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고등학교 친구 재희에게서 택배가 왔다.
선훈이 초등학교 입학이라고 요사이 내가 관심가지고 있는 백창우 CD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들]를 부쳐주었다.
일 년이래야 경조사 때 한두 번 밖에 못 만나지만 선물을 챙겨 주는 친구.
나는 선훈이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며 세상살이를 배우는 것 같다.
마치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돈을 주던 어른들의 모습을
요즘 가끔 만나는 내 또래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돈을 줄 때 느끼는 그 미묘한 감정.
내가 그 때 그 어른들 자리에 서 있다는.
올 초는 그야말로 선물 천국이었다.
시댁엘 가도 친정엘 가도 식구들마다 선훈이 선물을 챙겨 주시는데,
나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 자식이 초등학교 들어가건 말건 신경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현상들이 너무 뜻밖이었다. (물론 시댁 조카들은 챙겼지만.)
그러다 '친구'를 생각하게 된 건,
정희 때문이었다.
동생이 프랑스에서 보내 준 선훈이 가방 크기가 좀 난감한 상태였지만
(유럽은 휠 캐리어-트렁크식-를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애는 선훈이 책가방을 택배로 부쳤다고 했다.
정희는 중학교 동창인데 다 커서 다시 만나기 시작해 가끔 만나지만(모든 친구들을 가끔 밖에 못 보는 게 아줌마 실정이니까) 늘 과분하게 날 챙겨주는 친구이다.
며칠 후 배달된 가방은 신주머니, 필통, 주머니, 지갑 등등이 있는 풀 패키지였다.
정희는 아직 미혼이다.
난 결혼한 지 8년, 서른 여섯 살이나 돼도 남의 자식 챙길 줄을 몰랐었는데
그 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와 동시에
병적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국민학교 입학.
결사적으로 분가한 우리 부모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가난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걸 낭만으로 기억하는 걸 보면 우리 엄마가 진짜 나를 잘 키우셨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때, 난 국민학교 입학을 해야 했는데
책가방이 없었나 보다.
어느 날 밤.
아빠 친구라는 사람이 온 것 같다.
아빠는 무슨 사정이 있어서 잠시 안 계셨던 것 같고
엄마랑 나랑 그 아저씨랑 파장 무렵의 시장에 가서
주황색 빛이 나고 여자 만화 그림이 있는 제일 후진 책가방을 하나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 아저씨 덕분에 난 책가방이라도 들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늘 고데기로 내 머리를 말아 주시고,
친척 언니가 입던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 원피스로 치장을 해 주셨고,
동네에 과외 안 하는 애가 없을 시절이었는데
난 엄마 가정교사 덕분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그 자존심이
아마 내게, 가난이란 기억을 이렇듯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 때 들었던,
쓰리세븐 가방. 남보다 키는 작고 남들 것 보다 컸던 가방.
엄마는 그 때 내 국민학교 입학 때를 기억하셨던 걸까?
그 여한을 푸시려고
그렇게 큰 가방에,
명동에까지 가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교복 맞춤집에서 교복을 맞춰 주셨던 걸까?
덕분에 난 중학교에서도 교복이 제일 이상한 애였다.
남의 기성복만도 못한, 단추가 다닥다닥 붙은 비싼 교복이었던 것이었다.
그 교복을 왜 버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너무 후회스럽다.
그 교복을 보면 지금은 안 계신 엄마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친구로 시작해서 엄마로 끝나는 이야기.
초등학교 가는 아이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나.
남편은 영화를 보다 종종 그러지.
'당신한테 대입시키지 말고 그냥 보라'고.
그 말이 딱 맞는다.
첫댓글 우리도 이젠 과거사를(?) 밝힐때가 된 것 같음.나도 밝히고 말테에요. 마음의 준비가 되면....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