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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그리고 음악 스크랩 첨밀밀의 대만 여가수 등려군에 대하여
나미 추천 0 조회 81 10.01.09 09:2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1995년 5월 8일 중국인들 마음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던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던태국의 한 호텔에서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중화권 모든 국가는 놀라움과 함께 애도의 슬픔으로 가득했다. 사망 당시 그녀의 나이는 42세 우리 나라에서도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금보산 묘역에 영원히 안치되었다. 수정관에 넣어져 참배객들에게 공개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참배객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등려군의 사후 수정관에 넣어져 참배객들에게 보여졌던 모습 수정관 속의 등려군 모습으로 세인들의 뇌리 속에 영원히 자리잡는 것도 좋지만, 그녀를 영원한 안식처로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등려군 문화재단에서는 그녀의 수정관 위에 대리석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대만 타이빼이 금보산(金寶山) 등려군의 묘(아래) 약 200평의 넓이에 조경이 아름다운 그녀의 묘지는 입구에 피아노 건반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녀의 흉상이 오른쪽에 놓여 있고, 왼쪽에는 금박으로 약력이 돌에 조각되어 있다. 검정색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는 묘비석에 등려군의 사진과 그녀의 본명이 적혀 있다. 묘지에는 365일 등려군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밤이나 낮이나 흘러 나오고, 참배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추모의 향 또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금보산 사업집단(金寶山 事業集團)의 총재가 등려군의 열렬한 팬이다. 등려군이 죽자, 총재는 그녀에게 무상으로 묘지를 기증하고 싶었지만, 대만의 국내법상 묘지를 기증할 수 없어서 등려군 문화재단에 묘지를 1 NT$에, 묘비석도 1 NT$에 판매했다. 그 후 등려군 묘지 주변의 땅을 구입하려는 외국인과 중국어권의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으나, 등려군의 묘지 주변은 이미 모두 매각이 된 후였다. 그들이 등려군 묘지 주위의 땅을 사려는 이유는 죽어서라도 등려군의 옆에 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처녀의 신분이었다. 등려군은 살아 생전에 군인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바쁜 일정 중에도 군인들을 위한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그러한 이유로 젊은 남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등려군이 남긴 소망 등려군 생전 마지막 남자친구인 폴로가 홍콩의 한 방송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등려군이 남긴 소망에 대해 얘기 한바 있다. 그것은 바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字)조차 모르는 여성들로 하여금 교육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중국 국내에서 "주부학교"를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한다. 등려군은 "다른 사람들 처럼 청춘을 즐기고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그 시절부터 줄곧 노래만 불러왔다. 그녀는 만약 다시 한번 생의 권리를 얻는다면 나는 또다시 가수하기를 선택할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것은 그 시간을 조금 늦추고 먼저 학교생활을 누리고 싶다."라고 생전에 자주 말했다고 한다.
      등려군이 좋아하는 곳은 세계 각국을 돌아본 등려군에게 "어디가 제일 좋아요"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홍콩이었다. 생전 등려군은 홍콩의 경치가 세상 어느 곳보다 사람을 황홀케 한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프랑스로 이민을 간 뒤에도 등려군은 매년 홍콩의 별장에서 한동안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한다. 생전에 등려군은 "지금은 일때문에 안정된 곳이 없지만 나중에 정착하면 홍콩 이나 대만에서 살고 싶다."라고 밝힌적 있다. 홍콩에서 생전 등려군은 '천향루'의 단골손님이었으며 매번 꼭 '동파고기(東坡肉)'를 주문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파고기'를 주문할 때마다 등려군은 함께 식사하는 친구들에게 이 요리를 애착하게 된 자기의 어릴적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등려군의 여덟개 인기곡 생전 등려군이 살았던 아파트는 현재 "등려군기념관"으로 되었다. 전시홀로 들어가면 황금으로 만들어진 초대형의 음반이 놓여져 있는데 그 위에는 생전 등려군이 불렀던 여덟곡의 노래명이 새겨져 있다. [월량대표아적심] [첨밀밀] [안녕, 내사랑] [소성고사] [너밖에 없어] [여유있는 인생길] [해운] [그 사람을 잊어].

첨밀밀(甛蜜蜜)  - 등려군 (鄧麗君 Denglijun) 
 
 
 
 
 
첨밀밀(甛蜜蜜) -등려군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곡은 원래 인도네시아 민요인데 중국의 국민 가수 등려군이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I'm still loving you"란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렸는데 연인의 달콤한 미소가 마치 봄바람 속에 핀 꽃과같이 화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젊은 남녀가 10년여 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애정 드라마. 원래 제목은 진가신 감독이 '마마범범'의 촬영 당시 '도시 속의 작은 사랑'으로 할 생각이었으나 생각을 바꾸어, 대만 여가수 등려군의 첫 히트곡인 '첨밀밀'을 제목으로 따왔다. 95년 세상을 떠난 등려군이 불렀던 주제곡 '첨밀밀'은 '달콤함'이라는 뜻으로, 인도네시아민요에 중국어가사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甛蜜蜜爾笑得甛蜜蜜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는 얼마나 달콤한지
好像花兒開在春風裏 開在春風裏
봄바람에 피어난 한 송이 꽃 같아요. 봄바람에 피어난 꽃 말이예요.
在那裏在那裏見過爾
어디선가 어디서인가 당신을 본 것 같아요.
爾的笑容這樣熟悉 
당신의 미소는 이렇게 낯익은데
我一時想不起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啞~ 在夢裏
아아... 꿈속이었어요
夢裏夢裏見過爾
꿈에서 당신을 보았어요
甛密笑得多甛密
달콤한 그 미소
是爾是爾
당신이군요. 당신이었어요
夢見的就是爾
꿈속에서 본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在那裏在那裏見過爾
어디선가, 어디선가 당신을 만났던 것 같아요
爾的笑容這樣熟悉
당신의 미소는 이렇게 낯익은데
我一時想不起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啞~ 在夢裏
아아... 꿈속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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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1.09 10:38

    첫댓글 아름답고 쓸픈이야기 이지만 ...나에게는 부질없어 보입니다.
    난 아이들에게 말 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나는 없었다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라..
    묘도 유품도 .....왔다간 흔적을 남기지 말고 나에 관한 추억도 갖지말라..
    깨끗히 잊어라..

  • 작성자 10.01.09 23:11

    자식에게는 할수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강요할수가 없는거지요 ....... 흔적도 추억도 모두가 안고가야할 과제이지요... 그거이 바로 사랑이란것이여~~~~~~~~~~~~!! 아저씨

  • 10.01.11 09:56

    가고나면 .....
    아직 남아 있을 사랑까지는 생각을 못했네..ㅎㅎㅎ
    내가 가고나면 모든것이 끝인줄 알았는데....
    떠나기 전에 여러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가야겠다.
    내가 가고 나면 ...
    "빨리 잊어주오"하고....
    조금 서글퍼진다 그지.....아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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