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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꽃차산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자인/봉화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서기 372년이니 381년에 창건된 전등사는 무려 1600여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찰에 들어가면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거나 대웅보전의 건축양식이 매우 아름다운 것이 특징입니다. 또는 사찰 내 주요건축물의 배치가 자연스럽고 주변경관이 매우 좋은 지리적 위치도 한몫 합니다.
사찰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무엇보다도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찻집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 찻집에서는 서양에서 전래된 커피대신에 우리의 고유한 각종 차를 비치하고 방문객들의 입맛을 돋우어 줍니다.
전등사의 현판이 걸린 대조루(對潮樓) 아래에 위치한 "죽림다원(竹林茶園)"도 바로 이런 곳입니다. 정원이 딸린 찻집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학 또는 재두루미 모습의 새 두 마리(목재 조각)가 방문객을 환영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가의 말씀대로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문구는 찻집에 들리면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전등사 편액
칫집 입구
소중한 인연
마당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고 화단 한켠의 자그마한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이 군락을 지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처마 밑에도 도자기를 활용해서 조성해 놓은 화분이 눈길을 끕니다. 탁자 위의 꽃
노랑어리연꽃
찻집 안으로 들어가니 놓여 있는 탁자와 의자를 포함한 내부장식이 모두 원목으로 되어 있어 매우 포근한 느낌입니다.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들러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너와 내가 만난 인연"을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니면 필자처럼 홀로 앉아 차분하게 찻집의 아늑한 분위기에 젖어보면서 속세의 시름을 잊는 것도 나의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벽면에는 각종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제작자의 이름과 가격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디자인이 예쁜 여러 형태의 크고 작은 도자기가 많아 자꾸만 사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거의 정오가 된 시각이라 배가 출출합니다. 쌍화탕 한 잔을 시켜 먹으며 약과도 추가합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음식을 매우 정갈하게 서비스 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도심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매우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마루에는 몇 명의 여성들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은은히 들려오는 음악이 귀를 간질이는 가운데 향긋한 쌍화탕의 따끈한 국물이 목 줄기를 타고 넘을 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사찰의 일주문이나 입구에서 흔히 보게 되는 부처님의 경구가 새삼 머리에 떠오릅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동안 모은 재물도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필자는 지금까지 등산을 다니며 전국의 많은 사찰을 답사했습니다. 사찰은 대부분 산행의 들머리 아니면 종료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다니다 보면 언제나 시간에 쫓겨 제대로 사찰을 둘러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찻집에 들러 차 한잔 마시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찰 답사를 목적으로 오니 이토록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이점입니다. 곧 난리가 날 것도 아닌데 서둘면서 지나치고 나면 나중에 매우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전통찻집에 들러 우리 고유의 차 한잔을 마시는 마음의 여유.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잠시동안이나마 풀 수 있는 청량제입니다.
<지도 제공 : 전등사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