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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전도사> 현재 두란노서원의 월간지 "목회와 신학"에 연재중인 김기현 박사의 글을 올립니다. 현재 8회까지 올라온 바,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존 하워드 요더는 재세례파 신학계의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주님의 교회 금요성경공부에서 "루터의 득의론"(문선희)을 마친 후 이 연재글을 다음 학습 자료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참고자료 1> - 김기현 목사 소개글
김기현목사는 이사야 50장 4절의 학자와 제자가 되어, 작가와 목사가 되어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 이웃을 섬기는 비전을 품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물음을 성경적 관점과 신학적 통찰 그리고 역사적 현실과 교직하여 찬찬히 짚어주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획일적인 단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고백인 동시에 상호 대화를 지향한다. 기독교 세계관, 평화주의와 존 요더, 우리 당대의 질문과 도전에 대해 복음을 증언하는 변증, 성서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종교 철학과 현대 영미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2004년 <복음과 상황>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신학 및 학술 분과)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로고스서원 대표이고, 로고스교회 담임목사, 경성대 대학원 외래교수이다. 가족으로는 아내 이선숙과 아들 희림, 딸 서은이 있다.
<목회와 신학>,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복음과 상황>, <기독교 사상><청소년 매일성경>, <날마다 주님과 함께>, <뉴스앤조이>, <그 말씀> 등에 글을 쓰고 있다. 현재 <존 요더의 신학세계>를 <목회와 신학> 연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존 요더의 책, <근원적 혁명>이 대장간에서 9월 초에 번역 출간된다. 그리고 2011년 가을에 <성경독서법>(성서유니온)이 출간될 예정이다.
<참고자료 2> -김기현 목사 역자 후기
(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_ Discipleship as Political Responsibility 존 하워드 요더 지음 | 김기현 옮김)
“21세기는 존 요더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는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내가 얼치기 점쟁이도 아니고, 사이비 예언자도 아닌 다음에야 무슨 근거로 이런 허무맹랑한 추측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직 한국 교회 내에서 아나뱁티스트가, 한국 사회 속에서 평화주의가 그리 환영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재감도 미미하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아나뱁티스트와 평화주의는 저주받은 이름이고 불온한 신학이다! 그런데도 아나뱁티스트요 평화주의의 일급 이론가인 존 요더의 시대를 예측한다는 것은 망상이 아닐까.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 시대는 존 요더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성서의 정신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자는 아나뱁티스트는,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따라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주의는 지금 여기서 예수를 사는 길이다. 한국사회와 교회는 절실하게 평화를 바라고 있다. 교회는 교회의 타락으로 심히 아파하고 있다. 때문에 예수와 성서로 돌아가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길에 요더를 어떤 형태로든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확신이다. 요더와의 만남 이후에 평화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예전의 입장을 고수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래야 희망과 대안이 있다.
그러자면 이 책, 「근원적 혁명」을 필독해야 하고, 탐독해야 한다. 흔히 요더의 주저 또는 대작(magnum opus)을 「예수의 정치학」(IVP 역간)을 꼽는다. 그 곳에 요더의 신학과 윤리의 핵심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 책에 표방된 요더의 사상의 맹아는 「근원적 혁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요더 사상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해서,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역사의 종말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그리하여 한국교회와 나 자신이 어떤 사람,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우친다.
하지만 요더를 읽는 것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그의 생각이 복음의 원초성을 급진적으로 철저하게 추구하기 때문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혁명일 수밖에 없다. 하여, 요더야말로 ‘radical’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신학자다. “예수가 주님이시다.”는 신약 성경과 초대교회의 고백을 끝 간 데 없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정말 래디컬하다. 기존 세력의 시각으로 보자면 예수의 복음이 성가시기 이를 데 없다. 요더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치부를 들추고, 약점을 까발린다. 세상과 타협하여 마침내 세상에 동화되어버린 우리를 고발한다.
그런데 요더의 사상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의 글, 그러니까 영어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예수의 정치학」을 번역하신 신원하교수님도 혀를 내두른다. 다시는 요더 책 번역하지 않으시겠단다. 나는 그 말이 뼈에 사무치도록 공감한다. 한국에서 메노나이트 선교사였던 표대문(Tim Froese) 형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번역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요더를 이 땅에 소개해야 한다는,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는 나만의 사명감으로 선택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많이 혼을 냈다. 바보야! 요더 때문에 나는 나와 불화를 빚었다. 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나도 신원하 교수님처럼 혼자 번역하지 않고 공역을 하기로 했다. 전남식 목사님은 신대원 시절부터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신학을 같이 공부했다. 그때부터 영어의 감각이 보였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대전의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서 성경적인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다. 전목사님이 1차 번역을 하고, 내가 2차와 최종 번역을 했다.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요더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수고가 없었다면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그래도 역부족인 것을 편집부가 많이 정돈해 주었다.
나와 전목사님이 번역하느라 애썼지만, 배용하 대장간 대표는 번역을 애타게 기다렸다. 번역기한을 맞추지 못해 참으로 미안하다. 그는 독창적인 두 사상가인 자끄 엘륄과 존 요더의 책을 출판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출판사가 매우 귀하다. 이 자리를 빌어 배대표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부디 이 책에서 묘사된 급진적이고 근원적인 예수의 혁명이 독자들에서 시작하여 이 땅에 고루 번져나가기를, 그리하여 요더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를 만드는, 화평하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확신한다.
로고스서원에서 김기현
존 요더, 그는 누구이고 왜인가?
("목회와 신학" 연재중 2010. 11- )
김기현 박사 (수정로 침례교회 담임 목사/로고스서원 대표)
존 스토트 목사는 그의 마지막 책에서 급진적 제자도를 말했다. 복음의 뿌리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아무리 변화를 목 놓아 말해도 묵묵부답인 현실을 향한 마지막 대안을 급진성에서 찾은 것이 아닐까? 하여, 급진적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신학 세계를 12회로 연재한다. 변혁적 제자도에 목마른 이 시대의 진정한 마중물이길 기대한다.
<차례>
1. 왜 요더인가?: 나의 자전적 이야기
2. 폭력 없는 평화 인식론
3. 성경은 하나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4. 예수는 주님이시다
5. 종말론, 누가 종말을 실현하는가?
6. 교회론, 부분적으로 실현된 하나님 나라 7. 국가론, 혁명적 복종
8. 에큐메니칼, 진리의 보편성과 육화의 특수성
9. 선교론, 육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의 증언
10. 평화론, 폭력과 전쟁을 넘어 샬롬으로 (I)
11. 평화론, 폭력과 전쟁을 넘어 샬롬으로 (II)
12. (미발표)
1. 왜 요더인가?: 나의 자전적 이야기
“기독교인들이 금세기 미국의 신학을 되돌아볼 때 「예수의 정치학」이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믿기로 1974년은 내가 존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을 읽은 해였다. … 그 책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예수의 정치학」은 위험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인생이 결코 어제와 똑같을 리 없는 까닭이다.”
위의 세 인용문은 하나같이 「예수의 정치학」이라는 책에 대한 상찬들이지만, 그 궁극은 저자인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1927~1994)의 탁월함과 영향력을 가리키고 있다. 허나, 요더는 너무나 생소한 이름의 신학자다. 그의 저작이라야 고작 두 권밖에 번역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주 받은 이름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파)를 대표하는 신학인 까닭에 그를 소개하는 것은 담대한 용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고, 저서도 드물고, 교파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으나, 은밀하게 요더의 목소리가 온 땅에 통하여 곳곳으로 번져가다가 마침내 한국에 이르렀다. 그가 누구인지 아직 알려진바 적고, 말해 주는 이 드물어도 이제 그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위 인용문을 다음과 같이 우리 상황에 맞춤 맞게 고쳐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믿기로 2007년은 존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을 읽은 해였다. 그 책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그 만큼 이 사람과 이 책은 위험천만하다. 어떤 이유건 교회와 신자들이 요더를 읽게 된 이상 한국 교회의 진로와 신자의 인생이 결코 어제와 똑같을 리 없는 까닭이다. 하여, 우리가 20세기를 돌아보건대, 존 요더와 그의 「예수의 정치학」이 20세기를 온전히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의 토대였다.” 한마디를 더 덧붙이자. 21세기를 전망하건대, 21세기는 존 요더의 시대가 될 것이다!
다시 묻는다. 왜 요더인가? 무슨 근거로 한국 교회 풍토와 신학 지평에서 불길하고도 불온한 요더를 말하는가? 그 대답은 필자의 자전적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필자는 그를 신학교 강의실에서 한 번 만났고, 사역하던 교회에서 재회했다. 첫 번 만남인 박사 과정 세미나에서 필자는 아나뱁티스트들은 희한한 삶을 사는 별종이나 신인류라는 느낌이 들었고, 요더의 신학은 쉬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뭔가 끌리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박사 논문을 제임스 맥클랜던의 반기초주의로 정하면서 급변했다. 맥클랜던은 요더,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와 더불어 아나뱁티스트적 신학과 윤리를 주장한 그룹의 핵심 멤버였다. 이 세 사람은 공히 탈현대(postmodern)와 탈콘스탄틴(post constantinianism) 시대 이전을 비판하고 이후를 준비한다. 하여, 맥클랜던에 대한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요더를 피해갈 길이 없었다. 그렇게 만난 요더는 우리 시대의 필요와 맞물려 여기저기서 요더에 대한 해설을 요구했고, 갈수록 그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존 요더를 우리 시대의 멘토이자 대안이라고 말하게 된 연유는 학문의 과정보다는 신앙의 여정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고난의 문제였다. 필자가 겪은 자그마한 고난은 나로 하여금 요더를 재인식하게 했고, 신학과 교회에 요더의 메시지가 더 없이 절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복음이 무엇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왜 평화가 성경에서 그토록 중요한 주제인지를 고통의 프리즘을 통해서 배웠다.
무던히도 필자를 괴롭히는 한 교우가 너무나 밉고, 그런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무척 원망스러웠다.4 서러워 울며 고개를 조아리는 필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그도 사랑한다.” 내 원수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니! 너무 억울했다. 기가 막혔다. 그럴 수는 없는 거다. 나보다 훨씬 나쁜 사람을 통해서 나를 연단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그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하나님이 하시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러나 필자는 그 자리에서 알았다. 내가 하나님에게 원수였다는 것을. 그런 나를 예수님은 용서하셨다는 것을. 주기도문이 명백히 가르치는 바, 내 원수를 용서하지 않은 것은 주님의 용서를 걷어차 버리는 짓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를 용서함으로 용서받고, 그 이전에 용서 받았기에 용서한다. 그것이 복음의 정신이고, 은총의 요체다.
요더는 필자에게 말해 주었다. 자신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가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그분은 감히 인간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침을 뱉어도 침묵하셨고, 도리어 고통으로 구원을 이루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목할 것은 비폭력적으로 고통에 응수하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아가페(agape)다. 자기를 내어주는 비저항적인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이 비저항은 자기 방어를 위한 정치적 수단을 사용하기를 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손에서 무죄한 자가 죽어가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에서 궁극적 계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죽음은 하나님께서 악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평화주의 혹은 비저항의 유일하고도 타당한 출발점이 있다.”5
요더가 사용한 비폭력적 사랑은 하나님의 용서를 가리킨다. 내게 까다롭게 굴고 괴롭히는 이를 향해 정당한 방식으로 복수하는 것마저도 내려놓고 그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궁극이다.
복음이 다름 아닌 용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리스도인은 원수에 대한 용서를 내면 치유로 국한해서는 안 되며 국가와 국제적 문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을 제한할 수 없듯이, 폭력과 전쟁의 사안에도 예외일 수 없다. 내 원수에게, 우리 공동체의 대적에게, 우리 국가의 적대 세력에게 교회와 신자는 폭력과 전쟁으로 응징을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원수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이 말이다. 복음과 전쟁은 양립 가능하지 않다.
고통은 교회의 모습을 직시하게 해 주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현실을 보았다. 교회는 그야말로 사사 시대의 혼돈을 방불케 했다. 내가 섬긴 교회와 한국 교회가 그리 다르지 않다. 교회가 세상의 기준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상 자체가 되었다.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다. 교회가 세상이었다. 교회는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세상보다 더한 세상이 교회였다.
요더는 세상이 되어버려 자기 맛을 잃어버린 교회를 콘스탄틴주의(Constantinianism)라고 명명한다.6 교회의 주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틴이라는 것이다. 교회를 다스리는 주인이 세상의 수장인 콘스탄틴이라는 말은 콘스탄틴의 기독교 신앙의 승인과 공인은 교회의 승리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로마의 승리에 다름 아니다. 나는 교회의 타락과 그 정확한 본질을 표현할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쩔쩔 맸었는데, 요더에게서 이름과 언어를 얻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대안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는 것이다.7 교회는 어떠한 통치나 지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 하나의 공동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주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악을 악으로 갚을 때, 낮은 자를 깔보고 무시하고서라도 높아지고자 안달할 때, 교회는 반대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마음을 낮은 곳에 둔다. 왜 그런가? 예수가 홀로 주님이기 때문이다.
요더는 누구인가?
전기(biography)로 신학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맥클랜던이었다.8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의 일생이야말로 신앙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데 필수적이며, 성경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새롭게 다시 살아낸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의 일부인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 이야기는 역사적 연속성을 지니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며, 우리의 이야기로 성경 이야기는 보다 풍성하게 해석될 것이다.
요더의 전기는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가? 그의 삶의 궤적을 훑어보면, 메노나이트로 태어나서 그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행동반경이 그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기성 전통을 밖에서 비판하기보다는 본래의 목소리를 회복하면서 자기 자신에 보다 철저할 것을 주문한다. 요더의 생애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철저함’이다.
존 요더는 1927년 12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의 스미스빌(Smithville)의 메노나이트 가정에서 태어났다.9 1935년 여름에 그의 부모는 그곳의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스터(Wooster)로 이사를 한다. 때문에 요더는 다른 메노나이트와 달리 유년 시절을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메노나이트가 아닌 일반인들과 어울려 지내야 했다. 심지어 그는 학급에서 유일한 메노나이트였다. 아마 이런 환경에서 요더는 다른 공동체, 다른 전통과 대화하고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체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탓에 대학도 메노나이트 학교를 거부했으나 부모, 특히 어머니의 강권으로 메노나이트 계열의 학교인 고센대학교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난다. 가이 허쉬베르거(Guy F. Hershberger)와 해롤드 벤더(Harold S. Bender)다.10 이 두 사람은 요더가 확고한 메노나이트의 전통을 흡수하도록 해 주었다. 허쉬베르거는 예수의 사랑의 윤리와 메노나이트의 평화 신학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도왔고, 벤더는 교회사 학자로서 요더가 아나뱁티스트 비전을 역사적으로 탐구하고 세련되게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요더는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 파송으로 2차 대전 후인 1949년 프랑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청년 사역과 평화 봉사단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분열된 프랑스 메노나이트 교회를 연합하는 일을 탁월하게 해냈다. 전후의 유럽은 요더에게 세 가지 큰 축복을 안겨주었다. 첫째는 앤 마리 구스(Anne Marie Guth)를 만나 결혼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분열을 통해 전쟁이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확신을 새롭게 한 것이며, 마지막은 바젤대학에서 칼 바르트와 오스카 쿨만을 만난 것이다.
바젤대학에는 칼 야스퍼스와 월터 아이히로트, 논문 지도교수인 에른스트 스텔린 외에도 기라성 같은 쟁쟁한 학자들이 있었고, 바르트와 쿨만의 영향이 지대했다. 요더는 “어떻게 칼 바르트가 내 지성을 바꾸었는가?”라는 글에서 바르트는 은총의 급진성을 갱신했으며, 보다 급진적인 제자도와 자유 교회의 이상을 향해 움직였으나 도중에 미완성으로 남아있다고 회고한다.11 그러니까 요더는 바르트에게서 복음, 바르트의 어법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철저성을, 요더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예수의 주되심의 철저성을 배웠으나 바르트는 아쉽게도 일관되게 고수하지 못했다.
비록 바르트가 복음의 혁명성을 본래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중도에 멈춘 것을 못내 애석해했지만 요더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바르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바르트를 통해서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내러티브로 읽어야 한다는 것, 제자도와 윤리에서 예수 이야기의 중요성, 기독교 윤리의 기초를 자연신학에서 도출하는 것의 거부, 교회와 세상의 구분 등을 배웠다.12 이는 요더의 핵심 사상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요더와 바르트의 관계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린다. 크레이그 카터가 요더를 바르트주의자로 보는 반면에 얼 짐머만은 요더의 독창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요더는 두 가지 면을 다 갖고 있으며, 특히 ‘바르트의 철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것이 바르트가 준 영향을 술회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과 일치한다. “주류로부터 급진적 교인됨(churchmanship)으로 이르는 바르트의 길은 미완성이다.”13 그러니까 미완성 바르트의 완성이 요더다.
바르트의 영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오스카 쿨만의 영향은 저평가되었다. 요더가 학위 과정 중 바르트와 5개의 과목을 공부했다면, 쿨만과는 2배에 가까운 9개 코스를 이수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요더의 대작인 「예수의 정치학」은 초지일관 신약과 구약 성경를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교리적 색채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쿨만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열심당과 바리새파를 비롯한 예수 시대의 정치 세력 이해, 예수의 복음이 지니는 정치적 차원, 로마 제국에 대한 이해, 혁명적 복종 등을 가르쳤다.
다만, 쿨만이 예수의 정치가 실질적 위협이 아닌데도 당시 기득권이 오해하고 무지했다고 본 반면에 요더는 예수의 정치야말로 혁명적이었고, 따라서 실제적인 위협이 되었다고 본다. 결국 바르트에게 철저함을 요구했던 요더는 쿨만에게도 동일한 것을 청구한다. 왜냐하면 쿨만이 예수의 정치가 지닌 폭발성을 파악했다면, 그것은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과 기성 질서에 위험한 정치라면 양자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요더는 보다 강화된 쿨만이다.
요더는 위의 두 사람이나 교리나 성경신학이 아닌 역사신학 분야에서 논문을 완성한다. 내용은 스위스의 개혁자 츠빙글리와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아나뱁티스트의 핵심을 ‘공동체’와 ‘제자도’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풀어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라면, 한편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세상의 체제와 질서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한 가족 공동체이며, 마찬가지로 그들과 엄연히 구별되는 윤리적 실천을 하게 된다.
1957년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요더는 모교인 고센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해외 선교회 소속으로 WCC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다. 그 사이에 최초의 저작인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증언」를 비롯해 「원초적 혁명」, 「칼 바르트와 전쟁의 문제」, 「예수의 정치학」 등을 저술했다. 1977년부터는 가톨릭 계열의 대학인 노틀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1987년과 88년에는 기독교 윤리 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종교 윤리 저널」과 「메노나이트 계간」의 편집 위원으로 오래도록 봉사했으며, 짐 월리스의 「소저너스」(Sojourners)를 1973년부터 88년까지 섬겼다.
지금껏 요더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신의 메노나이트 전통을 올곧게 고수하면서도 다른 전통의 학자들과의 학습과 대화로 지경을 확장했다. 그런 그는 말년에 대학생과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 치명적 잘못을 범한다. 이로 인해 그는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절차를 따라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간의 신학적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죄임에 틀림없다.
요더만큼 예수의 주되심을 수미일관되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예수를 철저하게 본받는 길의 어려움을 예증한다. 하여, 요더의 신학에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삶에서 만큼의 치명적인 오류는 아니다. 필자는 전체적인 틀에서 일부 지나친 극단성을 비판하게 될 것이다.
어떤 요더인가?
1. 급진적 개혁자들의 아들, 요더
존 요더는 급진적(radical) 신학자다. 그를 급진적 신학자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급진이라는 용어가 뜻하는 의미 때문이다. 본시 급진은 뿌리(root)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라딕스(radix)에서 유래했다. 문제가 생기면, 현상에서 머물지 않고 발단과 원인이 되는 지점에까지 파고 들어가고, 시초로 거슬러 가는 것을 말한다. 근원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정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오늘날 벌어지는 다양한 쟁점을 풀이하는 자세다. 그러므로 급진적이라는 말은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그 근원으로부터 다시 되돌아 나와 현재를 성찰하는 정신과 태도를 일컫는다. 그리하여 본래의 근본정신을 자신부터 철저하고도 일관되게 따르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러므로 ‘급진적’은 철저화와 일관성의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요더가 속해 있는 메노나이트가 종교개혁의 스펙트럼 속에서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에는 통상적으로 네 가지 개혁 운동이 포함된다. 루터교, 개혁교회 혹은 칼뱅주의, 아나뱁티스트 그리고 가톨릭 종교개혁이다.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개혁운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개를 말한다. 그 중 루터교와 개혁교회는 관주도적 혹은 관료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으로, 아나뱁티스트를 급진적 종교개혁으로 서로 구분한다. 이 양자는 세속 관료에게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최소한의 권한이라도 부여할 것인지를 두고 길을 달리한다.
그 동안 종교개혁 좌파(롤란드 베인튼), 종교개혁의 볼셰비키(보수파 스미스) 현대 사회주의의 선구자(칼 카우츠키), 경건주의(앨버트 리츨), 최초의 복음주의 형제들(루드비히 켈러), 신비주의자(루퍼스 존스), 에라스무스 인문주의(월터 쾰러)라는 등 제각각 명칭을 사용했다.14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는 스스로 종교개혁 이상의 실천으로 인식했다. “종교개혁의 정점이요, 루터와 츠빙글리가 처음에 가졌던 비전을 성취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15 그러므로 메노나이트가 급진적 개혁의 한 분파이므로 요더 역시 급진적 신학자로 명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존 요더의 신학에 ‘급진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데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요더의 신학은 그의 신학방법론을 다루면서 보겠지만, 체계적이지 않거니와 사상을 조직하는 것을 거부한다. 요더를 비폭력 평화주의자 또는 평화주의 신학자라고 명명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의 핵심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단 하나의 모토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것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主)라는 믿음 외에 그 어떠한 것도 기초나 중심이 될 수 없다. 그의 윤리는 줄곧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것을 예외 없이 사회적 윤리에 적용한 것일 뿐이다. 이 체계적인 이름을 거부하는 그를 호명할 단 하나의 이름은 ‘급진적’이다.
다른 하나로 마크 네이션(Mark Nation)은 존 요더의 신학을 딱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다음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메노나이트(mennonite), 복음주의(evangelical), 가톨릭(catholic).16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네이션은 요더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잘 포착했다. 그러나 셋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급진적’이다. 메노나이트와 복음주의, 가톨릭의 정신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신학자가 존 요더다.
우선 네이션의 목소리를 경청하자. 사실 요더는 메노나이트의 대변자로 간주된다. 요더와 메노나이트는 동의어다. 최근 메노나이트에 대해 보다 주목해야 할 사항은 그들의 평화주의와 존 요더라는 인물이다. 물론 그가 메노나이트 전통의 전부가 아니며, 내부에서도 비판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요더가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아들이라는 점과 그의 사상이 메노나이트의 역사로부터 발원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더는 메노나이트다.
다음, 요더는 놀랍게도 복음주의가 상당히 친근성을 보이는 학자다. 미국의 진보적 잡지인 「크리스천센추리」(The Christian Century)는 1989년 ‘복음주의자의 해’라는 커버스토리에서 빌리 그래함·칼 헨리·프란시스 쉐퍼·조지 마스덴 등과 함께 요더를 복음주의자에 포함시켰다. 또한 복음주의 잡지인 「크리스채너티투데이」(The Christianity Today)에는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20세기의 책 100권의 목록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요더의 책이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종교개혁 당시 철저하게 짓밟히고 위험시되었던 메노나이트의 책을 복음주의자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것으로 미루어 요더에게 복음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복음주의 정치사상을 움직인 네 명의 신학자로, 칼 헨리·아브라함 카이퍼·프란시스 쉐퍼·존 요더를 꼽은 책도 있다.
한국에서의 상황도 유사하다. 우선 요더의 책을 번역·출판하거나 하려고 예정하는 곳이 대개 복음주의 진영이다. 현재로는 두 권이 번역되었는데 「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이 필자의 번역으로 아나뱁티스트 출판부에서, 「예수의 정치학」이 IVP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IVP와 대장간에서 몇 권의 책을 번역 계약을 맺고 출판을 추진하고 있다. 요더 책의 번역자들인 고신대 신대원의 신원하, 침신대의 김병권 등은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지형에서 복음주의 또는 보수주의 교단 신학자들이다. 요더가 복음주의인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요더는 가톨릭(catholic)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를 가톨릭 신자로 왕왕 오해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가 노틀담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에서 77년까지는 파트타임으로, 77년부터 그가 숨진 해인 1997까지는 전임교수로 교수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가톨릭적이라고 공공연히 발언하곤 했다. 요더는 「제사장 왕국」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논문집에서 기획된 제자도의 비전은 성경와 가톨릭 전통에서 발견될 수 있다.”17
그렇지만 요더가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말한 것은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이 아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이 아닌 가톨릭이고, 대문자 가톨릭이 아니고 소문자 가톨릭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일반과 달리 다른 교회 전통과 부단한 대화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의 공식적인 이름은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이다. 가톨릭의 본래 의미는 ‘우주적’ 또는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요더는 로마 가톨릭에, 아니 기독교 전체에 복음의 보편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요더는 가톨릭, 그러니까 보편성을 추구하는 신학자다.
네이션의 요더 이해가 갖는 문제는 너무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더를 종교개혁의 주요한 네 가지 흐름 모두에 위치시킨다. 루터교와 칼뱅주의를 관료적 종교개혁으로 묶고 보면 복음주의는 그 운동의 끄트머리에 있고, 급진적 종교개혁은 메노나이트, 가톨릭은 반종교개혁 운동과 직결된다. 네이션이 요더가 종교개혁의 각각의 흐름을 통합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네이션의 주장은 요더를 어느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요더 신학에 대한 네이션의 세 가지 정의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언어가 있다. 바로 ‘급진적’이다. 요더는 메노나이트, 복음주의, 가톨릭의 이상과 정신을 일관되게 철저히 밀어붙인 신학자다. 메노나이트의 제자도와 평화주의 전통을 강화하면서도 다양한 교단과 학자와 교류를 아끼지 않았고, 복음주의 이상으로 성경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보였고, 보다 철저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할 것을 주문했고, 가톨릭을 향해서는 교회의 보편적 일치 주장을 한갓 로마 가톨릭의 체제로 국한하지 말고 보다 확장하고 심화하기를 요청하였다. 요더는 자신이 속한 메노나이트와 개신교, 로마 가톨릭에게도 자신들의 전통과 주장을 끝까지 견지하도록 주문한다. 그런 점에서 요더는 급진적인 신학자이다.
2. 예수 외에 누가 주님인가?
그러면 무엇이 존 요더로 하여금 급진적이게 만드는 것인가? 단 하나다. “예수가 주님이시다!”는 고백은 복음·교회·평화에 관해 급진적이도록 한다. 예수만이 주님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질서에 순응시키지 않을 것이며, 교회가 세상과 동화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것들을 합리화하지 않고, 그것을 거슬러 평화를 증언하는 일에 자신을 내던질 것이다.
예수의 주되심은 요더의 윤리 사상에서 과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가? 요더에게 기독교 평화주의는 예수의 주되심에 근거한다. “메시아적 공동체의 평화주의는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라는 고백에 의존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18 그리하여 만약 예수가 주라는 사실이 부인된다면 기독교 평화주의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며 붕괴되고 만다. 때문에 기독교 평화주의는 실용적인 선택도 아니고 심리적인 방어기제도 아니고 기독론에 확고히 뿌리를 둔다.19
예수가 주님이시라면, 그분은 우리의 전일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그것에는 어떠한 예외도 있을 수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했듯이 한 치라도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을 요더는 예수가 주님이 아닌 곳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의 다스림은 교회 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분이 창조하고 구속하신 세상 전부를 포괄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교회 내 공동체의 삶, 더 나아가 세속 사회에서의 일상도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을 말과 삶으로 증언해야 한다.
그러나 존 요더가 보기에 콘스탄틴 이후로 교회는 예수의 주되심을 제한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입술로는 예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실상은 약화시키려는 쪽으로 끊임없이 나아갔다. 그러기에 「예수의 정치학」은 기존의 주류 윤리학이 예수를 윤리적 실천에서 규범(norm)으로 삼기를 부정하려 했음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른 분도 아닌 예수의 주되심을 축소하려는 논리와의 논쟁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다.
요더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윤리를 부적절하다고 보는 여섯 가지 견해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주장의 이면에는 주되심을 윤리의 영역에서 가급적이면 제한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임을 밝혀낸다.20 그 논리들은 서로 다르게 보여도 실상은 같은 목소리다. “주류 윤리학: 예수는 규범(norm)이 아니다.” 결국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 주장들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임박한 종말론을 믿었기에 이렇게 역사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사회와 제도가 항구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고, 따라서 그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를 위해 타당하지 못하다. 예수의 윤리는 프란체스코파와 톨스토이 식의 시골 사람에게나 어울릴 법하기에 오늘날의 도시 문명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또는 예수는 한 개인의 영혼 구원과 내면의 치유를 위해서 오셨으므로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들은 단적으로 사회적 삶에서 예수의 규범성을 약화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존 요더는 따져 묻는다. “왜 예수는 아닌가?” 그리고 “예수가 아니라면 무엇이 규범인가?”위의 논리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심스러운 해석학적 전제를 갖고 있다. 하나님의 유일하고도 최고의 계시인 예수와 성경이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도 주되심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예수와 계시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독교만의 고유하고도 독특한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윤리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기독교의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역사적 예수의 삶이 우리의 삶에 규범이 되지 못한다면 기독론에 있어서 심각한 결함이 발생한다. 그것은 이중적 방향을 취한다. 하나는 성육신의 부정 또는 약화이고, 그야말로 그 옛날 에비온주의가 범했던 잘못의 반복이다. 예수가 신이 아니라 남달리 뛰어나기만 한 인간이기에 그분이 갖는 권위는 전적인 충성을 요구할 만하지 않다. 반대로 그분의 권위를 영적인 것에만 묶어두고 인성에는 없거나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영지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요더의 비판은 조금 심한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여하한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귀결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요더는 한발 양보하여 그것이 예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근본적 오해 또는 잘못된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예수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거나 예수의 이야기를 읽고 그 속에서 전혀 다른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요구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애초부터 조직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21
주류 신학은 예수가 단 한 분 주라고 고백하지만, 갖가지 형태로 주되심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가 주라고 말하는 것의 본래 의미는 예수의 승리를 말한다. “신약성경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세들을 이겼다고 승리에 찬 단언을 한다. 이것이 주라는 용어의 명확한 의미다.”22 그렇다. 예수는 개인과 교회 그리고 사회, 심지어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하시고 승리하셨다.
우리는 요더에게서 예수가 주라는 고백 때문에 핍박과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초대교회와 역사상의 많은 증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고백이 체제 전복의 위협을 느끼고 역사에서 철저히 말살하려들 정도로 위험한 것임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요더가 21세기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우울하다. 왜냐하면 그만큼 우리 시대가 예수의 주되심을 실질적으로는 그리 인정치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급진적 신학자 요더를 더욱 더 필요로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요더를 읽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註
1. Stanley Hauerwas, “When the Politics of Jesus Makes a Difference,” The Christian Century, October 13, 1993, 982.
2. James Wm. McClendon, Jr., Ethics: Systematic Theology, I (Nashville: Agingdon Press, 1986), 7.
3. 김두식, “표지 추천 단평,” 존 하워드 요더, 「예수의 정치학」, 신원하·권연경 옮김(서울: IVP, 2007).
4. 김기현,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서울: 복있는 사람, 2008).
5. John Yoder, The Original Revolution: Essays on Christian Pacifism (Scottdale: Herald Press, 1971), 56.
6. John Yoder, The Royal Priesthood: Essays Ecclesiological and Ecumenical (Scottdale: Herald Press, 1998), 154.
7. Yoder, The Original Revolution, 107~24.
8. James Wm. McClendon, Jr., Biography as Theology, new edition (Philadelphia: TPI, 1990).
9. 요더의 전기는 마크 네이션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Mark Thiessen Nation, John Howard Yoder: Mennonite Patience, Evangelical Witness, Catholic Convictions (Grand Rapids: Eerdmans, 2006), 1~29.
10. 두 사람이 요더에게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Earl Zimmerman, Practicing the Politics of Jesus (Telford: Cascadia Publishing House, 2007), 42~57.
11. John Yoder, Karl Barth and the Problem of War and Other Essays on Barth, edited by Mark Thiessen N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2003), 169~174.
12. Craig A. Carter, The Politics of the Cross: The Theology and Social Ethics of John Howard Yoder (Grand Rapids: Brazos Press, 2001), 63~90.
13. Yoder, Karl Barth and the Problem of War and Other Essays on Barth, 174.
14. 헤럴드 벤더, 「재세례 신앙의 비전」, 김복기 옮김(서울: KAP, 2009), 42~47.
15. 앞의 책, 48~53.
16. Nation, John Howard Yoder, xix~xxiii.
17. John Yoder, The Priestly Kingdom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8.
18. John Yoder, Nevertheless: Varieties of Religious Pacifism (Scottdale: Herald Press, 1971), 133.
19. John Yoder, 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Newton, Kansas: Faith and Life Press, 1964), 7.
20. 요더, 「예수의 정치학」, 26~32.
21. 앞의 책, 49.
22. Yoder, 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9.
2. 폭력 없는 평화 인식론
언제나 기독교 신학은 계시의 빛 아래서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일어나는 현상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신학은 우리 자신의 현대적 경험을 기독교의 경험,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해석하고 비판적인 변혁을 도모해야 한다. 지평으로서의 세상과 척도인 기독교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은 신학의 고유한 과제임에 틀림없다.1
우리 시대의 핵심적 상황은 폭력이다. 지난 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세기였으며 결국 폭력에 기초한 질서들의 충돌의 역사였다.2 더군다나 우리의 역사 또한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사회학자 김동춘의 지적처럼 아직도 우리는 한국전쟁이 개시된 날짜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런 까닭에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이 땅에 계속 재연되고 있다.3
그런데 전쟁과 폭력의 세계는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계관을 요구하고, 역으로 그 세계관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평화는 평화의 세계관 또는 인식론을 요청한다. 평화는 단지 사회 정치적인 실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성찰과 신학적인 증언의 주제다. “폭력은 힘에 관한 윤리학일 뿐만 아니라 진리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인식론”의 문제다.4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두 사람 모두에게 폭력의 단념은 정치 윤리에서 하나의 입장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위한 복음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하나의 인식론이다.”5 그러므로 기독교 평화주의는 사회 정치적 윤리 이론으로만 이해될 수 없고, 특정한 사유 스타일 혹은 담론의 양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독교 평화주의는 독특한 인식론을 함축한다.
그 인식론의 출발점은 복음주의적 신앙 고백이다. 즉, 예수만이 유일한 주님이라면,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신앙을 강제할 만한 권위나 권력이란 없다. 마르틴 루터는 보름스 의회에서 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합당한 자신의 주장을 교황이나 교회의 회의라 할지라도 철회하거나 취소시킬 수 없다고 외쳤다. 일체의 권위를 모조리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전적인 충성의 고백이며, 그러한 권위들은 주되심 아래에 존재한다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그 어떠한 권위라 할지라도 신앙을 타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더에 따르면, 복음은 “권위에 의해서나 혹은 강제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동의가 강요될 때, 복음은 무효가 될 것이다.”6 복음이 문자 그대로 좋고도 새로운 까닭은 세상의 권력과 달리 지배하지 않고 섬기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존재 방식 자체가 억압과 지배를 타파하고 해방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는 비강제적이다. 예수와 그분의 십자가에서 계시된 하나님 아버지는 무작정 마구 밀어붙이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 되심이 전파되는 소통 방식도 강제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자유다. 따라서 ‘예수가 주’라는 진리는 주 되심과 제자도의 영역만이 아니라 학문의 방법론과 타자와의 소통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러한 요더의 ‘평화 인식론’(peace epistemology)은 복음과 복음의 고유한 소통 방식과 반하는 인식론에 대한 이의 제기와 대안을 지향한다. 복음을 지배와 강제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고, 그러한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것에 대한 거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의 실체와 역사적 기원을 요더는 콘스탄틴주의로 명명하며, 대안은 평화주의다. 콘스탄틴의 인식론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식론이라면, 요더의 인식론은 비판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하는 평화의 인식론이다.
문제의 근원, 콘스탄틴주의
1. 콘스탄틴주의, 정말 문제인가?
존 요더를 위시한 아나뱁티스트들의 비판의 활시위가 겨냥하는 원천은 ‘콘스탄틴주의’다. 그가 보기에 콘스탄틴주의는 교회사와 현재의 교회들이 직면한 다종 다기한 문제들의 출발점이다. 역사적으로 콘스탄틴의 전환이 로마에 대한 교회의 승리라는 인식이 파다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으로 교회에 대한 로마의 승리라는 자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레슬리 뉴비긴과 더글라스 존 홀 등은 현재의 위기를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의 몰락으로 정의한다.7 기독교의 미래를 구상하고 구축하는 어떠한 시도도 기독교 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승인한 이후, 기독교의 비약적인 발전이 기독교 본래의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했고, 그것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
허나, 그 이후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분분하다. 종교 개혁 당시의 입장의 차이가 반복되고 있다. 주류 종교 개혁적 전통이 콘스탄틴의 유산을 전면 부인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용하려고 한다면, 아나뱁티스트들은 콘스탄틴 이전으로의 복원과 회복을 생각한다. 형태와 모습은 달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유럽의 경우가 법적이라면, 북미는 문화적이고 관념적이며 사회적이다. “유럽의 기독교 세계의 전통적인 체제가 형식의 차원이라면, 우리는 내용의 차원이다.”8 따라서 내용과 내부에 있어서 여전히 콘스탄틴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기독교를 향한 요더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에 존 홀과 뉴비긴은 콘스탄틴 체제의 공헌과 의의를 확인하고 전적인 부정보다는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콘스탄틴 체제가 워낙 오래되었고, 서구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통째로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요더가 보기에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또 하나의 콘스탄틴 체제의 아류다. 즉, 기성 질서와 체제를 갱신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그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그 타락한 체제를 여전히 부인할 수 없이 이미 주어진 어떤 것으로 승인한 마당에 그들은 그 시스템의 포로인 셈이다(The Priestly Kingdom, p.144).
여기서 양자의 입장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한가는 보류하도록 하자. 그리고 양자 모두 나름 일리 있는 시각이 아니냐는 양시론적 견해는 성급하다. 다만, 두 가지만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콘스탄틴의 시스템을 문제 삼은 것은 요더만이 아니라 주류 내에서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요더의 신학이 급진적인 관점을 취한다는 점이다. 요더의 신학은 콘스탄틴주의와의 전면적인 대결이며, 콘스탄틴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야말로 요더의 방법론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존 요더의 신학은 철저히 탈콘스탄틴적 신학이다. 요더에게 “콘스탄틴주의는 기독교 사회 윤리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단 하나의 문제였다”는 것은 분명하다.9 물론 그의 신학은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 세 가지가 콘스탄틴 이전의 신학에서 이후의 신학으로의 전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요더의 신학은 탈콘스탄틴적 신학이다.
2. 콘스탄틴주의란 무엇인가?
콘스탄틴주의는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는 시스템이다(The Royal Priesthood, p.154).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강제와 권력에 의한 지배 집단이 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국가는 세속적인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는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종교적 승인을 받았다. 교회는 국가의 위기, 특히 전쟁과 같은 중대 사안에 참여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국가는 교회 내부의 신학적 논쟁에도 개입할 여지를 확보하게 되었고, 실제로 역사는 그런 일들이 빈번했음을 증명한다.
이를 두고 존 홀은 콘스탄틴주의를 “문자적으로 기독교의 지배 또는 종주권을 의미한다”고 했다.10 외관상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는 듯이 보여도 실상은 정반대였다. 기독교가 기독교적 방식으로 로마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로마적 방식으로 로마를 지배한 것이었으므로 로마의 기독교화가 아니라 기독교의 로마화였다. 세상이 교회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콘스탄틴주의는 기독교의 지배로 정의되기보다는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는 편이 훨씬 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 콘스탄틴주의는 교회와 세상이 같아진 것이고, 교회와 세상의 동일시로서의 콘스탄틴주의는 세상에 의한 교회의 왜곡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콘스탄틴 개인이 아니다. 예컨대 그가 진정으로 개종했는지, 했다면 언제인지에 관한 연대기는 문제가 안 된다. 그가 상징하는 바, 기독교 내부의 체계의 급격한 변화가 초점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The Priestly Kingdom, p.135). “콘스탄틴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모든 존재 양식에서 그리스도가 거부한 바로 그것 하나하나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11
3. 콘스탄틴주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기독교회는 역사적으로 콘스탄틴주의로의 전환을 환영하거나 그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았다. 이 전환이 세상에 대한 교회의 승리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기회이거나 적어도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독교 왕국 체제의 성립은 고유한 복음의 정체성 상실과 왜곡을 초래했다. 극명한 변화는 바로 전쟁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콘스탄틴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군대와 제국의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권력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콘스탄틴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폭력은 도덕적으로 관용할 만하며, 적극적인 선이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The Priestly Kingdom, p.135).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에서 콘스탄틴의 십자가 정신으로 기독교의 본질이 바뀌었다. 콘스탄틴의 길은 강함과 무력을 지향하지만, 그리스도의 길은 약함과 무력함을 추구한다. 콘스탄틴의 전략은 강한 군대를 동원해서 약자와 빈자를 억압하여 가진 자의 평화와 승리를 쟁취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전략은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통해서 도리어 빈자와 약자가 높아지는 승리를 갈구한다. 콘스탄틴의 종교는 나를 위해 남의 피를 흘리는 종교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종교는 남을 위해 내가 피를 흘리는 종교다.
알리스테어 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독교가 콘스탄틴화 된 “가장 극적인 증거는 콘스탄틴의 승리의 트로피가 피로, 그러나 다른 사람의 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12 이는 전환이 아니라 변질이다. 예수는 나와 다른 타자 혹은 나에 반하는 원수에게도 용서와 평화의 제자도 실천을 명령하지만, 콘스탄틴은 폭력과 배제의 방식으로 타자와 원수를 처리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주의는 나와 다른 대상, 나 외부에 있는 존재를 강제와 폭력을 매개로 인식하는 체계다.
기초주의 인식론을 넘어서
1. 기초주의란 무엇인가?
콘스탄틴적 인식론의 현대적 버전은 방법주의(methodologism) 또는 기초주의(foundationalism)다. 요더는 방법주의와 기초주의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번갈아 사용한다. 방법주의는 요더만의 독특한 용어인데다가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고, 학계에서의 통상적인 학술 용어는 기초주의이므로 앞으로는 기초주의로 일괄 표기할까 한다.
기초주의는 모든 앎과 삶의 유일한 기초가 존재하며, 일체의 것을 그 기초로 환원하려는 사유방식을 말한다.13 그 기초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서로 공통 기반으로 묶여질 수 없는 것, 서로 달라서 환원될 수 없는 것을 강제적으로 통합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각각의 개성과 고유함을 철저히 배격한다. 먼저 갈등이 덜한 보다 순수한 형태로 추상화한 연후에 각각의 대립을 약화시키는 절차를 밟는다.14 기초가 되는 것이 기초적이지 않은 일체의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제국주의다. 이런 까닭에 기초주의는 현대판 콘스탄틴주의 또는 인식론 영역에서 콘스탄틴주의다.
요더의 논의에 보다 깊숙이 들어갈 시점이다. 요더에 따르면, 지금까지 도덕적 추론에 관한 학문적 토론은 제1원리를 추구한다.15 논의하는 주제의 이면이나 배후에 놓인 가장 근본적인 첫 번째 원리를 발견하여 문제가 되는 모든 현상을 일거에 설명하려는 것이다. 특히 데카르트 이후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질은 그 이면(개별적 사물 안이거나 밖일 수도 있다)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근대인의 사유 구조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생각하는 자아를 통해서 인간의 인식의 의심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토대를 찾으려는 데카르트적 사유에서 기독교 신학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요더는 단 하나의 동일한 질서 내에 다양한 것을 환원하려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내가 부인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압도적인 이성이 오로지 단 하나의 관용어(idiom)를 선택하게 하거나 동일한 질서 내에서 몇 가지 이용 가능한 자원을 항상 순위를 매기려 하는 것에 존재한다는 점이다.”16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획일화할 때 무수한 문제들이 야기된다.
2. 기초주의는 우상숭배
기초주의가 왜 문제인가?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환원의 욕망이 다름 아닌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 우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격하시키거나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격상시킨 것의 결과물이다. 신의 물질화를 물상화(物象化)라고 한다면, 물질의 신격화가 물신화(物神化)다. 방향이 서로 달라도 그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소유하려는 욕망이다. 나와 전적으로 다른 타자, 나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내가 창조한 양, 내 마음대로 형상을 그리는 것은 하나님을 지배하려는 욕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하여, 우상이란 내가 만든 하나님이다.
신학자들이 직면한 최대의 유혹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과 세계를 단 하나의 언어와 관념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신학적 우상화의 전형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형태의 우상화의 위험 못지않다. 요더가 보기에 가장 나쁜 우상화의 형식은 형상을 깎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설명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언어, 한 단어를 가정하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에서 요더가 말한 우상화를 철저하게 분석한 것은 제임스 맥클랜던이다.17 그는 윤리학은 그동안 데카르트와 같이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확고부동한 기초를 찾으려 했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예컨대, 한 사람의 도덕적 행동과 결정을 공리주의는 ‘수’, 제임스 플레처의 상황 윤리는 ‘상황’,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현실’이 가히 신적인 토대의 역할을 자임해왔다. 이것은 성경 이야기와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갖는 다양성을 거칠게 하나로 획일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신적인 출발점을 상정하려는 데서 온 오류다.
하여,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잘라 말한다. “기독교 신학은 출발점을 가질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그러한 출발점은 안정성을 세상에 보증하려고 하고, 부활이 영원히 문젯거리가 되는 원인과 결과의 양식으로 역사를 굴복시키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18 그렇다면 신학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 기초 위에 세우려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신학의 유일한 규범으로 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3. 기초주의는 다양성을 부정한다
둘째, 단 하나의 토대로 환원하기에 삶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다시 말해 다양하다. 다원성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성으로부터 도피한 인간이 다다를 수밖에 없는 절망의 경계선상에서 내쉬는 한숨이지만, 그것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희망의 신호탄일 수 있다. 하여, “인식론적 방법으로서 다원주의는 절망의 권고가 아니라 복음의 일부다.”19
왜 복음인가?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신앙의 자리가 다원적이었고, 성경과 기독교는 다원성을 자기 정체성 이해와 더불어 성경 형성의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The Priestly Kingdom, pp.59~60). 아브라함이 정착한 가나안 땅에서도,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 애굽에서도, 바벨론 포로기에서도, 로마 제국 하에서도 이스라엘과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이방인과 이교도 사이에서 살아야 했다. 이것이 때로 그들에게 불평과 원망거리였지만, 현명하게도 그런 곳에 거하게 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즉, 그들과 다른 백성이 되라는 것, 동시에 그들도 다른 백성이 되게 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
또한 인간이란 본래 다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빌리자면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지닌다. 즉 인간의 속성은 일점으로 축소하기에 다양한 내면세계를 품고 있다. 한 개인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 또한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하나의 개념과 질서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은 독선이다. 오히려 그 다름을 상호 존중과 대화를 통해서 건강하게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차이를 갈등 속에서 힘을 요구하는 것으로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화해케 하는 대화로 건전하게 처리하는 것이다”(Body Politics, p.8).
이것은 평화주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땅에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집단만의 일은 아니다. 평화를 이루는 방법상의 차이로 인해 소모적인 논쟁과 비판은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더는 기독교 평화주의가 단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만을 전일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가 생각하는 평화주의는 “다양하며 심지어는 서로 모순되는 관점들의 총체이다”(Nevertheless, p.12).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과 함께 자기 자신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인내를 요하는 것이다.20 인내는 낮은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며, 폭력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는 다양한 대답이 필요한데 특정한 한 입장이나 체계적인 대답은 오히려 왜곡의 소지가 많다. 차이를 부정하고 단일한 기초의 추구는 대화의 거부이며 타자의 거부이다.
4. 기초주의는 타자를 억압한다.
마지막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보다 높거나 보다 깊은 차원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은 우리 안의 서로 다를 세계를 간과한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요하게 된다. “결코 동질적인 도덕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21 그러므로 교회는 단 하나의 방법이나 토대에 대한 향수를 포기해야 하며, 더 나아가 타인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화주의는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폭력을 거부한다.
교회가 상대방에 대한 인식론적 폭력을 거부하는 것은 한편으로 원수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내로 경청하고자 하는 타자의 목소리는 원수도 당연히 포함된다. 요더가 말하는 타자는 단지 친구만을 뜻하지 않는다. 원수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격체이므로 우리가 평화로 대우해야 한다.
“심지어 억압자도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하는 자가 된 것은 공로가 아니며, 성취도 아니며,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만약 내가 내 이웃, 심지어 내 원수일지라도 동일한 관점으로 바라보는데 실패한다면, 나 스스로 그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He Came Preaching Peace, p.94).
다른 한편으로 진리는 폭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비폭력적이다. 요더는 간디의 주장, 곧 비폭력은 사회적 갈등을 중지하는 실천 전략이면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대적자도 내가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적대자가 내게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하여 비폭력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적대자게 말하기 위해서 비폭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Body Politics, p.69). 이는 단지 내가 대접한 대로 대접받겠다는 실용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본성이 비폭력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가 타자에게 진리이기에 강제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다. 진리를 진리에 반하는 방식으로 취한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이다. 진리는 진리답게 전파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형이상학적 지위만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제약도 없이 힘을 행사하는 것도 단념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진리는 오직 진리만이 지닌 내적인 충만한 힘과 그 아름다움에 의해서 전파된다. 그러므로 “예수가 진정으로 포기하신 것은 폭력이라기보다는 강한 자들로 하여금 약한 자들의 존엄함을 무시하도록 만드는 태도, 곧 목적을 이루겠다는 강박증이다”(「예수의 정치학」, pp.404~7).
인식론적 우상화이며, 삶의 다양성을 폭압적으로 단순화시키며, 약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기에 콘스탄틴적 인식론은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단지 인식론이라는 순수 학문상의 담론에만 그치지 않고 역사와 삶의 현장에서 폭력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때문에 요더는 자신의 견해와 이해가 다른 타인에 대해 인내로 증언할 것을 요구한다. 진리를 실천하고 실현되는 것을 조속히 목격하려는 의욕이 진리에 반하는 행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지는 기초주의는 현대판 콘스탄틴주의이고, 폭력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기초주의의 대안 : 평화 공동체의 증언
존 요더의 평화의 인식론은 콘스탄틴적 기초주의의 폭력성의 비밀을 폭로하는 한편, 공동체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문을 자아낸다. 난데없이 공동체인가? 왜 공동체가 인식의 토대인가? 그가 말한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를 말하는 건가? 숱한 의문에 대한 본격적인 대답은 그의 교회론을 토론하면서 설명하기로 하자. 그 공동체가 평화의 공동체일 때에 폭력적 인식론의 해결책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암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여기서는 우리의 인식 자체가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만을 다루고자 한다.
인식과 앎이라는 것은 삶에 결코 우선하지 않는다. 선행하는 것은 삶이다. 논리가 먼저 등장하는 법은 없다. 어떠한 모습이든지 간에 삶이 있는 다음에야 그것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그때의 논리라는 것도 기실 실제의 삶의 모습과 동떨어지기 십상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제1 원리 등을 운운하며 삶 앞에 논리를 세우는 것은 현실과 정반대일 뿐더러 실재를 왜곡한다. 예를 들어, “예수는 나의 주님이다”고 내가 신앙을 고백했을 때, 그것의 옳고 그름, 또는 정당성은 실제로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내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다. 앎은 삶에서 비롯된다.
인식에서 교회의 중요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더의 육성을 날 것 그대로 들어보자.
교회는 인식론적으로 세계에 우리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아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리고 신앙 고백의 맥락 안에서 보다 온전히 알 수 있다. “자연”이나 “과학”과 같은 개념의 의미와 타당성 그리고 한계는 그것을 따로 주목할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고백의 빛 안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교회는 또한 가치론적으로 세계에 우선한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가치를 비판적으로 선택하도록 인도하는 중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를 예수에게 종속시켜야 하며 심지어는 예수와 상반되는 가치라면 거부해야 한다(The Priestly Kingdom, p.11).
위의 인용문은 상당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에 맞게 두 가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계시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예수의 계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즉 인간의 노력과 성취의 산물이 아니다.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주어진 은총이다. 그것을 계시 외적인 것으로 환원하게 되면, 이미 은총이 아니다. 자연의 일부이거나 과학의 결과이거나 결과일 것이다. 자연이나 과학의 용어로 풀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 개인의 내면세계로 범위와 차원을 축소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계시적 차원을 훼손하는 일이다.
또한 예수가 주라는 믿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의 문법 구조를 분석한다거나 발언하는 화자의 내면의 심리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예컨대 예수가 주(主)요 왕(王)이기에 그의 앞에 나오는 자는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마태복음은 묘사한다. 그분을 주와 왕으로 고백하는 자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머리를 치켜들고 마주 선다면, 그의 믿음은 정당성이 의심받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해리 휴브너는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의 존재론적 자리이고 신자의 공동체는 인식론적 자리”라고 말한다.22 세상은 한 치라도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교회는 세계 한가운데서 그리스도 되심을 인식하도록 실천하는 공동체다. 그 실천의 내용이란 다름 아닌 평화다. 지배와 통제, 그리고 배제를 통해 끊임없이 폭력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으로부터 탈출하여, 정당한 명분과 권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실습하고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야말로 폭력적 인식론을 평화의 인식론으로 전환하는 힘이요 공간인 것이다.
존 요더는 다른 곳에서 “아나뱁티스트라는 라벨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시대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학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아나뱁티스트들은 새로운 세기를 만든 주역이 아니라 기독교와 역사에 대한 해석학을 창조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치는 폭력이 맹위를 떨치는 세상과 폭력의 정당화를 제공하는 콘스탄틴적 체제에서 그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살아내는 데 있다. 정녕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 예전과 다른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뜬소문이 떠돌고 있다. 진정 새로운 시대가 개막하는 날은 폭력적 가치관을 평화의 세계관으로 인식하는 그날이 될 것이다.
註
1. 한스 큉, “신학의 모형 변경: 기초적인 해명을 위한 시도”, Hans Kung·David Tracy 편, 「현대신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재순 옮김(한국신학연구소, 1989), 41~85.
2.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김정한 옮김(이후, 1999), 24.
3. 김동춘, 「전쟁과 사회」(돌베개, 2000), 20.
4. John Yoder, “‘Patience’ as Method in Moral Reasoning,” Stanley Hauerwas et al., The Wisdom of the Cross:Essays in Honor of John Howard Yoder(Eerdmans, 1999), 28, f.n. 9.
5. John Yoder, “Meaning after Babble: With Jeffrey Stout Beyond Relativism,” Journal of Religious Ethics 24(1996): 135.
6. John Yoder, “On not Being Ashamed of the Gospel: Particularity, Pluralism, and Validation,” Faith and Philosophy 9:3(1992): 292.
7. Douglas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TPI, 1997). & 레슬리 뉴비긴, 「복음, 공공의 진리를 말하다」, 김기현 옮김(SFC, 2008).
8.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29.
9. Gerald W. Schlabach, “Deuternomic or Constaninian: What Is the Most Basic Problem for Christian Social Ethics?” Stanley Hauerwas et al., The Wisdom of the Cross: Essays in Honor of John Howard Yoder (Eerdmans, 1999), 449~71.
10.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ix.
11. 알리스테어 키,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이승식 옮김(한국신학연구소, 1988), 208.
12. 앞의 책, 215.
13. 보다 상세한 기초주의에 대한 논의는 김기현, 「맥클랜던의 반기초주의 신학」(한국학술정보, 2006)의 2장 “반기초주의 신학의 배경”을 보라.
14. Yoder, “Walk and Word: The Alternatives to Methodologism,” The Wisdom of the Cross:Essays in Honor of John Howard Yoder 84.
15. 앞의 책, 77.
16. 앞의 책, 81.
17. James Wm. McClendon, Jr., Biography as Theology: How Life Stories can remake Today`s Theology(TPI, 1974/1990), Ch, 1.
18. Stanley Hauerwas, Wilderness Wanderings: Probing Twentieth-Century Theology and Philosophy(Westview Press, 1997), 177.
19. Yoder, “Walk and Word: The Alternatives to Methodologism,” 83.
20. Yoder, “‘Patience’ as Method in Moral Reasoning,” The Wisdom of the Cross, 24~42
21. Yoder, “Meaning after Babble,” Journal of Religious Ethics 24 135.
22. Harry Huebner, “The Christian Life as Gift and Patience,” Ben C. Ollenburger and Gayle Koontz, eds, A Mind Patient and Untamed(Cascadia Publishing House, 2004), 33.
3. 성경은 하나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복음주의자는 아나뱁티스트다!
복음주의자는 아나뱁티스트다! 자신의 정체성을 복음주의에 둔다면, 진정한 복음주의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는 아나뱁티스트와 맞닥뜨리게 되고, 필연적으로 아나뱁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양자는 삼위일체론, 기독론과 같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기독교 운동보다도 선교를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신자의 신앙과 실천의 규범으로서 성경의 권위에 헌신한다.1
역사적인 대립과 박해 등을 감안하면 복음주의와 아나뱁티스트를 긴밀하게 결부시키는 것은 섣부른 주장이거나 자의적인 상상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종교개혁의 범주와 복음주의의 범위에 아나뱁티스트를 포함시키는 것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을 듯싶다. 그는 통상적 의미에서의 종교개혁에는 아나뱁티스트가 제외된다고 말한다.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는 루터파와 개혁파에 결부되며 재세례파는 제외시킨다.”2
또한 복음주의가 새롭게 부흥하는 일련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그는 몇 번이고 아나뱁티스트들이 분리주의자이고, 그것이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3 그러나 불행하게도 맥그래스는 오해하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근본주의의 분리와는 전혀 다른 대조 모델이다. 맥그래스가 “아나뱁티스트들이 근본주의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에 놀란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놀랍다. 그것은 단적인 오해다. 맥그래스에게 진정한 복음주의자는 아나뱁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이더의 발언은 사회 변혁적이고 문화 참여적 복음주의에 대한 오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맥그래스도 로날드 사이더의 테제에 동의할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복음주의자들을 지배하는 여섯 가지 확신은 모두 성경에 근거한다. 복음주의의 최우선 순위는 성경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이다. 여섯가지 확신 중 첫 번째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으로서 성경이 가지는 최고의 권위”다.4 그렇기 때문에 복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성경의 유일한 권위와 지위, 우선권과 우월성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의미한다. 성경 외에 어떠한 것도 신자의 신앙과 실천을 규정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의 문화와 조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복음주의 신앙의 요체가 성경과 성경의 권위에 기반을 둔다면, 그리하여 복음주의가 철저하게 복음주의이고자 한다면, 아나뱁티스트를 만나게 된다. 성경이 강력하게 우리에게 요구하는 제자도와 원수사랑, 비폭력, 세상과 구별된 언덕 위의 마을로서의 교회 등은 아나뱁티스트와 맞닿아 있다. 아나뱁티스트인 로날드 사이더는 묻는다. “우리는 일관되게 복음주의자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지 않고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이라는 자신들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가?”5
아나뱁티스트들 또한 마찬가지다. 아나뱁티스트다운 아나뱁티스트가 되려면 복음주의를 피할 수 없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냥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전일적인 충성을 바치는 신실하고도 철저한 신자가 되고자 한다. 이 말을 조금 바꾸어 말하면, 성경에 충실한 성도가 되라는 다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회심을 강조하는 복음주의는 비폭력 평화와 제자도에 치중하는 아나뱁티스트들이 보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하여 각자의 신앙을 보다 철저히 하고,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나뱁티스트는 복음주의를, 복음주의는 아나뱁티스트를 필요로 한다.
나는 앞서 요더를 철저화와 상대화라는 의미에서 급진적 신학자라고 말했다. 나의 요더 이해가 맞는다면, 그의 성경관은 성경의 본질과 권위에 대한 복음주의의 생각을 철저화하는 한편, 복음주의에 대한 오해를 비판, 곧 상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성경을 최종적 권위로 확증하려는 복음주의자들의 바람을 실현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성경의 교리화, 개인화, 율법화에 치중하는 복음주의를 상대화하는 지렛대를 요더를 통해 확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야기다
성경은 이야기다. 이야기-성서신학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와 스토리(story)를 서사와 이야기로 번역하지만 윤리학에서는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다. 존 요더 또한 마찬가지다-가 신학계에 회자되지만, 그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모두가 이야기를 말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무릇 모든 주장은 비판하는 상대와의 힘겨루기를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는 법이다. “성경은 이야기다”라는 테제도 다르지 않다. 이 테제가 겨냥하는 대상은 성경을 명제(proposition)로 사용하는 일련의 흐름이다. 명제란 주어와 동사의 형식을 지닌 문장이다. 그러나 신학에서 명제란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장, 또는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문장을 뜻한다. 명제가 진술하는 바의 진리성은 언어 밖에 존재한다.
만약 성경이 명제라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잔뜩 얻을 수 있는 창고겠지만, 이는 신앙을 가능케 하지 못할 뿐더러, 성경의 진리성과 진실성이 성경 밖에 있는 것에 의해 판가름 나도록 만든다. 그러하기에 근본주의자들은 그토록 고고학적 발굴에 목을 매고,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일에 올인한다. 성경의 역사적 사건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에 환호하고 그렇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태연한 척한다.6
이러한 생각은 성경의 자족성, 곧 성경은 그 권위를 성경 자신이 아닌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종교개혁의 유산과 확신에 위배된다. 성경은 현대의 언어로 번역되기에 앞서 성경 자신의 언어 그대로 선포되어야 한다(To Hear The Word, 69). 성경이 성경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면, 성경의 권위 또한 성경에 의해서만 확보될 뿐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성경을 설명하기 위한 프롤로고메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7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경을 다름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고 수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기 전에 성경이 우리를 읽는다. 성경은 우리를 성경의 세계로 초대하며, 성경의 세계관으로 우리를 창조하고 다듬는다. 하여, 요더는 성경에 관한 자신의 논문 모음집의 제목을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성경에 의해 읽힐 것인가?”로 하고 싶어 했다(To Hear The Word, 8). 인간이 성경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인간을 규정한다. 우리가 성경의 세계를 규명하고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규명하고 속속들이 파헤친다.
성경의 세계관을 신화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오늘날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비판했던 루돌프 불트만의 해석학의 근본 오류와 위험을 이해하게 된다. 불트만은 그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자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기보다는 과학과 이성의 심판대에 말씀을 소환한다. 텍스트를 탈신화화하기 이전에 해석자와 독자를 먼저 탈신화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To Hear The Word, 50). 하여, 요더는 성경을 현대적 세계관의 틀 속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 시대와 문화와 창조적 긴장 관계에 서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예수의 정치학」, 13).
근본주의가 성경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환영할 수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정은 그들이 옹호하고자 했던 성경으로부터 그다지 환대를 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성경이 아닌 것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의 권위가 성경이 아닌 것에 의해 인정된다면, 성경 아닌 것이 성경이 될 것이다. 성경이 명제가 아니기에 그 권위를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고, 호소하고, 기대는 방식은 적어도 성경의 성격과 권위에 부합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요더의 방법론이 반기초주의적임을 상기할 수 있겠다.
그러면 왜 성경을 명제로 읽어서는 안 되는가? 성경이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제는 무시간적이다. 반면 이야기는 역사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는 구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준 십자가의 사랑을 벗어나서 결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xy축의 한 점으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 정체성을 시험하는 출발선은 일련의 명제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영향이다”(To Hear The Word, 109)라고 요더는 단언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 언어를 명제로 읽게 되면 성경 내의 다양성을 해명하기가 난처하다. 하나의 사실과 사건은 하나의 언어만을 허용한다고 보는 근본주의자로서는 복음서 내의 다양한 이야기를 설명하기 어렵다(To Hear The Word, 89). 공관복음서의 다양성이 문제로 인식되고 가르쳐졌다는 것이 문제다. 공관복음서의 다양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요더가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는 성경과 역사의 예수 사이의 일치를 일체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성경의 명제성은 비판하지만, 역사성은 강력하게 확언한다. “성경은 영감받은 가능한 모든 진리의 그릇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원의 역사적 바탕을 증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과거 임재의 역사성과 연결되어 무대 위에 등장한다”(The Priestly Kingdom, 69). 이 때문에 요더는 하우어워스가 이야기의 객관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은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8
더 나아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로 알게 된 예수와 성경의 예수 사이에 양립 불가능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자신의 예수 이해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결과가 지금껏 제출된 적이 없으며, 분명하게 응전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예수의 정치학」, 38의 각주 17). 성경을 딱딱한 과학적이고 객관적 사실로 치환하는 명제로 이해하는 것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파악하는 요더의 관점은 복음주의와 별 다른 충돌이 없다. 하여간에 성경은 명제로 포착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성경은 예수의 이야기다
아나뱁티스트는 전통적으로 성경 중심적이기보다는 예수 중심적이다.9 그들에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도구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 점에서 복음주의도 생각을 같이 한다. 도날드 블러쉬의 말이다. “교회가 성경에 종속되어 있듯이 성경도 하나님의 지성과 지혜를 구현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종속된다.”10 성경이 성경인 까닭은, 다시 말해 교회와 성도의 신앙적 실천의 규범과 잣대로서의 성경이 정경인 까닭은 성경이라는 레코드를 통해서 예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더 역시 성경 이야기의 핵심으로 예수를 언급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신학은 최종심급에 있어서 예수를 떠난 하나님을 말할 수 없고, 성경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생애의 이야기다. “결국 정경 속의 최종적 정경은 예수의 인격과 넓은 의미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의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11 루터교에서는 칭의를, 칼뱅주의에서는 예정을 기독교 신앙의 알맹이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요더가 보기에 그것은 오해다. 정경 내 정경은 칭의나 예정이 아니다(The Priestly Kingdom, 37).
위에서는 성경을 이야기라고 밝히고서는 소극적으로 명제는 아니라는 것에서 그쳤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성경은 예수의 이야기다. 구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며, 신약은 약속의 성취다. 이처럼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읽어야 하며, 연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자들이 받은 교회 유산의 표지 중 하나는 성경을 정경적 이야기 내의 운동으로 이해하며, 그러하기에 언약들 사이의 차이점도 이해하게 된다. 성경은 알레고리로 적용하기 위한 우화적 일화 또는 연역적 주해를 위해 준비된 명제적 소통의 무시간적 모음집이기는커녕 약속과 성취의 이야기의 방향으로 읽어야 하는 이야기다(The Priestly Kingdom, 9).
위 인용문에서 우화적 일화는 인간주의적인 자유주의를, 명제적 소통은 스콜라주의적인 근본주의를 거론한 것이다. 신학의 참되고 유일한 기초는 예수의 역사적 객관성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는 성경과 예수를 주관적이고 내면적 경험으로 축소하고, 근본주의는 성경을 정보더미 혹은 다발, 묶음으로 환원한다.12 그 결과 예수는 주(Lord)가 아니라 인간의 종으로 전락한다. 내 경험과 통계로 포착할 수 있다면 더는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공적 영역에서 주가 되지 못한다(「예수의 정치학」 1장).
이 대목이 요더가 예수를 정치적으로 읽는 이유를 해명해야 할 시점이고 지점이다. 더 깊은 논의는 요더의 기독론에서 다루기로 하고, 성경의 예수를 정치적으로 읽는다는 점에 국한하자. 요더가 보기에 예수도, 성경도, 교회도 죄다 정치적이다. 풀어놓아서 그렇지 모두 같은 말이다. 역사적 예수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그를 기억하고 기록한 성경도 자연스레 정치적이고, 그의 제자된 우리 또한 정치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요더는 「예수의 정치학」에서 성경에 의하면, “예수가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의 대표적 모델”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와 신약학계 내부에서 공히 인정한다는 것을 논증한다. 따라서 「예수의 정치학」의 성패는 요더가 주장하는 대로 성경의 증언이 실제로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예수의 정치학」, 16). 요더는 성경이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위험하고 기피하는 주제이자, 예수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정치라는 단어로 예수를 설명한다.
예수의 이야기는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다. 철저히 정치적이다. “내 결론은, 신약 내러티브와 윤리적 텍스트의 평범한 독서에 따르면 예수와 초기 기독교 운동 전체를 비정치적으로 읽는 것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To Hear The Word, 54.). 요더는 예수가 정치적 인물이라는 점을 누가복음에 집중해서 밝히고 있다. 천사의 수태고지로부터 요단강에서의 받은 메시아적 사명 위임과 광야에서의 유혹과 시험, 고향 땅 나사렛에서의 희년 선포, 제자도에 대한 긴 가르침, 성전 입성과 청결 사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그리고 처형과 승귀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는 예수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예수의 정치학」, 2장).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기독론이 아니라 성경론이다. 하여, 우리의 물음은 ‘왜 예수가 정치적인가’보다는 ‘왜 누가복음인가’에 있다. 왜냐하면 지금에야 누가복음이 상당히 정치적 문서라는 것이 널리 인정되었지만, 「예수의 정치학」이 초판으로 발행되던 당시의 신학계는 누가는 로마에게 자신들이 로마에 결코 위협이 되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변증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예수의 정치학」, 102~103).
그것을 주도하는 한스 콘첼만에 대항해서 요더는 복음서 중에서 가장 비정치적 문헌으로 간주되는 누가복음이 실제로는 정치적인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면, 다른 성경은 물론이고, 예수의 정치적 성격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요더의 기획은 성공했다고 보아야 하겠다. 누가복음의 정치적 면모는 더 이상 신선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로마의 체제와 정체를 뒤흔들고 재구성하는 파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13 이 점 때문에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은 예수의 정치학이 아니라 누가의 정치학을 기술하고 있으며, 그 논증이 지니는 가치는 약화된다고 본 헤이스는 잘못 판단하고 있다. 요더의 본래 의도는 예수의 인격과 사역의 요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이었고, 누가의 문서를 꼼꼼하게 주석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의 정치가 내포하는 점을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예수의 정치의 내용이 한편 비폭력적 평화주의라는 것과 다른 한편 폭력적 질서와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인 교회를 창조한다는 점은 각각 기독론과 교회론에서 충분히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예수가 정치적이라면, 교회 또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 공동체는, 어떠한 공동체라도 중요한 가치에 헌신하여 함께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치적 실재다”(Body Politics, viii).
교회 역시 예수처럼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박해받고 고통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공동체로 형성되고 발전한 것이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다.14 예수 자신이 그러했고, 역사적으로 교회가 약자의 눈금으로 세상과 성경을 읽고, 그들의 눈물을 품고 읽어야 정치적 예수에 부합하는 정치적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다. 성경은 예수의 이야기이고, 그 예수는 정치적 선택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성경을 읽는 교회 공동체 역시 정치적이다.
성경은 우리의 이야기다
성경이 복음인 것은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를 창조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The Priestly Kingdom, 55).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리 속에서 우리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배운다. 요더가 몸담고 있는 신자의 교회는 성경 해석에 관한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15 이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진정하고도 순수한 성경 읽기의 결론은 교회 공동체의 기존의 읽기가 제시한 것을 수용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는 그가 누구라도 그 공동체를 통해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포함한다.
요더는 보다 철학적으로 해명을 시도한다. 그가 보기에 성경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해석한다(To Hear The Word, 9~27).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피조물을 선언한 고린도후서 5:17을 풀이하면서 요더는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우선적으로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이며, 새롭게 된다는 것은 단지 감정적 차원이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개인적 차원과 내면적 세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음의 공공성을 개인과 내면으로 환원하고 축소하는 것을 분명하게 반대할 뿐이다.
교회는 성경 해석 공동체다.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즉, 성경과 성도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양자의 관계를 레슬리 뉴비긴은 정확하게 설명한다. “성경은 그 이야기를 살아내고, 그 이야기에 ‘거주’하는 자의 삶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권위도 행사할 수 없다.”16 요더는 보다 풍부하게 묘사한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과 별개로 그리고 대답이 필요해서 읽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의문과 별개로 성경을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성서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의미 자체를 전달하는 성경의 고립된 단어와 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 읽을 때에, 독자나 그것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는 한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바의 이슈를 이해할 수 있다(The Royal Priesthood, 353).
요더의 농밀한 문장을 풀어낸다면 이렇다. 성경은 역사적, 사회적 시공간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구경꾼마냥 관망하는 이들은 죽이는 문자로 읽어낼 뿐 살리는 영의 언어로 읽지 못한다. 성경을 자신의 인생 여정 가운데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지도하는 가르침이자 경책하고 교정하고 훈계하는 것으로 수용하지 않는 한, 성경의 권위는 지면에 기록되어 있을 뿐 내면에 새겨지지 못한다. 따라서 성경과 성도를 따로 놓고 말해서는 안 된다.
메시지와 매체가 분리될 수 없듯이 성경과 성경을 증언하는 성도의 삶 역시 분리할 수 없다(Body Politics, 10). 성도는 성경을 살아내는 행위자이고, 성경은 성도의 실천의 척도이다. 성경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온 몸과 전심으로 진리를 증언하는 응답을 요구하며, 성도의 전인적 반응은 성경이 본래 말하고자 했던 바의 가장 탁월한 해석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의미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가 제대로 이해하며, 그의 삶이 성경의 의미에 대한 최고의 해설인 셈이다.
성경의 권위와 의미를 한편으로 성경 내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경과 성도, 더 나아가 성도의 공동체인 교회와 긴밀하게 밀착시킨 것은 요더와 그가 속한 급진적 종교개혁의 신학적 유산이고, 성경 해석학이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일절 개입시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설교하고 은혜를 끼치는 것이 가능했다.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진리를 살기 위한 분투의 여정과 산물로서의 설교가 아니라 설교와 실천이 동떨어져도 어떤 문제가 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이자 오독이다.
제임스 맥클랜던은 성도의 삶, 곧 전기를 통해 성경 해석을 넘어 신학의 재구성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17 그는 요더의 주장을 구체화한다. 그가 보기에 성경의 진리는 차가운 이론적 명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의 표준이요 현실이며,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생생하게 고찰하는 방법이 다름 아닌 전기(Biography)다. 성도의 신실한 생애야말로 성경 이야기의 진실성의 증거이며, 참된 제자도의 살아있는 예증이다.
그리하여 맥클랜던은 성도의 삶에 두드러지는 이미지를 분석하여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공식적인 교리 진술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삶과 사역이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일로 치부되지 않고 현재화되고 풍부해진다. 요더와 맥클랜던, 두 사람은 성도의 삶이 최고의 성경 해석학이라는 데 일치한다. 즉, 예수에게서 시작한 하나님의 이야기는 1세기를 거쳐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To Hear The Word, 103).
이 점에 관한 한 레슬리 뉴비긴도 의견을 같이한다. 그는 묻는다. “어떻게 복음이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복음이 믿을 만한 메시지로 들릴 수 있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복음의 유일한 해석은 복음을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모여 이루는 회중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18 우리가 성경의 해석이고 주석서다. 성경의 권위와 더불어 복음전도에 있어서도 신앙 공동체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성도는 불완전한 해석자다. 타고난 인간의 한계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성경의 완벽한 실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끔 만든다. 인간적 상황 때문에 성경의 권위가 동반 하락하고 실추를 거듭하는 현상을 방지할 방책은 없는가? 존 요더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19 하나는 성령과 공동체 전체의 도덕적 분별이다. 이방인 선교를 두고 벌인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는 성령의 인도와 회중의 창조적 해석이 맞물려 하나님의 의도를 실현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성령의 인도 아래 교회의 회중은 전혀 예기치 못한 낯선 환경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재정의하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한다.
여기서 요더는 지나친 공동체 일변도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신중함을 발휘한다. 공동체와 더불어 오류투성이 해석을 교정하는 다른 하나는 각자의 은사의 다양성이다. 앞의 제안이 공동체에 방점을 둔다면, 후자는 개인에 초점이 있다. 교회에 대한 바울의 비유 중 최상은 ‘몸’이다. 모든 성도는 그 몸의 일부이고, 지체들이다. 몸 전체가 통전적으로 움직여야 할 뿐만 아니라 각 지체도 힘을 모아 활동해야 건강한 몸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은사다. 요더는 은사를 성령의 인도하심의 특별한 표지라고 정의한다. 이 은사들에는 예언자와 목사, 교사 등이 포함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지혜를 발휘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가 되게 하라!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자. 성경의 권위와 의미를 읽어내는 전통적 방식인 명제적 접근은 서구적이고 근대적일뿐만 아니라 성경의 이야기적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성경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려는 것은 외려 권위를 약화시킨다. 더 나아가 명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이야기에 대한 지적인 동의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봇이나 꼭두각시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인격적인 반응, 곧 하나님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내 삶의 이야기를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재조명하는 과정 속에서 성경은 실제 성도의 삶 속에서 권위를 행사한다.
여기에 두 가지 제한을 가해야 한다. 예수의 이야기를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다시 쓴다는 것이 우리가 임의로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의 이야기는 성경 내 핵심으로 신자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유일하고도 최고의 표준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과의 관계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나는 원수들에게도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죽이도록 미운 우리에게 폭력적으로 응징하지 않으시고 비폭력적이고 비강제적인 평화의 방식으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문학적인 이야기처럼 정서적 감동과 감응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 자의 변화와 순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책과는 다르며, 독서 방식도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야기에 우리를 초대한다. 그 이야기의 특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으로부터 모세와 다윗을 거쳐 예수에게서 완성된 이야기를 각자의 삶의 정황에서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재해석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내가 성경의 이야기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증인이 되고, 삶이 증거가 될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불완전하고 오류와 허점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존 요더를 의지하여 대담하게 선언해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다.
註
1. Ronald J. Sider, “Evangelicalism and the Mennonite Tradition,” C. Norman Kraus, ed, Evangelicalism And Anabaptism(Herald Press, 1979), 149~68.
2. 앨리스터 맥그래스, 「종교개혁사상」, 최재건 옮김(CLC, 2006), 30.
3. 알리스트 맥그라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신상길·정성욱 옮김(한국장로교출판사, 1997), 25, 37, 38, 39.
4. 앞의 책, 58, 62~69.
5. Sider, “Evangelicalism and the Mennonite Tradition,” 150. 한국에서 사이더는 복음주의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나 그는 아나뱁티스트이다.
6. 한스 프라이는 성경의 이야기적 성격이 근대에서 어떻게 상실되어갔는가를 탁월하게 밝힌 역작을 남겼다. 「성경의 서사성 상실」, 이종록 옮김(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7. John Yoder, “The Use of the Bible in Theology,” Robert K, Johnston, ed, The Use of the Bible in Theology: Evangelical Options(John Knox Press, 1985), 116.
8. Craig A. Carter, The Politics of the Cross: The Theology and Social Ethics of John Howard Yoder(Brazos Press, 2001), 69.
9. C. Norman Kraus, “”Anabaptism and Evangelicalism,” C. Norman Kraus, ed, Evangelicalism And Anabaptism(Herald Press, 1979), 173.
10. 도날드 G. 블러쉬, 「복음주의 신학의 정수 1」, 이형기·이수영 옮김(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95.
11. “The Use of the Bible in Theology,” 111.
12.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근대의 일란성 쌍둥이로 그들 사이의 다툼은 오월동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소상히 추적한 것은 낸시 머피이다. Nancey Murphy, Beyond Liberalism and Fundmantalism.
13.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유승원 옮김(IVP, 2002), 384. 이 책의 5장은 실제 누가복음의 정치적 읽기의 한 예가 될 것이다.
14. 배리 칼렌, 「급진적 제자도」, 배덕만 옮김(대장간, 2010), 115.
15. C. Arnold Snyder, Anabaptist History and Theology, 382. 배리 칼렌, 「급진적 기독교」, 252의 f.n. 59에서 재인용.
16. 레슬리 뉴비긴,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김기현 옮김(IVP, 2005), 46.
17. James Wm. McClendon, Jr., Biography as Theology: How Life Stories Can Remake Today’s Theology. new edition(TPI, 1990).
18. 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홍병룡 옮김(IVP, 2007), 419.
19. “The Use of the Bible in Theology,” 118.
4. 예수는 주님이시다
“당신의 기독론이 어떠한 것인지 내게 말하라. 그리하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것이다.”1 칼 바르트의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가 하나님과 세상,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신앙의 관건이다. 예수에 대한 올바른 앎이 없이는 어떤 것도 온전히 알 수 없을 뿐더러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하나님, 세상, 자아가 달리 보인다. 예수에 대한 이해가 모든 것을 가늠한다.
사실 바르트 말의 출처는 예수 자신이다. 예수는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누가 진짜 이 세상을 통치하는 황제인지를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복음서들은 하나같이 이 물음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된다. 기이한 기적과 기사로 가득 차 있던 전반부에서 격렬한 갈등과 암울한 수난과 십자가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급격히 변하면서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몸소 살아내신 하나님 나라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요체는 그리스도 이해에 달려 있다. 기독교는 전통적이면서도 정통적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 니케아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를 참 하나님(very God)이자 참 인간(very Man)이라고 명시했다. 하나님 아들, 예수의 주되심(Lordship)이 우리 인간의 삶 전반에 주권을 행사한다. 주되심의 제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신성모독인 동시에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성모독이고, 바로 그 영역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되게 만들었으니 이야말로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인가? 성경과 니케아·칼케돈 신앙고백은 우리에게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선언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2,000년 역사에서 예수의 주되심이 가장 제약을 받았던 것은 정치, 곧 국가와 전쟁의 영역이었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가이사에게 일정 부분 양도했던 것이다. 때문에 존 요더는 “제시된 예수상이 다른 어떤 견해들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니케아신조와 칼케돈신조의 입장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이는 일에 주력”한다(「예수의 정치학」, 186). 그리하여 요더의 예수는 새로운 예수가 아니다. “예수가 성부의 말씀이며,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라는 고백”의 확언이자 확증이다.
일관되게 정치적 영역에서도 고백하고 실천하려 한다는 점에서 요더의 기독론은 철저한(radical) 니케아·칼케돈적 기독론이다.2 그는 기독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나 이론을 주장하거나 예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려들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적인 주인(Lord)이라는 점에 대해 터럭의 의심도 갖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 전제한다. 요더의 가치는 예수의 주되심을 사회 윤리적 영역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줄기찬 주장에 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마따나 “바른 기독론은 시작부터 정치적이다.”3
바로 이 점, 곧 철저한 기독론 중심이 요더 신학의 최고의 공헌이다. 이를 평화주의에 대한 그의 언명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평화주의를 철저히 기독론에 정초하고 있다고 밝힌다. 평화주의는 예수가 주라는 고백에 의존한다. 따라서 주되심이 평화주의의 근거이라면, “만약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아니라면” 평화주의도 자연 붕괴하고 만다(Nevertheless, 133, 137). 기독론이야말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핵심 중의 핵심이고, 정수 중의 정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를 떠나서 하나님을 알 수 없듯이 성경을 떠나서 예수를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언어, 곧 말씀으로 제한하신 분, 몸소 말씀이 되신 그분이기에 성경을 벗어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란 실로 어렵다. 하여, 존 요더는 자신의 기독론을 다른 여타 윤리학자나 하다못해 조직신학자가 아니라 성서신학과 대면하고 대결한다. 그 까닭을 신원하가 잘 밝혀준다. 그에 따르면 요더에게 성경은 윤리의 궁극적 근거다.4
실제로 그의 주저인 「예수의 정치학」은 복음서에서 구약으로 다시 바울 서신으로 되돌아와서 마침내 요한계시록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마친다. 니케아·칼케돈 신조가 철저히 성경에 기반한 것이기에 요더도 성경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논지를 전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요더를 따라 신약 성경에 그려진 예수의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 전에 성경론에 이어 기독론, 그 다음은 종말론과 교회론으로 요더의 신학을 살피는 연유를 해명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도우리라 본다. 앞서 말한 바, 요더의 신학은 철두철미 성경적이고, 성서신학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기독론을 탐색하기에 성경론 다음으로 기독론이 뒤를 잇는다. 기독론은 한편으로 성경의 시간, 곧 역사 이해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예수를 따른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래서 기독론이 교회론과 종말론의 기초이기에 기독론을 해명한 다음 종말론과 교회론을 다룬다.5
이러한 요더의 신학 방법론은 요더 개인의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다. 리처드 헤이스는 신약 성경을 읽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신약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장은 찾기 어렵고, 신약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게 하는 세 가지 초점 이미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십자가, 새 창조다.6 십자가는 기독론, 공동체는 교회론, 새 창조는 종말론이다.
다른 점은 전개하는 순서다. 헤이스가 교회 공동체의 정황에서 기독론을 설명하고 역사와의 연관을 찾는다면, 요더는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 토대 하에서 외적으로는 역사를, 내적으로는 교회를 토론한다. 이는 성서신학자와 윤리학자의 차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요더의 기독론은 철저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이다.
예수는 정치적인가?
존 요더는 기독론을 현대에 맞게 조정하자거나 성경에 부합한지를 일절 토론하자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그는 기독론은 사회 윤리적 영역, 곧 정치에 있어서도 예수가 참 하나님, 참 인간으로 고백되고, 기독인의 삶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할 따름이다. 따라서 요더는 예수의 주되심이 정치에서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예수는 정치에서도 주님이라는 논리를 설명하고, 과연 예수는 정치적인가를 토의한다.
요더에게 기독론의 중요성과 함께 정치와의 관련을 잘 보여주는 한 문장을 직접 읽어보자. “쟁점은 평화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함에 있어 다른 영역에서는 다 괜찮은데 사회 윤리의 문제, 특히 국가와 관련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인가?”(「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89.). 이 문장은 정치적 영역, 특히 정치의 날 것 그대로가 드러나는 국가와 전쟁의 문제에서 주류 기독교와 윤리학이 자신의 신앙과 달랐던 점에 대한 탄식이자 비판이고, 더는 그리할 수 없다는 요더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의 한복판에서 예수를 신앙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한편으로 정치에서도 예수가 주님이 되신다는 말은 그 자체로 하등의 시빗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요더의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인물로 보고 있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97)는 대목에 이르면, 의문이 생긴다. The War of Lamb(어린 양의 전쟁)의 5장은 “예수: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의 모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예수가 정치에서도 주님이지만, 철두철미 정치적인 인물로 보는 것은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환원하거나 아니면 비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제자도가 약화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염려를 신원하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지적한다.7 “예수가 온전히 정치적이기만 한가”라는 것이 그의 비판의 요지다. 예수가 정치적인 분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정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예수가 개인의 주님이라는 차원을 간과할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랬기에 예수의 육화와 죽음, 부활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고, 그것은 도덕적 환원주의에 지나지 않다. 방법은 전통적 해석을 확장하는 게 낫다.
신원하의 비판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 그런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본문이 여럿 있다. 예컨대, 다음 문장은 그 전형이다.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의 어휘나 심상은 성격상 ‘실존적’이거나 제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이었다”(「예수의 정치학」, 179). 영적이고 내면적 차원을 충분히 수긍하면서도 정치적 측면을 도드라지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대조하고 대립시킨다.
그러기에 로날드 사이더는 요더의 기독론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요더가 개인적 차원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보기에 요더는 전체적으로 칭의적 차원을 소홀히 여긴다. 에베소서 2:13~16에서 적대자를 의로운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보는 요더의 견해를 두고 사이더는 잘라 말한다. “이것은 주석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오류다.”8
지금 우리는 예수가 정치적이라는 요더식 성경 읽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과연 정치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성경과 역사적 신조의 기독론에 부합한지에 관한 논란을 보고 있다. 그러면 신원하와 사이더의 비판은 정당한가? 요더가 주되심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 내적 실존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만 적용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역사적으로 주되심을 정치에 적용하는 것을 꺼려했던 과거의 오류를 정반대로 답습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요더의 기독론은 철저한 기독론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먼저 요더는 자신의 주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그가 희생제물로서의 예수, 창조자로서의 하나님, 주관성으로서의 믿음을 거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예수의 정치학」, 388). 그러나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그의 의도는 전통 견해가 은폐하고 망각했던 부분을 복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칭의가 오직 사회적 성격만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으로 기존의 개인주의적 칭의론의 오류를 뒤집으려는 것이 필자의 의도가 아님을 다시금 밝혀 두어야겠다. 필자가 반대하고자 하는 것은 이 전통적 교리를 논쟁의 상황에 적용하는 특정한 방식, 곧 윤리적·사회적 차원들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이 칭의 개념을 활용하려는 입장이다. 잊혀진 사회적 차원들을 재발견한 학자들을 열거한다고 해서 필자가 칭의의 개인적 차원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몇몇 서구적 전통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칭의의 개인적 차원을 다른 차원들과 분리하여 추상적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칭의의 개인적 차원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중략) 여기서 필자가 묻는 유일한 물음은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이해되어 온 것처럼, 과연 칭의가 ‘메시아적 윤리’에 반대하는 논증들을 지지해 주는가 하는 것이다(「예수의 정치학」, 369의 각주 2).
이 긴 인용문에서 자신에 대한 통상적인 오해에 대해 답답해하는 요더를 엿볼 수 있다. 하여, 구원의 사회적 차원을 말한다고 해서 개인적 차원의 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비판에 또렷하게 그러나 길게 반박한다. 요더는 다른 곳에서 개인과 사회적 차원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마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Original Revolution, 17).
성경적 종말론이 회복되면 일어나는 세 가지 일 중 두 번째가 개인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종말론이 건강하면, 교회가 교회답게 되고, 하나님과의 화해가 일어나며, 콘스탄틴적 나쁜 정치를 극복하게 된다. 요더는 하나님과의 화해에 개인 전도를 포함시킨다. “둘째, 정치인을 포함한 개개인이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부르심이다. 이것이 엄격한 현대적 의미로 복음전도이며, 평화 증언의 일부이다. 개인의 진심어린 헌신에 대해 호소하지 않는 사회적 관심은 유토피아적이거나 민중 선동적 정치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Original Revolution, 72). 내면적이고 실존적 차원이 배제된 신앙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요더는 명백히 구원의 통전성을 인식하면서도 그동안 간과되었던 정치적 측면을 강조했다. 예수가 과연 정치적 인물이라는 자신의 논지에 대한 비판과 최근 학계의 논의를 검토해 보면, 비정치적이라는 주장은 잦아들었고, 그것이 어떤 정치적 성격을 띠느냐에 대한 합의는 여전히 유보적이지만, 정치적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통용된다(「예수의 정치학」, 39~42). 이 부분은 초판이 발간된 1972년부터 재판이 출판된 1994년까지의 흐름을 짚어본 다음의 결론이다. 예수에 대한 숱한 논란이 벌어지더라도 예수가 정치적이라는 단순한 사실은 변경되지 않는다.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예수는 어떤 정치가인가?
그렇다면 이제 요더가 말한 바, 예수의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 위에서 본 대로 예수가 정치적이냐는 논쟁은 이제 예수가 지향한 정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묻는 것으로 전환된다. 알리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우리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9 예를 들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만,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다른 종류의 합리성 간의 다툼일 공산이 크다. 신앙과 이성의 대립은 서로 다른 신앙과 신앙, 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이성과 이성이 맞부딪치는 것이다. 예수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의 이면에는 자신이 염두에 두는 정치관과 다르다는 말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합리적이냐 또는 정치적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할 때에, 누구의 정치이며 어떤 정치인가를 물어야 한다. “예수의 사역과 주장은 그 청중들과 독자들에게 정치적 선택을 회피하라는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사회적-정치적-윤리적 선택을 제시하는 것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예수의 정치학」, 36). 다시 묻는다. 예수의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 세 가지다. 기성 질서에 편승한 탈콘스탄틴적 정치와 비폭력, 그리고 공동체다.
첫째는 기성 질서와 권력을 옹호하거나 특정한 정치 집단과 예수의 정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콘스탄틴적 정치의 부정이라 할 수 있다. 요더는 조지 훈싱거 등과 함께 발표한 “평화 선언”에서 기독교는 결코 비정치적이거나 비이데올로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10 하나님의 통치는 기성 질서의 문화나 정부, 정치적 운동과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다. 특정한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연대하고 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여하한 이유에서라도 전쟁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예수의 정치에 반한다.
사람들은 요더가 말한 정치를 권력을 장악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아니면 투표를 하는 행위에 국한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요더는 그런 식으로 정치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정치적이면서도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정치적인 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비정치적인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것이 항상 정부의 통치를 의미하지 않음을 일깨워주셨지만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가 죽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가셨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98).
예수와 마찬가지로 요더는 그런 방식의 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비폭력이다. 이 점은 아래 “예수는 비폭력적인가?”에서 충분히 검토할 것이다. 예수의 정치가 열심당과 달리 비폭력적이라는 것이 「예수의 정치학」과 기타 저작에서 가장 중요한 제안 중 하나다. 마커스 보그에 따르면, 예수를 정치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예수는 반로마적 혁명가(젤롯데 가설)냐 아니면 비정치적인 평화주의자냐라는 양자택일적 문제다.”11 위의 둘 중 하나로 예수의 정치적 선택의 폭을 좁혀 놓은 탓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적 프레임은 예수의 제 3의 길, 즉 정치적이면서도 평화주의적일 수 있는, 그러니까 로마의 체제와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정치이면서도 그 방식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는 성경 프레임으로 전환된다. 그 대안은 존 요더의 혁신적 발상에 많이 기대고 있다.
리처드 헤이스는 에베소에서 있었던 바울의 선교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한다.12 바울의 설교로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 되고, 자신들의 수입이 급감하는 한 요인이 되자 격분한 그들은 난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의 설교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로마의 권력을 비판했거나 은장색 사업을 반대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규범, 곧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산 공동체 운동은 불가피하게 주변 문화에 정치적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은 무장 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문화로서의 교회, 즉 대안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세계를 전복한다.”
마지막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살아내는 공동체다. 사실 요더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활동이요 운동인 바, 세상의 공동체와 대조되고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를 창조하고 활성화한다는 것이 요더의 주된 메시지다. 예수의 혁명은 제의 혁신이나 하나님에 관한 새 이론이 아니라 공동체 창조에 있다(Original Revolution, 31).
그러므로 예수의 정치를 “비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대안적 사회를 만듦으로써 야기하게 되는 엄청난 대사회적 파장(보수적일 수도 있고 혁명적일 수도 있는)을 부정하는 것이다”(「예수의 정치학」, 192). 신원하는 사회적 파장을 보수적인 것보다는 혁명적인 것으로 해석한다.13 예수의 정치는 기존 공동체와 전혀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정치이고, 바로 그러기에 위험한 정치요 공동체이다.
요더의 신학 해설자 중 한 사람인 하우어워스의 말을 보태는 것이 이해를 도울 듯싶다. “‘정치’를 사회변혁의 문제에만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를 향해 던져야 할 결정적인 ‘정치적’ 질문이 있다. 교회는 과연 기독교적 확신이라는 핵심 내러티브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14 이 점은 교회론을 다루면서 보다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곧 예수는 정치적이라는 것, 그 정치는 비폭력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정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예수의 정치학」의 논점이다. 예수의 정치가 겨냥하는 것은 정적주의(quietism), 기득권 유지, 십자군 방식이다(「예수의 정치학」, 177). 정적주의는 예수가 정치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득권 유지는 기득권 질서 밖의 새로운 대안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십자군 방식의 폭력에 반하는 비폭력적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요더는 세 가지 모두를 거부한다. 예수는 정녕 정치적이다!
예수는 비폭력적인가?
예수가 정치적이라고 하더라도, 비정치적이라고 보는 보수적 견해가 훌륭히 반박되었다고 하더라도 요더의 예수 이해에 의문은 남는다. 소위 진보적인 몇몇 학파와 학자들은 예수가 폭력적 혁명가라고 말한다.15 그러므로 예수의 정치를 비폭력적으로 해석하는 요더는 필히 이 견해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대결을 펼치기 전, 요더의 복음서 독해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 하나는 요더의 누가복음의 정치적 읽기에 대한 반론이다. 김세윤은 바울과 누가의 저작에 나타난 복음이 과연 반로마이자 반제국적인가에 관해 퍽 날카로운 이의제기를 한다. 신약을 반로마적인 복음으로 파악하는 시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시작한 그의 연구의 최종 결론은 반로마, 반제국, 반황제의 복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과 누가를 제국과 제도를 변혁시키려는 고민보다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그들을 회복시키고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으로 제한했다.
이러한 김세윤의 주장은 일견 존 요더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도 예수의 사역과 교훈이 정치적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요더의 자리에서 보자면 김세윤은 요더의 핵심을 뒤흔들고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책 곳곳에서 김세윤은 예수의 사역을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참여와 함께 실존적 고통과 개인의 죄악, 역사 속의 악한 세력들과의 싸움이라는 총체적 맥락에서 보자고 한다. 그리하여 예수의 정치는 “이기적인 동기와 폭력적인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사랑의 방법으로만 정치적 구원론을 추구할 수 있다.”16
김세윤의 결론은 그가 전개하는 논증의 많은 부분에서 내면과 실존적 차원에서의 죄 용서로 축소하는 듯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바울, 누가의 복음이 폭력적 정치를 일관되게 비판하는 노선을 취한다고 말한다. 십분 동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반로마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정치의 대표인 열심당이 예수에게는 한편 유혹이기도 했지만, 끝내 예수는 열심당의 길을 거부하였다는 것이 예수의 정치를 해석하는 요더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더가 읽은 예수의 정치는 폭력적 혁명은 아니다. 존 요더는 누가복음의 독해를 통해 정치적 인물, 예수가 지향한 정치란 폭력적 혁명이 아닌 비폭력이었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그의 누가복음 선택과 누가복음 내에서 의도적으로 골라낸 본문이 어떤 의미와 성격을 지니는지를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해명할 필요가 있다. 요더가 누가복음을 선택한 의도는 「예수의 정치학」이 처음 출판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그 당시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비정치적인 본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요더의 의도는 기존 정치 질서에 어떠한 해도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누가복음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예수가 정치적이라는 논제를 뒷받침하기 좋은 본문은 없다.
가장 비정치적인 텍스트인 누가복음이 정치적이라면 예수가 얼마나 정치적인 존재인가를 두말할 필요 없이 인정하게 된다. 하여, 요더는 누가복음 내에서도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본문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정치색이 농후한 본문의 도움이 없이도 예수가 조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런 예수에게 요더가 보기에 네 가지 선택 가능한 답안이 있다(Original Revolution, 19~27). 현실을 수용하는 헤롯과 사두개의 길, 반대로 혁명적 폭력으로 현실을 전복하는 마카비와 그 전통을 따르는 열심당의 길, 세 번째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쿰란 공동체의 길이라면, 마지막은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 속에서 분리됨을 지향했던 바리새인의 길이다. 그러나 예수는 네 가지 중 어떤 것에도 자신의 몸을 싣지 않았다. 예수의 정치는 원초적 혁명인데, 그것은 세상과 원천적으로 구별되는 가치 기준을 육화하는 공동체다.
놀랍게도 요더에 따르면 예수가 이들 중 한 입장을 자신과 가장 일치시키려는 유혹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젤롯의 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가 걸어야 할 길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 다수가 직간접적으로 열심당원이고, 예수가 받았던 광야의 유혹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영적 싸움은 폭력에의 유혹이었다(「예수의 정치학」, 60~63, 89~94). 예수는 끊임없이 메시아적 폭력의 길을 고려해 보라는 시험을 받아야 했다. 예수가 시험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가 걷는 길을 재고해 보라는 뜻이다.
예수에게 유혹은 열심당처럼 되라는 것이다. 오스카 쿨만은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는 열심당의 메시아 이해, 곧 폭력을 통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주장하는 그들의 실체를 간파하고 거부했다. “복음 속에 있는 시험에 관한 설화의 역사적 핵심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설화 뒤에는 복음 전체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는 즉, 예수가 메시아에 대한 젤롯당들의 정치적 개념을 사탄의 시험으로 간주했다.”17
예수에게 열심당 전략을 따르는 것은 가장 큰 유혹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그래서 명백히 사탄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끝내 예수가 열심당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서 요더의 급진적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들은 겉으로는 폭력을 주장하고 선동하지만 실제로는 내적인 동맹을 맺고 있다. 폭력적 질서에 대한 폭력적 해결은 옛 질서를 옛 방법으로 축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요더가 열심당이 그리 급진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유혹을 거부했다. 그 까닭은 젤롯당이 너무 급진적이라서가 아니라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칼이 해결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로마와 너무 닮았다”(Christian Attitudes to War, Peace, and Revolution, 313).
하지만 요더의 주장에 하나의 난점이 있다. 신약학계에는 예수 당시 젤롯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설이 고루 퍼져있다. 또한 요더가 이해한 방식 그대로 젤롯당 방식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면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윌리암 클라센에 따르면, 예수 당시 젤롯당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 성격에 관한 논쟁을 통해 예수와 더 나아가 바울조차도 젤롯당 방식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면했으며, 얼버무리지 않고 확고하게 거절했다는 논증만으로도 우리의 논의 전개에 문제는 없다.18
실제로 요더는 열심당 존재 여부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성경적 현실주의를 따르는 요더로서는 그냥 당연히 받아들이는 학문적 전제다. 어찌되었건, 열심당이란 특정한 열심당원이나 그들의 구체적인 정치적 청사진이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 좌익과 우익 가릴 것도 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빙자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요더의 질문은 합당한 대의를 위해서라면 폭력이 정당한가하는 것이다. 예수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을 허용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이는 톰 라이트에 의해서 충분히 지지될 수 있다. 톰 라이트가 주장한 바, 예수에게서 주된 싸움의 대상은 로마가 아니라 사탄이다.19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해서 순전히 영적인 것으로, 초월의 국면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있으며, 사탄은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에서 분출하고 있다. 바로 그 폭력성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대척한다. 예수가 끝내려고 했던 현존하는 옛 질서는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산상수훈이 지시하는 원수 사랑에 있다.
옛 세계는 옛 세계의 방법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옛 질서를 정죄하고 대체하는 것이지만, 결코 옛 질서의 무기로 그 목적을 이루려 하지 않는 법이다.”(「예수의 정치학」, 87) 폭력과 지배를 그 본성으로 하는 옛 세계를 바로 그들의 무기로 싸우며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것은 그 자신이 옛 질서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예수가 꿈꾸고, 예수가 살아냈고, 우리가 목격자로서 증언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비강제적, 비폭력적인 자유와 평화의 나라다. 그것이 예수의 비폭력적 정치가 보여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존 요더를 통해 새삼 확인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기독론의 함의는 제자도다. “기독론과 제자도의 상호연관성은 내 주장의 결정적인 대목이다”라는 하우어워스의 말처럼 존 요더도 그러하거니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결정적 신앙이요 실천이다.20 하여, 요더는 예수의 길과 제자의 길을 하나의 길로 포갠다(「예수의 정치학」, 7장). 그렇게 겹쳐진 본문을 신약에서 추출해서 별 다른 설명 없이 기다란 목록을 제시한다. 이런 병렬을 통해 그가 의도한 바는, 예수의 십자가가 기존 질서의 파국을 선언하고 도래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형벌이었듯이, 제자들 또한 사회적 불일치라는 위험과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급진적인 분이었다면, 응당 그의 제자들 역시 그러해야 함은 불문가지가 아닌가.
제자도의 급진성을 간파한 것은 현대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존 스토트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급진적 제자도다. 참된 제자는 복음의 근본 대의에 철저하게 헌신한다. 그는 급진적 제자의 8가지 특성 중 으뜸을 불순응(non-conformity)이라고 말한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오염되지 않아야 하는 “우리는 도피주의와 순응주의 둘 다 피해야 한다.”21 양자 사이로 난 길을 걷는 제자는 철저하게 주변 문화를 따르지 않고 기독교 반문화(counterculture)를 건설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스토트가 제자도의 핵심을 불순응으로 제시한 것은 한편 놀랍고 다른 한편 당연한 일이다. 그는 평생 복음의 총체성과 균형을 강조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반문화적 제자도를 제자도의 첫 번째 특성으로 내세운 것은 얼마간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가 맞서야 하는 현대의 풍조로 열거한 다원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 나르시시즘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 역사 이래로 위의 문제들이 문젯거리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세상의 실체는 폭력이다. “폭력은 우리 시대의 시대 정신이며, 현대 세계의 영성이다. 폭력은 종교의 위치까지 차지하여, 그 추종자들에게는 죽기까지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게 되었다.”22 폭력이 종교이고, 세상이다.
복음적 불순응(evangelical nonconformity)이란 폭력적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타자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를 지는 자기희생적 사랑이다(Original Revolution, 174~76). 자기의 생각, 곧 민족주의, 인종주의, 군사주의를 하나님의 판단 보다 앞세우는 것은 우상 숭배의 전형이다. 때문에 그는 폭력은 우상숭배라고 단언한다.
요더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베드로의 말에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전쟁과 폭력으로 타도하고 다윗 왕조와 그 영광을 회복하려는 열렬한 민족주의적 소망이 내재되어 있다.23 이러한 욕망을 예수는 추호의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고 신랄하게 꾸짖는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 8:33). 한편, 예수는 베드로를 사탄으로 규정하신 것에서 정당한 목적이라도 여하한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성취하는 것은 우상숭배요 사탄적인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교훈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분이 가시는 길, 곧 우리가 따라 가야 할 길을 일러준다. 사회적 불순응으로서의 십자가 지는 삶이다.
존 요더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예수의 급진적 종말론을 거쳐서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정체를 탐색하는 경로를 밟아야 한다. 그 여정에서 세상적 방식, 곧 콘스탄틴의 길이 아닌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제자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될 것이다. 세상에 순응하는 제자도의 전형인 콘스탄틴의 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해 주는 것은 종말론이다. 종말론의 동력에 의해서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살게 된다. 요더의 종말론을 살피기 전, 확언해야 할 하나는 예수가 정치적이되 비폭력적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제자된 그리스도인 역시 정치적이되 비폭력적인 제자도를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는 홀로 주님이시다!
註
1. 칼 바르트, 「바르트 敎義學槪要」, 전경연 옮김(한신대학출판부, 1971), 94.
2. Craig A. Carter의 논문
3.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회됨」, 문시영 옮김(북코리아, 2010), 89.
4. 신원하, Two Models of Social Transformation: A Comparative Analysis of Political Ethics of John H. Yoder and Richard J. Mouw, Unpublished Ph. D. diss(Boston University, 1998), 149.
5. Craig A. Carter, The Politics of The Cross: The Theology and Social Ethics of John Howard Yoder(Brazos Press,2001), 95.
6.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유승원 옮김(IVP, 2002), 307~24.
7. 신원하, 152~58.
8. Ronald J. Sider, “Evangelicalism and the Mennonite Tradition,” C. Norman Kraus, ed, Evangelicalism And Anabaptism(Herald Press, 1979), 158.
9. Alasdair MacIntyre, Whose Justice? Which Rationality?(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9).
10. Douglas Gwyn, George Hunsinger, Eugene F. Roop, John H. Yoder, A Declaration on Peace(Herald Press, 1991, 47
11. M. J. 보그, “오늘날 북아메리카 학계의 예수 그리기,” 김진호 편, 「예수 르네상스: 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한국신학연구소, 1996), 147.
12.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210~11.
13. 신원하, 36의 각주 46번.
14. 하우어워스, 「교회됨」, 17.
15. 리처드 홀슬리, 「예수운동: 사회학적 접근」, 이준모 옮김(한국신학연구소, 1993).
16. 김세윤, 「그리스도와 가이사」(두란노 아카데미, 2009), 325.
17. 오스카 쿨만, 「예수와 혁명가들」, 고범서 옮김(범화사, 1984), 53,
18. William Klassen, “Jesus and the Zealot Option,” Stanley Hauerwas, eds, The Wisdom of the Cross: Essays in Honor of John Howard Yoder(Eerdmans, 1999), 131~49.
19. 톰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박문재 옮김(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682~712.
20. 하우어워스,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교회됨」, 8.
21. 존 스토트, 「제자도」, 김명희 옮김(IVP, 2010), 21.
22. 월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성수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41.
23.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136~39.
5. 종말론, 누가 종말을 실현하는가?
전통적으로 교회는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에 승리한 양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부활이 진정한 승리다.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와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교회이고, 대통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된 성도다. 이것이 존 요더의 종말론적인 사유의 알맹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이 명백히 말하는 바다. 요더는 다만 그 정신을 읽어낸 많은 그리스도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요더의 탁월성은 신학과 윤리에서 그 정신을 올곧고 일관되게, 급진적으로 사유하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가 단 한 분의 주님이시라면 역사의 의미와 변화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실현된다.
요더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요더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은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1 1963년 어느 주일 저녁, 그가 살던 도시의 한 극장은 정부의 방침을 어기고 영화를 상영한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눈도장을 찍고는 교회를 몰래 빠져나와 영화를 관람한 그날 저녁을 현존 질서가 변화를 시작한 기점으로 잡는다.
고작 예배 빼먹고 영화관에 간 날이 세상이 변화된 출발점이라고? 그렇다. 어떠한 고민도 없이, 자동적으로 교회로 가게끔 만들었던 시스템이 붕괴하고 몰락했다. 이제 교회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총에 의해서만이 존립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야 한다. 하우어워스는 이를 두려워하거나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습과 관행에 기대고, 국가와 문화의 지지로 버티는 교회와 신앙의 탈피야말로 환영해야 할 일이다.
종말론에서 콘스탄틴 운운이 생뚱맞아 보인다. 앞 장에서 우리는 예수는 정치적이지만, 그 정치는 열심당의 폭력적 혁명과는 전혀 다른 정치라고 했다. 이 장에서는 예수 대 젤롯의 대결 구도의 변주를 살펴볼 참이다. 그리스도 대 콘스탄틴의 구도다. 예수가 맞닥뜨린 최고의 유혹이 젤롯이었다면, 교회의 유혹 역시 젤롯의 변형된 형태인 콘스탄틴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종말을 실현하는가하는 주제 때문에 요더의 종말론을 일차적으로 살핀 연후에 성경적 종말론을 왜곡한 자로 지목되는 콘스탄틴을 그가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종말론의 핵심은 우리의 명제, “예수가 주”시라는 것이다.
콘스탄틴과 관련된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콘스탄틴은 기독교인의 신학과 윤리를 변질시킨 타락의 주범이 아니라 교회에 관용을 베풀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인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콘스탄틴주의의 폐해가 비록 크고, 극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역사적 산물로 인정하고 계승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요더의 입장은 확고하다.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말론 있는 평화: 그리스도
요더의 종말론은 의외로 싱겁다. 종말론이라면 으레 다루기 마련인 죽음과 부활, 심판과 만인 구원, 천년왕국 같은 주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요더에게서 제대로 된 종말론 강의를 듣고자 하는 이들은 실망하기 쉽다. 그는 윤리학자답게 종말론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묻는 데 치중한다. 언젠가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망하에 현재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먼저, 요더의 전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그의 종말론은 철저히 기독론적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 우편에서 정사와 권세를 다스리는 역사의 주이시다”(The Royal Priesthood, 149). 예수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다. 예수에 의해서 종말이 시작되었고, 자라고 있고, 완성된다. 급진적 신학자답게 요더는 예수의 주 되심을 종말론에도 일관되게 적용한다.
종말론의 성격을 보자. 요더는 예수의 사역과 신약의 메시지는 철두철미 종말론적이라고 확언한다. 사도들이 기록하고 증거했던 핵심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목적의 전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장소에 대한 종말론적인 선포다”(The Royal Priesthood, 146). 종말론이란 본디 암울한 현재에 대한 시선을 훌쩍 뛰어넘어, 아니 그 속에서 이미 움트고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하나님의 희망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말론적 사유는 현실의 실패를 전부로 여기지 않고, 고집스럽게 하나님이 승리한다고 확신한다.
요더가 종말론을 평화주의의 토대로 제시하는 데는 신약학자들의 연구와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톰 라이트에 따르면 지금 신약학계는 크게 두 입장으로 대별된다.2 한쪽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다른 한쪽은 예수의 역사성과 함께 종말론적 측면을 강조한다. 전자는 브레데의 길이고, 후자는 슈바이처의 길이다. 이렇게 보면 요더는 후자의 노선을 따르는 셈이다.
하지만 요더는 슈바이처의 요점에는 동의하지만 해석과 방향에는 견해를 달리한다(「예수의 정치학」, 27~28). 슈바이처에 따르면, 예수가 너무나 철저히 종말론적으로 사고한 나머지 자기 당대에 종말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랬기에 세계가 이렇게 긴 시간을 지속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중간기(Interim)에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게끔 하는 적절한 메시지를 주지 못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잘 축약된 산상수훈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태도가 아니라 임시적이라고 본다.
이는 예수의 종말 사상에 대한 오해일 뿐더러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촉진한다. 예수가 몸소 보여주셨고, 초대교회가 목도했던 것은 예수의 승리다.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믿음이란 (히 11:1~12:4에서 보여주듯이) 명백하게 비효율적인 복종의 길을 수용하려는 의지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다”(The Royal Priesthood, 152). 예수처럼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기에 절대 복종한다. 종말론은 윤리를 배제하지 않고 윤리를 배태한다.
종말론은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종말론은 세계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반대로 세계 부정이지 긍정이 아니다. 과도한 종말론은 슈바이처에게서 보듯이 윤리를 부정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약한 종말론은 윤리가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기에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둘이 중첩된 시기다.
요더는 그 둘이 서로 포개져 있지만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는 두 세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대조한다. “현재의 세대(aeon)는 죄가 특징이며 인간이 중심인 반면, 도래하는 세대는 역사가 그리스도 안의 궁극적 길 속으로 진입하게끔 하는 구속적 실재다. 지금의 세대는 순종을 거부하여 인간 자신의 안녕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근거를 거부하고 있다면, 도래하는 세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상태가 특징이 될 것이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진 상태가 가능하다는 보증은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을 미리 맛보게 하는 교회 안에 성령의 임재다. 따라서 비록 새 세대가 도래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단지 미래의 시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옛 것은 새 것으로 이미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그 승리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먼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이고, 다음으로 그분에게서 말미암은 순종하는 신자들의 교제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9).”
이 긴 인용문은 종말론의 최종 지향은 교회론임을 주지시킨다. 하나님 나라의 현존은 국가가 아니라 교회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리자다. 또한 둘을 명백하게 대조한다. “새 세대는 옛 세대와의 급진적인 단절을 함축한다”(The Royal Priesthood, 147).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신자더러 세상에 동화되거나 순치되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여기서 도래하는 세대를 살아내라는 부르심, 이미 하나님의 세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증언하고 증거가 되라는 부르심을 우리는 받았다.
그러면 왜 요더는 양 세대의 차이점에 집중하는가? 그 속내는 한편, 그리스도의 자기 이해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그리스도 이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둘은 하나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민족적인 구원자로 기대했고, 군사적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로마를 축출하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이것이 광야에서의 유혹이었고, 사역 내내 예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까지도 떨치지 못했다. 그것을 예수는 끝내 거부했다.
이미 약속되었고, 새롭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 자체가 급진적인 분리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유대 국가 공동체와 단절해야만 했다. (중략) 예수의 복음은 새로운 정부 제도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제도를 선포했다”(The Royal Priesthood, 147). 요더가 분리를 강조함으로써 의도하는 바는 콘스탄틴주의의 거부다. 이로써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명백히 부인했던 방식을 예수의 이름으로 차용한 콘스탄틴주의에 대한 비판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처럼 철저한 분리는 한 사회윤리 학자의 주관적인 성경 해석만은 아니다. 톰 라이트는 그의 방대한 연구서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곳곳에서 예수는 종교와 결부된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주의적인 메시아니즘과 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예수에게 진정한 적은 로마나 유대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사탄은 반드시 거점을 마련하고 활동한다. 사탄은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바로 유대인들의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사탄적 세계관이며,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다.3
때문에 요더는 종말론을 기성질서에 대한 위협이자 부정으로 파악한다.4 성경의 종말 관념은 현존하는 질서를 무시하도록 유도할 뿐더러 세계 내재적 시스템 자체를 공격한다. 역사와 미래를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결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상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종말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우리의 주도와 계획이 아니라 오롯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일체의 인간적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종말론이 비판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자도를 산출한다. 종말론적인 제자도는 두 가지 점을 함축한다. 하나는 악과의 싸움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효율성에 대한 인식이다. 사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종국에는 승리한다는 종말론적 인식은 악과의 지난한 투쟁에서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동시에 승리의 방법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공한다. 악은 인간적 수단이나 정치적 권위를 통해서 제압되지 않는다(The Royal Priesthood, 152).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계산과 계획을 무력화시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효율성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예수의 육화와 십자가는 인간의 계산법에 따르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방법을 선택하셨고, 예수는 그 결정에 온전히 따랐다. “하나님의 승리란 부활을 통해 오는 것이지 효율적인 다스림이나 생존의 보장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예수의 정치학」, 410).
그것이 요한계시록이 증언하는 어린 양의 전쟁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이 구절에 요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사실상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칼이 아니라 십자가이며, 무자비한 힘이 아니라 고난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드러내는 순종의 열쇠는 효율성이 아니라 인내다(13:10)”(「예수의 정치학」, 399~300). 인내야말로 짐승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의 제자도인 것이다. 로마의 폭력적 힘에 맞서 십자가의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선지자적 증언을 하는 것이 성도의 소명이다.
종말론 없는 평화 : 콘스탄틴
종말론적 승리를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적인 방식으로 쟁취하려는 콘스탄틴적 길은 평화가 아니라 다툼과 싸움으로 이끈다. 서로가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는 한 그곳은 라멕의 땅이요, 바벨탑이다. 교회는 불행히도 하나님 나라의 현존이기보다는 세상과 뒤섞이고 말았다. 신약성경이 그토록 강조했던 두 세대의 경계선을 지키지 못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상에 의해 교회가 변혁당하고 말았다.
콘스탄틴주의가 무엇인지 살피기 전에 콘스탄틴주의가 요더의 신학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과 위치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요더에게 “콘스탄틴주의는 기독교 사회 윤리에 가장 근본적인 단 하나의 문제였다”는 것은 분명하다.5 콘스탄틴주의는 요더 자신에게 핵심 문제이며, 더 나아가 기독교 윤리의 근본 질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의 철저화가 또 다른 주(lord)로서의 콘스탄틴주의와 맞부딪치는 것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요더는 탈콘스탄틴주의(postconstantinianism) 신학자다.
콘스탄틴주의를 토론하기 위한 또 하나의 사전 작업은 ‘크리스텐돔’(Christendom)이라는 용어다. 둘은 거칠게 말하면 뜻이 같다. 서로 혼용될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아직 번역 용례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 같다. 의미도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기독교 왕국, 기독교 국가, 기독교 사회, 기독교 나라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크리스텐둠을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와 견주면 말하는 바가 산뜻하게 잡힌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라면, ‘기독교 왕국’은 기독교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다.
그럼 본격적으로 종말론의 변형으로서 콘스탄틴주의를 캐물어야 할 때다. 잘라 말하면, 콘스탄틴주의는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는 시스템이다(The Royal Priesthood, 154).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강제와 권력에 의한 지배 집단이 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국가는 세속적인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는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종교적 승인을 받았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주의가 “문자적으로 기독교의 지배 또는 종주권을 의미한다”면,6 요더가 말한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한 콘스탄틴주의는 곧 교회의 세상적 해석 또는 세상에 의한 교회의 왜곡이다.
그러니까 콘스탄틴은 그가 상징하는 바, 기독교 내부의 체계의 급격한 변화다. “그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The Priestly Kingdom, 135). “콘스탄틴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존재 양식에서 그리스도가 거부한 바로 그것 하나하나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7
기독교회는 역사적으로 콘스탄틴주의로 전환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았다. 이 전환이 세상에 대한 교회의 승리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기회라 여겼고, 그런 기회를 제공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기독교 왕국 체제의 성립은 고유한 복음의 정체성 상실과 왜곡을 초래했다. 대표적으로는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에서 그 전환이 뚜렷하게 나타났다(The Priestly Kingdom, 135~147). 기독론의 경우에 그리스도의 전적 주권이 약화되고, 국가와 국가의 군주나 통치자의 명령이 그리스도와 동일한 지위를 차지하거나 우위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콘스탄틴 이전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사회적 실재의 증거로, 세상과 완연히 구별되는 독특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콘스탄틴 이후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지고, 교회는 단지 문화의 일부분으로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은 현 체제에 대한 심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함에도 지금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성취로 종교적인 재가를 했다.8
콘스탄틴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전쟁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콘스탄틴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군대와 제국의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권력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콘스탄틴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폭력은 도덕적으로 관용할 만하며, 적극적인 선이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The Priestly Kingdom, 135).”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에서 콘스탄틴의 ‘십자기(旗)’의 정신으로 기독교의 본질이 변화했다. 콘스탄틴의 길은 강함과 무력을 지향하지만, 그리스도의 길은 약함과 무력함을 추구한다. 콘스탄틴의 전략은 강한 군대를 통해서 약자와 빈자를 억압하여 평화와 승리를 쟁취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전략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통해서 도리어 빈자와 약자가 높아지는 승리를 갈구한다. 콘스탄틴의 종교는 나를 위해 남의 피를 흘리는 종교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종교는 남을 위해 내가 피를 흘리는 종교다.
알리스테어 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독교가 콘스탄틴화 된 “가장 극적인 증거는 콘스탄틴의 승리의 트로피가 피로, 그러나 다른 사람의 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9 이는 콘스탄틴주의로의 전환이라기보다는 콘스탄틴주의로의 변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의 승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승리가 아니라 교회의 패배다.
하지만 요더의 비판에 동의하더라도 계몽주의 이후 그리고 프랑스 혁명 이후에 정치와 종교, 혹은 국가와 교회는 공존과 동맹에서 제도적 분리의 기간을 거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서구적 콘텍스트에서도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 아닐까? 물론 요더도 서양의 교회가 근대, 특히 종교 전쟁을 겪으면서 양자의 공존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The Royal Priesthood, 156). 그럼에도 그는 콘스탄틴주의의 본질, 즉 교회와 세상의 동일시는 여전히 다른 형태로 잔존하고 있다고 본다.
요더는 콘스탄틴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설명한다(The Priestly Kingdom, 141~43).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이 국가교회라는 점에서 네오-콘스탄틴주의(neo-Constantanianism)이며, 미국에서 국가와 교회의 도덕을 동일시하는 것은 네오-네오-콘스탄틴주의다. 즉, 미국의 문화와 가치, 질서를 곧장 기독교적인 것과 등치시킨다는 점에서 콘스탄틴주의의 변형이다.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 정권과 기독교는 서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배타적인데도 콘스탄틴주의라 할 수 있을까? 요더는 그렇다고 말한다. 프랑스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기독교는 자신을 혁명 이념에 맞게 설명하려는 점에서 네오-네오-네오-콘스탄틴주의다. 그리고 혁명과 해방, 구원과 희망과 같이 보다 나은 권력 시스템을 기독교와 동일시하는 해방신학 등은 네오-네오-네오-네오-콘스탄틴주의다.
기독교 역사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사회의 동일시라는 콘스탄틴주의는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여전히 살아남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그리고 그 강도와 정도가 어떻든지 간에 교회와 사회의 동일시라는 점에서 콘스탄틴주의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콘스탄틴주의는 “권력과 사회에 관한 기독교 사상을 갱신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여전히 그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타락한 시스템의 포로다”(The Priestly Kingdom, 144).
이 포로의 양상이 유럽에서는 법적이라면, 북미의 경우는 문화적이고, 관념적이고, 사회적이다. “유럽의 기독교 세계의 전통적인 체제가 형식의 차원이라면, 우리는 내용의 차원이다.”10 따라서 내용과 내부에서 여전히 콘스탄틴적 기독교를 향한 요더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쟁점 1 : 콘스탄틴으로?
“요더의 콘스탄틴주의 비판은 과연 역사적으로 타당한가”라는 물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요더를 공격하는 학자는 피터 라이하르트(Peter J. Leithart)다. 라이하르트는 요더를 주 타깃으로 설정하고 「콘스탄틴을 변호함」(Defending Constantine)이라는 책을 저술했다.11 그곳에서 그는 요더가 콘스탄틴을 오해했다고 본다. 콘스탄틴으로 인해 로마가 기독교화된 점에서 콘스탄틴주의가 교회 타락의 주범이 결코 아니라고 반박한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요더의 탈콘스탄틴주의는 존립이 상당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대담한 반론을 반박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라이하르트의 요더 공략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역사적인 문제다. 그가 보기에 콘스탄틴은 기독교의 종교적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서구에서 종교적 관용을 확립했고, 로마를 기독교화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여전히 논란이 되는 그의 개종 문제에서도 단호하다. “콘스탄틴은 단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선교적(missional) 그리스도인이었다.”12
이 점은 앞에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요더에게 콘스탄틴이라는 한 개인은 관심사가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콘스탄틴 개인이 아니다. 예컨대 그가 진정으로 개종했는지, 했다면 언제인지에 관한 연대의 문제가 아니다(The Royal Priesthood, 254). 요더는 콘스탄틴 개인이 아니라 역사를 묻고 있다. 그리고 관련 문헌이나 변화의 인과관계에 대한 실증적 물음이 아니라 그 변화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For the Nations, 8~9).
과장해서 말한다면, 요더는 콘스탄틴 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알렉산더 사이더는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힌다. “내가 말했듯이, 요더에게 콘스탄틴은 콘스탄틴주의 비판의 자리(locus)가 아니다.”13 그에 의하면, 요더는 과도하리만치 콘스탄틴 개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3~5세기의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한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에토스(ethos)에 있다. 다시 말해 콘스탄틴으로 상징되는 전환의 역사를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이다.”
요더가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콘스탄틴주의가 4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에 속한다. 개혁주의자 더글라스 존 홀은 단언한다. “기독교 왕국의 개시가 4세기에 발생했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다.”14 그리고 기독교 왕국적 세계와 세계관이 이미 몰락했거나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콘스탄틴 개인의 치적을 들어 요더와 콘스탄틴주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뒤집으려는 것은 라이하르트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달리 말하면 이렇다. 우리는 특정 시대를 왕이나 대통령의 이름으로 지칭한다. 예컨대, 세종의 시대, 정조의 시대라고 말이다. 가깝게는 박정희 정신이나 노무현 정신을 말한다. 이것은 한 개인 자체를 말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로 대표되는 시대의 분위기를 일컫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요더의 콘스탄틴주의는 콘스탄틴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를 말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타당하다.
라이하르트의 두 번째 공략 지점은 신학적 측면이다. 그는 콘스탄틴이야말로 로마를 기독교화한 인물이다. 로마는 4세기에 들어서야 기독교적 국가가 된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생제물로 드려진 도시다. 여기서 라이하르트는 참으로 과감한 발언을 한다. “그 공동체는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곳이다.”15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임하기 전까지 중간기의 정치 신학과 윤리의 모델은 “오로지 정화된 콘스탄틴주의의 부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라이하르트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역사적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초대교회의 평화주의로부터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의 정당한 전쟁론으로의 변화를 말이다. 콘스탄틴의 십자기는 분명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이지만, 십자기는 타자 살해다. 십자가는 신실한 인내를 요구하지만, 십자기는 강력한 폭력을 원한다. 이 둘은 결코 섞일 수 없다. 콘스탄틴주의의 부흥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와 콘스탄틴 이전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이고 대답이다.
쟁점 2 : 어거스틴으로?
라이하르트가 콘스탄틴을 기독교 정치 신학의 모델로 제시하였다면, 레슬리 뉴비긴은 어거스틴이 모델이다. 기독교의 타락을 콘스탄틴에게서 찾는 요더에 대항해서 라이하르트가 콘스탄틴 자체를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과 달리 뉴비긴은 콘스탄틴주의는 이미 저문 해와 같다고 본다. 다만, 대안은 콘스탄틴 이전이 아니라 어거스틴에게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더에게 콘스탄틴주의의 완성자와 같은 어거스틴을 내세우는 것은 콘스탄틴을 복권하려는 시도보다 훨씬 유익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미흡한 처방이다.
먼저, 뉴비긴은 콘스탄틴주의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 체제의 해체를 하우어워스가 환영하는 것과 달리 그는 풀어야 할 문젯거리로 받아들인다. 그에 따르면, 계몽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기독교의 문제 중 두 번째는 콘스탄틴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서 세상의 공적 영역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16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기독교는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우어워스의 이야기처럼 더는 국가와 문명의 힘과 정신에 기대어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로 서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교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뉴비긴은 콘스탄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는 주장은 단호히 반대한다. 그것은 낭만적 헛소리이거나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하고 무익한 말이다.17 고대 세계가 해체되고 민중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고, 새로운 질서는 수립되지 않고, 이민족의 침략으로 로마 세계 전체가 통째로 뒤흔들리고 있을 때, 교회가 뒷짐 지고 혼란을 방치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과 교부들은 전과 확연히 다른 출발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새로운 세상이다.
우리가 서 있는 지형에서 적어도 1500년의 역사적 유산을 그리 쉽게 물리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18 서구는 기독교왕국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다. 그들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기독교 왕국적 사유와 삶은 몸에 밴 습관이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애초의 기독교 왕국은 근대 이후 교회와 국가의 통합을 최종적으로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콘스탄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 남은 과제는 콘스탄틴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뉴비긴의 논의는 라이하르트에 비해 진일보하다. 그럼에도 그의 논리에는 치명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그의 말처럼 서구야 기독교 왕국이 익숙한 관습이고 문화라 하더라도, 한국과 같은 동양은 그렇지 않다. 서구가 자신들의 전통으로 돌아간다면, 기독교가 전통이 아닌 아시아와 같은 곳에서는 그리고 다수보다는 소수에 해당하는 곳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기독교도 120년의 역사를 지니면서 점차적으로 한국인의 의식의 일부로 스며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주류와 다수의 힘과 수에 의존하는 행태는 예수의 정치, 어린 양의 전쟁에 부합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콘스탄틴 이전으로 가는 것이 뉴비긴의 염려처럼 정치, 사회적 무책임인가? 이것은 장차 요더의 윤리가 퇴거의 윤리이자 분파주의인가를 다루게 될 때 집중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또한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도 언급될 것이다(Authentic Transformation, 31~89). 신약교회와 초대교회가 무책임한 것이 아니고, 그것 나름의 역사 변혁적 방식이다.
더 나아가 예수의 삶과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한다. 다시 말해 교회가 산상수훈을 따라 사는 공동체로 거듭남으로써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가 세상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세상 변혁 모델이다. 세상에 대한 책임을 벗어던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성경에 부합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다음 장 교회론의 핵심 주제다.
한국 교회는 콘스탄틴주의인가?
“예수가 주”라는 신앙고백에 철저한 급진적 신학자 요더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역시 그 고백에 충실하다. 이 고백은 필연적으로 세상의 군주와의 대립을 함축한다.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한 로마가 유독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는 로마의 황제에게도 반역으로 읽혔다. 그리스도인들 스스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불충으로 이해했다. 그러기에 요더는 통치자의 독특한 역할 중 하나는 기독교 종말론을 변경시킨다고 말하는 것이다.19
이것은 비단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하기에 종말을 누가 성취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신약성경은 가이사에 대항해서, 초대교회는 콘스탄틴에 대항해서 오직 예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주” 고백은 반 콘스탄틴주의일 수밖에 없다. 요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로마 황제의 주 됨과 정면으로 반대하여 서 있다.”20 그런 점에서 라이하르트의 주장은 애초부터 기각해야 하고, 뉴비긴의 제안은 불철저하다.
이제 요더의 종말론과 콘스탄틴주의 비판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를 한국의 콘텍스트에서 읽을 때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물음이 있다. 한국 교회와 사회는 콘스탄틴주의인가? 그 앞에 몇 개의 네오(neo)를 붙이든 간에 교회와 국가는 콘스탄틴적 동맹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경우, 서구와 달리 기독교 왕국의 경험이 없다. 전통적인 성과 속의 이원론과 정교분리 원칙에 함몰되어 있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면 요더의 콘스탄틴주의 비판은 처음부터 과녁을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닐까? 우리 교회가 콘스탄틴주의와 무관하다면 요더의 논의 그 자체의 가치와 달리 이 글은 전형적인 수입신학이요 현실과 괴리된 탁상공론일 것이다. 내 대답은 이렇다. 한국교회는 콘스탄틴주의의 아류다. 그러니까 네오-네오-네오-네오-네오-콘스탄틴주의다.
몇 가지 분명한 징후가 있다.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 이승만 정권을 기독교 정권이라 옹호하고, 3·15 부정선거를 가장 앞장서서 공명선거라고 억지 주장을 한 것, 10월 유신을 지지한 것, 12·12 쿠데타의 주역들을 위한 조찬기도회 등, 우리 교회사는 특정 권력을, 그것도 부당한 지배 세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교적 지원을 한 전례가 많다.21
교회의 정치 참여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교회가 겉으로는 성속 이원론과 정교분리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특정 집단과 깊숙이 밀착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가주의, 민족주의, 지역주의, 군사주의, 물신주의와 하나님 나라를 동일시했다. 이러한 사례만으로 한국교회 전체를 도매금으로 콘스탄틴주의화 되었다고 말하기는 과할는지 몰라도, 결코 콘스탄틴주의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건대, 교회의 정치 참여는 마땅하다. 문제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교회는 예수의 정치를 선 보여야 한다. “교회와 국가의 차이 혹은 신실한 교회와 신실하지 못한 교회의 차이는 하나는 정치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상이한 방식으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Body Politics, ix). 그렇다. 어떤 정치, 곧 그리스도냐, 콘스탄틴이냐는 물음은 어떤 교회냐의 문제다.
註
1. 스탠리 하우어워스·윌리엄 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김기철 옮김(복 있는 사람, 2008), 17~21.
2. N. T.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박문재 옮김(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29~64.
3.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705.
4. John Yoder, “Ethics and Eschatology” Ex Auditu 6(1990): 122.
5. Gerald W. Schlabach, “Deuternomic or Constaninian: What is the Most Basic Problem for Christian Social Ethics?” Stanley Hauerwas et al., The Wisdom of the Cross: Essays in Honor of John Howard Yoder (Eerdmans, 1999): 449.
6. Douglas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5). ix.
7. Alistair Kee,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이승식 옮김(한국신학연구소, 1988), 208.
8. Craig Carter는 콘스탄틴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 요더의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The Politics of the Cross: The Theology and Social Ethics(Brazos Press, 2001), Ch 5 & 6.
9. Kee,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215.
10.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29.
11. Peter J. Leihart, Defending Constantine: The Twilight of an Empire and the Dawn of Christendom(IVP Academic, 2010), 11.
12. Leihart, Defending Constantine, 88.
13. J. Alexander Sider, “Constantinianism Before and After Nicea: Issues in Restitutionist Historiography”, Ben C. Ollenburger & Gayle Gerber Koontz, ed, A Mind Patient and Untamed: Assessing John Howard Yoder`s Contributions to Theology, Ethics, and Peacemaking(Cascadia, 2004), 137.
14. John Hall, The End of Christendom, 4.
15. Leihart, Defending Constantine, 341.
16. 레슬리 뉴비긴,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이문장 옮김(대장간, 1994), 57~58.
17. 레슬리 뉴비긴, 「복음, 공공의 진리를 말하다」, 김기현 옮김(SFC, 2008), 77, 78.
18. 레슬리 뉴비긴,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홍병룡 옮김(IVP, 2005), 131.
19. Yoder, Ethics and Eschatology, 121.
20.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유승원 옮김(IVP, 2002), 277.
21. 김기현, “존 요더의 탈콘스탄틴적 정치 윤리,” 「백석저널」 5(2004 봄): 33~34. & 김기현, “교회가 복음이다”, 「성경과 신학」 37 (2005): 327~333.
6. 교회론, 부분적으로 실현된 하나님 나라
“교회는 세상이 아니다.” 반기초주의 신학자, 제임스 맥클랜던(James Wm. McClendon, Jr.)은 이 테제가 오늘날 교회가 수행해야 할 신학적 전투의 슬로건이라고 말한다.1 교회는 교회이고 세상이 아님에도 교회 안에서, 아니 교회가 세상이 되어 버린 마당에 교회가 세상 변혁 운운하는 것은 우습기조차 하다.
맥클랜던의 이 테제는 존 요더의 탈콘스탄틴적 신학의 영향력 하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스도의 전일적 통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콘스탄틴이 혼합된 교회를 향한 한 신학자의 가슴 아픈 일갈인 것이다.
여는 말 : 교회가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더는 콘스탄틴적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Royal Priesthood, 55).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고 움직인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옛일이 되었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이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서 신학은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맥클랜던의 주장이고, 이것을 자신의 신학, 뼈마디에 깊이 아로새긴 이가 존 요더다. 한마디로 요더의 교회론은 탈콘스탄틴적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이후 교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니까 종말론이 콘스탄틴주의 비판에 치중했다면 교회론은 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님의 주 되심을 회복해야 할 일차적인 자리(locus)와 사명은 교회에 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에 대한 응답은 교회의 몫이다. 또한 그 통치에 합당한 방식으로 반응해야 한다. 종말론이 ‘교회는 무엇이 아니다’에 초점이 있었다면, 교회론은 ‘교회가 이것이다’에 방점을 찍는다.
신원하는 요더의 신학에서 교회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론은 많은 교리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 윤리적 지향과 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추적인 가르침이다.”2 그의 신학과 윤리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그리스도 중심주의보다는 교회 중심주의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기독론을 신학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요더 또한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의 탁월성은 기독론을 철저히 교회론에 적용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교회론에도 철저하다 못해 급진적으로 관철시킨다.
교회는 자유의 공동체다
요더의 교회론의 독특성을 파악하기 전에 자유 교회(Free Church) 혹은 신자의 교회(Believers` Church)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요더는 메노나이트인 자신의 정체성을 교회론에도 반영한다. 모든 교회가 예수의 주 되심에 신실해야 한다는 고백은 비단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유산만은 아니며, 교파를 초월한 모든 교회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의 교회론은 신자의 교회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논의를 더 전개하기 전에 사용되는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유 교회는 신자의 교회로도 불린다. 통상적으로 두 개념은 상호교환이 가능하다. 자유 교회가 곧 신자의 교회다. 도날드 던바우(Donald Durnbaugh)는 자유 교회보다는 신자의 교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3 영국에서 자유 교회는 모든 비국교도를 아우르고 있어서 장로교 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반면 신자의 교회는 신자의 자발성,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적절하다고 본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자유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까 한다. 하나는 자유 교회가 요더의 탈·반 콘스탄틴적 신학을 잘 반영하고, 다른 하나는 내적으로는 신자의 자유, 외적으로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라는 신자의 교회 이념을 무난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4 그리고 반(反)콘스탄틴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것은 요더의 의도와도 부합한다. 그는 신자의 자발성 강조나 국가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 회중의 교제와 위계질서의 거부, 자유의 극대화는 반콘스탄틴적이라고 잘라 말한다(Royal Priesthood, 247~48). 그런 면에서 다음 문장은 결정적이다. “참된 교회는 자유 교회다.”(64)
자유 교회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말 그대로 자유 교회가 진정한 교회라는 것이다. 자유 교회는 국가 교회(State Church)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자유롭고, 자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자가 제도와 형식적 측면이라면, 후자는 정신과 내용적 측면을 강조한다. 자유 교회는 국가나 지방 정부로부터 제도적, 물질적 후원을 받지 않으며, 국가의 정치적 활동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요더는 자유 교회가 완성된 교회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반종교개혁인 가톨릭이나 관료적 종교개혁에 대한 제3의 대안임이 틀림없지만, 자유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가톨릭보다 교회 공동체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고, 오순절보다 더 성령을 신뢰할 수 있고, 인본주의보다 개인을 더 존중할 수 있고, 청교도보다 더 도덕적 기준에 얽매일 수 있다(Royal Priesthood, 325).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요더가 속한 메노나이트나 아미시, 후터라이트 등의 교회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요더는 교회 공동체가 내부의 잘못을 저지른 이를 용서하는 과정을 보여준 마태복음의 가르침을 다루면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러니까 교회는 교회 내부와 신자 개인의 죄뿐 아니라 교회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엄격함과 사랑을 가지고 처신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 교회를 미완의 교회로 파악하는 것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개혁파의 교회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요더는 칼 바르트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 교회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미완이다”(Karl Barth and the Problem of War and Other Essays on Barth, 174). 칼 바르트의 신학과 그의 「교회 교의학」이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 있다는 데서 얻은 영감이다. 교회의 자유는 모든 교회의 것이기에 자유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을 뿐더러 언제까지나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는 소수의 공동체다
요더의 자유 교회의 성경적 근거이자 기원은 디아스포라 유대교다.5 요더의 교회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그가 속한 아나뱁티스트의 교회론을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 특히 바벨론 포로기와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구약 백성들의 유배지 경험이 시사하는 바를 통해 요더는 잊혀진 기억을 복원하고, 새로운 신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기존의 콘스탄틴적 교회를 비판하는 지렛대를 확보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지다’는 뜻으로 이산(離散)을 말한다. 이들은 남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바벨론 등지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강제로 축출되어 유배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징벌이다.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징계한 결과다. 그랬기에 그들은 바벨론 땅, 낯선 땅에서 시온의 노래 부르기를 거절했다.
유배는 하나님의 뜻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새로운 하나님,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흩어진다는 것은 정상을 되찾기 전 하나의 중단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그의 시대에 전한 메시지에 따르면, 차라리 이산은 유대인 신앙 공동체의 소명일 것이다”(For the Nations, 51). 하나님이 친히 내리신 징벌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선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징벌 또한 선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유배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자신들을 버린 하나님을 어찌 노래할 수 있을까. 한 사회에서 지배자요 안정된 삶을 누리던 그들이 이질적인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그러나 거짓 환상도 동시에 내던졌다. 솔로몬 성전만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그리고 그곳으로 속히 귀환할 것이라는 믿음은 헛된 것으로 드러났다(For the Nations, 65). 저주스러운 유배지도 기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곳이고, 하나님이 주인이신 곳이다.
또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며, 마이너리티의 지위를 감수해야 했다. 이를 좀 더 확장하면 디아스포라들은 한 사회를 지배할 수 없다는 데 이른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요더는 자유 교회의 성경적, 역사적 기원을 디아스포라에게서 찾는다.
듀안 프리센(Duane Friesen)은 양자의 공통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6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역사에 대한 시선, 주류 집단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적 내러티브, 탈콘스탄틴적인 윤리적 사유 방식, 일반 사회에 대한 선교의 논리, 마지막으로 성경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의 탈중심적 권위다.
이는 비단 구약의 일부, 곧 포로기 문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요더는 창세기의 족장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살던 곳에서 소수였으며, 지배와 정복이 아닌 구별된 삶을 살았던 점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 또한 마이너리티였다. 톰 라이트는 줄기차게 예수님 당시의 1세기유대인들은 아직도 유배지에서 살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랬기에 메시아를 대망했다고 주장한다.7 예수 자신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도 자신을 나그네요 순례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요더의 주장은 신약에 굳건하게 서 있다.
콘스탄틴의 전환이 있기 전까지 교회는 일관되게 소수자였다.
이전에, 그리스도인은 마이너리티였고(일부 학자들은 제국의 인구 중 10%도 채 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누구라도 고수하는 것을 싸구려로 만드는 것에 반하는 행동으로 간헐적으로 핍박을 받곤 했다. 적어도 일종의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틴 이후에 교회는 모든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린다는 것은 지배자를 의미한다. 예외가 아니었다(The Priestly Kingdom, 135~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소수가 되는 것이고, 그 운명을 스스로 걸머지기를 결단하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콘스탄틴주의를 수용하면서 교회는 다수가 되었고, 다수에 걸맞는 책임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 결과,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평화주의를 버리고 전쟁을 옹호하고, 교회의 교회다움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소수로서의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프리센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8 하나는 주류 내에서 그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소수로 살아남는 것과 코스모폴리탄적 비전과 미션을 발견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주류를 닮아서는 주류를 변화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의 본질과 삶의 양식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대안적 삶의 공동체를 창조해야 한다. 더 자세한 것은 세상 속의 교회, 즉 교회와 국가, 그리스도와 문화를 다루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범세계적 비전의 발견이다. 하나님의 주 되심은 협소한 신자 개인의 내면이나 교회 공동체 내부에 결코 갇히지 않으며 가둘 수도 없다. 하나님의 전쟁을 민족과 국가적 이익을 보호하는 저급한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는 교회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인종주의는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제대로 선포할 수 없다. 하나님과 교회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 제한 받지 않는 보편성(공교회성, catholicity)이 있어야 한다.9 이는 요더의 에큐메니칼 대화를 살피면서 검토하려 한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서 소수로 인식하는 것은 창조성의 원동력이다(Original Revolution, 171~74). 틀에 박힌 일상과 정상의 삶을 사는 이들은 어찌하든지 그 체제와 질서를 고수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 소수자는 그 질서를 전복하고 뒤집고자 노력한다. 신영복의 말마따나, 중심부는 자기중심적 논리로 다른 모든 것을 포섭한다. 그러기에 변화의 키워드는 변방성(邊方性)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변방과 마이너리티가 변화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시킨다.10
그러나 교회론을 유배지의 유대인, 넓은 사회 속의 소수자 전통에 위치시키는 것은 위험이 없지 않다. 제임스 라이머(James Reimer)는 요더의 유배지 교회론이 보편성과 통일성을 상실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11 즉, 유배의 문화와 삶이 일상이 되고 정상이 된다면, 그것이 필시 소수가 되어야 한다면, 외부 공동체에 하나님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아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지 여부조차도 불명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유배와 디아스포라가 규범이라면, 통일된 비전은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묻는 것이다.
라이머의 비판은 논점을 빗나갔고, 논의를 오해했다. 유배의 경험은 전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자신들의 사명을 재발견하는 기회였다. 이에 요더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와 바벨탑의 언어 혼잡이다.12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인을 흩어버리는 사건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방인 선교로 나타난다. 또한 언어의 혼잡은 제국주의적 언어일치(여기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글 말살정책을 떠올릴 수 있다)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다. 교회는 소수인 자신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교회다.
교회는 종말론 공동체다
신원하에 따르면, 예수의 주 되심에 입각한 요더의 교회론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교회는 정치적이고, 종말론적이고, 대안적인 공동체다.13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종말론은 한편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 대한 대안 공동체를 구현한다. 예수가 홀로 주님이라면, 그것은 정치적 영역도 예외일 수 없고,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는 공동체는 그렇지 않은 이들과 삶의 양식이 같을 리 없다.
교회의 정치성과 대안 공동체 됨은 종말론에 근거한다. 현 시대는 옛 시대와 새 시대의 긴장과 충돌로 정의할 수 있다.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와 끝내 물러가기를 거부하고 반역하는 옛 질서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9). 교회는 이미 세상 한복판에 임재해 있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곳인 동시에 그들이 모인 공동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는 시식코너다. 또한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하우스다.
기독론과 관련해서 종말론이 “누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가”라는 그리스도 대 콘스탄틴의 구도로 전개된다면, 요더는 교회론에서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체에 집중한다. 교회는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가시화한 공동체, 즉 시식코너요 모델하우스다. 그러므로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를 알 수 없고,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없다.
교회가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재이자 공동체가 되라는 부르심은 종말론에 기초한다.14 예수가 광야에서 겪었던 세 가지 유혹도 기실 하나님 나라 도래의 가시적 표지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인 사탄과의 한판 싸움이었다. 산상수훈과 희년은 그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실현되었을 때, 다시 말해 종말에 성취될 그 나라의 모습에 대한 선취이기도 하다.
영지주의적 예수 이해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연상된다. 요더는 「예수의 정치학」(35)에서 예수의 주 되심을 정치적 영역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제한하거나 축소하려는 일련의 시도와 역사적 노력을 한마디로 가현설이거나 에비온주의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육화된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한낱 인간으로 비하하거나 그저 신으로 숭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듯이, 예수의 몸인 가시적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서 맛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교회는 그저 인간들의 친목회에 불과하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체로 파악하는 것은 중세와 근대의 교회 이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Royal Priesthood, 53~64). 고대 세계가 해체되면서 시민들의 안녕과 복지, 질서를 수호할 시스템이 붕괴됐고, 그것을 대체한 것이 바로 교회였다. 성 어거스틴이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대신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는 시대적 필요이며 하나님 나라의 ‘이미’(already)의 측면이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의 강조는 교회의 타락을 신국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개혁을 불가능하게 하는 병폐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교회는 ‘아직’(not yet)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되어 가는 중이다. 끊임없는 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고 방어막을 치면, 교회의 타락 또한 합리화된다. 그리고 교회가 아니라면 세상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최근의 가정교회, 셀교회, 소그룹 운동 등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를 살아내고자 하는 일련의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요더는 다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희년 실천과 산상수훈 공동체로 거듭나기는 성경의 절대적 요구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청이다. 교회 안에 드러날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은 교회의 정치적 성격과 다음에 토론하게 될 세상과 대조되는 교회의 대안성에서 깊이 있게 설명하고자 한다.
다만, 하나님 나라의 가시성 강조는 하나님의 통치를 내면화, 종말의 개인화를 이끌었던 지난 시대의 신학의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통절한 비판이다. 콘스탄틴 이전에 신자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교회 안에서 경험했다. 반면에 콘스탄틴 이후에는 그분의 다스림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분을 믿는 공동체를 통해 역사한다는 사실을 거부했다. “따라서 구속의 질서는 보존의 질서에 종속되었고, 기독교 희망은 전복되고 말았다”(Royal Priesthood, 57). 교회가 가시적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될 때 희망은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가 문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닮은 교회가 희망이다.
교회는 정치적 공동체다
“중요한 가치에 헌신하여 한데 뭉치는 다른 공동체와 같이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의 정치적 실재다”(Body Politics, viii). 이 말은 기독론의 자명한 귀결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섬기고 뒤따르는 성도들에게 예수는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스캔들이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헬라인과 유대인에게 거리끼고 미련한 것이었듯이, 육화된 예수의 정치성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신원하는 존 요더가 교회를 정치적 공동체로 규정하는 근거로 에클레시아, 주님, 제자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15 모임을 뜻하는 다른 단어들이 있음에도, 지역 사회가 모여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처리하는 용어인 헬라어 에클레시아가 교회를 가리키는 언어가 되었다는 것은 교회의 정치적 성격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주님과 제자도 마찬가지다. 로마 황제에게만 유일하게 사용되는 칭호인 ‘주’를 예수에게 사용한 것은 정치적 성격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면서 그 신앙을 실천하는 정치적 공동체다.
신원하는 요더가 교회의 정치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된 근거를 일일이 반박한다. 특별히 에클레시아에 집중한다.16 게르하르트 로핑크에 의지하여 그는 에클레시아는 교회의 정치성보다는 종말론적 측면이 강하다고 요더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요더가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해한 것은 언어학적으로나 성경해석학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비판과 오해는 ‘정치적’이라는 단어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더가 사용하는 정치(politics)는 통상적 의미의 정치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 교회는 정치적이라고 선언한 요더는 곧 이어 그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힌다.
교회에는 폴리스(polis)라는 성격이 있다(이 단어는 헬라어에서 온 것으로 여기서 정치적(political)이라는 형용사가 유래한다). 다시 말해 구조화된 사회적 몸이다. 그것은 의사를 결정하고, 회원의 자격을 규정하고, 공통의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공동체를 정치적 실체로 만든다는 것의 가장 단순한 의미다”(Body Politics, viii & For the Nations, 223).
정치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련의 행동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정치적이냐, 비정치적이냐를 토론하는 것은 무익하다. 어떤 정치를 하느냐의 문제다(Body Politics, ix). 한마디로 예수가 정치적이고, 교회가 정치적이라고 했을 때, 정치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형성하고 육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이루신 혁신적 사역은 제의의 갱신이나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이론의 설파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새로운 공동체 창조다(Original Revolution, 31).
그렇다면 교회를 세우는 정치란 무엇인가? 또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모습은 무엇인가? 요더는 몸의 정치학(Body Politics)에
서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그 다섯 가지는 묶고 풀기(Binding and Loosing), 만찬을 나누는 것, 침례, 그리스도의 충만함, 그리고 바울의 규칙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신자의 다양한 은사를 말하고, 바울의 규칙은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만찬을 예를 들어 보자(14~27). 요더는 만찬을 상징이자 사실로 파악한다. 예수께서 떼신 떡과 주신 잔은 당신의 십자가 사건과 구원을 기억하는 상징이면서 실제 발생한 사실이자 사건이다. 그 떡과 잔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일상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과 식사가 만찬이다. 주님이 친히 만찬의 음식이 되어 주었듯이 그 만찬을 나누는 우리 또한 만찬의 음식이 되어 이웃의 밥과 국이 되어야 한다.
요더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만찬을 윤리학적으로 해석한다. 요더에 따르면, 만찬은 경제적 나눔과 재물의 공유 행위다.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나누어 주셨듯이, 우리는 우리의 살과 피처럼 생각하는 재물을 예수님처럼 교회와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어야 한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 만찬은 하나의 경제적 활동이다. 함께 떡을 떼는 실천을 옳게 시행하는 것은 경제 윤리의 문제다”(21).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정치는 권력 게임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만찬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요더는 교회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 나라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실천의 의의를 한꺼번에 잘 정리해서 펼쳐 보인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다섯 가지 실천은 사회적 용어로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을 비종교적 용어로 번역할 수 있다. 은사의 다양성은 사회적 변천에서 위계질서의 종언이며 겸손에 능력을 부여하는 모델이다. 성령 아래서의 대화는 민주주의 개념의 지층이다. 범법 행위를 묶고 푸는 것은 갈등 해소와 자기 발견의 토대다. 침례는 다인종을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실연한다. 떡을 떼는 것은 경제적 연대를 축하하는 것이다(Body Politics, 71~72).
요더는 그간 종교적이고 제의적으로만 해석되고 축소되었던 성경과 초대교회의 다섯 가지 실천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으로 복원하고 승화시킨다. 성찬과 애찬이 통일되었고, 동시에 시행되었던 초대교회와 달리 현대는 종교적 형식으로만 남아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삶과 괴리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다섯 가지 실천은 내적으로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공동체가 되게 하고, 외적으로는 세상과 구별된 대안적 공동체로 산 위의 동네가 되게 한다. 이것이 요더가 말한 정치며, 교회의 정치학이다.
닫는 말 : 교회가 대답이다
지금까지 요더의 교회론의 두 가지 배경과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의 교회론은 자유 교회 혹은 신자의 교회 전통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바벨론 포로기와 디아스포라 유대교라는 구약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종말을 가시적으로 구현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이며, 정치적인 특징이 있다.
그는 이미 도래하고 완성을 향해 힘차게 진군하는 하나님 나라의 목격자요 대리자인 교회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관심을 쏟는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성, 곧 ‘이미’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현존하는 세상 질서와 뚜렷이 대조되면서 새로운 대안적 삶의 양식을 창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야기, 십자가의 이야기, 부활의 이야기를 교회는 매주일 아침 모여서 함께 나누고, 밥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세상과는 다른 공동체를 갖고 있다. 예수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이 교회인 한, 신자는 교회 안에서 그 이야기를 살아가는 이유와 근거, 실제적인 방법을 배우고 훈련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같지 않은 가시적 하나님 나라가 되어 간다. 요더는 그 대조성을 비폭력에서 찾는다. 어쩌면 어색한 조합인 듯 보이는 교회와 비폭력은 신약 성경의 알맹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창조 및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거부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태도는 신약적 선포의 처음과 끝을 가로지르는 일관된 주제다”( 「예수의 정치학」, 416). 그러므로 교회가 문젯거리가 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교회가 대안이라는 것을, 교회가 해결책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요더는 신학과 윤리의 대안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요더의 교회론의 일부에 불과하다. 교회 내적인 측면만 보았을 뿐이다. 교회는 교회를 둘러싼 외적인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세 가지 관계다. 첫째는 교회와 세상, 다음은 교회와 교회, 세 번째로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다. 첫 번째는 국가가 핵심 논제라면, 두 번째는 에큐메니칼이고, 마지막은 선교의 문제다. 이 각각이 우리가 앞으로 토론하게 될 각 장의 주제들이면서, 요더의 교회론의 확장과 심화이기도 하다. 그 논의의 모든 출발은 교회가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된 가시적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런 교회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7. 국가론, 혁명적 복종
왜 국가인가?
성경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다. 모세오경은 애굽과 출애굽의 정황 속에서, 역사서와 예언서는 앗수르와 제국의 아류인 가나안과의 대결 속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 다니엘서 등은 바벨론 포로기라는 현실과의 부단한 교섭 속에서 탄생했다. 예수와 바울의 사역은 로마와의 관련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니까 제국을 말하지 않고 성경을 말할 수 없고, 그 반대도 참이다. 때문에 존 도미니크 크로산은 예수와 바울은 로마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1
이 점을 존 요더 또한 잘 알고 있다. 성서신학자인 크로산이 성경과 제국을 결부시킨다면, 윤리학자인 요더는 교회와 제국을 연관시킨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라는 교회의 자기 인식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신으로 삼는 공동체와 대비될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지, 세상의 일부인지를 분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제국(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모습이다. 때문에 요더의 교회론은 세상으로부터의 물러섬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그러나 세상에 반하는 앙가주망(engagement, 학자나 예술가 등이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계획에 참가하여 간섭하는 일)이다.2
이참에 한 가지 오해를 더 불식하고 넘어가야겠다. 제국, 국가, 세상은 다른 말이 아니다. 이음동의어다. 말은 달라도 뜻은 하나다. 요더에게 세상은 국가다(Royal Priesthood, 55) 바울에게는 현 세대(aion), 요한에게는 세상이라면 요더는 국가다. 왜냐하면 세상의 전형이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장 철저하게 세상을 대표하는 단편이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12). 하나님이 창조했으나 타락한 실재의 대표가 국가다. 필요에 따라 각 용어를 고루 활용하겠으나 대개 국가로, 간혹 세상을 사용하겠다.
국가와 정확하게 대칭되는 지점에 교회가 있다. 세상과 구별되는 세상 속의 또 다른 국가가 교회다. 요더는 선언한다. “교회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사회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17). 국가의 일부로 편입되어 순치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부로 소속되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교회 말이다. 그러니까 요더의 본의를 담아 그의 말을 고친다면 이렇다. “교회는 하나의 국가다.” 그러기에 “왜 국가를 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교회가 국가이다!”라는 것이 대답이다.
한 이론, 두 전제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또는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이를 묻기 이전에 요더의 신학적 전제가 예수의 주되심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하겠다. 예의 그 전제가 국가론에도 어김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통치에 단 하나의 예외라도 허용하는 것은 예수의 주되심에 대한 신실한 고백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어떤 영역이든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 리 없다.
그러므로 국가를 말할 때 주되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요더는 묻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함에 있어 다른 영역에서는 다 괜찮은데 사회 윤리의 문제, 특히 국가와 관련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인가?”(「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89) 이 물음의 대답은 뻔하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의 실질적 주인은 그리스도이고, 동시에 국가도 예외 없이 그분의 주권 아래에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위험한 극단적 태도를 피해야 한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56~57). 하나는 국가를 악마적인 것으로 보고 일절 관심을 갖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봉사의 의무는 기피하는 것이다. 양 논리의 맹점은 국가의 주인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분이 창조주이기에 국가는 악마적일 수 없으며, 국가에 대한 봉사는 응당 해야 마땅하다.
극단적이지는 않으나 가능하지만 잘못된 태도도 두 가지가 있다. 가능하다는 말은 둘 다 주되심을 공히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잘못이다. 하나는 국가를 신앙의 영역과 전연 별개로 치부하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신앙의 영역으로만 재단하는 방식이다. 전자가 국가의 비기독교화라면, 후자는 국가의 기독화이다. 그리고 앞의 것은 마틴 루터, 뒤의 것은 존 칼뱅이 대표자다. 루터가 국가와 교회를 이원화한다면, 칼뱅은 어떠한 종류의 이원론이라도 거부한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62~65).
요더는 둘의 핵심을 각각 자기 것으로 삼는다. 국가에서도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은 칼뱅을, 국가와 교회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은 루터를 따른다. 뒤집어 말하면, 칼뱅은 교회와 국가의 성격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으려 하고, 루터는 둘을 구분하여 각각의 영역으로 떼어 놓는다. 그리하여 칼뱅은 신정주의 정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루터는 양자를 아예 독립적인 것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에 함몰될 여지가 많다.
루터의 국가관은 ‘실증주의적’(positivistic)이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보는 이 견해는 독일 교회의 히틀러 지지와 독재자를 종교적으로 합리화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칼뱅주의 전통은 ‘규범적’(normative)이다. 하나님은 모든 정부가 아니라 특정한 정부를 공인하신다. “하나님이 부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그 정부는 권위를 상실”하고 반란과 혁명이 가능하다. 이 해석의 난점은 그것이 근거하는 로마서 13장에서 어떠한 반란이나 반역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예수의 정치학」, 342~46).
그러나 양자가 도달하는 지점은 동일하다. 국가의 승인이다. 그것이 전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루터야 애초부터 국가를 두 왕국론의 한 축으로 정립시킨 탓에 국가에 교회와 신앙이 잠식당할 우려가 컸다. 반면에 칼뱅은 겉으로는 국가를 기독교화하는 듯 보여도 기실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국가에 의해 신앙이 부식 당한다. 국가와 교회를 두 영역으로 분리하든 한 영역으로 통합하든 간에 물 밑으로 흐르는 내면적이고 내밀한 이데올로기적 결탁, 곧 콘스탄틴주의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예수의 주되심에 불철저함에 따른 자명한 결과다.
국가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사실에서 요더는 두 가지 전제를 이끌어낸다. 하나는 교회다. 앞서 말한 대로 요더는 국가를 교회론의 맥락에서 다룬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경륜과 비밀의 중심과 목적은 국가가 아니라 교회다. 이것이 국가와 관련된 교회가 염두에 두어야 할 첫 번째 전제다.3 따라서 국가론의 종결은 교회론적 함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교회는 국가와 관련해서 그 본질에 있어서 대조되고, 대안이 된다.
두 번째 전제는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을 위한 윤리라는 주장이다. “국가에 대한 접근방법 중 가장 중요한 공리는 ‘기독교 윤리학은 기독교인을 위한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28). 이 말을 듣고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하나마나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왜 안 되는가? 앞의 질문은 교회와 세상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뒤의 것은 만약에 기독교 윤리학을 세상에 고스란히 적용시키려고 한다면 기독교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제자도에 어울리지 않는 강제와 우격다짐으로 사회에 기독교 윤리를 부과하는 것이다.
청교도 전통과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적 평화주의는 기독교 윤리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30). 청교도들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추종할 수 있는 보편적 규범을 확립하려고 한다. 자유주의적 평화주의도 전쟁은 잘못이므로 국가와 정치인들이 응당 따를 것을 요구한다. 양자는 공히 교회와 국가 사이에 통약 가능한 도덕이 있다고 확신한다. 청교도는 구약의 신정정치에서, 그 평화주의자들은 산상수훈에서 기준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다.
요더의 국가론 이해의 두 전제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전제에서 세상의 전형인 국가와 대조되는 교회가 되라는 요청을 읽을 수 있고, 두 번째 전제에서 제자도는 교만한 세상과 달리 복종하라는 부름을 들을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요더의 국가론의 독해의 결론이다. 공동체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비폭력적 방식을 구현하여 세상과 구분되어야 한다. 제자도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성도는 자기 뜻을 강변하려는 세상과 달리 주의 뜻에 복종한다. 예수가 세상 한가운데서의 일상에서도 주인이기 때문이다.
한 존재, 두 얼굴
국가의 주인이 예수라는 주장을 철두철미 밀어붙이는 요더의 국가론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충실하다. 초기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들의 국가 이해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4 첫째, 국가는 악한 자는 벌하고 의로운 자를 보호해야 한다. 둘째, 통치자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지만 영적인 문제에서는 권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 이러한 견해는 오직 성경에 근거한다. 첫째는 국가의 성격, 둘째는 국가의 한계, 셋째는 국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말한다.
먼저 국가의 성격이다. 요더는 국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께서 국가에게 주신 명령은 국가로 하여금 악의 수단(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악이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지는 것을 막으라는 것이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29). 국가는 타락한 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섭리적 질서 내지는 보존적 질서다. 국가는 하나님의 창조와 더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피조 세계의 타락 이후에 생겨났다.
예컨대 가인의 아벨 살해 이후, 가인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 피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조처는 국가의 존립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말 그대로 무정부적 혼란의 방지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심과 폭력성으로 세계는 그야말로 창조 이전의 혼돈과 혼란으로 파멸하고 만다.
로마서 13장에 따르면 국가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렇다면 선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 요더는 13:1~7의 문학적 단위를 주목하라고 한다(「예수의 정치학」, 338~42).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 본문의 앞과 뒤를 감싸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원수 된 우리를 자비하심(롬 12:1~2)으로 용서하고 사랑하신 것 같이, 국가에게도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우리에게 국가를 선한 실재로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은 주류 기독교와 생각이 다르다. 존 칼뱅에게서 보듯이 악으로부터 어떠한 보호 장치나 그것을 제어하는 장치가 없이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악임에 틀림없다.5 이 점은 요더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요더가 여기서 국가를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칼뱅주의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때문에 국가를 선한 창조로 본다.6
그러나 요더가 보기에 국가를 창조 질서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옳지 않다. 국가에 관해 “신약 성서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는 식의 단순한 개념을 포기하였다”(「예수의 정치학」, 334). 주류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국가의 잘못된 정책마저 지지하는 우를 범하게 만든 신학적 장본인이다. 그 근거로 요더는 창조 신학이 인종 차별과 남아공의 흑백 분리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점을 지적한다(Body Politics, 35 & 25~27).
루터교와 칼뱅주의, 양자는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양자 모두 하나님이 특별한 섭리 혹은 창조적 행위로 국가를 설립하고 제정하였다고 단언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75).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까닭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창조와 주권이 제한받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차이는 시점과 강조점이다. 국가의 창조가 타락 이전이냐, 타락 이후이냐가 다르다. 또는 창조를 강조하느냐 타락을 강조하느냐의 차이다(Karl Barth and the Problem of War and Other Essays on Barth, 163).
둘째, 국가의 한계다. 국가가 분명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예수의 주되심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국가를 존중했고, 국가의 역할을 인정했던 것은 국가를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의 일부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가를 하나님께 저항하는 세상의 일부로서,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패배했고,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원수를 패배시킬 때까지 그분의 통치 대상일 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33).
국가가 최종적인 주인일 수 없다. 애초에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일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허용하셨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요더가 국가 이해에 관해 상당히 기대고 있는 오스카 쿨만의 말이다. “국가는 궁극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7 그 나라가 도래하기까지 잠정적으로 유효하다. 하나님은 국가를 임시로 사용하신다.
그러기에 국가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이면서도 조건적이다. 무조건적이라는 것(「예수의 정치학」, 342~49)은 그것이 하나님이 허용한 제도라는 점에서 특정한 정부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3장 어디에도 특정 정부를 신적인 것으로 숭배하라는 명령도 없지만, 특정한 정부에 대한 반역을 꾀하라는 언명도 찾을 수 없다. 그러기에 혁명적 복종이다.
다른 한편 조건적인 복종이다. 요더는 국가에게 칼의 기능이 허용되었다는 점을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 질서와 시민의 안녕을 위한 치안 기능으로서의 경찰의 강제력 사용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쟁은 선한 자를 보호하고 악한 자를 징벌하는 애초의 목적에서 상당히 이탈한 것이고, 복수의 악순환을 방지하기는커녕 증폭시킨다. 하여, 원하는 것은 폭력의 최소화다.
우리는 정부가 무저항적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한 정부가 가장 정의롭고 최소의 폭력적인 활동을 하도록 요구한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42).
그리고 조건적인 복종인 까닭은 국가는 영적인 문제에 어떠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전쟁과 사형이다. 요더에 의하면, 무력 사용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예수의 정치학」, 349~59).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명령은, 교회로 하여금 십자가의 삶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34). 교회가 폭력 사용과 전쟁에 참여하는 순간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바를 벗어난다.
하지만 존 칼뱅은 정부의 전쟁 수행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허용한다(「강요」, 4권 20장 11절). 또한 종교적인 영역까지도 국가에 위임한다. 칼뱅의 말이다. “우상 숭배,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훼방 그리고 그 밖에 종교에 대한 공공연한 방해가 사회에 발생하거나 만연하지 않도록 하고”라는 말은 언뜻 보면 교회의 임무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주요한 임무에 관한 말이다. 그 다음 문장이다. “치안을 유지하며 서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중략) 보존한다”(「강요」, 4권 20장 3절). 곧 이어 칼뱅은 “그 일을 정부에 맡긴다고 해서 아무도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는 우리를 너무 많이 놀라게 한다. 그는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너무 많은 것을 위임한다.
셋째, 국가에 대한 성경적 이해다. 요더에 따르면 신약에서 국가를 다루는 언어는 ‘권세’다.8 권세(exousia, powers)는 하나님과 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다.9 신약성경에서 ‘권세’는 천사와 마귀 둘 다를 언급하고, 통치자나 국가 등을 모두 가리키는 것을 보아 이들은 영적이면서도 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면서도 가시적이다. 개인적이면서도 제도적이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권세들은 국가와 정치의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 나아가 국가가 바로 그러한 권세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권세를 천사나 마귀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만 해석하는 이들과 제도적 차원으로 국한하는 이들과 양 측면이 다 있다는 주장들이 혼재해 있다.10 일반적으로 요더는 국가를 제도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요더가 ‘권세’의 의미에 맞는 현대어를 구조(structure), 즉 종교적·지적·도덕적·정치적 구조로 분석한다는 점(「예수의 정치학」, 244, 252)에서 설득력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와 같이 두 측면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았고, 마귀나 귀신들림 등과 같은 측면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그의 언급(「예수의 정치학」, 247의 각주 4)을 볼 때 권세를 인격적 실재로 인정하면서도 비인격적 제도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이 권세는 창조, 타락, 구속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예수의 정치학」, 248~58) 인간은 어떤 제도나 질서가 없이는 살 수 없기에 하나님은 선한 권세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 권세들은 타락하여 하나님과 세계를 중재하지 않고 도리어 분리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세들은 질서 유지라는 본래적 기능을 계속 수행한다. 예수는 이 권세를 구속한다. 한편으로 죽기까지 기존의 권세들에게 복종하셨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굴복시켰다(골 2:13~15).
이를 통해 요더의 국가 이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국가는 타락한 권세이며,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패배했으나 세계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복종하고, 복종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를 향해 예수가 주인이라고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은 개별적으로만 응답할 수 있는 선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포는 권세들에 대한 도전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적인 현실이다(「예수의 정치학」, 273).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와 사회 변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국가는 타락한 권세라는 사실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허용한 권세라는 점, 현대의 국가가 폭력 기구일 뿐만 아니라 복지 국가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 강력한 박해를 받던 16세기와 많이 달라진 작금의 상황에서 요더는 참여를 강조한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71).11 그럼에도 십자가의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악과 대면해야 한다. 권세들이 패배한 것은 일종의 우주적 요술 때문이 아니라 역사 내에서 일어난 십자가라는 구체적인 사건 때문이었다(「예수의 정치학」, 275).
왜 교회인가?
국가가 창조의 일부이지만 타락한 권세이며 폭력에 기반한다면, 국가 안에서, 국가와 더불어 사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실존은 무엇인가? 이미 대답은 주어졌다. 국가가 폭력과 강제력에 근거한다면, 교회는 비폭력과 복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교회는 국가와 확고하게 대조되는 대안 공동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세상과 같지 않기에 교회이고, 세상의 맛과 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맛과 향이 나기에 교회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세상에 반’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말할 자격이 없다”(Body Politics, 78). 그렇지 않겠는가. 세상과 똑같은 교회가 세상더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교회의 독특성은 예배나 제의 형식에 있지 않다. 세상과의 혼합도 아니고, 격리는 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반(against)해야 한다는 말은 세상과의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삶에 참여하면서도 거기에 동화되지 않는 삶의 질의 차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이 공동체는 존재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불가피한 도전이요, 새로운 사회적 대안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예수의 정치학」, 81).
대조와 대안의 구체적 내용은 평화다. 평화의 공동체가 됨으로써 교회는 가시적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며 이 땅에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된 하나님 나라가 되어 간다. 더 나아가 세상과 대조되는 삶의 양식이 세상을 변혁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 방법은 십자가다. 이는 요더의 사회 변혁론에서 차차 다룰 것이므로, 여기서는 국가에 대해 기독교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그것은 세 가지다. ‘자유’, ‘모범’, ‘복종’.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국가로부터 자유다.
요더의 전 신학 체계는 탈·반 콘스탄틴이라 했다. 그는 세상과의 혼합, 국가와의 결탁을 도모한 콘스탄틴주의를 철저히 반대한다. 그렇다면 그의 대안은 적어도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콘스탄틴적 잔재로부터 결별이다. 요더의 이런 생각은 아나뱁티스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들은 “교회가 타락한 가장 주된 요인을 국가와의 통합으로 보았고, 교회와 국가가 통합했을 때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12
이 자유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형식과 내용이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국가교회인 교회는 드물다. 단언하건대, 한국의 어떤 교회라도 국가교회는 없다. 그러나 내용을 따지고 보면, 국가교회적인 정신과 습성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에 대한 지지에서 보듯이 본래적인 콘스탄틴주의는 아닐지라도 변형된 네오-콘스탄틴주의임에 틀림없다.13
그러면 왜 국가와 대조되기 위해서 자유가 필수적인가? 신앙은 결코 강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 국가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단체, 곧 학교나 직장의 소속되었다는 것만으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요건만으로 신앙을 강제할 수 없다. 신앙은 자발적인 것이다. 각자 믿을 수 있고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국가의 성격을 기억하자. 국가는 강제력이 허용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러하기에 정교분리 원칙은 교회가 국가로부터 자유롭다는 형식적 측면과 함께 국가와 달리 국가적 방식으로 신앙을 강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가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리고 자유로워야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모범이다. 교회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컨대, 인종을 차별하는 교회가 국가에게 인종차별을 폐지하라고 외칠 수는 없고 도리어 망신과 조롱만 받을 것이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21). 교회 안에 평화가 없으면서 평화를 선포하고, 교회 안에서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면서 용서를 말하고, 교회에서 일치를 도모하지 않으면서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는 모순이고, 도덕적으로는 위선이다.
무릇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도덕적 선택과 행동은 “도덕적 행위자의 정체성에 의존한다”(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29).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길은 없다. 예수를 주인 삼는 교회가 언덕 위 마을처럼 세상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권세가 지배하던 세상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권세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14 그러기 때문에 교회의 존재 자체가 사회 참여 전략이다(“Why Ecclesiology Is Social Ethics,” Royal Priesthood, 102~26).
마지막으로 복종이다. 그냥 복종이 아니고 혁명적 복종이다. 요더에 따르면 그의 「예수의 정치학」(p.322)에서 이보다 더 격렬한 논란이 된 대목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체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제약 없는 자유를 탐닉하는 이 시대에서 복종, 그것도 혁명적 복종은 시대에 뒤처진 낡아빠진 잔소리에 불과하고, 기독교 윤리를 니체가 그토록 맹공을 가한 노예의 윤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복종인가? 국가가 설령 타락했고, 창조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섭리라 할지라도 국가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 하에 존재한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의미는 아무리 이교도 국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뜻했다”(「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108).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교회 밖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있고, 이교도적이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p.107). 칼 바르트의 말마따나 “국가는 교회의 바깥에 있으나 그리스도의 지배 바깥에 있지는 않다.”15
그렇다면 응당 교회는 국가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어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복종이지 굴종이 아니다. 요더는 바울 서신에 주로 등장하는 가정규례(Haustafeln, house tables)를 통해 바울의 윤리가 다른 곳에서 꾸어온 것이 아니며, 숙명과 운명에 굴복하게끔 만들지 않는다고 역설한다(「예수의 정치학」, 9장). 요더는 스토아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정규례를 꼼꼼하게 대조한다.
바울이 스토아 사상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외적인 유사성 때문이다. 이건 오해다. 스토아와 달리 성경의 윤리는 상호적이고 노예와 여성, 어린 아이들을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 세운다.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존엄성을 선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노예와 여성 등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으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호적이라는 것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동등한 인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요더는 혁명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종이 혁명적이기만 하지 않다. 제한적 복종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는 국가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러나 국가가 행하는 모든 일이 선이 아니며, 더군다나 전쟁이라는 사안은 주되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복종할 수 없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배반이요 배신에 다름 아니다.
국가에 관한 최종적인 말은 결국 교회와 제자도로 귀결된다. 만물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인은 홀로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예수의 주되심을 국가의 영역과 활동에서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요더의 생각의 요체다. 그러나 참여와 관여의 방식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국가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타락한 실재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말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한 창조라는 것에 대한 재확인이다. 동시에 타락한 세계와 다른 대안적 공동체가 되라는 말이다. 교회가 세상의 국가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라는, 다시 말해 세상의 국가가 아닌 하나님의 국가가 되라는 말이 국가에 대한 최종적 말이다.
註
1. 존 도미니크 크로산, 「하나님과 제국」, 이종욱 옮김(포이에마, 2009), 9.
2. Michael G. Cartwright, “Radical Reform, Radical Catholicity,” The Royal Priesthood
(Herald Press, 1998), 2.
3. Earl Zimmerman, Practicing the Politics of Jesus: The Origin and Significance of John Howard Yoder`s Social Ethics (Cascadia, 2007), 193.
4. 윌리암 에스텝, 「재침례교도의 역사」, 정수영 옮김(요단출판사, 1985), 291.
5. 존 칼뱅, 「기독교 강요 하」, 김종흡 외 옮김(생명의 말씀사, 1986), 4권 20장 8절과 9절.
6.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양성만·홍병룡 옮김(IVP, 2007), 58. 요더와 개혁파의 국가 이해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Branson Parler, “John Howard Yoder and the Politics of Creation,” Jeremy M. Bergen & Anthony G. Siegrist, ed, Power and Practices(Herald Press, 2009), 65~81.
7. 오스카 쿨만,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 민종기 옮김(여수룬, 1999), 68.
8. 요더의 권세 이해는 자신이 번역한 헨드릭 벌코프의 책에 의존하고 있다. Hendrik Berkhof, Christ and the Powers, trans by John Yoder(Herald Press, 1962/1977).
9. 월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성수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27~38.
10. 민종기, “부록II: 국가와 영적 전쟁”, 쿨만, 앞의 책, 130~43.
11. 메노나이트인 존 레데콥은 요더 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주장하고, 정부와 긴장관계 보다는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기독교 정치학」, 배덕만 옮김(대장간, 2011).
12. 에스텝, 앞의 책, 275, 290.
13. 김기현, “종말론, 누가 종말을 실현하는가?” 「목회와 신학」 261(2011, 3): 158, 160~61을 보라.
14. Berkhof, Christ and the Powers, 51, 「예수의 정치학」, 260. 오늘 우리의 문제는 교회가 타락한 권세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르바 던,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교회」, 노종문 옮김(복 있는 사람, 2008), 103~70.
15. 칼 바르트, 「공동체, 국가와 교회」, 안영혁 옮김(엠마오, 1992), 208.
8. 에큐메니칼, 진리의 보편성과 육화의 특수성
종교간(inter-religion) 대화 vs 종교내(intra-religion) 대화
내 지도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하버드대학교의 세계종교연구소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자주 듣는다. 각 종교들 사이에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타종교의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공감과 소통보다는 비판과 반론을 퍼붓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타종교인이 아니라 같은 종교인이다. 오히려 흥미롭게 듣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타종교인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나 유교, 이슬람, 힌두교에 대해선 아무래도 피상적이고 통상적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종교는 잘 안다. 내부는 너무나 다양해서 강연자의 견해가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관점과도 다르다. 그래서 반박한다. 타종교인들에게 저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종교와 종교 간의 대화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종교 내부의 단절과 거리가 깊다. 골이 너무 깊게 패였다. 그래서 종교간 대화보다 종교 내 대화가 더 절실하고 더 힘들다고 했다.
교회 역사에서 순교자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이들이 이교도나 타종교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같은 그리스도인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린 경우가 허다하다. 중세의 종교재판, 존 후스, 위클리프 등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서 끔찍한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극심했던 시대가 종교개혁기였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루터교와 개혁교가 서로를 반대했고, 핍박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던 것은 아나뱁티스트였다.
혹독하게 짓밟힌 아나뱁티스트들이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랐던 것은 자유였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 교회라고 불렀다. 또한 그들에게는 폭력과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가 절실했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요더는 여타의 기독교 교파들과의 대화에 나서게 된 것이다. 메노나이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교회들 사이의 분열과 대립 가운데서 화해의 조정자가 되고자 애썼다.
그러고 보면 요더의 전 생애는 에큐메니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가 21세 때, 2차 대전 후 황폐해진 유럽에 당도해 줄기차게 아나뱁티스트 밖의 사람들과 숱한 대화를 나누었다.1 메노나이트의 대표로 역동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꽤 많은 분량의 논문이 에큐메니칼과 관련된 것이다. 특별히 요더는 평화주의자답게 평화라는 아젠다를 에큐메니칼 진영에 제시했다.
그랬기에 마크 네이션(Mark Nation)은 요더를 읽는 한 키워드로 에큐메니칼을 지목한다. 요더의 전 생애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특별한 소명에 헌신했으며, 그는 인내를 가지고 대화에 임했다.2 그리고 마이클 카트라이트는 요더를 일컬어 급진적 개혁자요 급진적 보편주의자(catholic)라고 평가했다.3 앞의 말은 당연히 그가 메노나이트이기에 한 것이지만, 뒤의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요더 자신도 이러한 평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소종파주의자 또는 아나뱁티스트라고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신학의 적절한 이름은 보편적(catholic)이라고 말한다(For the Nations, 8의 각주 19). 그래서 요더는 에큐메니칼이다.
어떤 에큐메니칼인가?
몇 개의 단어를 설명 없이, 그것도 서로 교차하며 사용하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에큐메니칼(ecumenical), 보편적(catholic), 그리고 가톨릭(Catholic)이다. 에큐메니칼은 헬라어 오이쿠메네에서 비롯되었다. 문자적으로는 사람이 거주하는 땅과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 세계를 말한다. 그 의미는 “성경의 보편적 가치를 온 세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4 현재는 교회의 일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catholic’은 보편적, 우주적, 총체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대문자로 사용될 때는 가톨릭을, 소문자일 경우에는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요더에 따르면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5 일반적(catholic1), 보편적(catholic2), 가톨릭(catholic3)이다. 가톨릭의 헬라어는 일반적이다, 전체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교회에 적용되면서 보편적인 교회를 가리키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가톨릭교회를 지칭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요더의 이 구분은 그의 교회론에 대한 날선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 레이맨(David Layman)은 요더와 맥클랜던의 교회론이 소종파적이고 교회의 역사적 연속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6 이에 대해 요더는 교회가 역사적으로 명백히 타락했고, 궤도를 이탈했으므로 연속성이 아니라 급진적 갱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도적 교회의 이상과 연속성이 있다고 반박한다. 즉, 자신은 가톨릭은 아니지만 catholic1과 catholic2의 의미로서 보편적이고 사도적 신앙과 교회론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신약 성경에 기반한 신자의 삶과 공동체를 주장하기 때문에 첫 번째 의미의 가톨릭이고, 종교개혁 당시 지역의 군주를 따라 신앙을 결정하는 것에 동의한 교회(cuius regio ejus religio)의 지역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요더는 이 두 가지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 교회들 사이의 대화와 일치의 기초라고 본다.
요더의 글에서 보편은 catholic1과 catholic2는 둘 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두 단어와 에큐메니칼은 혼용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이고,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교회는 보편적이다. 여기서 보편이라 함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있는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의 교회요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요더는 다른 곳에서 기독교의 보편성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Karl Barth and the Problem of War and Other Essays on Barth, 147). 하나는 모든 사람이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동일한 조건 하에서 수용될 수 있다고 보는 보편성(universalism)이다. 이는 모든 인간의 내재적 특성을 그리스도라는 종교적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해설을 덧붙인다.7
“이것은 콘스탄틴주의의 유혹이자 시험으로 그 무엇으로도 번역될 수 없는 기독교의 고유한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에서 주류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상실한 마이너리티면서도 세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것이다.”
반면 반콘스탄틴적 보편성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유일한 주님으로 고백하는 마이너리티의 보편성으로 세상의 조류를 거스른다. 그러나 예수의 주 되심에 대한 확신은 세상의 권력과 선함을 약화시키고 그분의 주권이 교회를 넘어 사회와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하는 보편주의다. 요더가 추구하는 교회 일치, 곧 교회의 보편성은 구체성과 지역성에 발을 확고히 딛고 서 있으면서도 지역성에 함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온전히 실현되어야 할 세상 전체를 바라보는 그런 보편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이클 카트라이트는 에큐메니칼에 대한 요더의 관점을 “육화의 특수성과 진리의 보편성”이라고 한다.8 예수의 특정한 이야기 속에 하나님 나라가 드러난 것처럼, 지역 교회의 특수성이라는 몸을 입을 때에 진리는 보편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반대로 말해도 괜찮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은 특정한 한 인간 예수로 육화하셨고, 그 육화된 예수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육화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교회고, 마땅히 교회는 지역 교회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보편적 진리의 담지자다.
왜 에큐메니칼인가?
왜 교회는 일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첫째,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Royal Priesthood, 291). 요더는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 바울의 에베소서 2~3장을 근거로 제시한다. 요한의 텍스트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사이의 일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독론이라면, 바울의 텍스트는 서로 원수 되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해를 이루는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성취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언명령이다.9 그리스도의 이 명령을 무시하는 것은 실천적인 다신론인 동시에 실제적인 무신론이다. 한 분 하나님과 한 교회, 한 신앙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신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기에 입으로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실질적인 무신론자요 무늬만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요더는 요한과 바울에 이어 마태의 본문을 하나 더 추가한다(Royal Priesthood, 292). 마태복음 18장은 교회가 어떻게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화해에 이르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교회 안의 죄와 잘못, 곧 교회 내의 분열과 다툼, 죄를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교회는 거룩성을 회복하고, 보편성도 얻는다.
이 본문이 전제하는 바는 우리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Body Politics, 8, 13). 인간은 같지 않고, 모두 다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대로 권력과 무력으로 하나 됨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대화와 나눔을 통해서 하나 됨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까 다름은 갈등을 수반하지만, 갈등을 잘 다스리면 구속하는 대화에 다가서게 된다. 다름을 분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 이르게 하는 힘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된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배제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내려놓고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충성심을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충성보다 우선하는 것, 그리고 그가 어려운 형편에 있는 것을 돌아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이며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한다. 따라서 교회의 일치를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다(Royal Priesthood, 230).
어떻게 에큐메니칼을 할 것인가?
그러면 어떻게 일치와 연합에 도달할 수 있는가? 요더는 1957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4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가 추구하는 일치는 대화다.” 일치에 이르는 길은 그저 정보와 지식의 전달로 이룰 수 없다. 그것이 진정한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양자가 혹은 다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된 권위에 의존해야 한다. 문제는 각 전통마다 나름의 독특한 기준이 있다. 예컨대 가톨릭은 교황의 권위와 자연신학, 자유주의는 근대적이고 계몽주의적이다. 그리고 성경 자체보다는 역사와 문화의 영향이 더 크다.
이 점은 루터교나 성공회, 근본주의 등 여타의 교파들도 다를 바 없다. 각자의 전통을 고수하더라도 모두가 합의 가능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인 ‘성경’ 외에는 합의 가능한 권위란 없다. “성경을 통해 그분과 그분의 뜻을 알고자 하는 회중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리스도만이 정당화된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Royal Priesthood, 225). 가톨릭의 공의회도, 자유주의의 근대라는 시간도, 지역적 특성과 문화적 성격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성경에 기초할 때에 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
둘째, 일치는 초국가적이다. 오늘날의 교회와 교단은 대개 종교개혁의 산물이고, 그 개혁은 콘스탄틴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선 왕이나 귀족, 시민 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개혁이 교회가 위치한 국가나 사회의 이익과 이해 관계와 결부되어 진행되었던 것이다. 가톨릭과 루터와 존 칼뱅, 츠빙글리 등이 대립하고 대결했지만, 이 점에 관한 한 같은 배를 타고 움직였다. 그 결과 신앙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고백서나 교리문답, 예전 등이 통치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직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회의 지리적 한계도 국가나 사회와 겹치게 되었다.
교회가 자신을 국가나 지역과 동일시할 때 갖는 문제점은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엄청난 인명 살상과 문화 파괴를 초래하는 전쟁은 반드시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국가와 결부된 교회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의 한 당사자가 되어 전쟁을 편들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국가를 적으로 상정하고 전쟁을 지지하게 되는 순간, 상대방 국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형제요 자매가 아니라 섬멸해야 할 원수가 된다.
요더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평화주의를 전쟁에 관한 단 하나의 입장으로 채택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 되라고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이 정당하건 부당하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교회의 일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콘스탄틴주의의 포로가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또한 예수님을 특정 국가의 경계와 한계 안에 가두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신앙의 정체성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책을 반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악한 집단이나 국가로 매도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10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셋째, 요더가 지향하는 에큐메니칼은 훈련(discipline)이다. 다시 말해 윤리적 실천과 삶이다. 종교개혁이 예배와 윤리를 동시에 가르쳤음에도 전체적으로 예배에 더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교회 안에서의 삶을 교회 밖에서의 생활보다 중요시했다. 그러므로 윤리적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긴 했지만, 윤리적 행위의 일치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치 운동이 제자도를 유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적 일치는 서로의 차이에 관한 토론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기독교적 일치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제자도의 결과다.11
그런 점에서 요더가 보기에 “교회 안에서 실제적 분열은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인종들, 동과 서의 사이에 있다.”(Royal Priesthood, 234). 이 고랑을 메우지 않는 한 교회의 하나 됨은 요원하다. 그것은 이론이기 이전에 실천이고, 제자도의 문제다.
간단히 언급한 이 원칙을 요더는 다른 곳에서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그간의 에큐메니칼이 교회의 지도자나 대표자들 중심이었다는 반성이 그것이다(Royal Priesthood, 232~41). 지역 교회보다는 교단 대표들이, 일반 성도보다는 목회자들이 대화를 주도했다. 그랬기에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문제들과는 거리가 있는 일치 운동이었다고 요더는 평가한다. 에큐메니칼 조직이 거대화되고, 관료화되었고, 교단과 교단의 상층부의 대화에서 그다지 진전이 없으며, 실제적인 지역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요더에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공동체고, 그 교회는 지역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가 실제적으로 일치에 참여하고, 연대를 모색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에큐메니칼 운동이다. 교회 연합 운동의 주체는 지역 교회여야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바울이 선언했던 하나 된 교회를 살아 있는 실재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더의 심중에 품은 교회 일치는 공통분모 만들기가 아니다. 단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통합은 불가능하다. 그는 잘라 말한다. “일치의 유용성은 직무와 행정의 차원이지 교회론의 차원은 아니다”(Royal Priesthood, 229). 이 말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현재 교회 분리는 조직이나 행정 차원이 아니다. 교회론의 차이라는 보다 깊은 원인이 있다. 그것을 조직의 통합과 같은 외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교회론의 차이를 간과하고 외적인 형식들 예컨대, 예배나 만찬, 직제를 통일시킨다고 해서 교회의 하나 됨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일치는 조직의 통일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자 원수와의 화해다.
“따라서 교회 일치의 기능적 의미는 사람들이 합의하는 것, 그리하여 함께 일하는 것에 있지 않다. 불일치가 있는 곳에 화해의 관점으로 함께 대화할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다”(Royal Priesthood, 292).
교회 안의 엘리트와 조직, 행정의 통합과 같은 공학적 접근이 아니라 교회들 간의 오해와 다툼을 서로 사랑과 용서로 화해하도록 돕는 신학적 접근을 그는 예외 없이 철저하고 일관 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 사례 1 : 전쟁
존 요더는 평화주의자답게 전쟁을 에큐메니칼 대화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한다. 전쟁이야말로 교회와 교회들 사이를 분열하는 실제적인 위협이다. 그럼에도 그간의 대화는 이 점을 간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과 에큐메니칼의 관련은 어색한 조합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쟁을 교회의 일치와 대화의 핵심 의제로 상정하는 것은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전쟁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인가?
그렇다. 루터교인이 루터교인을, 장로교인이 장로교인을, 침례교인이 침례교인을 죽이고 죽는 살상(Royal Priesthood, 180)은 그리스도의 몸을 죽이고 찢는 일이며, 그 몸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그 어떤 것보다 전쟁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핵심 주범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를 죽이는 것만큼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전쟁의 방지와 중지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요한 아젠다일 수밖에 없다.
대화와 일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은 신관과 교회론에서 심각한 걸림돌이다. 전쟁을 허용하는 신앙은 그가 믿는 바, 하나님을 우주적 하나님이 아니라 특정한 민족과 부족의 신으로 축소시킨다. 자신이 속한 국가와 민족의 이익과 이해를 옹호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다른 민족에게 그리고 그들 국가와 민족의 그리스도인에게 총칼을 겨누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만의 하나님으로 제약하고, 그들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고백은 우리 스스로가 갈라놓은 경계선 안에 하나님의 뜻을 가두지 않겠다는 말이다(He Came Preaching Peace, 23). 적대 국가라 할지라도, 그곳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서로 형제·자매다. 그럼에도 전쟁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국가의 우상화인 동시에 하나님을 부족 신으로 전락시킨다. 하나님보다 국가에 더 충성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하우어워스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하는 이들이 더 부족적 신관을 섬긴다고 일갈한다. 요더나 자신을 사회 일반과 격리된 게토화된 부족주의에 빠져, 분파주의로 돌아갔다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맞서, 교회보다 국가에 더 충성을 바치는 것이 부족주의라고 반박한다.12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을 고작 자신의 국가를 수호하고 방어하는 신으로 전락시킨 이들이야 말로 분파주의다. 하나님은 부족신이 아니다.
요더는 우리에게 묻는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하나님이라면, 다른 민족의 하나님도 되지 않겠느냐고.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국가의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을 때(당시는 로마가 교회를 핍박하는 국가였다), ‘국가의 권세’를 자신이 속한 국가에게만 주어진 권세로 한정했을 리는 결코 없다(He Came Preaching Peace, 24). 하나님을 부족의 신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교회와 교회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요더는 교회론으로 전환시킨다. 교회의 궁극적 목적은 민주주의의 발전은 보다 건강한 사회 건설도 아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의 민족이나 계급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 한 몸, 한 백성, 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가 사회이고(The Christian Witness to the State, 17) 국가다. 베드로가 말한 바, 거룩한 민족은 다름 아닌 교회다(He Came Preaching Peace, 22). 이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자매, 곧 가족이 되었다. 전쟁은, 그리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교회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장본인이다.
교회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라는 인종과 민족, 남자와 여자라는 성, 부자와 빈자라는 계급과 계층을 뛰어넘어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공동체다. 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된다. “기독교의 일치는 진정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다”(Royal Priesthood, 180). 이 국제주의는 인간적 이상이나 정치적 주권, 사회 문화적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피조물 전체를 화해시킨다는 점에서 참된 국제주의다. 또한 그것은 이미 성취된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지역 공동체가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카트라이트는 요더의 에큐메니칼을 진리의 보편성과 육화의 특수성이라고 정의했다.
시험 사례 2 : 침례
전쟁이 교회의 보편성 여부를 시험하는 외적 사례라면, 침례는 교회의 보편성 여부를 시험하는 내적 사례다. 전쟁은 교회를 넘어 한 국가 전체의 사안이다. 때문에 교회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침례는 역사적으로 교회들 사이에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그러므로 침례는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임이 틀림없다.
요더는 한편으로 침례교회를 파트너로 삼고 대화를 벌인다. 침례교회가 자유교회 혹은 신자의 교회 전통에 서 있다는 점에서 아나뱁티스트의 교회론과 상통함에도 불구하고, 침례교회의 이해에 몇 가지 비평을 가한다. 침례를 지나치게 상징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을 비판한다(Body Politics, 33). 이는 주의 만찬에서 ‘~이다’(is)를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다 보니 윤리나 사회적 맥락을 간과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보기에 침례교회는 침례를 근대적이고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Royal Priesthood, 270~72). 근대적이라 함은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주관적이라는 것은 외향적인 측면은 고사시키고 내향적인 면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침례는 세상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Body Politics, 33). 본시 침례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징으로만 해석할 때, 그것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WCC의 리마(Lima) 문서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그가 보기에 WCC는 소심하게도 침례가 그토록 격렬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에둘러 피해 간다(Royal Priesthood, 284). 또 하나는 유아세례를 지지하는 것에 반대를 표명한다. 칼 바르트마저도 명백하게 유아세례를 거부한 마당에, 그리고 그러한 추세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실정에 교회 간 대화를 위해 이 주제를 토론하는 것은 그리 합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침례를 일치의 문제와 연결한 것은 훌륭하다. “서로의 세례를 서로가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세례의 일치를 표현하는 중요한 표시이며 방법으로 인정된다. 가능하면 어디서든 교회들은 서로의 세례를 인정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명해야만 한다.”13 정녕 침례는 교회 일치를 가늠하는 잣대다.
그러면 요더의 생각은 어떤가? 요더에게 침례는 서로 다른 인종을 한 공동체가 되게 하는 사건이다(Body Politics, 34~35). 침례란 한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하나님 백성 됨의 조건에는 인종과 민족이 개입할 수 없다. 요더는 여기서 고린도후서 5:16~17, 갈라디아서 3:27~28, 에베소서 2:14~15가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기능은 동일하다고 본다.
바울이 말한 바, 고린도후서 본문의 ‘세상적’이라는 말은 인종과 민족, 성의 관점으로 예수를 보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는 원수가 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침례는 인종과 성,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교회의 보편성과 포괄성을 말한다. “침례는 의미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이야기가 통합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가 누구든지 침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됨으로 인정받는다. 양자 사이에는 갈등과 분열이 있었다. 침례는 한 개인의 구원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부를 화해케 한다. 그럴 때 침례가 종교개혁자들을 갈라놓은 의제가 아니라 오히려 일치시키는 성례전이 될 것이다.
멈추지 않는 에큐메니칼
요더는 복음의 급진적 보편성을 일관 되게 강조한 신학자였고, 실로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했다.14 복음의 보편적 의미와 교회의 일치를 깊이 이해했기에 자신을 보편을 추구한 신학자로 이해해주길 원한다.
그는 일각에서 자신을 소종파주의나 근대적 의미의 급진주의가 아니라 고전적(classic)이고 보편적(catholic)인 신학자로 봐주길 바란다(Priestly Kingdom, 8). 요더는 사회에서 퇴각하는 윤리학자가 아니요, 특정한 입장을 신적인 것으로 숭상하는 소종파주의자가 아니라 보편을 지향하는 한 그리스도인이다.
아나뱁티스트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요더의 성과는 그리 작지 않다. 그 결과를 그에게 헌정된 한 권의 책이 말해준다. 「교회의 파편화와 평화 만들기에서 교회의 일치」(The Fragmentation of the Church and Its Unity in Peacemaking)라는 책이다.15 이 책의 편저자들은 요더가 역사적 평화 교회(Historic Peace Churches)의 관점으로 평화주의 내부를 향해,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 양자에게 미친 영향을 술회한다.
이 책은 평가하기를 요더는 평화주의를 자기만의 언어에 갇히지 않게 해 주었고, 에큐메니칼이 전쟁과 비폭력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헌신하도록 유도했다. 그리하여 교회의 일치와 평화 만들기는 사도적 신앙에 뿌리 내린 공통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요더는 두 종류의 대화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기독교인들 사이의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비기독교인들과의 대화다(Royal Priesthood, 258). 전자는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대화로, 모두 기독교 신앙을 전제로 한다. 즉 예수의 주 되심과 성경에 대한 헌신을 기반으로 나누는 대화다.
후자는 ‘신앙간’(interfaith) 대화로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과의 만남이다. 전자와 달리 그들에게 예수는 인류의 수많은 선생들 중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이들과의 대화다. 그렇다면 이번 장에서 에큐메니칼 대화를 살펴보았다면, 다음 장에서는 선교와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요더의 생각을 들어볼 차례다.
註
1. Mark Thiessen Nation, John Howard Yoder: Mennonite Patience, Evangelical Witness, Catholic Convictions (Eerdmans, 2006), 77.
2. Mark Thiessen Nation, The Ecumenical Patience and Vocation of John Howard Yoder: A Study of Theological Ethics, (Ph.D diss, Fuller Thelogical Seminary, 2000): 8. Joon-Sik Park, “‘As You Go’: John Howard Yoder as a Mission Theologian, MQR 78(July 2004), 371에서 재인용.
3. Michael G. Cartwright, “Radical Reform, Radical Catholicity: John Howard oder`s Vision of the Faithful Church”, The Royal Priesthood, 1~49.
4. 안재웅, 「에큐메니컬 운동 이해」(대한기독교서회, 2006), 10~12.
5. James Wm. McClendon, Jr., & John Howard Yoder, “Christian Identity in Ecumenical Perspective: A Response to David wayne Layman”,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27:3(Summer, 1990): 562~65.
6. David Wayne Layman, “The Inner Ground of Christian Theology: Church, Faith, and Sectarianism”,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27:3(Summer, 1990): 480~503.
7.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회됨」, 문시영 옮김(북코리아, 2010), 185.
8. Michael G. Cartwright, “Radical catholicity: John Howard Yoder, 1927-97”, Christian Century, 115:2(January 21, 1998): 46.
9. McClendon, & Yoder, “Christian Identity in Ecumenical Perspective”, 561.
10. 짐 월리스, 「하나님의 정치」, 정성묵 옮김(청림출판, 2008), 47~48.
11. Lee C. Camp, “Restoration And Unity in the Work of John Howard Yoder”, Restoration Quarterly 44:1(2002): 8.
12. 스탠리 하우어워스·윌리엄 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김기철 옮김(복 있는 사람, 2008), 242.
13. 세계교회협의회 엮음, 「BEM 문서: 세례·성만찬·직제」, 이형기 옮김(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15항.
14. Cartwright, “Radical catholicity: John Howard Yoder, 1927-97”, 44~46.
15. Zimmerman, 227.
9. 선교론, 육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의 증언 |
선교사로 온 사람 존 요더가 선교사요, 선교신학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 자신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가 프랑스에 파송했던 선교사였다. 그는 1949년부터 54년까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전쟁 후 고통에 시달리는 프랑스와 프랑스 내의 메노나이트들의 구호와 사회 복지 사역을 전개했다. 바젤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알제리아 지진 구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귀국 후에도 약 12년 동안(1959~1970) 메노나이트 선교 위원회에서 일했다. 또한 요더는 선교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메노나이트 선교 위원회 탄생에 중요한 기여를 했고, 외할머니는 시카고 도시 선교회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요더의 어머니를 낳았다. 요더의 아버지 하워드 요더(Howard C. Yoder)는 러시아와 서부 유럽 등지에서 꽤 오랜 시간 선교사로 일했다. 그가 다녔던 교회도 선교 사역에 열심이었다. 그 결과 요더도 축호 전도에 앞장서곤 했다. 요더는 선교학을 가르쳤다. 그는 고센대학과 메노나이트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세계 선교 신학”, “에큐메니컬 갱신의 신학과 역사”, “선교적 전망에서 본 교회론” 등 선교학을 강의했다. 그래서 메노나이트가 파송한 나이지리아의 첫 선교사에게 글과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고, 나이지리아 현실에 잘 적용되고 있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요더를 통해 아나뱁티스트들이 에큐메니컬과 선교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함께 열린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더의 선교 신학은 크게 보면 교회론의 맥락에 정위된다. 박준식은 요더가 교회의 맥락을 강조하는 니버와 달리 내용에 치중한다고 말한다.1 니버를 기준점으로 보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요더에게 교회론의 맥락이 전혀 없다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구별된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할수록 다른 세상, 다른 교회, 다른 종교와의 관계 설정에 부심한다. 내용이라는 것도 기실 맥락을 배제한 채 이루어질 리 없다.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가 정체성의 판단 기준이다. 육화가 선교다 : 선교의 토대 요더의 선교론은 기독론에 근거를 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Priestly Kingdom, 43)라면 예수가 선교의 토대임은 당연하다. 요더가 말하는 예수는 특별히 이 땅에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다. “급진적 종교개혁자들에게 기독교의 윤리적 결단의 주요한 기본적인 판단 기준은 나사렛 예수의 인간성이다”(Priestly Kingdom, 116). 그 인간이 되신 예수가 윤리의 유일한 규범(「예수의 정치학」, 1장)이듯 선교에서도 기초다. 요더는 기독교의 진리 주장, 이 기독교 복음의 보편성(universality)이 특수성(particularity)을 통해 발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은 환원 불가능한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 완전하게 실현되었다. 예수는 복된 소식의 보편성을 전달하고 매개하는 구체적인 인격이고 이야기다. 하나님은 온전히 인간 예수가 되었고, 인간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처음부터 스캔들이었다(Priestly Kingdom, 46).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고, 그 인간이 하필이면 예수인가”라는 것이다. 신이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는 헬라인에게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그런 육화의 방식은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처사이고, 인간이 될 수 있고, 그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 다윗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촌사람 나사렛 예수의 등장은 도통 비위에 맞지 않고 거스르고 거리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더더욱 문제가 된 것은 오늘날의 다원주의 사회이다. 다원적 사회에서 예수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어떻게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또는 어떻게 특정한 진리를 공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가? 요더는 그 대답을 성경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다원주의 못지않게 다원적 사회가 예수 시대와 초대 교회였고, 신약성경은 다원적 사회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공적이고도 공개적으로 증언한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원성은 복음의 대적이 아니라 복음의 일부다(On Not Being Ashamed of The Gospel, 293.) 주목할 본문은 요한복음이다(Priestly Kingdom, 50~51). 그곳에서 예수는 로고스(Logos)로 선언된다. 육체성과 현 세계를 죄악시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완전한 신은 세상과 무관하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있게 하면서도 그 세상과 신을 연결하는 사다리의 끝에 있는 것이 로고스다. 그러나 그들에게 로고스는 신이 아니다. 요한은 그들이 사용한 로고스로 예수를 설명한다. 예수와 로고스는 동일하다. 그 의미는 이중적이다. 한편, 인간이 될 수 없는 신이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 되었다. 이 인간은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하고, 고난 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다른 한편, 로고스가 인간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으로 고백된다. 로고스, 곧 예수는 신이 아니면서 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유출(emanation)이 아니다. 여기서 요더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소통 가능한 방식을 본다. 예수는 로고스인 점에서 보편적 존재이고, 특정한 한 인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고, 신앙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종종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반은 틀린 말이다. 기독교인은 그냥 일반적인 하나님이 아니고 아들 예수가 ‘아빠’라고 불렀던 그 하나님을 신앙한다. 눈여겨보아 할 대목은 요더가 보편성의 발현으로 특수성이 아니라 특수성을 통한 보편 이해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특정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보편을 인식할 수 있다. 복음을 일반화하는 것은 구체성이 약화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행동 목록에 요구되는 윤리를 일반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에 의혹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모든 자연적 통찰력이 타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독교적 용어로 다시 한 번 말한다면) 우리가 인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구체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은 양자택일이 될 수 없다. 일반적인 것은 구체적인 것을 뺄셈을 한다고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Priestly Kingdom, 43).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일반화는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만든다. 기존의 자신의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기왕의 세계관에 너무도 편안히 잘 맞아떨어진다면 구태여 믿을 필요가 없다. 리처드 보캄은 요더와 마찬가지로 선교의 문제를 보편과 특수라는 얼개로 설명한다.2 성경의 하나님은 보편적인 동시에 특수하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편적이다. 동시에 한 민족,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은 특수하다. 그러나 성경은 양자를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한다. 성경은 공히 특수에서 보편으로 이동한다. 한 사람 아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에서, 한 사람 예수에서 땅의 모든 족속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이루어진다. “특수 없는 보편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교회의 선교는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이동이다. 요더는 육화된 예수에서 육화된 교회를 요구한다. 예수의 육화가 특수성의 스캔들이었듯이, 다시 예수의 몸인 교회 또한 특수성의 스캔들의 연장이다. 교회처럼 불완전하고 미흡한 공동체가 예수의 몸이라는 점은 어리석고 미련한 방식이다. 하나님의 구속이 예수 안에서, 예수에 의해서,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듯이, 지금은 교회 안에서, 교회에 의해서, 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교회가 선교의 매체이고, 선교가 일어나는 장소이고, 하나님의 구원과 현존을 증언하는 시공간이다. 대화가 선교다 : 선교의 방법 육화된 예수는 대화하는 교회를 요구한다. 추하고 어리석은 스캔들이기를 자처한 예수는 교회와 제자를 향해 육화된 선교를 말씀한다. 보편성을 지향해 구체성에서 시작한다는 점은 첫째, 보편의 이름으로 개별적인 것을 무시하는 콘스탄틴적 선교의 반성을 명령하고, 둘째,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선교 요청이다. 박준식에 따르면, 요더에게 타 종교와의 진정한 만남은 제국주의적 선교의 거부에서 시작해야 하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거나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3 콘스탄틴적 강제적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강제적 대화가 선교 방법이다. 대화로서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육화만이 아니라 다원적 사회가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분명 다원적 사회에 살고 있다. 나와 다른 너, 곧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너를 나로 만들려는 것이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면, 너와 나는 전혀 별개의 존재로 분리하는 것은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이런 두 극단은 선교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제국주의적 선교는 타종교를 무력과 금력, 곧 칼과 돈으로 제압하려는 반면, 상대주의적 선교는 현장을 상실한 채 소수 엘리트들의 탁상 담론에 그치고 만다. 먼저 콘스탄틴적 선교 또는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보자. 요더가 보기에 콘스탄틴주의는 선교를 왜곡하고, 방해한다. 종교개혁과 선교의 연관성에 관한 그의 논문은 왜 주류 종교개혁이 가톨릭과 급진 종교개혁에 비해 선교를 하지 않았는가를 성찰한다. 기존의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한 문헌적 검토를 마친 다음, 요더는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콘스탄틴주의를 겨낭한다(Reformation and Missions: A Literature Survey, 40~50). 종교개혁자들이 내부 개혁에 발목을 잡혀서 그런 것도, 가톨릭과의 투쟁에 치중하느라 그런 것도, 지상 명령을 사도의 시대에 국한시킨 것도 한 요인이지만 핵심을 비켜간 설명들이다. 국가에 종속되고, 지역주의에 매여 종교개혁 운동은 선교를 지향하지 못했다. 국가와 정부에 연결된 이상, 교회의 선교도 그것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가톨릭이야 이름 그대로 보편성을 지향했고, 그랬기에 국가에 종속되어 있어도 극복하기 쉬웠던 반면, 개신교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결부되어 있어서 교회의 타자성(Otherness)을 주장하기란 난망하다. 교회의 개혁을 왕이나 귀족, 또는 시의회의 도움을 받았던 그들로서는 의도하지 않았고 의식하지 못했으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요더가 보기에 국가와의 결합 외에 개인의 결단을 배제하는 유아세례(pedobaptism)가 선교를 가로막는 두 번째 장본인이다. 유아세례는 개인적인 신앙 결단을 무력화시킨다. 출생과 더불어 자동으로 교회의 회원이 되기 때문이다.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와 결단으로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표명한다는 것은 낯설 뿐만 아니라 타인을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은 더욱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칼과 돈의 힘을 곧 복음의 힘으로 환원했던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4 여기서 요더가 강조하는 바는 강제적 방식의 선교이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의 왜곡이다. 복음은 강제하지 않는다. “누구도 믿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Royal Priesthoode Survey, 256). 빛은 어둠을 몰아내지 않는다. 빛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어둠을 사라지게 한다. 빛으로 오신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는 어둠의 세상을 그저 따사롭게 비출 뿐이다. 비효율적인 듯해도 궁극적 승리에 이르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두 가지 반론이 있다. 박준식은 콘스탄틴주의를 거부하는 요더의 올곧고 일관된 논의에 우호적이지만, 그런 방식의 선교에도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5 그런 잘못된 선교를 통해서도 기독교는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제 3세계가 그러하다. 하나님은 오류 많은 인간의 방식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허나, 박준식은 간과하고 있다. 일부의 효과로 그것이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를 상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두 사람의 개종자를 얻고, 한 국가, 한 민족 전체를 통째로 이슬람화시킨 것이 콘스탄틴적 선교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 강조가 또 하나의 콘스탄틴주의가 아니냐는 것이다. 기독교 고유성에 입각한 선교는 혹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적 방식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여전히 기독교의 우위성을 기반으로 타 종교에 기독교를 강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예수의 육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예수 육화의 약화와 예수 육화의 철저화다. 존 힉(John Hick)과 같은 종교다원주의자는 예수의 신성과 육화를 가능한 한 약화시켜 타 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반면, 요더는 예수의 구체성을 보다 급진화할 것을 주문한다(Royal Priesthoode Survey, 258). 즉 이 땅의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낮은 자의 존엄을 존중하고, 종이 되기를 자처하고, 강제하지 않았다. 콘스탄틴적 선교에 대한 자기반성은 비강제적 선교 방식으로 대화를 선호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선교다. 이 대화는 한편으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유지한 자들과의 만남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대방의 인격과 존엄을 긍정한다. 이 양자 중 어느 하나가 약화되면 둘 다 무너진다. 정체성만 강조하면 제국주의로, 상대방 신앙의 존중이 과다하면 상대주의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구태여 복음을 전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선교와 대화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각각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만 오로지 타당하다”(Royal Priesthoode Survey, 255). 선교는 자기 정체성을 공고히 한 상태에서 비강제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가 선교다 : 선교의 매체 요더가 선교신학에 미친 가장 큰 공헌은 교회론이다.6 교회란 윤리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선교적 실재라는 점을 열정적으로 환기시킨 것이 존 요더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의 공동체로 형성하고, 세상의 공동체와 뚜렷하게 구별된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열방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은 성경의 핵심 이야기이거니와 요더의 선교신학의 정신이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의 창조다. 하나님의 일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백성을 부르시는 것이다. 교회는 신뢰할 만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신문사나 전화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화해의 메시지의 담지자(bearer)는 아니다. 또한 교회는 학교의 성과인 동창회도, 영화의 명성으로 모여든 극장 속의 관중처럼 그저 메시지의 결과만은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총체성으로 함께 부름 받은 남자와 여자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며,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바로 그것에서부터 개인적 회심과 선교의 대행 기관이 파생된다(Royal Priesthoode Survey, 74). 위 인용문의 다음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교회의 중심성”이 신구약성경에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말한 바대로 예수는 책을 쓰지 않고, 공동체를 만들었다.7 만약 예수의 의도가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전파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에 있었다면 달랑 책만 몇 권 남겼을 것이다. 그의 의도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증거하는 공동체에 있었기에 열두 제자를 불러서 그들을 사랑하고, 훈련시키고 함께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선교의 초점을 “모든 지역에 신자의 공동체를 창조함으로써 선교사의 직분을 마쳤”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교회로 모여서 북적거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다. 거듭난 백성들의 공동체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거듭난 백성들을 그 공동체로 불러 모으는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 그분의 의도다. 그래서 요더는 개인적 회심과 선교의 대행 기관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즉, 교회와 선교는 하나다. “요더에게 백성 됨과 선교는 분리될 수 없다. 각각은 서로의 진정성을 떠받친다.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기이한 백성’이 되고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이다.”8 교회가 구별된 공동체로 남아 있지 않으면, 그래서 세상이 볼 때에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참으로 희한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 선교가 이루어진다. 또한 선교로 나아가지 않는 구별된 모임은 게토가 되고, 선민들의 특권 집단이 될 것이다. 교회와 선교의 관련성을 좀 더 정치하게 설명하자.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교회가 선교의 전제 조건이다. 여기서 다시 요더는 교회가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예의 그 콘스탄틴주의를 언급한다. 국가와 민족, 지역의 특정한 자기 이익과 이해를 하나님 나라의 대의로 환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신적인 것으로 축복하고 일치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데, 아니 교회가 세상인데, 우리는 어떤 근거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로 초청할 수 있겠는가? 이를 요더는 실용적으로 말한다. 구별된 공동체 없이 어떻게 선교가 가능한가?(Royal Priesthoode Survey, 75) 선교의 정당성은 교회에 있다. 선교의 전제는 교회다. 둘째, 교회 자체가 선교다. 이것이 요더가 말한 “선교적 교회론”의 요체다(Priestly Kingdom, 54). 복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전도다. 복음이 곧 전도다. 그런데 복음은 정보가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러면 어떤 공동체인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세상과 화목하게 되는 것, 그것이 복음이고, 교회고, 전도다. 그러기에 요더는 단언한다. “신자의 공동체는 선교의 형식이다”(Royal Priesthoode Survey, 89). 교회가 세상에 보여 줘야 할 것은 교회 안에서 세상의 일체의 장벽과 장애들, 예컨대, 인종, 성, 국가와 민족, 계급과 계층 등 그가 가진 것으로 평가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사랑하는 공동체 됨이다. 성경이 말하고, 세상이 꿈꾸는 바로 그 교회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 평화 공동체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선교다. “복음 전도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거나 새로운 이념과 자아 형성을 하라는 부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롭고 총체적인 세상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라는 요청이다”(He Came Preaching Peace, 55). 그 새 세상이 다름 아닌 교회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교회는 사회 윤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교회가 사회 윤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9 이 말은 루돌프 불트만의 유명한 인간학 테제,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다”의 패러디다. 그러나 내용은 요더의 것이다. 이것을 다시 선교에 적용한다면, 이렇다. “교회는 선교를 하지 않는다. 교회가 선교다.” 극단적이고 과장된 말이다. 다양한 선교 사역 자체를 부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허나, 선교에서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우리가 전하는 바, 곧 선교의 메시지를 우리가 직접 살아 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런 공동체가 되는 것만큼 강력한 선교란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 됨은 선교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선교 자체다. 윤리가 선교다 : 선교의 내용 교회가 선교의 매체라면, 윤리는 선교의 내용이다. 요더는 북미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를 주 대상으로 제자도 없는 선교를 비판한다. 요더가 보기에 그들의 선교는 윤리와 분리된 선교를 한다(The Experiential Etiology of Evangelical Dualism, 449~59). 그 원인은 소위 교리와 윤리의 이원론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을 2단계로 구분한다. 중생하면 자동적으로 선해진다고 보거나 양육과 훈련을 강조하지만 복음에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윤리가 아니라 개종에만 초점을 맞추어 복음을 전한다. 이는 한편으로 윤리 없는 복음을 만든다. 이것이 본회퍼가 말한 값싼 은총이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산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은혜가 값없는 은혜라 하겠다.”10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윤리를 성경의 윤리로 각색한다. 다시 말해 선교사 자신의 모국의 문화와 윤리, 관습과 관행을 성경적인 것인 양, 그것이 복음의 일부인 양 전하는 우를 범한다. 실제로 선교 현장은 이전에는 맞닥뜨리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윤리적 도전에 날마다 직면한다(The Experiential Etiology of Evangelical Dualism, 456). 평상시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겠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 성장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요더는 윤리라는 잣대로 호켄다이크(Johannes C. Hoekendijk)와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의 논쟁에 개입한다(The Social Shape of the Gospel, 277~84). 호켄다이크는 선교에서 민족주의, 식민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의 위험을 경고했고, 맥가브란은 취지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교회와 사회의 격리를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요더가 보기에, 인종과 민족 간의 화해와 소통은 윤리적 측면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안이다(Body Politics, 36~40). 그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주목한다. 누가의 보도에 따르면, 사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사회 참여나 봉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메시지는 사회적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사회 윤리학이나 윤리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즉 두 개의 범주로 나눈 사람들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것이었다”(The Social Shape of the Gospel,” 282). 이런 점에서 리처드 헤이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당신이 사회를 개혁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부활의 능력이 당신들 속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공동체가 구성원 중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물질적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성령의 해방 역사의 가장 강력한 표식이다.”11 복음과 제자도는, 교리와 윤리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복음 자체는 윤리를 내포하고 있고, 윤리는 복음의 발현이다. 헤이스의 말처럼, 사도행전의 제자들에게서 보듯이 세상과 구별된 제자의 삶이 선교의 가장 강력한 표식이라고 우리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표식은 교회의 하나 됨이다. 요더는 크리스터 스텐달과 마르쿠스 바르트 등의 연구에 힘입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칭의를 재해석한다. 그 요체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은 개인의 죄책 사유와 더불어, 또는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계 회복이고,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칭의’란 바로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화평을 이루는 것’ 혹은 ‘막힌 담을 허는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378) 그러니까 하나님의 칭의에서 개인의 구원과 관계의 회복은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바울이 우리더러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선언했을 때의 본래 의미는 새롭게 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이다(To Hear The Word, 9~27). 실제로 초대 교회의 놀랄 만한 급성장은 전도와 선교와 그리 관련이 없다. 초대 교회의 설교나 문헌을 검토하고서, 알란 크라이더는 로마 제국 당시의 교회는 적어도 기독교인들의 매력적인 삶 때문에 콘스탄틴 황제가 회심하기 전에 계속해서 성장을 했다는 결론을 얻는다.12 예배는 매력적이지 않았고, 어떤 점에서 불친절했다. 오늘날의 열린 예배와 달리 아무나 쉽게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당시 박해받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교도나 초신자를 예배에 들이는 것은 화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이런 초대 교회의 정황과 함께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선교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윤리가 선교다”(Royal Priesthoode Survey, 81). 도덕적 행동 자체가 선교는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요더는 미국의 경험을 예로 든다. 공민권 투쟁이나 베트남 전쟁 반대와 평화 시위 등은 선교 메시지를 신뢰하게 만들고, 그것 자체가 복음 선포적 행동이다. 예수의 사역은 구두 선포와 더불어 축귀와 치유, 기적과 같은 행동을 동반했다. 결코 순차적인 것도 아니고, 전자만 제대로 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도 아니다.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선교와 윤리는 하나이고 동반자다. 평화가 선교다 : 선교의 목적 평화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의 총체적 결론이다.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원수지간이 되어 갈등과 대립, 반목을 일삼던 이들이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해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음이고, 우리가 전해야 할 궁극의 내용이다. 선교를 통해서 개종자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표식인 평화가 확장되고 성취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다. 선교에서 평화의 강조는 급진적 종교개혁의 전통과 유산이다.13 그것은 추론하건대 두 가지 요인이 겹친 것이다. 하나는 상황적이다. 주류 사회에서 쫓겨나 떠돌아다니며 마이너리티로 살아야 했던 그들로서 다수 집단과의 평화는 생존과 직결된다. 다른 하나는 복음적이다.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은 원수로 상징되는 불화가 예수를 통해 교회 안에서 화목하게 되는 것을 복음의 본질로 이해했다. 선교 역시 평화를 지향한다. 그렇기에 요더에게 평화는 소종파적 특이성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이다. 평화의 수립은 곧 평화를 저해하는 요소의 제거에 다름 아니다. 특별히 선교와 관련해서 평화의 적은 전쟁과 전쟁의 지지이다. 전쟁이 선교의 한 수단일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선교의 큰 위협이다. 실제로 필자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전쟁은 이라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강제적으로라도 이라크의 문을 열어 이슬람 땅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14 전쟁과 평화주의에 관한 요더의 생각을 살피는 곳에서 촘촘히 살펴보겠지만,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A Declaration on Peace, 53~78). 전쟁은 선교의 한 방편이 아니다. 도리어 기존의 기독교 인구를 줄이는 역효과를 초래한다.15 이라크 전쟁 이후 기독교 인구는 전쟁 이전과 비교해서 절반으로 감소했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기독교인들의 설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세기 초만 해도 중동에서 기독교 인구는 20%였으나 지금은 5% 미만으로 현저히 급감했다. 적대국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면, 그 하나님을 어떻게 신앙할 수 있는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기독교가 아니라 타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기독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전쟁과 선교는 분명히 관련이 있다. 전쟁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막는 걸림돌이다. 요더의 선교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예수의 육화에 근거한 비강제적 대화를 통해 평화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다음 이야기는 요더의 평화주의이다. 존 요더 하면 떠오른 것은 평화주의일 만큼 그와 가장 강력하게 결부되는 주제인 동시에 그만큼 논란거리다. 반목하던 세상이 교회 안에서 화목을 이루었다면 그 교회는 세상에서 평화의 공동체, 평화주의를 실천할 테니 말이다. 註 1. Joon-Sik Park, “Ecclesiologies in Creative Tension: The Church as Ethical and Missional Reality in H. Richard Niebuhr and John H. Yoder,”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92:3 (2003): 333~335. 2. 리처드 보캄, 「세계화에 맞서는 기독교적 증언: 성경의 눈으로 선교 바라보기」, 강봉재 옮김(서울: 새물결플러스, 2010). 3. Joon-Sik Park, “‘As You Go’: John Howard Yoder as a Mission Theologian,” Mennonite Quarterly Review 78(July 2004): 375. 4. Mark Thiessen Nation, JOHN HOWARD YODER: Mennonite Patience, Evangelical Witness, Catholic Convictions (Eerdmans, 2006), 105. 5. Joon-Sik Park, “As You Go,” 382. 6. 앞의 책, 370. 7. 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홍병룡 옮김(서울: IVP, 2007), 253. 8. Joon-Sik Park, 370~371. 9. Stanley Hauerwas, The Peaceable Kingdom: A Primer in Christian Ethics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3), 99 10.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허혁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5), 25~26. 11.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유승원 옮김(서울: IVP, 2002), 221. 12. 알렌 크라이더,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허현 옮김(서울: KAP, 2003). 13. Joon-Sik Park, “John Howard Yoder as a Mission Theologia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30:1(2006): 14. 14. 김기현, “한국교회의 악몽: 전쟁의 하나님,” 「공격적 책읽기」(서울: SFC, 2004), 235~36. 15. 조기원, “‘아프간전 부메랑’ 중동 기독교 수난,” 한겨레신문 2011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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