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은 방영 전부터 상당한 예산을 쏟아 부은 대작으로 예고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의외로 방영 초반엔 시청률에서의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며 기존의 부진을 씻어냈고, 종영이 가까운 현 시점에는 상당한 인기 드라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때마침 독도 문제 및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도 드라마의 흥행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드라마는 적잖은 논란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거북선의 침몰 장면이라든지 선조나 원균에 대한 묘사 등은 역사 드라마에 있어서 사실과 허구의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되살려냈다.
사실 역사 드라마라는 것은 그 위치가 매우 어정쩡하다. 물론 엄격히 정의하자면 허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역사 드라마를 ‘드라마’가 아닌 ‘역사’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 드라마는 그 특성상 100% 허구로 이루어질 수 없고, 상당 부분의 사실을 바탕으로 거기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역사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시청자의 경우, 사실과 허구의 영역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정말 역사적 사실이 그러했겠거니 하고 믿어버리든가, 아예 허구적 내용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 버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드라마에 대한 몰입에 문제가 발생하므로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들은 보통 전자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역사 드라마에서의 이러한 사실과 허구의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예로 <불멸의 이순신> 32화의 다음과 같은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일본 사신 '다찌바나'가 조선 기생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바닥에 비싼 향신료인 호초를 뿌리고...
그리고 난 뒤, 기생 '청향'은 이런 대사를 던진다.
이 통쾌한 장면은,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일본 사신이 연회석에서 호초를 뿌린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다.
유성룡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남긴 《징비록(懲毖錄)》에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귤강광(일본 사신)이 서울에 도착하니 예조판서가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였는데, 술이 얼근히 취하자 강광이 자리 위에 호초를 흩어 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서로 줍기를 다투어서 좌석이 질서가 없어졌다.
강광이 숙소에 돌아와서 탄식하며 통역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가 망할 것이다. 기강이 이미 허물어졌으니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징비록》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은 일본 사신이 뿌린 호초를 줍기 위해 기생과 악공들이 추한 모습을 보여 비웃음을 받았다는 것 뿐, 일개 기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본 사신에게 촌철살인의 한 방을 먹인 것은 순전히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인 것이다.
이처럼 역사 드라마에는 실제와 허구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뒤섞인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이에 대해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섞이는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디지털 사진 촬영과 비유하면 이렇게 된다. 역사적 사실은 원본이고, 드라마적 허구는 뽀샵이다. 역사 학자들은 언제나 원본 사진 자체를 보고 싶어하고, 작가들은 최대한 뽀샵질을 하고 싶어한다.
원본 사진과 뽀샵질한 사진은 당연히 각각의 존재 가치가 있지만 만약 원본 사진과 뽀샵질한 사진을 구분할 수 없도록 마구 섞어 놓은 상태에서 피사체의 아름다움이라든지, 사진 찍은 자의 내공을 운운한다면 과연 정당한가. 이런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어쨌건 위 장면은, 엄연히 실재하는 기록에 작가가 자의적인 가공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를 가지고 왜곡을 문제삼지는 않을 것이다. 사건 자체가 역사적 무게감이 적은 해프닝에 불과한 까닭이다.
문제는 이런 작은 해프닝이 아니라 비교적 비중이 큰 역사적 사실들에서 발생한다.
흔히 이야기되는 선조와 원균에 대한 과도한 성격 묘사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불멸의 이순신> 홈페이지에 있는 기획 의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 양자택일 혹은 흑백논리를 지양한다.
이순신을 영웅화하는 과정에서 그 평가가 심하게 왜곡되었던 맹장 원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과 명나라의 장수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해 나간다.
일테면 일본의 국민적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치는 분명히 하되, 그의 비틀어진 정복욕이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며, 동아시아 평화유지에 얼마나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는가의 시선으로 그를 평가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풍신수길의 제장들, 나아가 명나라 장수 진린과 이여송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기획 의도는 별로 지켜진 것 같지 않다.
<불멸의 이순신>은 내가 지금껏 본 드라마 중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양자택일, 흑백논리’적 인물 묘사가 두드러진 드라마다.
보기도 싫은 윤두수 영감은 툭하면 흰자위를 드러내거나 눈 밑 다크 서클을 자랑하며 이순신과 유성룡에게 딴지를 걸고, 선조는 말투부터 야인시대 신마적의 그것으로 화하고 있으며, 원균은 ‘니들 다 싸우다 죽어라~’하면서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처럼 날뛴다.
적들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히데요시는 엉뚱하게도 노부나가의 분위기를 풍기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와키자카는 명량 해전에서 뜬금없이 고양이를 안고 나와 “형사 가제트”에 나오는 클로 박사 코스프레를 펼친다. 가장 온건한 성품의 장수로 알려진 고니시조차 조선인 포로들을 뱃전에 늘어놓고 총질을 해대면서 악당들의 전매특허인 ‘하늘보고 움화하하 웃음 터트리기’를 선보이고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선악 구도가 뚜렷하고 평면적인 캐릭터 구성도 드물 것이다.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기획 의도를 감안했을 때 드라마 제작 당사자들이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드라마 초반의 캐릭터 컨셉은 개혁 군주로서의 선조, 그리고 지장(智將) 이순신과 함께 전란을 헤쳐나가는 맹장(猛將) 원균이었을 것이다. 여기엔 오랜 기간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순신-원균 선악구도의 전형성을 넘어보고 싶은 의욕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제작진은 기획 의도란을 통해 기존의 성웅 이미지의 이순신을 넘어서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그려내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여전히 ‘성웅 이순신’과 ‘악당 원균’이었다. 원균 따위가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을 나눠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대중들의 반응은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기록을 뒤지고 뒤져도 원균이 이순신에 버금가는 명장이었다고 볼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게 사실인 까닭이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들을 섬기는 특성을 지닌 한국의 무속인들 중에 이순신을 섬기는 이들은 많아도 원균을 섬기는 이들은 없다. 이순신 영웅론은 위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이순신의 업적이 뛰어났다는 반증이 되겠다.
아무튼 어설픈 수정주의를 활용하려다 낮은 시청률과 여론의 비난을 견디다 못한 제작 당사자들은 결국 방향을 급선회하여 원균을 진짜 나쁜 놈으로 만들어 버렸고, 선조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불멸의 이순신> 제작진이 선조나 원균을 묘사함에 있어서 역사적 근거에 충실하려 했다기보다, 시청자들의 반응과 드라마 내에서의 역할 분담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인물인데도 처음의 묘사 방향과 180도 다르게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것이 <불멸의 이순신>을 ‘역사’드라마가 아니라 역사 ‘드라마’로 보아야만 할 이유다.
예컨대, <불멸의 이순신>은 무모하게 부산 공격을 감행해 패전한 책임을 원균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직후인 3월경부터 칠천량 해전이 있었던 7월까지 계속해서 수군만으로는 안되며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을 해야함을 주장하고 있다. 육군이 먼저 안골포와 가덕도의 적을 없애지 않으면 수군으로서는 부산까지 진격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 부산 공격 계획을 입안한 것은 조정의 비변사였으며(당시 비변사에는 유성룡도 속해 있었다), 조정은 도원수 권율을 통해 계속해서 원균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원균은 결코 단독으로 공격할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당시 원균과 권율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 원균의 보고서 ]
“......따라서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 적의 무리를 차단하여 공격할 방도가 다시 없게 되었는데, 설사 대거 이를 수 있다 하더라도 나아가서는 배를 머무를 곳이 없고, 물러나서는 뒤를 돌아다 보아야 할 근심이 있으니, 실로 병가(兵家)의 승산(勝算)이 아닙니다.
신의 계책으로는 반드시 수륙(水陸)으로 병진하여 안골포의 적을 도모한 연후에야 차단할 방도가 생겨 회복하는 형세를 십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시킬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조정에서도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으나, 신이 변방에 있으면서 적을 헤아려 보건대 금일의 계책은 이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조정으로 하여금 각별히 처치하여 속히 지휘하게 하소서.”
[ 권율의 보고서 ]
“통제사(統制使) 원균(元均)은 매양 육로에서 먼저 안골포(安骨浦) 등의 적을 치라고 미루면서 바다로 나가 군사 작전을 벌여 오는 적을 막을 생각이 없으니, 신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혹은 전령(傳令)으로 혹은 돌려보내면서 호되게 나무랐고 세 번이나 도체찰사에게 군관을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이공(南以恭)이 또한 체찰의 명을 받들고 한산도(閑山島)에 들어가 앉아서 독촉하고서야 부득이한 나머지 18일에 비로소 전선을 출발시켜 크고 작은 배 1백여 척이 가덕도(加德島) 앞바다를 향했으니, 이는 남이공의 힘이었지 어찌 원균의 마음이었겠습니까......”
“통제사 원균이 치보(馳報)한 내용에 의하면 ‘수군을 몇 부대로 나누어 번갈아 내보내어 오가는 일을 삼도 수사(三道水使)와 함께 회의하였더니 수사들이 「반드시 패몰할 시기를 분명히 알고서는 부산과 절영도를 왕래할 수 없다. 장수가 밖에 있을 때에는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어리석고 용렬한 통제사로서는 어떻게 처치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는 곧 제장들이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와 같은 일은 결코 용서하기 어려우니 조정에서 결단을 내리소서.”
이로 보아 칠천량 패전의 가장 큰 책임은 작전을 수립한 비변사와, 원균에게 곤장을 때리는 등 실질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말 안듣는다고 조정에 열심히 일러바친 권율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결재를 내린 선조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비변사와 도원수 권율이 하자는 대로 한 것 뿐이니 책임의 무게가 덜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원균은 죽어도 못나가겠다고 버티던 전장터에 등 떠밀려 억지로 나가서 진 셈이므로, 나름 억울한 면도 있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불멸의 이순신” 제작진이 처음에 추진하려고 했던 원균 영웅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누가 뭐래도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최고의 전과를 올린 명장이고, 원균은 이순신이 만들어놓은 함대를 한 번 싸움에 전멸시킨 책임이 있다. 억지로 등 떠밀려 나간 전장터였을망정 그에게 탁월한 지휘 능력이 있었다면 그처럼 처참하게 전멸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원균을 이순신과 같은 반열에 올리거나 오히려 윗자리에 올리려는 시각에는 기존의 정설을 뒤집으면서 얻어지는 전복의 쾌감을 느끼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제작진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원균 때려 죽일 놈’ 분위기도 썩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기보다 미학적 완성도의 문제이다. 원균을 재평가해보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기존의 이미지보다 더 나쁜 놈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신의의 문제이기도 하다(원씨 집안에서는 아마 인간적 배신감 같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결국 제작진의 변절로 인해 시청률은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애초 기획 의도였던 ‘인간 이순신’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은 기존의 그 어느 이순신보다도 ‘성웅’이며, 선조와 원균 및 일본군은 그 어떤 선조, 원균, 일본군보다 가공할 악당이다.
이처럼 70~80년대에나 통할 것 같은 평면적이고 단순한 인물 구도가 21세기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글의 초입에서 역사 드라마의 사실과 허구 문제를 언급하였다. 논란은 항상 역사 드라마가 놓여 있는 어정쩡한 위치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역사 드라마가 취해야 할 돌파구는 두 가지다. 정말 철저하게 역사적 고증을 다해 사실적인 역사 드라마를 만들든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의 한계를 집어던지고 누가 봐도 확실한 판타지를 만들어 역사왜곡의 논란을 잠재워 버리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이 이 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헤매다가 결국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 놓은 이순신상으로 복귀해버린 케이스라면, 장보고를 주인공으로 한 <해신>이나, 적잖은 폐인들을 양산해 냈던 <다모> 등은 역사를 판타지적 놀이의 대상으로 만들어 성공한 작품들이다.
따라서 언젠가 이순신이 다시 드라마화 된다면, 철저한 역사적 고증의 방향이든, 판타지의 방향이든 <불멸의 이순신>이 넘지 못한 지점들을 과감히 넘어서려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밤 중에 왜적의 배가 와서 습격하니 원균의 군사는 크게 무너졌다. 원균은 도망쳐 바닷가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언덕에 올라 달아나려 하였으나, 몸이 살찌고 거동이 둔하여, (갈 수가 없어) 소나무 아래에 앉았는데, 측근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가버렸다.
어떤 이는 원균이 이곳에서 적에게 살해되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달아났다고도 하는데 그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일단 원균이 ‘몸이 살찌고 거동이 둔하다’고 묘사한 점에 눈이 간다. 이에 따르면 최재성은 미쓰 캐스팅이다. 최재성이 아무리 전성기에 비해 보름달 얼굴이 되었다고 하나 생생한 역사적 기록에는 부합하지 못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원균의 초상
보다 중요한 것은 ‘원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는 서술이다.
그렇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꽤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엄밀히 말해 원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종된 것’이다.
요즘 이순신의 자살설, 생존설 등이 떠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이순신 생존설은 성립하기 힘들다. 노량해전이 끝난 후 명나라 제독 진린이 이순신의 죽음을 확인하고 몸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부하들이라면 몰라도 명나라 장군까지 사기극에 동참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은 원균이야말로 전란 이후까지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아침에 함대 전체를 말아먹었으니 도망쳐 은둔할 이유도 충분하다.
첫댓글국내 인물 묘사도 그렇지만, 대망을 읽어본사람이라면 일본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나 상황 설정이 얼마가 가당치 않은지 잘 알게 됩니다. 특히 히데요시, 이에야스, 기요마사 등에 이르러서는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 역사적 고증을 전혀 거치지 않아보여서 참 한심해보인다는..
전 초반 보다가 뭐 이렇게 드라마 만드나 싶어 안보다가 전란기에 평판 좋아서 좀 봤더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볼 생각이 안나더군요. 윗님들도 동의하셨지만 대망을 한번만이라도 읽은 분들은 일본의 인물 묘사에 참 어이가 없었을거고 윤두수의 묘사는 그야말로 코메디더군요. 윤두수가 이순신 장군과는 반대되는 당파이긴
하나 드라마처럼 소인배면 훗날까지도 꽤 괜찮은 평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윤두수의 평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원균보고 누가 생각났냐하면 삼국지의 여포가 생각나더군요.ㅡㅡ;;; 게다가 호칭의 자잘한 실수는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더군요.(금부도사가 어떻게 대감이냔 말이냐?)
일본.. 조총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과 교역하면서 세계의 바다로 진출하려는 야심만만한 부국의 길을 걷고 있는동안 (나중에 도쿠가와 쇄국정책으로 많이 물거품 됐지만서도..) 조선 국왕이하 신하란 자들이 하는 짓들보면 참 개탄스럽기도 하졍..
그게 왕조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왕조의 초창기때야 인물들이 몆몆나오지만 안정이되고 뿌리를 내리면 왕이야 신하들에게 놀아나다가 그냥 적당히 여자나 밝히고..그러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라고 현실을 인식하는 왕이 어쩌다 한번씩나오면 신하들에게 독살내지는 여론을 몰아서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저는 그당시에 노부나가가 자신의 가신 미쓰히데에게 안당하고 일본통일을 완성 했으면 그야말로 동북아시아가 전란의도가니로 빠지지 안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시 일본의 세영웅중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비상하고 터무니없을정도로 잔인할때는 잔인했던 이인간이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면 임진왜란 같이 끝나지는
윤두수가 드라마에 나오는 정도로 아둔한 인물은 아니다싶지만, 윤두수가 옛부터 눈 어둡기로 유명한 건 꽤 알려져 온 사실이죠. 인물 볼 줄 모릅니다. 그리고 구지 원정이 아니었더라도, 당시 일본은 조총이 있었지만 화포쪽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었습니다. 세계최강이라고 불리기 힘들죠
저도 최고까진 몰라도 일본이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국시대 말, 오다군이 당시 최강의 기마군으로 칭송받던 다께다 군을 혁명적인 조총대량발포로 박살내는 대목에선 저도 오싹했습니다. 임진왜란은 어찌보면 애초부터 한계가 있는 전쟁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던 조선의 뒤에는 대국 명나라
가 버티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조선출병에 많은 영주들과 대상인들이 꽤 극심히 반대했죠.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테고.. 그런데도 전쟁이 일어난 건 히데요시의 독단이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전쟁양상이 일본에게 조금만 불리한 상황이 와도 강화론이 강하게 일어나게되는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조선에게 유리하다 할 수 있는 점이었죠. 더더군다나 일본으로썬 원정.. 거기에 생각지도 않게 수군의 참패로 보급로가 어렵게 되고.. 거기에 히데요시의 노쇠 및 사망이 겹쳐지게 되니 그 쯤에서 전쟁이 끊나게 되었던거죠. 이건 단상인데 노부나가와 미쓰히데는 둘다 뛰어난 인물이고 서로의 그릇을 인정하면서도
성격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성격의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히데요시의 집권을 가져왔고 임진왜란을 초래하게 된거죠. 뭐 노부나가가 살아있었다면 전쟁이 안일어났을거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두 인물의 단순한 성격차이가 동북아의 국제정세를 확 바꿔놓은건 사실인 듯 합니다.
참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후예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은 침략의 괴수이고, 드라마에서는 또라이 비스무레하게 묘사되지만, 일본에선 영웅으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나 태합까지 오른 일본 역사사상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경박하다 싶을정도로 활달한 성격으로
당시 서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전국시대 및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주름잡던 거물들이 대개 영주 출신임을 감안하면 대단한거죠. 이 촌뜨기가 태합까지 오른 원동력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능력과 날카로운 두뇌회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통일이란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대책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막판에 망령을 부린 관계로 사후대책이 마땅치 않아서 그가 죽은 후 일본은 동-서로 두동강이 나긴 하지만요. 뭐 본문과 상관없이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 중요한 일본 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왜곡없이 더 정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첫댓글 국내 인물 묘사도 그렇지만, 대망을 읽어본사람이라면 일본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나 상황 설정이 얼마가 가당치 않은지 잘 알게 됩니다. 특히 히데요시, 이에야스, 기요마사 등에 이르러서는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 역사적 고증을 전혀 거치지 않아보여서 참 한심해보인다는..
한술더떠 세이쇼 쇼타이는 제가 보기에 완전 가공인물 같습니다.
네,저도 대망을 세번정도 읽어본 사람으로써 그런부분들에서 조금은 아쉽더군요. 우리 입장에서야 왜군장수들이 찢어죽일놈들은 맞지만은 너무 희화하 시킨점이 있습니다. 그런 뭣들이 대중들에게 더통하겠지라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조금더 객관적으로 그려줬으면 드라마자체가 한단계 더올라갔으리라 봅니다.
대망을 읽으셨다니 반갑습니다. 이건 적측에 대해서는 희화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쌩구라 수준이더군요. 이에야스에게 칼 겨누는 히데요시보고 드라마 볼 맛이 뚝 떨어졌드랬죠.
근데 솔직히 대망도 미화가 좀 심한건 사실입니다. 이에야스는 대망만 읽으면 그야말로 평화의 수호자죠.^^
동감입니다. 완전 평화갈망귀신 캐릭터죠. 잘못한 것도 야리꾸리한 필체로 옹호해주거나 짧은 문장으로 넘어가고.. 예를들어 솔직히 오사카 전투 해자사건 같은건 욕먹어도 쌀 행동이죠. 그래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원본의 출처가 어디죠???
아 이원본의 출처는 딴지일보입니다..
선조는 비난받아 마땅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선조는 조낸 뻥튀기 된 것 이라고 하던데요. 조선왕조에서 '왕'의 자리는 사실상 큰 권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초부터 이어져온 붕당의 뿌리, 양반들끼리 서로 해먹느라... 왕은 언제 죽을지 매일 몸 사리며 살았다고하네요.
전 초반 보다가 뭐 이렇게 드라마 만드나 싶어 안보다가 전란기에 평판 좋아서 좀 봤더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볼 생각이 안나더군요. 윗님들도 동의하셨지만 대망을 한번만이라도 읽은 분들은 일본의 인물 묘사에 참 어이가 없었을거고 윤두수의 묘사는 그야말로 코메디더군요. 윤두수가 이순신 장군과는 반대되는 당파이긴
하나 드라마처럼 소인배면 훗날까지도 꽤 괜찮은 평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윤두수의 평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원균보고 누가 생각났냐하면 삼국지의 여포가 생각나더군요.ㅡㅡ;;; 게다가 호칭의 자잘한 실수는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더군요.(금부도사가 어떻게 대감이냔 말이냐?)
남의 나라 역사왜곡을 욕하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은 우리의 태도도 돌아봐야 되지 않나싶습니다. 고니시 하늘보고 움하하와 가신들 앞에서 태합에게 대놓고 개기는 이에야스 등의 묘사는 정말 GG. 한 둘이 아니죠. 엉터리 묘사가.
일본측 인물 전부가 오다 노부나가 빨 납니다. 도요토민 그야말로 노부나가고.ㅡㅡ;; 셋쇼는 누군가 싶데요.
세이쇼 쇼타이... 일본 사람들도 그게 누군지 모른다네요 -.- 물론 잘 된 부분도 있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개를 안다고 저 역시 뭐 드라마를 이따위로 만드나 싶었습니다. 역사대하드라마면 사실에 입각해야 하는건데 말이죵. 저는 창작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봅니다.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던 인물인데 가공인물인가 보네요. 혹시 오다 초기의 최대 숙적 이미가와 요시모토의 부장 타이겐 셋사이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설사 셋사이도사를 모델로 해서 창조했다 하더라도 참 한심한 일이죠.. 정말로 유명한 가신들은 등장시키지도 않으면서 다 놔두고 왠 가공인물... ?? -.- (아마 쇼타이 창조해낸 인물은 셋사이가 누군지도 모를겁니다.)
당시 일본의 군사력은 그냥 원정을 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평하게 정해진 장소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세계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을 겁니다. 그런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일본측을 이 드라마에서 개개인들을 너무나 코믹하게 다룬것은 정말이지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느정도 납득이가고 그럴듯하게 그렸으면 오히려더 그런 전력을가진 일본의 뜻을 꺽어버린 이순신장군의 업적이더 빛나보이고 그럴듯하게 보였겠다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런것까지 생각못해낸 드라마관계자들이 그래서 더아쉽습니다.
일본.. 조총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과 교역하면서 세계의 바다로 진출하려는 야심만만한 부국의 길을 걷고 있는동안 (나중에 도쿠가와 쇄국정책으로 많이 물거품 됐지만서도..) 조선 국왕이하 신하란 자들이 하는 짓들보면 참 개탄스럽기도 하졍..
선조.. 인조.. 이런 위인들이 왕이었다는게... -.- 또 당시 상황은 도외시 하고 무조건 일본역사는 가짢은 걸로 여기는 작금의 드라마 제작자들도 한심하구요..
그게 왕조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왕조의 초창기때야 인물들이 몆몆나오지만 안정이되고 뿌리를 내리면 왕이야 신하들에게 놀아나다가 그냥 적당히 여자나 밝히고..그러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라고 현실을 인식하는 왕이 어쩌다 한번씩나오면 신하들에게 독살내지는 여론을 몰아서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저는 그당시에 노부나가가 자신의 가신 미쓰히데에게 안당하고 일본통일을 완성 했으면 그야말로 동북아시아가 전란의도가니로 빠지지 안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시 일본의 세영웅중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비상하고 터무니없을정도로 잔인할때는 잔인했던 이인간이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면 임진왜란 같이 끝나지는
윤두수가 드라마에 나오는 정도로 아둔한 인물은 아니다싶지만, 윤두수가 옛부터 눈 어둡기로 유명한 건 꽤 알려져 온 사실이죠. 인물 볼 줄 모릅니다. 그리고 구지 원정이 아니었더라도, 당시 일본은 조총이 있었지만 화포쪽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었습니다. 세계최강이라고 불리기 힘들죠
세계전투사에서 총몆천정으로 동시발포하고 그것으로 승리를 이끌어어내고 했던건 임진란이나기 몆십년전 노부나가가 세계최초죠. 확언할수는 없어도 최강의 반열에 들만한 수준의 군사력이었다 생각합니다.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에 가정은 덧없지만 이인간이 이순신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했을까라는 상상를 해봐도 재미있더군요.
저도 최고까진 몰라도 일본이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국시대 말, 오다군이 당시 최강의 기마군으로 칭송받던 다께다 군을 혁명적인 조총대량발포로 박살내는 대목에선 저도 오싹했습니다. 임진왜란은 어찌보면 애초부터 한계가 있는 전쟁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던 조선의 뒤에는 대국 명나라
가 버티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조선출병에 많은 영주들과 대상인들이 꽤 극심히 반대했죠.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테고.. 그런데도 전쟁이 일어난 건 히데요시의 독단이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전쟁양상이 일본에게 조금만 불리한 상황이 와도 강화론이 강하게 일어나게되는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조선에게 유리하다 할 수 있는 점이었죠. 더더군다나 일본으로썬 원정.. 거기에 생각지도 않게 수군의 참패로 보급로가 어렵게 되고.. 거기에 히데요시의 노쇠 및 사망이 겹쳐지게 되니 그 쯤에서 전쟁이 끊나게 되었던거죠. 이건 단상인데 노부나가와 미쓰히데는 둘다 뛰어난 인물이고 서로의 그릇을 인정하면서도
성격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성격의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히데요시의 집권을 가져왔고 임진왜란을 초래하게 된거죠. 뭐 노부나가가 살아있었다면 전쟁이 안일어났을거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두 인물의 단순한 성격차이가 동북아의 국제정세를 확 바꿔놓은건 사실인 듯 합니다.
참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후예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은 침략의 괴수이고, 드라마에서는 또라이 비스무레하게 묘사되지만, 일본에선 영웅으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나 태합까지 오른 일본 역사사상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경박하다 싶을정도로 활달한 성격으로
당시 서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전국시대 및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주름잡던 거물들이 대개 영주 출신임을 감안하면 대단한거죠. 이 촌뜨기가 태합까지 오른 원동력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능력과 날카로운 두뇌회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통일이란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대책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막판에 망령을 부린 관계로 사후대책이 마땅치 않아서 그가 죽은 후 일본은 동-서로 두동강이 나긴 하지만요. 뭐 본문과 상관없이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 중요한 일본 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왜곡없이 더 정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오우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레드보이스님과 프로크래스님 두분 자격증이라도 따셔야 겠습니다.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