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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1980년) -박완서(朴婉緖)
<2005년 9월 3학년 평가원 시험출제>
● 줄거리
5남매의 어머니인 '나'는 "나만 없어 봐라. 집안 꼴이 뭐가 되나?" 하는 식의 안주인이다. 이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상사들이 하나같이 '나'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자라고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집안에서 일어날 사고의 인자들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타성화된 섬뜩함에서 차츰 벗어나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농장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나'가 여지껏 경험한 섬뜩함 중에서도 최악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친정어머니가 폭설로 미끄러운 빙판 길에서 넘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친정어머니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했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병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비정상적인 강단과 근력을 보이다가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어머니는 그 착란 증세 속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 실어증에 걸린 데다 유혈이 낭자한 채 비극적으로 죽어간, 한 맺힌 일들을 다시금 되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곱게 늙으신 외모와는 달리 가슴 속 깊이 원한과 저주를 묻고 살아온 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빠의 비극적 생애 때문이었다.
6.25 전 오빠는 한때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오빠는 적 치하의 서울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었다. 오빠는 전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도덕적 열패감에 괴로워했다. 또한 그는 수도를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가 버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 고독 등으로 몸부림쳤다.
오빠는 이웃의 고발로 끌려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인민 궐기 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에 지원하였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나는 혜택을 누렸었다. 그러나 석 달 만에 세상이 바뀌자, 우리 집은 빨갱이 집으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이웃의 극심한 박해가 뒤따랐다.
1.4 후퇴로 인해 오빠는 다시 돌아왔다. 피난이 어렵게 되자, 어머니는 서울에 와서 처음 말뚝 박은 산비탈 달동네로 피난했다. 그러나 은신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오빠는 인민군의 출현으로 실어증까지 보였다. 인민군은 오빠의 신분을 캐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어머니는 오빠의 행동을 선천적인 정신 불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민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오빠는 정말로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빠는 다시 후퇴하는 인민군 보위 군관에게 총상을 당한 뒤, 실어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유혈을 낭자하게 흘리며 죽었다. 어머니는 오빠의 시신을 화장하여 이북 고향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것은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6.25의 비극과 분단에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아직도 투병중인 어머니는 오빠의 화장과 똑같은 방법의 사후 처리를 '나'에게 부탁했다.
● 핵심정리
▶갈래 : 중편소설, 연작소설
▶성격 : 실존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 시간-6.25 전쟁. 공간-서울.
▶주제 : 6.25의 비극과 분단 고통의 극복 의지.
● 등장인물
▶나 - 주인공. 평범한 가정주부. 조부모와 함께 개성 근방 시골인 박적골에서 살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여덟 살부터 서울 생활 시작. 오빠의 처참한 죽음이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1남 4녀를 둔 평범한 가정 주부. 어머니에 대한 애증(愛憎)의 갈등을 겪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즈음하여 거의 완전한 이해에 도달한다.
▶친정 어머니 -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서울로 데려가 교육시키며 억척스레 살아온 여인. 아들에 대한 믿음은 거의 신앙 수준. 따라서 아들의 죽음은 평생의 한으로 작용한다.
▶오빠 - ‘나’보다 열 살 위. 행방 직후의 좌익 활동. 이후 신념에 바탕을 둔 전향. 그러나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이해와 감상
<엄마의 말뚝>은 중편소설로 1980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작(連作) 소설이다.
6.25로 인해 이산된 한 가족이 겪은 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대의 서울을 병치시켜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 속에는 박완서의 작가 의식이 큰 줄기를 차지하는 분단의 극복 의지가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서 분출되고 있다. 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우리의 삶 속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로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점을 작가는 한 어머니의 정신 착란의 외피 속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몸소 분단의 희생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와 닿게 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과 민족의 관계가 오직 가족사 속에서 깊이 파악됨으로써 추상적이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분단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능력이 남다른 경지임을 보여 준 것이다.
1980년 9월 <문학 사상>에 1부가, 그 이듬해에 2부를 발표하여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3부작으로 되어 있다. <엄마의 말뚝1>은 일제 시대에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고향을 떠나 어린 오누이와 함께 서울에서 억척과 의지로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엄마의 말뚝2>는 어머니의 사고와 입원을 계기로, 전쟁과 오빠의 비참한 죽음을 회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엄마의 말뚝3>은 사고 뒤로도 칠 년을 더 살다 간 어머니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손자의 주도로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박완서의 이 소설은 그의 소설 속에 자주 소재가 되고 있는 한국 전쟁이 배경이 된 작품이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한국 현대 문학사의 큰 흐름을 지배하고 있음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이 남성 작가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여류 작가는 그것만으로 돋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인간성의 파멸 등 대부분의 주제와 익히 만나 왔다. 이 작품도 그런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생활감으로 포착한 한국 전쟁의 폐해는 잔잔하면서도 강한 설득력을 지닌 채 전쟁의 실상에 접근하게 한다.
많은 한국 전쟁 소설이 지나친 이념 대립이 강조되거나, 이 이념 대결의 연장선에서 계속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박완서의 작품은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념 대결의 갈등이 그렇게 첨예하게 부각되어 있지도 않고, 아픔의 책임을 전쟁으로 돌리는 구호적인 외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서 여전히 배어 있는 그 아픔의 깊숙한 체험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는 여전히 어머니와 오빠의 이야기이다. 오빠는 과거 한국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전해 준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처참한 최후를 맛본 비극의 주인공이다. 전쟁의 폐해는 오빠가 겪게 되는 심신의 고통으로 구체화되는데, 이념에 희생되는 개인뿐만 아니라, 이웃의 비인간적 행위에 의해 설상가상으로 겪게 된 아픔까지 그리고 있어, 인간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전쟁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인간들의 행위 또한 하나의 문제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런 이웃들과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오빠는 처참한 모습으로 망가지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이다. 어머니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종교'와 같은 대상이었다. 그 종교가 자신이 목격하는 가운데 무너지는 아픔을 맛보았기에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죽음에 당도한 아들을 부여잡고 처절하게 악귀들과 맞서던 그 날의 한은 이제 자신의 죽음에 당도해 되살아난다. 어머니는 그 날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날의 한은 어머니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무서운 기억으로 30년 넘게 붙잡아 온 것이다. "내 어머니의 오지에 감춰진 게 선과 평화와 사랑이 아니라 원한과 저주와 미움이었다는 건 정말 너무했다."고 화자는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이 점에서 화자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각된다. 여기서 '나'는 일상에 매몰되어 버린, 그래서 자신의 세계에만 침잠해 있는 소아적 자아로 그려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의 시대를 한으로 안고 살아온 반면, 화자는 자기 핏줄의 비극을 일상의 평화에 묻어 놓고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화자는 결국 어머니의 낙상을 계기로 어머니와 같은 삶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에의 안주로 상징되는 역사 의식의 매몰을 비판하고, 역사적 물음과 사회 의식에로의 전화를 작가는 기도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나'와 같은 우리는 바로 30년 전의 아픔을 아득히 잊고 현재의 평화와 풍요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 아픔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제약하고 있는 깊은 뿌리이며, 우리의 삶의 '오지'에 드리우고 있는 한이다. 일상의 평화에서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역사적 비극을 이제 우리는 되살려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이 아픔과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한국현대소설 제대로 읽기. 송승환]
● 연구문제
1. 이 작품의 서두는 주제와 별 상관없는 듯이 보이는 사건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플롯을 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서두에서는 화자의 일상사가 펼쳐지는데, 그것은 중년의 안정을 획득한 가정주부의 소시민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역사의식과 같은 심각한 태도를 지닌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이 동떨어진 삶에서 역사의식에로의 전환 촉구가 바로 이 작품이 노리는 주제 의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의도라고 하겠다.
2. 마지막 대목에 '투병 중'이라고 말한 진정한 의도를 생각해 보자.
▶ 어머니의 병은 겉으로는 골절 후유증이지만 내면으로는 한국 전쟁 증후군 증상이다. 따라서 어머니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앓고 있는 병은 한국 전쟁의 한이다. 그 한이 어머니에게 여전하듯이 우리 사회에도 여전한 아픔의 하나로 치유되지 않고 있다.
3. '나'가 어머니의 삶에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 '나'는 자신과 가족의 삶에만 몰두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그런 만큼 친정어머니에게까지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머니의 낙상이 계기가 되어 의례적 차원에서 방문하게 되고, 자식의 의무로 간호를 한다. 어머니가 지난날의 한을 떨치지 못하는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 화자도 그 때의 어두운 시절을 상기하며 어머니를 이해해 간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빠의 뼛가루를 북을 향해 뿌려 주었던 그 일을 화자가 맡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에로 합일한다.
4. 제목이 된 '엄마의 말뚝'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자.
▶ '말뚝'은 견고하게 박힌 기둥이란 뜻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제거될 수 없을 정도로 못 박혀 있는 일이란 아들에의 사무친 한이다. 어머니는 한평생을 그 한으로 버티며 살아온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오빠라는 말뚝에 묶인 삶이었다.
5. 어머니의 완고한 성격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는지 생각해 보자.
▶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악귀들과 맞서며 버텨 왔다. 어머니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준 요인은 다름 아닌 이념 대립이었다. 이념의 갈등은 아들의 생명을 위협했고, 아들에의 집착은 그 이념 갈등에 대한 증오로 변해 어머니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한을 풀지 못하는 한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념 대립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6. 어머니의 화장을 시켜 달라는 말에 스며있는 한(恨)의 정체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아들에의 완강한 집착의 표현이다. 아들의 뼛가루를 고향으로 부는 바람에 날려 보냈듯이 자신도 그렇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저승에서나마 고향과 아들에게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머니의 한은 이렇게 오랜 기간을 두고 응축되어 온 것이다.
● 박완서(1931~) 한국 전쟁과 분단 문제, 물질 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 비판을 사회 현상과 연관해서 작품화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나목(裸木)」,「배반의 장미」,「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