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문제는 문제인가 봅니다. 제가 "치매노인 돌보는 나의 동지들에게-팔순 시어머니 구순 친정아버지"를 출판한 후, 지난 주에는 여성중앙에서 인터뷰 하러 왔었는데 어제는 양희은 송승환의 "여성시대"에 보낸 나의 원고가 방송되었고 전화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어제 방송된 원고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8년 동안 모시던 시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8개월 여를 누워만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허리를 다치기 전까지는 89세의 나이에도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한 적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분이었다.
아침마다 2시간 가까이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생활을 하셨고 성당에서도 레지오활동을 하셨는데 그 말씀하시는 내용이 논리에 어긋남이 없어 레지오단원들도 시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남산에 있는 호텔에 가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올 정도로 멋쟁이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에는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하거나 카페트에 소변을 보는 등 평소의 시어머니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언행을 보이므로 드디어 치매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시어머니의 치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자녀들에 대해 끔찍한 욕설을 하거나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생떼를 쓰기도 하셨는데 그때는 그저 막연히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젊어서부터 공과금은 꼬박꼬박 제 날짜에 내셨고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온라인송금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미리 계주의 집으로 찾아가서 곗돈을 내고나서야 여행을 떠나시던 분이시다. 그렇듯 매사에 빈틈이 없던 분이었으므로 치매검사를 해보자고 말씀드려볼 생각도 못했지만 미리 알았더라면 신경과에서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랬더라면 말년에 그토록 우울해 하거나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 장례 이후에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친정아버지는 예전에 뇌경색과 뇌출혈을 경험한 바가 있어 정기적으로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당연히 치매증상의 진행정도에 따라 약의 처방을 달리 받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친정아버지의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가끔 옷을 입을 줄도 모르시고 마루에 있는 화분에 소변을 보시기도 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치매상태인 것은 아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오면 자신이 했던 일이 생각나 자괴감이 드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친정아버지가 변기에 대변을 보고 나서 공책을 뜯어 밑씻개로 쓰신 일이 있다. 변기가 막히지 않도록 그 종이들을 걷어내면서 친정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일을 벌이시면 내가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나도 괴롭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나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도복(道服)을 벗으면 지도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여든이 넘도록 유도를 하시던 친정아버지가 올해로 93세가 되셨다. 무서운 것, 힘든 것을 모른다는 것이 평생의 자랑이던 친정아버지가 어제 저녁에는 바지자락에 두 다리를 모두 집어넣고 “나, 이것 좀 입혀줘.”라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처럼 머리가 비상해도, 친정아버지처럼 천하장사 같이 몸이 건강해도 피하지 못하는 게 치매이고 보면 치매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치매가 어떤 경우에 잘 생기는지 관심을 가지고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생활습관을 버림으로써 가능한 한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보다가 일단 치매가 발생하면 그 진행을 늦추는 수밖에.
일본에서는 치매노인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그룹 홈(Group Home)제도가 있는데 이는 치매노인들이 공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밥을 같이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상적인 활동이 치매의 진행을 늦춘다고 한다. 나도 할 일이 있다, 나는 쓸모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존감이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룹 홈’은 치매환자만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양로원’과 다르고,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인보건시설’이나 ‘간병 요양형 의료시설’과도 다르다.
그룹 홈에 입소할 경우, 노인 한 사람이 부담할 돈은 방 임대료, 식비, 간병비를 포함하여 한 달에 약 12만4000엔(약 124만원). 그러나 이 경우 간병비의 90%를 국가가 부담해주고 있다.
치매환자들을 위한 범유럽 지원단체인 ‘알츠하이머 유럽’은 나라별로 67~95%의 환자들이 집에서 간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병세가 크게 나쁘지 않으면 가족과 함께 지내며 최대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게 병세 악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병든 노인의 수입과 병세 정도에 따라 최하 49유로(약 6만5000원)부터 최대 1148유로(약 152만원)까지 매달 수당이 지급된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또 치매 환자들이 정상인처럼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전용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치매에 걸렸을지라도 그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하여 생존이 아닌 생활에 초점을 두는 국가시스템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노인이 가족들의 짐이 되어 자식들에게서 학대받으며 살거나 버림 받는 일이 적지 않고 혹은 노인 스스로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일도 많다. 자살인구 중 1/4이 노인이라고 할 정도이다.
여성시대 애청자들의 목소리가 모아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치매노인문제를 각 가정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지원을 하는 시스템 확립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노인을 모시고 있는 가정에서는 평소와 다른 점이 보이면 조기에 전문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내가 시어머니를 모실 때에 겪은 시행착오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치매는 불치병이 아니므로 적절한 생활지도와 약물치료로 발병 혹은 악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 진찰이나 진료를 받게 해드리려고 해도 치매환자 본인이 자신은 괜찮다고 우기면서 완강하게 거부하는 수도 있지만 잘 설득하여 전문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좋다.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도 평소에 접하던 환경과 대인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평소와 다른 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감정이 무디어지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옷도 단정치 못하게 입고 대화는 더 느려지고 말수도 줄게 되며 구부정한 자세로 종종걸음을 걷게 된다.
국내에서도 처방 가능한 치매 치료제는 4가지가 있는데 이 약들은 모두 기억에 관여하는 물질의 농도를 증가시킨다. 비록 완치는 어렵지만 치매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나 초기에 사용해야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또 치매노인을 모시고 있는 가족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특히 노인을 돌보는 책임을 떠맡은 이들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집이라는 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가능하면 늦게 들어가고 싶어질 정도이니 가끔은 짧게라도 여행을 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나머지 형제들이 대신 노인을 돌보아주든지, 아니면 돌보아 줄 사람을 사서라도 치매환자가족이 쉴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한다. 치매노인에게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공평하게” 하자고 자식들이 돌아가며 모시는 것은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키는 셈이다.
치매환자가족들이 노인을 돌보다가 한계에 이르는 경우에는 요양시설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입소하는 노인도 만족하고 보내는 가족도 안심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은 적어도 월 1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어지간한 4인 가족의 한달 생활비에 버금가는 금액을 노인 한 사람에게 지출할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가정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 않는 나머지 형제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치매노인수발을 맡겨놓고 노력봉사도, 금전적 기여도 하지 않은 채, “노인에게 잘 하면 나중에 복 받을 것”이라고 듣기 좋은 말만 해놓고 뒤로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말 짜증난다. “그 복을 당신이 받지 그래?”라고 되받아치고 싶을 지경이다.
노인에게 치매증세가 보이면 아예 발길을 끊어버리는 형제도 있다고 들었다.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다가 무슨 역할이라도 맡게 될까봐 그런다는 것이다. 그 심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세상만사 심는 대로 거두는 법. 그런 결정을 내리는 부부는 서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으며 그런 부모를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신의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거든 학군 따라 이사 다니는 것 보다, 유명학원에 보내는 것 보다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본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일이다. 부모가 반듯하게 살면 자녀들도 반듯하게 자라고 혹 엇나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시어머니를 모실 때나 장례식 이후의 일 처리 과정에서 머리에 쥐가 날 만한 일이 있었지만 궂은 일이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은 그간의 경험을 엮어 생전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첫댓글 어렵고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하신것 같네요.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앞으로도 이런 일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께 정신적인 위안이 되는 글 많이 올려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