
---강상윤 시집 [너무나 선한 눈빛-4.3시집](근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