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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미륵불 위로 꽃잎이 화르르
박래여
느티나무 잎이 적갈색을 띄었다. 바람이 휙 지나치며 나뭇가지를 툭 친다. 잎은 앙탈하듯 팔랑거린다. 잎사귀 몇 개는 나뭇가지를 놓아버린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은 자유롭다. 하늘하늘 몸을 흔들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바람은 더 세게 가지를 흔든다. 심술궂은 바람의 장난을 느티나무는 느긋이 즐긴다. 제 몸의 무게를 비워내며 기꺼워하는 것 같다. 나뭇잎 하나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노파의 곁을 스쳐간다.
“저것이 을매나 갈 수 있을라고. 제풀에 주저앉을 주제에 꿈도 야무지지.”
느티나무를 빙 둘러싼 나무받침 대에 앉아 나뭇잎을 보던 노파가 중얼거렸다. 아흔은 됨직한 노파다. 노파의 옆에 노파를 꼭 닮은 낡은 유모차가 놓여있다. 느티나무 뒤쪽은 큰 저수지가 있고, 앞쪽은 넓은 도로다. 도로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노파는 초점 없는 눈으로 저수지의 물빛을 바라본다. 바람이 일 때마다 자잘하게 굽이치는 물결 위에 몇 개의 나뭇잎이 내려앉는다. 노파는 나뭇잎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흔들흔들 물결 따라 가는 나뭇잎의 모양새가 누군가를 닮았다. 희뿌연 새벽 빛 속에 삽짝을 나서던 준수한 청년의 뒷모습이다.
“이러구러 한 세상 갈 것인디. 한 생애 잘 살았디요?”
노파는 물결에 주었던 눈을 거두어 거리를 본다. 쉴 새 없이 차량이 오간다. 긴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끼익 위험한 멈춤도 있었지만 노파는 그 경적조차 무심하다.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본다. 누군가 그 먼 곳에 서 있는 것처럼. 그때 동네 쪽에서 트럭 한 대가 나오더니 느티나무 아래 멈춘다. 운전석에서 청년이 창문을 내리고 소리친다.
“할매, 추운데 만다꼬 나와 있소? 집에 있으라 캉께.”
“올 때가 다 됐제? 하관이 몇 시라 카데?”
“사시라 카데 예. 동네는 몬 들리고 바로 하 씨네 선산으로 간다요.”
“너거 아부지는 끝내 안 간다 카더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갈 필요 없다 카데 예.”
“그 고집도 닮았는가.”
“머라쿠요?”
“아이다. 니라도 댕겨 오이라. 할배한테 큰 절 올리고 오거래이.”
“알았싱께 할매는 퍼뜩 집에 들어 가이소. 날씨도 찹거마. 감기 들모 우짤라꼬 그라요? 수 십 년 전에 동네 떠난 사람이 죽어 온다는데. 할매가 와 저라는지 참말로 모르겠네.”
노파는 청년의 구시렁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지 고개만 끄덕이며 어서 가 보라고 손짓한다. 청년은 창문을 올리고 우회전을 해서 큰 길을 건너 앞 산 골짝으로 사라진다. 노파는 유모차를 앞으로 끌어 내 손잡이를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멀리서 아득한 노랫가락이 들린다.
‘꽃 사세요. 꽃을 사세요.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무명천에 검은 물을 들인 몽땅 치마에 종아리를 내 놓고 역시 무명천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은 예닐곱 살 여자애가 폴짝폴짝 뛰어 간다. 손에는 쑥부쟁이와 산국을 한 주먹 꺾어 들었다. 꽃을 닮은 여자애가 생긋 웃는다. 여자애의 볼에 보조개가 깊다. 빨갛게 익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졌다. 도톰한 그 입술을 훔치고 싶다. 노파는 눈을 번쩍 떴다. 다릿골 쪽으로 춤을 추며 가는 여자애를 잡으려는 듯 한쪽 손을 휘휘 저었다.
“아가, 오데 가노? 같이 가자. 아가, 아가, 니 내 좀 보자.”
여자애는 생긋 웃으며 돌아봤다. 노파는 벌떡 일어나 유모차를 밀고 여자애가 뛰어가는 다릿골을 향해 비틀거리며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저 혼자 신났다.
“아이고 옴마야!”
노파는 엉덩방아를 찧고 유모차는 노파의 기운 없는 손을 떨치고 저 혼자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간다. 노파는 길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어버렸다.
“아이고 저걸 우야노. 잡아야 할 낀데 저거 없시모 내사마 한 발짝도 몬 가는데. 못에 빠지모 건지다 몬 할 낀데. 야야, 니 거게 좀 서거라. 야야, 아가, 저 유모차 좀 잡아 도고.”
노파는 다릿골로 뛰어가는 여자애를 불렀다. 여자애는 노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냥 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져 갔다. 다행히 유모차는 저수지 가에 설치된 가드레일에 걸려 멈췄다. 노파는 땅을 짚고 일어났다. 구십 도로 꺾인 허리가 숨 가쁘다. 노파는 숨을 헐떡거리며 잰걸음 친다. 겨우 유모차를 잡았다. 그 사이 여자애는 사라지고 없다.
“닮았는데. 닮았는데. 누굴 닮았더라.”
노파는 중얼거리며 느티나무를 바라봤다. 다시 느티나무 곁으로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느티나무와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 길을 돌아보며 노파는 천천히 돌아섰다. 다릿골을 향해 유모차를 밀고 간다. 노파의 굽은 허리가 금세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처럼 휘청댄다. 노파는 ‘고향에 돌아오니 좋소? 쪼맨만 일찍 와서 내 손이라도 잡아주고 가지.’ 중얼거리며 미륵골 쪽으로 접어든다.
미륵골에는 도화라는 아이가 살았다.
도화는 동네 노인들로부터 인물 값 할 것이라는 소리를 톡톡히 듣는다. 박복한 여자의 첫째 조건이 미인이라 하던가. 비록 기름기는 없지만 박속같이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 짙은 눈썹, 물기 어린 촉촉한 눈, 벌써 엉덩이 쪽이 볼록해지는 여섯 살짜리 여자애,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빨간 댕기를 단 아이, 겨우 여섯 살인데도 남의 눈을 현혹하는 미모를 가진 아이, 그 아이가 온다.
여자애는 무명 저고리에 종아리 위에 쑥 올라간 검은 치마를 입고 있다. 치마 밑으로 가늘지만 쭉 뻗은 하얀 종아리가 눈부시다. 발목을 덮은 흰 버선에 흰색 코고무신을 신었다. 손에는 들꽃을 꺾어 한주먹 쥐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다릿골 쪽으로 팔랑팔랑 뛰어간다.
동네 골목에서 중년 남자가 걸어 나오다 여자애를 발견하고 달려와 덥석 안는다. 여자애는 까르르 웃는다. 남자는 여자애를 안고 빙빙 돌며 여자애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대 비빈다. 여자애는 들꽃을 흔들며 까르르 웃는다. 남자의 얼굴에 들꽃을 대고 흔들다가 또 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남자는 자꾸만 ‘아이고 요 이뿐 것, 요 이뿐 것’하면서 여자애의 가슴이랑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비빈다.
“아재, 따거. 수염도 안 깎았네. 울 할매 보모 나 뚜디리 맞는단 말이야. 이거 놔.”
여자애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고 속곳이 벌어진다. 남자는 여자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속곳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여자애는 두 다리를 쭉 펴려고 해도 힘이 달린다. 남자는 여자애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양쪽 허리에 척 걸치고 여자애의 고추를 만지작거린다. 여자애는 앙탈을 하다가 그만 으앙 울어버린다. 그제야 남자는 슬그머니 여자애를 길바닥에 내려놓는다.
“아재, 나뻐, 아푸단 말이야.”
“아이고 미안, 우리 도화가 하도 예뻐서 안아 준 기라.”
“울 할매한테 일러 주끼라.”
“그럼 요거 안 준다. 요거, 안 물래?”
남자는 마고자 주머니에서 도톰하게 접은 종이를 꺼낸다. 도화는 군침을 삼킨다. 남자가 그것을 손바닥에 놓고 종이를 편다. 동글동글한 박하사탕이 있다. 여자애가 손을 쏙 내밀자 남자는 사탕을 몽땅 준다. 여자애가 눈을 살짝 내려감으며 배시시 웃는다. 타고난 눈웃음에 남자는 ‘요 이뿐 거. 인자 됐제?’하면서 여자애를 다시 안는다. 여자애는 다소곳하다. 여자애는 사탕 하나를 입에 넣어 빤다. 입안이 환해진다. 남자의 손이 다시 사타구니로 들어오지만 가만히 있다. 남자가 여자애의 고추를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아래위로 쓸어내리고 토닥토닥 때려주기도 하는데 사탕이 다 녹아간다. 여자애의 볼이 빨갛게 익는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아재가 거기를 만져주면 숨이 차고 얼굴이 발개진다. 여자애는 아마도 박하사탕이 너무 달콤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으흠, 으흠, 아이고 이것을 우짜모 좋노. 또옥 니가 예뻐죽것다. 도화야, 도화야!”
남자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여자애의 볼에 입을 쪽쪽 맞춘다. 여자애는 남자의 까칠한 털이 볼에 닿는 것이 싫다. 여자애는 ‘아재, 따거’하면서 다리를 쭉 뺐다. 남자가 털썩 여자애를 길에 내려준다. 여자애는 구겨진 치마를 톡톡 털어 편다. 거기가 뻐근하다. 남자는 키를 낮추어 여자애를 다시 안아준다. 여자애의 궁둥이를 쓰다듬어주며 귀에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할매한테 올 저녁에 내가 간다 캐라.”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박하사탕을 손에 꼭 쥐고 골목 안으로 뛰어 간다. 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날아간다. 남자는 여자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산기슭에서 복사꽃이 화르르 화르르 쏟아진다. 남자가 여자애를 바라보듯 골목 안 어떤 울타리 너머에서 새까만 눈빛 하나가 남자를 째려보다 여자애의 뒤를 쫓는 줄 누가 알겠는가.
“할매 할매! 사탕 무 봐. 맛나다.”
도화는 오두막의 사립문을 힘차게 밀고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그 집은 다릿골 동네에서 가장 후미지고 동네 뒤의 골짝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집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집 뒤로는 대나무 밭이 무성했다. 오두막의 사립문 기둥에 묶은 긴 간짓대 끝에 오색 띠가 팔랑거렸다. 오두막은 작은 방 두 칸에 부엌이었지만 방 하나는 신당으로 꾸며져 있다. 그 오두막의 가장 빛나는 곳은 부엌문 옆에 만들어진 장독간이다. 나지막한 작은 돌담이 둘러쳐진 장독간은 정갈하다. 크고 작은 항아리가 놓인 장독대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장독간 앞에는 크고 넓적한 돌을 우묵하게 파내 만든 물받이가 놓였고, 그 물받이로 골짝의 물을 끌어댔다. 커다란 대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 골짝에서 내려오는 물을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큰 돌확 앞에는 반듯반듯한 청석이 놓여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하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청동 세숫대야에서 걸레를 빨던 할머니가 도화를 봤다. 할머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할머니는 샘가에서 일어서자마자 머리에 썼던 무명 수건을 벗었다. 대나무 비녀를 꽂은 쪽 진 희끗한 머리카락 묶음이 뒷목 언저리에 탁 붙어 있다. 할머니는 천천히 무명치마를 뒤집어 젖은 손을 닦았다. 적삼 아래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아직도 할머니라고 하기엔 참 고운 모습이다. 쉰 중반이나 됐을까.
“그 사탕 누가 주더노?”
“수봉이 아재가......”
“수봉이 아재 만냈나?”
“응. 저기 질에서”
“예뿌담서 니를 또 안아 주더나?”
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탕 가지고 일로 온나.”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어렸다. 도화는 할머니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항상 인자하기만 하던 할머니가 수봉이 아재 이야기만 하면 화를 낸다. 왜 화를 내는지. 도화는 사탕을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할머니는 사탕을 받지 않았다. 도화를 빤히 바라본다. 여전히 싸늘하고 엄한 눈빛이다.
“그것을 갖다가 뒷간에 던져 넣어라.”
“할매, 이거 맛나다.”
“똥 묻은 거라 더럽다. 퍼떡 갖다 버리고 와서 세수하고 미륵불님 앞에 가 무릎 꿇고 앉았어라. 안 그라모 미륵님이 노한다. 내가 몇 분이나 말해야 하노. 수봉이 아재든 누든 안아 줄라카모 싫다카라 캤제?”
도화는 할머니가 야속하다. 입안을 환하게 해 주는 박하사탕, 미륵불 앞에 놓인 팥 시루떡보다 더 맛있는 박하사탕을 주는 수봉이 아재, 수봉이 아재 품에 안기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데. 도화는 입을 꾹 다물고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도화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입에 넣기만 하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한 박하사탕은 똥통에 빠졌다. 도화는 세수를 하고 신당에 들어가 얌전히 앉았다. 이번에는 회초리를 몇 대나 맞아야 할까. 지난번에는 상철이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았다고 열 대를 맞고 벌을 섰다. 새벽마다 찬물을 떠다 미륵불님 몸 씻기는 작업을 하며 천수경을 백번 외웠다.
도화는 할머니의 처분만 기다리며 빙그레 웃고 계신 미륵불을 바라봤다.
할머니가 신당에 들어오셨다.
“오늘은 미륵님이 니가 백팔 배를 하모 용서하겠단다.”
“미륵님 고맙십니더. 참 할매, 수봉이 아재가 할매한테 이 말을 전하라 카던데.”
“뭔 말?”
“할매한테 내가 간다 캐라.”
도화는 할머니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열심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도화는 신심을 다해 미륵님께 잘못을 빌었다. 할머니께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수봉이 아재가 거기를 만지작만지작하면 이상하게 숨결이 가빠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또 만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수봉이 아재만 보면 안기고 싶다는 것을. 수봉이 아재가 다녀간 날은 할머니의 얼굴에도 복사꽃이 핀다는 것을 도화는 알고 있다. 깊은 밤, 잠든 도화를 신당에 옮겨 놓은 할머니는 수봉이 아재랑 사랑놀이를 한다는 것을 도화는 본능적으로 알아챘지만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비밀이란 것도 알았다.
“저것이 인물값은 톡톡히 할 끼라. 저것한테는 도화 살이 끼었다네. 어린기 벌써부터 눈웃음 살살 치는 거 보소. 꼬리 아홉 달린 백 여시가 달리 백 여시 간디. 저거 할미가 무당이잖나. 저거 이름을 도화라 지은 이유도 불이 났을 때는 맞불을 피워야 불을 잡는다고 하자네. 도화살 타고 난 팔자를 고칠 수는 없으니 맞불이라도 질러보자는 뜻이라네. 저거 어매도 바람나서 나갔다 아이가. 행인물이 아니었제. 저거 할매도 행인물이 아니제. 과수댁이지만 신들린 여자라 남정네들이 부정탈까봐 멀리해서 그렇제. 어매 닮았는지. 할매 닮았는지. 참말로 가시나가 벌써부터 싹수가 다르다마다요.”
동네 늙으나 젊으나 여자들이 모여앉아 놀다가 도화가 지나가면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소리였다. 도마 위에 올라앉은 생선은 아무리 회를 쳐도 아프단 말 못한다. 도화는 죽지 않았기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칼질을 기억한다. 그때마다 도화는 할머니의 말을 기억한다.
“인물 값 한다는 말 듣지 않도록 조신하게 굴어야 한다. 니가 행동거지 잘못하면 미륵님의 노여움을 탄다. 그때는 이 할미도 니 옆에 못 산다. 너거 아베 따라 간다는 거 명심해라.”
자나 깨나 할머니의 애원에 가까운 협박 말이었다. 아니, 염불이었다. 예쁜 여자가 왜 박복한지. 말귀 트이면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였다. 동네 할아버지, 뒷집 아저씨, 오빠들까지 도화만 보면 예쁘다, 예쁘다. 안아 줄게. 사탕 사 줄게 업어줄게. 우리 뽀뽀 할까? 우리 놀러갈까? 엄마아빠 놀이 할까? 박하 분 사줄게. 댕기 사 줄게. 네가 원하는 것 다 해 줄게, 한 번만 만나 줘. 너를 못 보면 죽을 것 같아. 상사병 걸린 남자들, 그때는 몰랐다.
“니 누가 오데 가자 캐도 절대로 따라 가모 안 된다. 여자는 조신해야 서방 복도 있고, 자식 복도 있는 기다. 주야장창 미륵불님을 신주 단지 모시듯 모시고 살아야 할 팔다. 여자는 우짜든지 일부종사해야 된다. 몸단속 잘 해야 하니라. 남자들은 모다 짐승이다. 짐승. 알것제?”
귀에 대못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다.
도화는 신당에 들어갔다. 고사리 손을 합장하고 삼배를 드린 후 미륵불 앞에 굻어 앉았다. 미륵불님이 빙그레 웃고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버지 얼굴 같다. 어찌 보면 수봉이 아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상철이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도화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안방 아랫목에 미륵불을 모셨다. 미륵불은 할머니를 닮았다. 눈도 코도 윤곽조차 불분명한 돌부처였지만 할머니는 새벽마다 그 돌부처의 몸을 씻기고 절을 했다. 미륵불 앞에는 쌀을 담은 밥그릇과 물을 담은 국그릇이 놓였다. 쌀그릇에는 항상 초가 꽂혀 있었다. 손님이 오면 그 초에 불을 켰다. 촛농은 쌀에 떨어져 딱딱한 연꽃 모양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었다. 실성한 처녀로 소문이 났었다. 할머니는 인물이 고왔다. 갓 피어나는 매화처럼 예뻤다. 이웃 동네 가난뱅이에다 늙다리 총각이 할머니를 탐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 덕일까. 할머니에게 붙었다던 귀신이 사라졌다. 횡설수설하던 할머니는 음전한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십 수 년이 지나도 할머니에게는 태기가 없었다. 할머니는 주야장창 아이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부부는 부처님께 빌고, 천지신령님께 빌었다. 어느 날 꿈에 미륵불이 나타나서 자신이 미륵골 너럭바위 틈에 처박혀 있으니 찾아다 모시라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다음 날 너럭바위를 찾아 미륵골을 헤맸고 꿈에 가르쳐 준 곳에서 미륵불을 찾아냈다. 앉아있는 돌부처였다. 대여섯 살 아이만한 크기였다. 미륵불을 모시자 신통방통하게 태기가 있었고 할머니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약간 모자라는 칠삭둥이였다.
할아버지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득남 턱 쏜다고 친구들과 오일장에 나갔다가 그 길로 비명횡사 했다.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저수지 입구의 개골창에 빠져 죽었다.
할머니는 아들을 얻고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고 혼절했다 깨어난 할머니에게 신기가 돌아왔다. 내림굿도 안 받고 무녀가 됐다.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이 어찌나 잘 맞는지 명도로 소문났다. 어느 집에 언제 초상이 날 것이라고 예고하면 희한하게 초상이 났다. 누가 다친 다거나. 아기가 생긴다거나, 길흉화복을 풀어내는 할머니의 소문은 인근 고을에 쫙 퍼졌다. 미륵불의 영험이라 했다. 할머니는 복채 욕심이 없었다. 손님이 주는 대로 복채를 받았다. 엽전도 받았지만 닭도 받고, 돼지 새끼도 받고, 삼베나 모시 같은 베도 받고, 곡식도 받았다. 동네 궂은일이나 좋은 일에 자주 불려 다녔다.
아들은 할머니의 금지옥엽이었다. 지능은 모자라도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아들도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할머니께 뜬금없이 소리쳤다.
“옴마, 나 장개 갈래. 연이한테 장개 보내 줘.”
열아홉 살이 된 아들이 저자거리 주막집에서 여자를 봤다. 작부로 팔려온 열다섯 살 난 연이라는 처녀였다. 아무리 칠푼이 아들이지만 작부라니 안 될 일이었다.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히자 아들은 목을 맸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주막집 주인을 찾아갔다. 연이를 봤다. 참했다. 할머니는 처녀의 몸값을 치르고 연이를 며느리로 삼았다. 연이는 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딸을 팔았다고 했다. 연이는 아들과 금술이 좋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아들의 배필을 점지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손녀가 태어났다. 도화였다. 도화가 자박자박 걸어 다닐 즈음 역병이 돌았다. 동네마다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다. 아들도 그 역병에 걸려 저승길을 갔다. 할머니는 자신의 팔자가 대물림 되는 것을 봤다.
춘삼월 꽃그늘이 사방에 드리우는 날 할머니는 연이를 불러 앉혔다.
“저 아이는 내가 키우꾸마. 니는 보따리 싸서 떠나거라. 젊으나 젊은 기 이 촌구석에 백히서 수절하라는 말은 못한다. 아무리 니가 조신하게 굴어도 청상과부 넘보지 않을 남정네 없다. 난중에는 동네 물 어지럽힌다고 조리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그라이 떠나거라.”
“어무이요. 도화를 두고는 못 갑니더.”
“니 사주에도 도화 살이 끼었더라. 도화살 낀 팔자는 일부종사 못한다. 니 딸년도 그렇다. 그라이 도화는 내가 키우꾸마. 니는 훨훨 날아다니다가 우리 아들처럼 참한 사내 있거들랑 집에 들어앉아도 될 기다. 니 팔자가 그러하니 뭇 사내가 쫓을 끼다만 그것도 다 니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며느리를 내쳤다.
할머니는 도화를 신의 딸이라 했다. 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삼천 겁을 돌고 도는 것이 업의 고리라 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대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어줘야 할 것 같았다. 미륵불에 의지하고 빌었다. 타고 난 사주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는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누구든지 억지로 도화를 취하면 신벌을 받아 집안이 풍비박산 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할머니는 신당의 문을 열었다. 나부시 절을 하는 도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린애지만 엎드릴 때마다 치마 속에서 갈라지는 봉싯한 궁둥이 두 쪽의 선이 성숙해 보인다. ‘우째야 하꼬. 미륵님이 주시는 벌을 내가 받아야 할 낀데. 미륵님 미련한 이 중생을 살펴 주이소. 벌을 주시려거든 이 몸한테 주이소. 저 어린 거 곱게 자라 일부종사 하게 해 주이소.’
할머니도 도화 옆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미륵불의 얼굴이 근엄하게 내려다봤다. 할머니와 손녀는 땀이 뚝뚝 떨어지도록 절을 했다. 절을 하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도화는 옆에서 할머니가 절을 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절을 했다. 백팔 배를 끝내고 돌아보니 할머니가 절을 하고 계셨다. 도화는 할머니의 옷자락을 잡았다.
“할매는 와 절을 하고 있노?”
“니를 곱게 키아 달라고 미륵님께 비는 중이다. 백팔 배 다 했나?”
“응”
“그라마 가서 씻고 와라. 저녁 묵자.”
어느 새 해거름이 오두막을 곱게 감쌌다. 할머니는 미륵불 앞에 놓인 촛대에 불을 붙였다. 도화는 샘터에 가서 세수를 하고 그 사이 할머니는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마루로 나온다. 소박한 밥상이다. 자외 무침, 자작하게 찌진 된장, 보리밥이지만 쌀알이 몇 개 섞여 있다. 늘 미륵불전에 놓이는 쌀이 있어 할머니와 도화는 꽁보리밥을 면하고 산다. 가난한 집에서 풀떼기 죽도 쑤어 먹기 힘들 때도 도화는 쌀알 섞인 밥을 먹었다. 개다리소반에 밥이 세 그릇이다.
“오빠 오라 캐라.”
“쳇 재수 없는 머스마”
도화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울타리 옆에 가서 아랫집을 향해 소리친다.
“수야! 밥 무로 온나. 할매가 밥 무로 오란다. 퍼뜩 안 오모 내가 다 무끼다.”
수야는 아랫집에 사는 남자애다. 도화랑은 앙숙이다. 서로 ‘가시나야 머스마야 ’하며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기도 하고 ‘서방님, 임자’하며 소꿉장난도 치는 사이다. 도화보다 두 살이 많지만 도화는 절대로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시나냐 수야가 머꼬? 오라바이 한테 버르장머리 없이.’하면서 도화의 머리댕기를 잡아당기거나 치마를 들칠 때면 절대로 같이 안 논다고 해 놓고도 또 어울려 엄마아빠 놀이도 하고, 개천에 나가 맥도 감고, 산딸기도 따고, 삐삐 꽃도 따 먹는 사이다.
도화는 개다리소반 앞에 앉았다.
“할매!”
수야는 도화가 재차 부르기도 전에 마당에 성큼 들어선다. 비쩍 말라 검버섯 핀 얼굴이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수야는 자기 집처럼 마루에 올라와 개다리소반 앞에 얌전히 앉았다. 할머니는 수야에게 이것저것 젓가락으로 찍어 밥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도화는 시샘이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할머니의 눈이 무서워 부글부글 끓는 속에 된장국만 퍼 넣었다. 수야의 숟가락이 된장뚝배기에서 마주치면 탁 소리 나게 쳤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할머니의 쬐려보는 눈이 무서워서.
수야의 성은 하 씨고 이름은 홍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 이름을 정식으로 부르지 않는다. 끝 자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통념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냥 수야라고 부른다. 수야도 도화처럼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도화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지만 수야 어머니는 죽었다. 한 여름 밤에 개천에 다슬기 줍는다고 나갔다가 소에 빠져 죽었다. 할머니의 점괘는 하 씨네 조상 중에 억울하게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 귀신이 수야 어머니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단다. 할머니는 수야 아버지를 불러 앉혀 놓고 수야가 잘 되길 바란다면 그 귀신을 달래줘야 한다고 했다. 귀신을 달래는 방법은 수야 어머니의 제삿날 그 귀신 밥도 같이 떠 놔야 수야가 탈 없이 자랄 것이라고 했다.
“지 어릴 때 시고모가 있었는데 물에 빠져 죽었답니더.”
“미륵님이 참말 영험은 있는 기라요.”
수야 아버지는 착실한 농부였다. 가진 것은 소작농에 미륵골 다랑이를 일궈 만든 논 몇 뙈기가 전부였지만 알부자 소리를 들었다. 그는 부지런했고, 아내 역시 부지런했다. 동네 사람들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부부는 남의 집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나 일손이 부족하면 아낌없이 가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거들어줬다.
그러나 신은 질투가 났을까. 졸지에 젊은 아내를 산에 묻고 온 그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를 술독에서 건진 것은 어미 가난이 들어 파리하게 말라가던 수야였다. 그 겨울은 춥고 스산스러웠다. 개울은 꽁꽁 얼어붙었고, 개울가의 잎사귀 하나 없는 키다리 미루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우우 울었다. 미륵골은 눈이 하얗게 덮였다. 양지를 향해 나직나직 앉은 초가지붕도 하얗게 솜이불을 덮은 그런 겨울밤이었다. 수야는 주야장창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비를 기다리다가 급기야 골목에 쓰러졌다.
그 날 밤 수야를 발견한 사람은 도화 할머니였다. 어린 도화를 재워놓고 남의 집에 가서 비손을 해 주고 오던 길이었다. 도화 할머니가 수야를 발견하고 업어다 법당에 뉘었다. 수야는 밤새도록 제 아비와 어미를 부르며 진땀을 흘렸다. 할머니는 불덩어리 같은 수야를 밤새 간호하며 자신을 나무랐다. 이웃에 살면서 자기 설움에 취해 있느라 이웃의 처지를 생각조차 못했다는 자책이었다. 수야 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할머니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다. 자신의 말뚝이자 생의 의지 처였던 귀하디귀한 아들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를 울리며 떠나보낸 뒤끝이었다. 날마다 어미를 찾는 어린 손녀를 안고 업고 미륵님만 부르며 마음을 다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수야 아버지가 장터 주막집 술독을 바닥낸다는 소문도 몰랐다. 외상 술값이 한여름 포도 알 달리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도 몰랐다.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며 수야를 간병한 할머니는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야가 우리 도화의 사주를 바까 줄 수 있으랑가.”
다음 날 할머니는 만택 씨를 찾아갔다. 엿 장사를 해 보라고 권한 것도 할머니였다. 엿판을 메고 전국을 떠돌면서 세상구경을 하다보면 아내도 잊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어린 아들도 건사 못할 인간이라면 차라리 나가서 죽는 편이 낫다고 삿대질도 했다. 동네 사람들과 두량해서 동네에서 쫓아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읍내에 있는 엿 만드는 공장을 소개한 것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았다. 농사꾼이 장사꾼 노릇 하기가 어찌 쉽겠나. 장사꾼이 되려면 우선 너스레도 있고, 유들유들한 성격이어야 하는데 만택 씨는 샌님 편이었다. 뚝심과 부지런함은 몸에 배었다 쳐도 거짓말도 못하고, 마음도 여렸다. 어렵사리 구해다 준 엿을 술과 바꾸어 먹고 오기 일쑤였다.
“수야, 아부지! 내 좀 보소.”
할머니가 만택 씨와 멱살다짐을 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의 일이다. 멱살다짐이라 해봤자 할머니의 일방적인 멱살잡이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술 취한 하만택 씨의 뺨따귀를 몇 차례 올려붙이고, 멱살을 잡아 질질 끌다시피 해서 할머니 집으로 데려왔다. 할머니는 만택 씨를 우물가에 엎어뜨려 놓고 찬물을 양동이 째 부어버렸다. 정신을 차린 만택 씨는 한동안 얼이 빠졌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이기 머꼬? 이 할망구가 보자보자 하니 너무 하네. 니가 내 마누라가? 내가 우찌 살든지 말든지 내 인생이다 이 말이다. 니가 와 지랄이고 지랄은. 에이 더러버서 내 참, 주먹이 운다 주먹이. 이걸 고마 꽉!”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만택 씨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래, 니가 사내 새끼모 오데 한 분 쳐 봐라. 이 배알도 없는 놈아. 안 그라모 니 죽고 내 죽자. 어린 자슥 앞에서 애비가 돼 그라는 꼬라지 인자 나도 못 보것다. 니가 내 아들 겉애서 더는 못 봐 주것다. 이놈아, 죽은 여편네가 그리 좋으모 따라 가모 된다. 죽여주랴?”
할머니도 이판사판이다. 팔을 둥둥 거지더니 옆에 있는 바지작대기를 들어 만택 씨의 등을 연거푸 후려쳤다.
“아이고 이 할마이가 사람 쥑이네.”
만택 씨는 자기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할머니는 그 뒤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옷 갈아입고 술 깨거든 미륵님 앞으로 오소. 수야는 우리 집에서 도화랑 있응께. 내 오늘은 사생결단을 낼 참잉께 그리 알고 오는 기 신상에 좋을 기요. 미륵님이 시킨 일이니께.”
그날 밤 할머니와 만택 씨 사이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도화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 만택 씨의 태도가 백팔십도로 바뀌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엿판을 메고 전국을 돌았다. 아버지가 엿판을 메고 팔도를 돌아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야는 할머니의 손자처럼 자랐다. 수야와 도화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참 잘 어울리는 까투리 남매였다.
수년이 지나자 그는 건너 편 동네 뒷산 일부를 샀다. 만택 씨는 그 산에 아내의 뫼를 이장하고, 시고모님의 신주를 써서 따로 묻었다. 그 덕인지 살림이 불쑥불쑥 불어났다. 큰 길 건너 다랑이와 그에 딸린 산을 샀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는 수야와 도화가 공립 보통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만택 씨는 전국을 떠돌며 엿장수를 했다.
“인자 지도 엿 장사 접을랍니더.”
“서로 맘 맞고 살 맞으모 됐제. 인자 그 애도 액땜 다 했으니 합쳐도 될 기요.”
“고맙습니더. 이기 다 아지매 덕입니더.”
“잘 사소. 수야가 효자노릇 할 기요.”
“부산에다 집을 한 채 마련했십니더. 자리가 잡히모 수야도 데리고 갈 생각입니더.”
그 시절 세상은 어수선했다. 일본에게 36년 동안 압박을 받던 나라가 해방이 됐다지만 미륵골은 세상 소식에 어두워 삶의 모습은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로 평화로웠다. 가끔 세상 소식을 물고 오는 것은 엿장수 만택 씨였다. 나라가 이등분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언제 피비린내가 풍길지 모른다고도 했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미륵불에 치성을 드렸다. 어둠의 기운이 탈 없이 미륵골을 벗어나주길 기도했다. 새벽마다 도화를 깨워 미륵불 앞에 앉히는 것도 도화에게 끼칠 액살을 조금이라도 면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멀리 동구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할매에~~~~”
삽짝으르 들어서는 도화가 숨이 차서 할딱거렸다.
“또 봐라. 조신하게 굴라캐도 선머스마 맹키로 뜀박질은”
말은 그래도 할머니는 도화만 보면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열다섯 살이 된 도화는 활짝 피는 꽃이었다. 온갖 벌과 나비가 도화의 향기에 취해 몰려들 판이었다. 도화의 뒤를 따라 삽짝에 들어서는 수야도 훤칠한 청년이 되었다. 수야의 손에는 도화의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늘 그랬다.
“할매 배고파 밥 줘.”
“수야도 밥 묵고 가거라.”
도화는 샘에 가서 물 한 바가지를 퍼다 수야에게 내밀었다. 수야가 바가지를 받아 물을 마시자 도화가 그 바가지를 툭 쳤다. 수야는 물을 뒤집어썼다. 도화가 까르르 웃었다. 할머니는 두 아이의 장난질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티 없이 순수하고 맑았다. 마루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수야가 말했다.
“할머니 제가 군대 갈지 몰라요.”
도화도 할머니도 망연자실 했다.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해방을 맞이했지만 민초들이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지난한 시절이었다. 간간히 만택 씨로부터 나라가 위태위태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여전히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곧 전쟁이 날 것이라고 했다. 미륵골도 불안의 바람이 불었다. 소문이 기정사실이라 믿게 된 것도 경찰서나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동네마다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을 보면서였다. 15살 이상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차출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도화는 새벽 기도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도화가 시키지도 않은 3천배를 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봤다. 손녀의 속내를 어찌 모르랴.
“수야는 군대 안 가도 될 끼다. 3대 독자는 군대 안 간다. 걱정 말거라.”
“진짜? 진짜 군대 안 가도 돼?”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도화를 보며 한숨을 쉰다. 저 예쁜 것이 어쩌다 몹쓸 운명을 타고 났는지. 어릴 적부터 싹튼 연정은 애틋하다 못해 눈물겹다. 두 아이는 첫정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정 든 아이들이다. 두 아이의 가슴에 연정이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할머니는 진작 두 아이의 사주를 꿰고 있었다. 도화가 수야를 싫다고, 더러운 아이라고 곁을 주지 않을 때도 수야를 데려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며 도화랑 놀게 만든 것도 다 할머니의 계획 아니었던가.
“할매, 나도 전문학교 보내 조라. 수야는 전문학교 간다하더라.”
“가시나가 글자만 깨치모 됐제 더 공부할 필요 없다. 글고 니는 신딸이란 거 명심해라. 내 죽고 나모 미륵님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니 운명이다. 밖에 나가봤자 늑대 굴에나 빠지기 십상이다. 니 타고 난 사주가 그렇다는 기다. 그라이깨내 잔말 말고 미륵님이나 지극정성으로 모시거라. 그라마 니 팔자가 펴일 날 있을 기다.”
“나는 시집도 몬 가것네.”
“니는 미륵님캉 살아야 하는 팔자다.”
“싫어. 나는 수야한테 시집 갈래.”
할머니는 도화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수야와 니는 견우와 직녀다.”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가슴이 아팠다. 타고 난 사주팔자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할머니의 괘에 의하면 수야는 별을 타고 난 아이다. 성공은 하겠지만 도화의 짝은 아니다. 할머니는 도화가 세 번의 액살을 면하고 만난 남자라야 백년해로를 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할머니는 도화의 타고 난 액살을 풀어내주고 죽을 수 있길 바랐다. 미륵님의 염력으로 그렇게 되길 빌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단다. 한 달 전쯤 수야와 만택 씨가 소리 소문 없이 마을을 떠났다. 수야의 집 대문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걸렸다. 도화는 밥맛을 잃었다.
“할매, 수야가 어떻게 이를 수 있어? 나쁜 자식, 배은망덕한 놈”
“수야 아부지가 진작 내한테 귀띔 했다. 저거가 없어져도 놀라지 마라쿠더라. 무슨 사정이 있것제.”
그렇게 수야 네가 잠적한 후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수야 네 잠긴 대문의 자물통을 부수고 가택 수색을 했다. 수야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이다. 엿장수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것도 남로당의 사주를 받은 연락책이었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작은 미끼만 물어도 빨갱이로 숙청당하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미륵골에도 불신의 시대가 왔다. 경찰은 수시로 마을을 점검하고, 동네 사람들을 감시했다. 이웃은 이웃을 믿지 못하고 쉬쉬했지만 그렇게 떠난 수야 부자는 종적이 묘연했다.
그리고 이듬 해 시집도 안 간 도화가 아들을 낳았다. 처녀가 애를 낳았으니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할머니는 미륵님이 점지해 준 아이라고 했다. 소문은 도화가 산에서 내려온 밤손님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와 도화는 입을 닫았고, 도화는 여전히 신의 딸이었다. 도화는 산고를 겪은 후 시름시름 앓았다. 신병이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림굿을 했다. 도화는 내림굿을 받고 정식으로 신의 딸이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도화는 2대 명도가 되어 미륵님을 모시며 늙어갔다. 처녀 명도가 낳은 아이는 느티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가정을 이루었고 노파의 머리카락에도 서리가 내렸다.
노파는 집에 왔다. 노파가 살던 오두막은 진작 헐어버리고 거기에 아담한 양옥 한 채 나붓이 앉았다. 사랑채에는 미륵불을 모신 신당이 꾸며져 있고, 노파는 거기 기거한다. 위채는 아들 부부와 손자가 산다. 며느리는 수봉이 아재의 손녀딸이었다.
노파는 미륵님을 지긋이 바라봤다. 인자한 미륵님의 얼굴에 환하게 서광이 비쳤다.
“미륵님, 인자 원도 한도 없십니더. 저도 거두어 주이소. 도화살 타고 난 년이 일부종사했으니 그 사람 따라 가고로 해 주이소. 참말로 긴긴 세월이었지 예. 우리 옴마도 수야도 만나겠지 예.”
노파는 장롱 깊숙이 넣어놨던 보따리를 꺼냈다. 하얀 버선과 속옷과 하얀 명주 치마저고리를 가지런히 챙겨 불당 앞에 내 놓고 목욕탕에 들어가 천천히 목욕을 했다. 몸 구석구석 때를 오랫동안 닦아냈다. 서랍장에서 오래 된 동백기름을 꺼내 머리에 발랐다. 노파는 천천히 속옷과 속치마를 갈아입고 그 위에 명주 한복을 입었다. 눈빛처럼 하얀 명주의 올이 저수지 물 위를 흐르는 은파 같았다.
노파는 불당 안에 깊숙이 간직했던 대나무로 만든 보석함을 꺼냈다. 방석에 앉아 그것을 치마 앞에 얌전히 올려놓고 미륵님을 바라보았다. 미륵님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 지었다. 노파는 눈을 감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단 하룻밤, 몸을 열고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 떠나는 시간이었다. 노파는 보석함에서 옥색 비녀를 꺼냈다. 동백기름을 명주수건에 묻혀 비녀를 닦았다. 하얀 머리카락을 돌돌 감아 쪽을 찌고 옥색 비녀를 꽂았다. 노파는 미소 지었다.
미륵불 위로 붉은 꽃송이가 화르르 화르르 쏟아졌다. 꽃 속에서 나비 한 마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왔다. ‘도화! 우리 갑시다.’ 꽃 속에서 음성이 들리고 손 하나가 쑥 나왔다. 노파는 그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노파의 영혼은 그의 손을 잡고 꽃 속으로 들어갔다. 사시였다. 하 씨네 선산에서 하관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하얀 나비 두 마리가 춤을 추며 미륵불 둘레를 빙빙 돌다가 미륵골 너머로 날아갔다.
“할매, 다녀왔습니더.”
하관을 지켜보고 돌아온 청년은 할머니를 찾았다. 집이 조용했다. 청년은 아래채 신당 문을 열었다. 불당 앞에 얌전히 앉은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얀 상복 위에 옥색 비녀가 빛났다. 청년은 법당 안에 들어가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할머니가 청년의 몸 쪽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할매, 할매!”
청년은 할머니를 안은 채 흔들었지만 이미 온기가 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 할머니의 치마폭에 얌전히 놓인 보석함이 청년의 앞으로 굴러왔다. 청년은 보석함을 열었다. 뭔가 돌돌 말았던 것 같은 화선지가 들어 있었다. 화선지를 폈다. 화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화, 내 사랑, 당신과 나는 부부요. 이 비녀를 증표로 남기오. 내 아이 잘 키워주오. 우리는 늘 함께 할 것이오. 몸은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어도 나는 당신의 수야 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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