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2)
2006. 6. 7일
북경에서 첫날밤을 지낸 중공프라자 호텔 11층.
외국여행을 다녀온 사람마다 술은 뭐니뭐니해도 우리의 이슬이가 최고더라~~
우리나라 이슬이 한병에 1만5천원 가더라~~
외국나갈 때 어떤 사람은 여행가방에 이슬이만 가득 담아 낑낑대면서 가져 가더라~~등등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역시 이번 여행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중국으로 떠나기전
여행 가방속에 이슬이 200ml짜리 1박스(20병)와 640ml짜리 8병을 넣고 가져갔는데
첫날부터 느끼한 음식 때문인지 호텔방에서 3명이 소주 큰병 2개와 작은병 5개를
비우고(나는 4잔만)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편안함 때문인지 7시 모닝콜
전화벨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샤워하고 1층 로비에 내려갔다......
참고로 중국여행(1)에서 말한 것 처럼 중국에서는 물을 마실수 없다.
물론 호텔방의 수돗물도 마실수가 없다....
사전에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올 때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석회질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텐진에서 북경에 올때까지 산이 보이지 않던데 북경의 수돗물은 어느강에서
끌어다 쓰느냐고 질문했더니 강물은 아니고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고 한다...
지하수가 그만큼 풍부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확인할수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호텔에서 세면이나 샤워는 가능하지만 비눗물이 금방 씻겨지면서 피부가
꺼칠꺼칠해지기 때문에 로션은 필수인 것 같다...
(사진.1) 아침 7시 20분쯤 1층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 11층 호텔방 창문을 통해 북경시내 앞쪽과
(사진.2) 뒤쪽을 찍었는데 안개가 끼었다...
로비에서 만난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북경은 언제나 안개가 낀다고 한다.,
(사진.3) 호텔 1층의 식당이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쭈~욱 나열된 음식마다 청결하고 그릇마다 밑에 가스불을 붙여 놓아
음식이 적당량의 온도를 유지하도록 정성은 들었으나 이것 역시 입에맞는 음식이 전혀없어
빵 몇조각과 우유한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 하였다...
겨우 하룻밤 지냈는데 따끈따끈한 순대국이 그립더라..
(사진.4) 1층 로비에서 북경에서의 가이드와 함께.....
가이드는 중국조선족 출신으로 하얼빈 사범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옌변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가이드가 수입이 훨씬좋아 이직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가는 곳 마다 상세하게 설명해준 것은 고마운데 말끝마다 우리나라(중국)를 강조하기에
어느순간 묘한 기분이 들어 그렇다면 역사학을 전공한 자로서
(속으로 조선족임을 감안하여)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조선족의 역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견해를 질문하자. 그것은 중국의 역사다면서 중국측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그녀의 발언으로
내가 출토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관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었으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곧바로 웃으면서 나는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가이드는 중국역사에서 그부분은 대충 넘어간다는 말로
수습했다..
(사진.5) 앞글에서 열거한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원"에 도착하자 붐비는 차량사이로
영업용 자전거???가 많이 다니기에 신기하여 한컷트..
(사진.6) 이화원앞 매표소.
(사진.7)북경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15km가량 떨어진 서태후의 궁전인
이화원앞 광장이다.
이화원은 원래 청(淸)나라 고종(高宗 : 乾隆帝)이 건륭(乾隆) 15년(1750)에 세워
청나라 황실의 별궁(別宮) 원명원 이였는데 아편전쟁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태워 파괴되었다가 서태후가 광서 14년(1888년)에 해군 군비로 10년간
비밀리에 공사를 진행하여 복원하고, 이를 이화원으로 개칭하여
서태후의 휴식장소(여름궁전)가 되었다.
이화원앞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약70%는 한국인. 약25%는
중국각지에서 관광온 중국인. 약5%는 기타 외국인 것 같았다..
(사진.8) 이화원 출입구를 지나 서태후가 정치활동을 했던 인수전 입구의 인수문(仁壽門)
(사진.9) 서태후가 정치활동을 했던 인수전(人壽殿)
제9대 광서황제(서태후의 어린조카)와 수렴청정하던 서태후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화원에서 보냈으며. 이곳 인수전에서 대신과 외국사절을 접견하는등 정치활동을
했던 곳이다.
인수전(人壽殿)앞에 있는 저 동물은 청동으로 만든 소위 '사불상(四不像)’이라는 동물이다.
저 동물은 중국 특산의 사슴이다. 그런데 사슴하고는 다른 4가지가 있으니,
뿔은 사슴과 닮았고, 몸통은 나귀와 닮았으며,
머리는 말을, 발굽은 소와 닮았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불상이다.
전설의 사불상은 뿔은 사슴, 머리는 용, 비늘은 물고기, 발은 소, 이렇게
네 가지로서 사불상은 옳지 못한 사람이 오면 뿔로 들이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사불상이 나를 보더니 너무 얌전 하던데~~ㅎㅎ
(사진.10) 서태후의 집무실인 인수전을 옆에서 찍은사진
(人壽殿 : 어진자는 오래산다.(仁者壽)는 구절을 인용)
(사진.11) 인수전앞 좌측에 세워진 자연석과
(사진.12) 우측에 세워진 자연석 2개를 가리켜 ****이라 했는데 ???
(가이드가 말했는데 기억이 없음.ㅎㅎ)
이말뜻은 서태후가 광서황제와 황후에게 부모를 잘 섬기고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사진.13) 인수전 뒷쪽으로 들어가면
(사진.14) 낙춘당(樂春堂)앞에 있는 돌
이 돌은 중국 방산(房山)에서 나온 자연석으로 크기는
높이 4m. 길이8m로서 이곳으로 운반할 때 백여명의 인부가 마차 10대를
이용하여 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꼭 영지(靈芝)같이 생겼는데, 영지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서‘장수’를
상징한단다..
원래 이름은 ‘칭윈시어우(靑芸岫 : 푸른 영지모양의 산)’인데,
서태후가 “이거 집안을 망칠 돌이로구만…”이라는 말을 하여
‘패가석(敗家石)’이라고도 불린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사진.15) 서태후가 생활하던 거처(침실)인 낙수당(樂壽堂)이다.
이곳에서 옥란당의 광서황제를 감시하였다고 한다.
>
또한 이곳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전등(電燈)을 쓴 곳이라고 한다.
(사진.16) 무술정변의 실패한 제9대 광서황제가 붙잡혀 서태후에 의해 1908년
죽을 때까지 10여년간 여름에는 이곳에 감금되어 지내던 옥랑(란)당이다..
(사진.17) 다시 뒤쪽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인공으로 쌓은 만수산. 좌측으로
인공호수인 곤명호가 있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 각 궁전, 절과 사당, 정원 고유의 건물을 합쳐서 3천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바퀴 도는데도 이틀은 걸린다고 하여 시간관계상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음속으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마라톤하면 1시간에 다 구경할수 있는데 ??....
무척 아쉽더라...
(사진.18) 우측의 저산은 곤명호수를 파낸 흙으로 쌓아 만든 만수산이다.
이방원의 '하여가' 시조에 나오는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할 때
바로 그 만수산이다.
저 건물은 청나라 제8대 동치황제가 생모인 서태후의 60세 생신을 경축하기 위해
대규모로 세운 대극은수사(大極恩壽寺)라는 절이다.
산꼭대기에는 벽돌로 쌓아 만든 불당을 지혜해(智慧海)라고 불렀으며.
만수산의 앞쪽 산자락에는 정자와 각을 건설하였고 그 뒷산에는
탑을 배치하여 놓았다고 한다..
(사진.19) 이 호수는 곤명호(昆明湖)로서 사람이 직접 판 인공호다.
깊이는 약 30m 정도이고, 배로 자금성(紫禁城) 옆의 베이하이(北海)와
연결이 되어있어, 황제가 직접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서태후를
알현했다고 한다.
(사진.20) 이화원의 규모는 곤명호를 포함해 무려 97만평으로 우리나라
현충사(10만평)의 10배가량의 넓이로서 이중 4분의 3가량이
이곳 곤명호다.
(사진.21) 곤명호 우측사진.
(사진.22) 앞쪽으로 걸어가서 곤명호만 촬영해봤다..
만수산이 굽어보는 이곳 곤명호는 철의 여인 서태후에 의해 쓰러져간
수백만 백성들의 목숨과 피눈물로 만들어졌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이를
관광명소로 개발하여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실에서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기도 한다.
정말 난세의 현실앞에서 먼훗날 역사는 정말 모를일이다....
(사진.23) 줌으로 조금 당겨서 촬영.
드넓은 이곳 곤명호를 끼고 있는 이화원의 풍광은 일품이였지만,
황실의 향락을 위해 소리없이 쓰러져간 이국의 수백만 민초들의 영혼에
잠시나마 짜릿한 아품을 느끼며 숙여해지더라~~
(사진.24) 줌으로 좀더 당겨보았다.
(사진.25) 중국정부에서 관장하는 보석가게다..
우측의 학생들은 제주도에서 수학여행 온 우리 고등학생들이다....
이곳은 여행객들이 좋든 싫든 들려야 하는 코스로서 약90%는 한국인 나머지는
중국인들을 비롯하여 인도 스리랑카등 동남아시아 여행객들인데
다른나라 사람들에 비해 우리 학생들의 세련된 디자인과 옷맵시. 우수한 재질.
번지르르한 얼굴. 활기찬 모습등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확연히 달라
든든하더라...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정부에서 관장한 때문인지 정문과 주차장등 곳곳에
정복입은 근무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입고있는 제복을 유심히 살펴 보았더니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입었을 법한 낡고 허름한 재질에서 세계 최고의 실크를
자랑하는 중국의 선입관 때문에 의아해 하면서 우리는 각분야에서 기술력을 지속
발전시키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26)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이들이 우리나라 시장조사를 하여
우리나라보다 약간 싸게 판매하고 있으나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비싼값으로
판매하고 있다...
5년전 내가 매일 중국조선족들을 상대하는 부서에 근무할 때 그들한테
중국에서 중산층의 월수입을 물어보자 중산층 평균 수입이 월2만원(韓貨)
이라고 한적이 있다....
또한 가이드에게 교사로 재직중 월수입을 물어보자 우리나라돈(韓貨)으로
환산하여 5만원이라고 대답했었다....그렇다면 5년의 세월이 흘렀다해도
중국에서 월수입 5만원이면 중산층은 된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이 진품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보다 약간 싼값
(마누라는 똑같은 물건인데 남대문시장보다 비싸다고 한다)에 판매한다해도
그곳에서는 짭짭할 수입원이 된다는 얘기다...
보석은 몇백만원짜리. 1300만원짜리 다양하다...
한편으론 수학여행온 저 학생들이 부모님 선물이라며 15만원짜리.
6만원짜리 목걸이 반지등을 척척 사는것을 보고
희비가 엇갈리더라~~(생각은 각자)
(사진.27) 보석가게 부근의 식당인데 거의 한국사람들이다.
(사진.28) 모처럼 김치가 나왔는데 나머지 음식은 입에 맞지않아 서울에서 가져간
고추장이 여행 내내 훌륭한 음식 이였고...
(사진.29) 만리장성 가는 도로인데 도로는 시원하게 소통되었다..
(사진.30) 만리장성 가는 길목에 세워진 동상인데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중국 10대 원수의 1명인 ***라 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31) 만리장성으로 가는 길은 계속 험춘한 산이였는데 산능선을 따라
만리장성이 계속 이어 진다고 한다.
(사진.32) 북경시내를 벗어난 지역의 부락들은 전부 전형적인 붉은 벽돌집이다..
(사진.33) 험준한 산은 계속 이어지고.
(사진.34)
(사진.35) 만리장성이 지나가는 산중턱을 몇차례 지나간다.
(사진.36)
(사진.37)
(사진.38) 북경시에 있는 만리장성중 제일 잘 보존된 팔달령에 도착 하였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팔달령에 안내되는데 팔달령은 만리장성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국사람들 조차도 만리장성을 구경하기 위해 팔달령을
꼭 가고싶어 한단다...
비바람과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때면 케이블카를 운행하지 못해
다른곳을 통해 만리장성까지 도보로 걸어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날은 날씨가 좋아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사진.39) 케이블카는 허름한 2층건물에서 출발하는데 왠지 불안하더구먼..
케이블카를 타기전 입구쪽을 향해 찍은 사진.
(사진.40) 케이블카를 타기전 만리장성쪽을 향해 촬영
(사진.41) 케이블카 1칸에 앞쪽에 3명. 뒤쪽에 3명이 승차하고..
(사진.42) 케이블카가 출발했는데. 드르륵 드르륵...
고정된 대형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끼이익.끼이익. 케이블카 자체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꼭 폐차 일보직전의 시내버스를 타는 기분 같았고.
(사진.43) 공중으로 치쏫을 때마다 대롱대롱하지 않을까~~??..ㅎㅎ
맴이 불안하더라...
산을 유심히 살펴보면 큰나무들이 없다...그 이유가 뭘까 ???
나는 가는곳마다 바위들도 유심히 살펴봤다....
중국대륙 일부분인 북경에서 느낀 것을 대륙 전체로 판단할 수 없고
단언할 수도 없겠지만 나중에 장가게 비경사진을 올리면서 대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할려고 한다.....
(사진.44) 케이블카 안에서 아랫쪽을 향해 촬영하고.
(사진.45) 만리장성 팔달령에 도착 하였다.
=다음에 계속=
다음은 낼모레 태인에 다녀와서 만리장성과 장가게로 향하는 2천미터 이상
상공의 비행기 안에서 석양을 촬영한 사진을 게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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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가족등)게시물
중국여행(2) 이화원과 만리장성 일부..
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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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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