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정의한다면 "TV애니메이션의 폭발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대 극장용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토에이 동화를 비롯한 많은 소규모 제작자들이 TV 시리즈물의 상업적인 매력을 인지하고 다량의 작품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동원된 것은 기존의 인기를 쉽게 등에 업을 수 있었던 만화 작가와 그들의 원작 만화였다.
1960년대의 선발대였던 테즈카 오사무와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물론 <내일의 조>(1970)의 치바 테츠야, <루팡 3세>(1971)의 몽키 판치, <마징가 Z>(1972)의 나가이 고, <바벨 2세>(1973)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도라에몽>(1973)의 후지코 후지오, <우주전함 야마토>(1974)의 마츠모토 레이지, <캔디 캔디>(1976)의 이가라시 유미코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당대 인기 만화 작가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다각도로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이다. 또한 만화가들이 그려낸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원작으로 사용됨으로서 애니메이션도 이전까지의 비슷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SF, 판타지, 순정, 괴기, 로봇, 탐정, 스포츠 등 작품의 성격이 뚜렷한 다양한 장르를 형성해간다.
그리고 이런 TV 애니메이션들은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극장용 작품으로도 만들어지게 된다. 특히나 영화 <스타워즈>(1978)의 빅 히트에 의해서 세계적 으로 우주 SF이야기가 크게 유행하던 1970년대 말에는, 마츠모토 레이지가 제작에 참여한 극장용 장편 <우주전함 야마토>(1977)와 <은하철도999>(1978)등의 작품이 예상하지 못했던 초유의 대흥행을 거두면서 이른바 '아니메 붐'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음반이나 캐릭터 상품, 관련서적 등이 인기리에 발매되면서 애니메이션의 상업성이 부각되었고 일본 사회내에서 애니메이션의 존재도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아니메 팬'이라고 불리는 층을 형성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주목할 만한 만화가들의 활약에 비해서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아직 자리를 잡는 단계였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의 특성을 살린 작품은 나오지 못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그림만이 움직인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몇 애니메이션 작가가 만든 작품들은 독창적인 창작력으로 시선을 모으며 아니메의 미래에 밝은 전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츠노코 사의 작품들이 그 중 대표적인데 <과학닌자대 갓차맨>(1972)의 제작에 참여했던 토리우미 히사유키는 가장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SF 장르에서 실사영화에서 쓰여지는 연출기법을 과감히 활용함으로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인 실사영화적 리얼리티의 기반으로 닦아 놓게 된다.
또한 테즈카 오사무의 제자 중 한 명인 토미노 요시유키가 중심이 되어 1977년에 설립한 선라이즈 사도 아니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구시대의 권선징악과 단순 영웅주의적인 스토리 구도를 깨고 좀더 진화된 로봇 대하드라마 <기동전사 건담>(1979)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미노가 보여준 신세대를 향한 발상과 실사영화적인 연출은 이후 수많은 작품에 우성인자처럼 유전되어 간다. 반면에 같은 로봇류의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영화적인 시각보다는 더욱더 과장된 만화적 테크닉을 발휘하여 로봇물의 전통 스타일을 한층 발전시킨 카나다 요시노리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작가였다.
한편 만화를 피해서 동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새로운 애니메이션 노선을 일구려는 노력도 있었다. <집 없는 아이>(1977), <보물섬>(1978)등 토쿄무비신사의 명작 노선을 만든 데자키 오사무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등 닙폰 애니메이션 사의 명작 노선을 이끈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특히 미야자키는 1978년에 <미래소년 코난>이란 히트작을 내놓아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무거운 주제의 애니메이션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와같이 TV 시리즈의 번영은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로 볼 때 양적인 팽창을 가져왔으며 그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애니메이션들은 점점 질적인 팽창으로 그 방향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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