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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12월 4일인가,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기념으로 통영에 마라톤을 갔다와서 강남마라톤 클럽에 홈페이지에 쓴 글인데 우리 동기카페에 가입한 기념으로 올립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 떠도는 개인적인 소회입니다.
-고향 , 통영
상처입은 용, 토지, 꽃, 행복의 공통점은?
윤이상과 박경리와 김춘수와 유치환의 공통점은?
통영입니다.
딩!동!댕!
그렇습니다.
그분들과 나는 그렇게 연관되어 있습죠.
고향이라는 연대감과 함께 바다 문화의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고향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석하였다.
전국적으로 갑자기 폭설이 내렸지만 내 고향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따뜻한 날씨였었네.
하프를 달리고 나서
호동식당에서 복국을 한 그릇하고 산양일주도로로 향한다.
달아공원에서 보이는 쪽빛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
한국에서 전라남도 신안군 다음으로 섬이 많은 다도해를 이루며 대부분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해당하는곳.
유인도 41개, 무인도 109개의 총 150개의 섬이 있다.
신안군은 유인도 111개, 무인도 719개 등 830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섬의 수가 국내 전체 섬의 약 25%를 차지한다는데 각설하고.
나의 친구는 오곡도에 토담집을 짓고 서울에서 주말에 내려와서 낚시 하고 쉬다가 상경한다.
쉬는게 아니고 실제로는 술에 골아 떨어지다가 올라가는게 맞을것 같다.
어렸을 때 매일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이 싫었다.
소고기는 명절에만 잠깐 맛보는 정도였고 항시 바다의 생선이 주메뉴였었다.
지천으로 깔린게 생선이었고 그게 제일 저렴했기에, 그리고 아버님께서 생선을 좋아하셨기에 준비할게 그것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은 가장 먹고픈것이 그때 그 생선들이다.
음식에 기교는 없었지만 싱싱한 원재료로 만든 바닷가 음식은 맛이 좋았었다.
이제는 그 때 어머님이 금방 금방 준비해주시던 그 생선음식을 먹고싶은데.
짜고 칼칼한 맛들이 그리운데.
볼락어, 미기국, 장어국, 도다리쑥국에 멸치쑥국이 보고 싶은데.
어머님은 이제 그 재료를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버님과 아들한데 생선 요리를 하시는게 많이 힘드신 할머니가 되셨다.
정말로 먹고 싶지만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나의 고향동네 토속적인 음식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강원도에서 충무시 현재의 통영시로 전학을 온 내게 바닷가는 궁벽한 산골과는 다른 동네였다.
먹거리에 여유가 있고 시골이 아니고 도시로서 활기가 넘치고 부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악동들의 세상도 신이 났다.
여름방학이면 하루종일 집앞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고 겨울에는 연싸움을 위헤 백사를 멕이고 연을 주으러 누런 콧물을 훌쩍거리며 뛰어 다니고.
강원도 촌놈에서 신속하게 충무 새터 낭까이가 되기에는 반년만 필요했었다.
통영은 아버님과 어머님의 고향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대로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곳곳이 이순신 장군의 전승지이고
남해의 청정해역을 끼고 수산업이 발달한 도시였고
훌륭한 예술가와 문인들이 배출된 곳이었다.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박경리, 김형근, 전혁림, 그리고 나의 외삼촌인 화가 이한우님까지.
-바다, 부모님의 고향
이곳은 바다를 빼면 앙꼬없는 찐빵이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누가 여길 바다랬나?
김약국의 딸들 무대에 이르기까지.
쟁반에 담긴 쪽빛 뉘가 여길 바다랬나!
멀리 구름 밖에 겹겹이 포개진 것
그린 듯 고운 아미에 졸음마저 오누나.
이제 막 솟아오른 반만 핀 꽃봉오리
잠길 듯 둥근 연잎, 떠 있는 물굽이로
잔잔히 흐르는 돛대 나비 되어 숨는다.
어미소 곁에 노는 귀여운 망아지 떼
송아지 뒤따르다 돌아보는 얼룩말을
점점이 꿈을 먹이는 푸른 벌판이구료 - 김상옥의 다도해
농촌에서 모두가 대지를 닮듯이 여기에서는 당연히 바다를 닮는다.
바다는 자애로움과 분노의 이중성을 갖고 있는 무한대의 자원이며 공포스런 재해이다.
너무나 무서우면 그 다음날의 바다는 반드시 평온해진다.
모두가 그런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바닷가 사람들이 되고 이 바다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양명한 바다 덕분에 훌륭한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것은 당연하다.
또 이순신 장군이 전국에 있는 예인들을 불러모아 전쟁을 준비했기에 그 후예들의 솜씨가 전승되어 통영갓, 나전칠기, 누비이불등이 유명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들.
국풍81때 일약 유명해진 충무김밥도 밥과 반찬을 분리시킨 김밥의 전형에서 벗어난 파격을 보여준다.
여기는 적당히 오만하고 적당하게 겸손한것 같다.
-변화와 이별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시다가 고향에 정착하시다가 연로해진 지금은 다시 고향을 떠나 서울 근교에 두 분이 계신다.
교사이셨기에 쉽게 고향을 뜨셨는지는 몰라도 나도 아버님처럼 고향다운 고향을 잠시만 맛보고 객지를 떠돌아 다니다가 어느덧 나이 오십을 바라보게 된것이다.
할아버지 처럼 어부가 되었다면 어촌마을에서 바닷사람이 되었을텐데 아버님처럼 바다 고향을 떠나서 고향에 있지 못하다.
나는 노후에 어디에 있을까?
아버님처럼 자식곁의 서울에 있을까?
할아버님처럼 통영의 갱문가 바다에 있을까?
예전에 통영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명절때 고향을 간다는 것은 즐거움과 고통이 반반씩 섞여있는 기나긴 여로였었다.
이제는 교통이 편해져 명절 때 10시간 이상 고생하며 가지 않을 정도가 되니까 정작 부모님은 자식곁으로 올라오신 고향을 떠난 슬픈 사람이 되어 귀성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유폐된 부모님께 보호받던 나는 갑자기 보호해주는 아들이 되어야 했다.
충무도 변하고 나도 변하다.
북신만이 매립되고 죽림도 매립되었다.
그 위로 고속도로의 교각이 세워지고 골프연습장, 자동차 운전학원에 러브호텔이 우후죽순처럼 피어난다.
고층 아파트가 있어 햇살 밝은 동네에 영구 응달도 생기고 산복도로도 생겼다.
산양일주도로변에도 여느 관광지처럼 가든이 있고 별로 이뻐 보이지 않는 간판들이 동백나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고등학교때 마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뒤에 충무에 도착하면 북신동에서 바라보이는 경치는 어린 마음을 황홀하게 해 주었다.
석양에 물든 바다, 점점히 떠 있는 굴 양식장의 하얀 점들의 반복이 주는 질서들이 너무나 아름다왔지만 이곳이 다 매립이 되어 옛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그림이 되었다.
센티하지 않아도 누구나 하염없이 바라본 바다는 그저 좋았고 아름다왔다.
마라톤을 산양일주도로에서 한 번 하면 매니아들이 좋아할텐데 하는 생각이었는데 중부고속도로 개통 기념으로 고속도로에서 한다고 한다.
질주한다는 의미에서는 맞는지 몰라도 통영의 마라톤은 통영의 경치를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함이 옳다고 본다.
시대가 변해 수산업이 힘드니까 통영도 힘들게 되어간다.
주 산업인 수산업이 다 죽어버려 이제는 무엇으로 먹고 살까?
나의 사촌형님들. 외삼촌들의 얼굴에는 바다와 함께 한 고단한 수심이 가득하다.
한때는 여수와 더불어 밀수의 사각지대에서 돈도 잘쓰고 사치도 심하다는 비아냥도 받고
양반 동네가 아니라고 원문고개에서 양반들이 갓끈을 풀고 왔다고 하는 동네.
조야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바닷가 사람들의 앞날에 무거움이 커져만 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성호와 종만이 형님이 안타까운 농촌의 실정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저리의 영농자금을 이용하다가 끝내 상환하지 못하고 논과 밭을 도회지것한테 빼앗기고 그들의 소작농으로 갈 수 밖에 없다니 정부관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연근해 양식도 중국에 밀리고 치어를 키우다가 이제는 성어를 들여온다고 하니 대대로 내려온 어민들의 밥벌이는 나날이 힘에 겹다.
고향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고향을 떠난 부모님, 항시 실향의 아쉬움을 지고 사신듯하다.
나도 도시 사람이고 애타게 고향을 그리는 마음도 적고 유년시절을 추억하는 정도이지만 우리 애들은 어떤가?
아파트 몇 동 몇호가 고향이고 학원과 컴퓨터가 그들의 놀이터이고 공부가 아주 중요한 일과일 수 밖에 없다.
땅을 닮으라 할 수도 없고 바다를 닮으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아이들에게 윤이상과 청마가 무슨 의미이며 바다의 태풍과 1차 산업의 힘겨움이 아이들 일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
바다가에는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꽃이 있다.
겨울 동(冬)자를 써서 동백꽃이다.
해풍을 벗하며 피어나는 이꽃은 툭 떨어지는 품새가 사내 답다고 하기도 하고 불길하다고도 한다.
생생한 꽃이 어느날 툭 떨어지면 장렬한 낙화라고.
두터운 초록의 윤기나는 잎새에 피어나는 붉은 꽃은 화려함보다는 강인함과 처연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벌과 나비가 아니 동박새가 수분을 일으키는 국내에서 유일한 조매화이다.
라트라비아타의 리골레토는 한달에서 25일은 흰동백, 5일은 붉은 동백으로 사내들을 유혹한 서양의 동백아가씨이다.
이미자가 부른 우리나라의 동백아가씨는 왜색조라고 하여 방송금지된 적이 있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네......."
시커멓게 그을린 어부들이 이 꽃을 그렇게 좋아한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좋아하시는 꽆이지만 이 녀석을 고향을 떠나 바닷바람이 맞지 못해 1년만 꽃을 피우고 죽었다
청마도 가신지 40년 가까이 되고
상처받은 용, 윤이상님이 베를린에서 가신지도 벌써 10년
작년에 김상옥님도 가시고
올해는 "꽃"의 김춘수님이 분당에서 작고하시고
박경리님은 얼마전에 8순잔치를 조촐하게 하셨다.
출향인사들이 생전에 고향과의 이별을 하고 이제는 영원하게 이별을 하는 중이다.
그러고보면 고향도 영원하지는 않은것이고 잠시 거쳐가는 곳이란 사실이다.
나의 부모님도 거쳐가셨고
나도 거쳐갔었고
그러면 고향이 변하고 쇠락하고 하는것이
동백곷이 후두둑 장렬히 떨어지는것이
모든 이들이 황혼을 맞으며 죽는다는것이 슬플 이유가 없는 것이리.
“쇠약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 알려 주는 시계와 같다. 노년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노인들을 탓하지 마라. 삶의 활력을 소진시킨 것은 노인의 육체가 아니라 젊은이의 육체다.”
-시간의 이빨에서
첫댓글 영기야!!! 좋은글... 다시 한번 통영 향수를 느끼게 하는군...감솨!!! 난 이번 주말 할머님 제사(18일)라 통영간다... 시간내어 고향 향수를 많이 맡고 오리라!!! 활력소 재충전도 될거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