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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야 30 장
<사30:1-5>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복음백성은 세상이라고 하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복음백성이 된것이다. 즉 출애굽하여 복음으로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되었다. 따라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악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애굽으로 돌아가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복음을 버리고 믿지 않는 세상사람으로 돌아가는 행위인가?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광범위한 것이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며 혼돈과 악에서 질서와 선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므로, 창조란 반드시 어제의 나를 부인하는 오늘의 십자가를
요구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창조주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그런 의미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으며 그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를
도말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과거를 돌아보면 안된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창조가 아닌, 창조이전의 혼돈. 공허. 흑암인 것이다.
유대인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나아오는 일이 창조이며, 이천년 전의
초기그리스도인은 오늘의 전세계화된 복음백성으로 나아오는 일이 창조이며
오늘의 전세계적인 복음백성은 재림주가 부르시는 144000으로까지 나아와
영생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창조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행군해야 함이 창조이며
광야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입성해야 함이 창조이며, 가나안에서 다시
가나안 원주민까지 쫓아내고 진정한 가나안복지를 건설해야 함이 창조였던
것이며 그 마지막 오메가 포인트는 천국이 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기까지 이러한 우리의 전체적인 신앙행로의
과정에서 어느 한곳에 주저앉아 있다면 그것이 뒤를 돌아보는 행위요,
뒤를 돌아보는 그것이 오늘의
내 십자가를 부인하고 애굽으로 피난한 것이요, 애굽으로 피난하는 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는 자이므로, 즉 십자가의 길을
따르지 않는 자이므로 정죄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본문에서
"그들이 바로(애굽왕)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라고 하셨던 것이다. 우리의 신앙행로에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던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가 애굽에 도움을
구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주소는 말세에 처한 복음백성이므로
이제는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으로 나아오는 것이 창조이며
그것이 오메가포인트인 천국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의 주의 백성이 재림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저 과거 애굽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면
그곳은 옛뱀 바울이 있는 곳인데 그곳 뱀에게 무슨 구원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오늘날 재림주의 음성을 듣지 않고, 기성교단에 고집세게
붙박아 있는 것도 역시 창조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곧 애굽행이 된다.
<사30:6-10>
*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남방짐승은 초등학문에 있는 복음백성을 뜻한다. 주의 백성이 복음을 받고
출애굽을 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물(복음)을
나귀와 약대등에 싣고 광야를 행군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그 광야에는
즉 전도대상인 온 세상에는 암수 사자와 독사와 불뱀이라고 하는 마귀의
비진리로 가득한 힘든 천로역정이다. 그처럼 천국성을 행해 가는 과정은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쉬고 싶어하며 주저앉아
안주하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광야에서 머무름이
곧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자 하는 음녀의 행위이다.
남편이신 하나님의 창조의 길을 줄곳 따라가야 하는데, 만일 나아가지
아니하고 주저앉아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애굽을 돌아보는 비창조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뱀(사단)의 비진리를 쫓아가는
음녀 라합이 되는 셈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와 반대편인 비창조는 그 이름이 애굽이요 기생 라합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패역한 자기백성을 일컬어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기생)" 이라고 하셨다.
라합은 기생, 즉 음녀이다. 창조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천년 전의 문자
신앙인 복음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복음백성이 비창조의 뱀을 따라간
음녀이므로 라합이라고 하신 것이며, 뒤를 돌아본 자이므로 애굽에 도움을
구한 헛된 짓이라고 하셨다.
언약을 파기한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고
하며,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고 하며,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하며,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언약(율법)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자면 자기의 복음생명을 죽이는
일이므로 힘들다. 누가 성경문자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참 뜻을 알기
위해 과감하게 현재 나의 문자주의 신앙인 내 복음생명을 죽이겠는가?
즉 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겠는가?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면 현재의 나를 부인하고(죽이고) 어디라도 따라
가리라던 그 언약을 파기하고,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십자가도 버리고,
뱀이 주는 달콤한 선악과로 이미 천국티켓을 손에 쥐었다고
기뻐하는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선견자와 선지자의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고,
오늘 우리의 현실을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는 부드러운 말만 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크게 정죄하시는 음녀의 길이요 애굽행이 된다.
<사30:11-17>
*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훼파
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 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 망하리라
한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주의 백성의 정로와 첩경은 뒤를 돌아봄이 없이 약속의 땅 가나안복지를
향해 곧장 앞으로 직진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백성은 자꾸만
하나님을 불신하고 두려워서 애굽을 동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셔서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된 일면이 있다.
그 파란만장한 곡절 끝에 겨우 들어간 가나안입성 이지만, 결국은 거기서
결정적으로 불순종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시대말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입성이므로,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반드시 추수철의
로고스말씀을 깨닫고 영생을 얻어야 하는 때임에도,
그 작업을 거부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불순종했다는 말이다.
그들이 추수철의 드높은 로고스양식을 찾지 않고 과거 파종기 때의 영적
애굽을 의지하려는 인간의 헛된 야망이 되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자기백성을
불순종했다고 계속해서 두둘겨 패신다.
즉 우리가 말을 타고, 그리고 빠른 짐승을 타고 (과거의 영적애굽으로)
도망하리라고 한다고 했으며,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으로 도망하는
그들보다 더욱 빠르게 그들을 쫓아 훼파하시라 하셨다.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은 파쇄 하리라고 하셨다. 끝까지 성경 깨닫기를 거부하고 영생도 구원도
받지 못할 어리석은 인간들을 하나님은 사정없이 두둘겨 패시리라 하셨다.
두둘겨 패시는 몽둥이는 자칭재림주인 적그리스도가 된다.
초림주의 주신 복음은 비유였다. 그 비유문자 그대로 믿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가 되며, 그 비유문자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달으면
그게 주의백성이 가야하는 정로이며 첩경인 것이며 그게 하나님과의 언약이다.
그런데 주의 백성은 비유문자 그대로 믿고, 즉 불순종의 선악과를 먹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기 때문에 그것이 뒤를 돌아보며 영적 애굽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악한 행위가 된다.
왜냐면 하나님의 창조란 애굽에서 출애굽한 후에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복지에
입성하기 까지, 그리고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도
계속 가나안의 7족을 몰아내야만 하는 창조의 노정이 겹겹이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모두 거부하고 모세(초림주)의 영도하에 출애굽을 하자마자
구원을 이미 다 받아버렸다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미래지향의
기나긴 창조의 진두지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죄악의 애굽행인 것이다.
좀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주의 백성은
초림주의 비유로된 복음을 받은 후에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복지에
도달한 후에, 또 그곳의 가나안 7족을 몰아내고 다시 이방
적그리스도(앗수르와 바벨론) 에게 사로잡혀 갔다가 그 후에 재림주가 오심으로
인하여 진리의 새 말씀으로 구원받게 되어 있었던, 기나긴 창조의 노정이었던 것이다.
왜 이러한 기나긴 창조의 노정이 요구되었는가 하면,
이는 복음이 비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의 백성이 그 비유문자로 이미
구원을 다 받아버렸다는 옛뱀의 선악과 교리 때문에 하나님의 기나긴 창조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애굽행 탈출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렇게 애굽으로 다 도망가고 남은 자는 아주 너무나 적어서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했는데 이들은
택한자 반열이 그렇게 희소하리라는 뜻이다.
<사30:18-22>
*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고 하셨다. 구원받는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일인데, 어찌
우리 인류가 한꺼번에 하나님이 감추신 창조의 비밀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인류가 한꺼번에 그 높으신 창조의 도를 지켜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가 좀더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라고 하듯이, 최초의 한 사람은 재림예수님이요, 그 다음은 144000이요,
그 다음은 세상만민까지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말씀을 깨달으신 재림주가 오시고, 그 다음에 144000이 깨달아
영생을 받고, 그 다음에 나머지 인류가 깨달아 영생을 받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사망과 질병과 전쟁과 폭력 등에서 해방받을 것이니
다시 통곡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이루어진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재림주)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이 처음 하늘 처음 땅에서는 창조미완성의 세상이며 사탄에게
넘겨준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비진리) 로
힘들었으나, 이제 온 인류까지 창조완성을 향해가는 새 하늘 새 땅에서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새 하늘 새 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새창조를 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말씀이다.
즉 전에는 하나님을 보고 살자가 없다고 하셨으나, 창조 완성시에는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함께 살게 되는 새하늘 새땅의 천국백성이
된다는 말씀이다(계22:4).
그리고 그 때는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진다고 했으므로
마귀의 비진리는 이 땅에서 발본색원되리라는 것이다.
<사30:23-26>
*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우리가 땅에 뿌린 종자는 성경을 문자로 읽는 초림주의 복음으로써
지난 이천년동안 온 세상에 심겨졌는데, 하나님이 그 곡식들을 살찌게 하시고
풍성케 하신다고 했다. 즉 하나님이 비를 주사 살찐 곡식들이 되게 하는 것은
첫열매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수철에 나타난 알곡은 144000이요, 144000은 왕과 제사장 반열이요,
왕과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때 세상만민을 먹이시는 광활한
목장이며 푸른 목초지가 된다. 그 광활한 목장과 푸른 목초지에서 그날에
너의 가축이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했다. 너의 가축은 재림주를 중심으로 한
천국통치체의 다스림을 받는 세상만민이 된다.
그리고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신다고 했는데, 그날에 크게 살륙 당하며 망대가 무너지는
진영은 하나님의 원수 사단과 사단의 비진리이며 그것들이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사단과 사단의 비진리가 간데 없고 오직 진리의 말씀인 시냇물이
흐르고 그 생명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왕으로 계시기 때문에
맞은 자리가 고침을 받는 것이다.
맞은 자리를 고치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했다.
달빛은 위성체이고 햇빛은 빛의 본체가 되기 때문에, 달빛이 햇빛 같으리라 함은
그날에는 비유로 싸여 있던 성경기록이 낱낱이 밝혀진 참진리가 된다는 뜻이다.
참진리로 밝혀지기 때문에 백성들의 상처가 그 진리로 고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함은 그날의 진리는 일곱배로 밝다는 뜻인데,
왜 그날에 낱낱이 밝혀진 진리의 광도가 일곱배가 되는가?
초림주는 비유로 된 복음을 주신지 일곱 때만에 다시 재림하셔서 성경을
낱낱이 밝혀주신다고 하셨고 그 일곱 때 동안은 초등학문이므로 그것의
광도가 1 이라면, 재림주의 진리의 말씀은 그 일곱날의 초등학문을 온전히
밝혀주시기 때문에 일곱배가 되는 것이다.
<사30:27-29>
*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 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온다고 했다. 원방은 복음이 중동 땅에서
시작해서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된 말일의 땅 끝을 뜻한다. 따라서
원방에서부터라 함은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재림주가
마지막 때에 추수하러 오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재림주가 극동 한국(땅 끝)에서부터 택한자들을
불러 모으신다는 뜻이다.
중동 땅은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한 천국의 시작이지만,
극동 한국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땅 끝으로서 복음의
알곡이 추수되어지는 천국의 완성이 된다. 따라서 한국은 미구에
천국정부가 설립되었을 때 세계의 중심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택한자 144000을 부르시는 일은 교리와 진리전쟁인 아마겟돈을
통해서이며 동시에 아마겟돈은 하나님이 원수 적그리스도를 진멸하시는
일이므로, 그의 진노가 .... 맹렬한 불같으며 그 호흡은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라 했다. 즉 적그리스도를 멸하시리라 했다.
그 때 너희(144000)는 즐거워 노래할 것이며 여호와의 산(시온산)으로
가서 반석(계14장 시온산의 로고스재림주)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했다.
<사30:30-33>
*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도뱃은 힌놈의 골짜기에 마련된 제단의 이름이며 힌놈의 골짜기는 온갖
더러운 것을 불사르는 멸망의 땅이다. 따라서 원수 적그리스도를 뜻하는
앗수르와 도벳은 찰떡 궁합으로 맞는 천생연분이다. 즉 앗수르는 도벳에
장사되어지는 더러운 물건이요 도벳은 앗수르의 무덤이다.
앗수르와 도벳은 하나님이 모두 가증이 여기시는 진노의 대상인데,
그 진노가 어찌나 무서운지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과 몽둥이로 하실
것이라 했다.
그 때 택한자들은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타며 즐거워 하리라 했다.
그리고 앗수르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옛적부터 정하신 일이므로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다고 한것이다. 또 도벳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마겟돈에서 전무후무하게 상상을 초월한 무서운 진노이므로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