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내 발목을 휘감고.
머지않아 굳어진 얼굴의 동기의 눈도
내 발목에 머문다.
" 야! 가영이는!!! 가영이는 어쩌고!! "
" 택시태워보냈으니깐. 걱정하지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변지은
" 너도 빨리 일어나. "
" 난 승민이 기다리는 중이니깐. 신경쓰지마. "
" 너 밧데리 나갔지. "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정말 날 시껍하게 하는 생각.
화들짝 놀라 조심스레 집어든 핸드폰에는
수차례 울렸지만 니가 못받은거라며.
날 나무라는듯한 부재중전화의 표시가뜬다.
" 승민이가 나한테 전화했어.니 핸드폰 안받는다고. "
" 알았어.이제 그만 가도 되. "
" 승민이 못온데. 급한일 있데."
" 우리 승민이는 그런애가 아냐."
" 나한테 전화했었어."
그놈의 손에 붙들려 딸랑딸랑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핸드폰.
" 빨리 일어나...집에 데려다 줄께. "
" 나 혼자서 충분히 갈수있어. "
" 이건 보라색 물감으로 색칠했나보지.? "
때마침 욱씬거리는
고야디 고얀 발목.
" 빨리 일어나.! 고집부리지 말고! "
덥수룩해져버린 수염을 쓱쓱 비비는
경찰아저씨를 바라보며.
못이기는척 따라 일어났다.
예의바른 청년인듯 고개를 팍숙여
인사를 한뒤.
성큼성큼 문을 열고 앞서나가는 놈.
난 이미 부어오를데로 부어오른
발목의 통증을 느끼며.
다리를 한손으로 부여잡고.
한걸음 한걸음 옮겨봤다.
다행히도 걷지 못할만큼 아프진 않다..
맘만먹으면 저놈을 제치고 뛰어갈수도 있을거같다.
" 업어줘.?? "
" 업긴 뭘 업어. 나보다 비실비실해갖고는..."
" 내가 힘은 없어도 너보단 빨리 도착할걸.
난 초등학교 4학년 때 계주였어."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절뚝거리는
내 다리를 바라보는 동기.
허리에 얹고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동기의 손이 할수없다는 듯이
내게 팔짱을낀다.
" 맨소래담이라고 바르고 오지 그랬어.? "
" 됬....."
" 또또. 저 소고집. 들소고집. "
" 됬으니깐. 너도 빨리 가. 나 걸을수 있어. "
" 밤길은 위험한 거야. "
" 난 괜찮아. "
" 범인이 쓴 안경이 김에서려 뿌옇게 될수도 있잖아 "
내 팔을 꽉 부여잡고.
내 보폭에 맞춰 걸어주는 동기.
길게 늘어선 가로등만이 우릴 비추고.
이미 늦어버린 시간탓에.
어수선했던 시내엔.
그닥 많지 않은 사람만이 떼로 몰려있다
" 이씨. 내 팔목 꼬집지 마. "
" 다이어트 한다고 비디오 사더니.
일주일도 못가 시들해졌지.? "
" 아니거든! 비디오가 고장났었어. "
" 의지박약인. "
작심삼일보다 더 충격으로 와닿는 단어.
두고봐라. 내가진짜 살빼서.
교복이 헐렁하게 만들고야 말거야.
.굳은 의지를 다잡으며
그놈이 꼬집어대는 팔뚝살을
최대한 근육처럼 보일수있게 힘을 줬다.
" 나 춥다. 잠바좀 줘. "
" 나도 추워! 너는 두겹이나 껴입었잖아.! "
" 내가 너때문에 이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데..
꼭 그렇게 사납게 쏴 붙여야 하냐! "
" 누가 가달래! 니 집 가든지~~~ "
" 그럼! 니 잠바에 손만 넣게 해줘!! "
" 싫어!! 늘어난단 말야! "
나의 야무진 발악과는 달리
이미 헤집고 들어온 그놈의 손때문에
추하게 늘어져 버린 나의 털잠바.
" ..늘어..저기......앞으론. 이가영 안때릴게. "
서서히 시야에 우리의 도착점인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맘 속에 담아눴던 응어리를 내뱉었다.
" 왜.? "
" 왜냐니. 자기 여자친굴 때리는데..누가좋아하겠어. "
" 난 이해심이 많으사람이야. "
" 난 내 남자친구가 맞고 들어오면..
당장이라도 팔을 걷어붙이겠어. "
뜬금없는 나의 말에 꽤나
당황스러웠던 건지.
내 마지막 말을 곧씹으며 재미없는
장난을 쳐대는 동기.
" 그리고. 어젠 내가 많이 미안했어. "
" 어제.?니가 나한테 소화기의 능력을 일깨워준거.? "
" 그것도 그렇지만. 반지 말이야 반지. "
" 그건 처음부터 니꺼였어.
니가 던지든 부스든 녹이든. 나한테 미안할건없어. "
맞는 말이긴 하지만.어쩐지 기분은 찝찝하다.
대놓고 사과했다기보단.
그냥 대충 문자로 미안해라는
단어 세글자만 꾹꾹 눌러 전송한 느낌.
집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쓸쓸해져버린 내 미소는.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 다왔어. 나갈거야. 인제 손좀빼. "
" 응.응. 가..... 내일 올거지.? "
" 어딜.? "
" 나 내일 공연하잖아. ! 병신아! "
" 알았어! 시끄러! 사람들깨겠다! 빨리가!! "
훠이훠이.
냅다 소릴 지른 윤동기의 등을
떠밀듯 보내버리고.황급히 들어온 집.
" 누나!!!!!!!! "
리모컨을 손에 쥔채
조용히 티비를 보고 있던 승민이.
" 야! 너 왜 안왔어! 무슨일 있었어.?? "
" 누나! 걱정했잖아!! "
다 주무시고 계실텐데.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내게로 달려온다.
" 너 왜그래! 이러지마! 화 안낼게! "
" 누나!! 여기 앉아봐!! 빨리!! "
" 너 진짜 왜그래! 하지말라니깐! "
" 할말있어서 그래! 할말있다니깐!!! "
" 뭔데! 잡아땡기지마!! 늘어난다니깐! "
아...내가 소중히 여기던 나의 털잠바가
오늘 늘어질대로 축 늘어졌구나.
" 누나! 거기 경찰서 왜간거야.? "
" 이씨.너때문에 이게뭐야. 늘어났잖아. "
" 이가영이랑 싸워서 간거였어.? "
" 니가 걜 어떻게 알아.? "
그자리에 꼿꼿이 서서
늘어난 옷을 최대한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는
날 승민이가 멀뚱멀뚱 쳐다본다
" 할말이 그거야.? 나 들어간다.. "
놈의 대답을 들을려고.계속 기다리다가.
끝내 아무대답이 없길래.
승민이때문에 여기저기 할퀸 상처로 가득한
내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 짜증나. 드라이클리닝하면 다시 돌아오려나.?? "
거울에 비친 너무 처참한 모습의 내옷.
승민이가 잡아땡긴 소매부분은 내손을 덮어벼렸고
길이는 말이 아니었다. 허리까지 오는 왼쪽과는 달리
윤동기의 손이 들어가있던 오른쪽은
유난히 허벅지에서 덜렁더렁 대고있다
.이제 겨울도 다 되가는데.
나더러 뭘 입고 살란 소린가.
옷 많은 두사람을 원망하며 포기하지 않고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려고 애썼다.
늘어난 오른쪽 소매처럼 왼쪽도 늘리고.
늘어난 오른쪽 기장처럼. 왼쪽도 늘리고.
아니지. 그럼 이상할테니깐. 오른쪽을 짧게하자.
윤동기의 손때문에 따숩게 달아오른 오른쪽 주머니.
그 주머니 안쪽을 손으로 부여잡고 최대한 위로 끌어올렸다.
.짤랑......................
뒤집어진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듯한
동전 떨어지는 소리.
백원이든 오백원이든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닥에 몸을 바싹 갖다대고 손으로 탁탁 쳤다.
하지만 침대주변을 몇번이나 두들겨봐도
찾을수 없는 동전.
고작 몇백원짜리 동전때문에 나빠진 기분을
자제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탁.이불위로 뻗은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
엎치락 뒤치락 몸을 돌려 이불을 뒤져보니.
반짝거리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 찾았다................ "
구수한 동전의 색깔과는 사뭇다른 느낌의 은색.
엄지와 검지로 들어올린 그건.
짜증났던 기분을 더 울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