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라피란?
그리스의 typo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된 타이포그라피.......
타이포그라피란 전통적으로 활판인쇄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져 왔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면서 그 의미도 현대적의미로 바뀌어갔다. 그때부터 타이포그라피는 활판인쇄술 뿐만아니라 전달의 한 수단으로써 활자를 기능과 미적인 면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나 학문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갔다.
전통적인 타이포그라피가 읽기위한 글자보다 보기에좋고 아름다운 미적 장식개념이 주된관심사 였다면 현대 타이포그라피는 활자 그자체의 미적 가치보다는 독자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가 라는 기능에 핵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큰차이가 있다. 그림은 보는 것이고 글자는 읽는 것이라면 타이포그라피의 근본적인 목적을 읽기 쉬워야 한다는 기능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 타이포그라피라는 분야는 점차 그 의미와 표현이 다양해지고 깊어질 뿐만 아니라 그 영역도 훨씬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타이포그라피의 역사
활자에서 디지털 시대까지의 타이포그라피의 역사....... 활자가 발명된 순간부터 형식과 내용 간에 갈등이 시작됐다. 형식은 인쇄된 책이고 내용은 책에 적혀 있는 글이다. 그동안 타이포그래퍼의 역할은 미미했다. 그러나 갈등은 저절로 해결됐다. 바로 19세기부터 타이포그라피의 역동성이 기표(형식)와 기의(내용)를 통일한 것이다. 그래픽디자인보다 타이포그라피에서 보다 더 잘 구현된다. 사실 타이포그라피는 높은 예술적 수준을 이루자는 것도, 창조적 본능을 충족 시키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창조성보다 현실적인 측면, 말하자면 형식과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을 그 본령으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활자를 조합하느냐에 따라 타이포그래퍼는 무수한 가능성을 펼쳐 보일 수 있다. 텍스트를 디자인할 때 타이포그래퍼는 경직된 형태의 지루한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유용한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 이렇게 해서 형태 속에 생명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에 따른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타이포그래피의 혁신을 불러온다. 도시화와 산업화 사회는 신속한 대중 전달 매체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과학기술은 인쇄 매체의 단위 가격을 낮추고 생산을 증가시켰다. 따라서 증대된 효용성은 인쇄 매체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를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역사주의(historicism)'로부터 탈피한 '과도기적 양식'이며, 20세기 시작 전후 20여년간(약1890-1910) 번성했던 장식적 양식으로 건축·가구·제품디자인·패션·그래픽 등 디자인의 모든 영역이 이에 포함된다.아르누보를 규정짓는 시각적 특질은 중력이나 뿌리로부터 해방된 식물형태의 선이다. 아르누보 양식은 문자형태의 형성과 그 본질에 대한 개념을 다양하게 실험하는 선두자로서,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까지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미래파 (futurism)
20세기 타이포그래피의 발달은 현대회화,시,건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시기의 그래픽 디자인은 입체파 회화와 미래파 시(詩) 사이의 충돌로 인해 탄생된 것이다. 미래파 시인들은 수평과 수식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의 원칙을 무너뜨려 버렸다. 그들은 사진으로 복제 하기 위해 단어와 활자체를 적당한 곳에 붙임으로써 이루어진 동적이고 비선적인 구성으로 지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데-스틸(de-stijl):1920년대 초부터 건축산업디자인·타이포그래피 등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데-스틸 운동은 1917년 네덜란드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는 시각적 표현방식을 검정색과 흰색과 함께 (빨강,노랑,파랑)으로 제한하고 형태를 직선,정사각형,직사각형으로 국한시켰다. 이들은 또 우주만물의 엄 밀한 구조 및 자연의 우주적 조화의 표현을 추구했다. 데-스틸은 응용미술에 의한 순수미술의 흡수를 주장한다.
구성주의 (constructivism)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은 20세기 그래픽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국제적인 영향을 끼쳤다.이같은 구성주의가 공식화된 것은 1922년 알렉세이 간이 저술한 [구성주의(konstruktivizm)]라는 소책자가 출간되고 나서부터였다. 이에 따르면 구조(tectonics)와 조직(texture)과 구성(construction)은 구성주의를 이루는 세가지 원리라 규정했다.
'구조'는 시각적 형태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통합을 의미하고, '조직'은 재료의 성질과 산업생산에서의 재료의 사용방법을 나타냈다. 또 '구성'은 창조과정과, 시각적 짜임새의 법칙에 대한 탐색을 상징한다고 기술했다.
바우하우스 (Bauhaus)
독일의 바이마르 시기(1919-1924)의 바우하우스파는 다분히 이상적이었다. 유토피아적 희망으로 특징지워지는 초기 바우하우스파는 미래 건설을 위해 미술가와 장인들의 새로운 제휴를 꾀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목재, 금속에 관한 워크샵들이 중세의 '건축인 조합'체제로 조직되어 각각 한명씩의 미술가와 장인에 의해 지도받았다. 바우하우스파는 중세풍,표현주의,수공예 등에 대한 관심부터 합리주의와 기계생산을 위한 디자인을 더욱 강조했다.
뉴 그래픽 (Neue Grafik)
1959년 스위스에서부터 시작된 뉴 그래픽(Neue Grafik;New Graphic)은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발전에 기여했다. 이는 스위스 디자인 운동의 정신과 업적을 세계의 독자층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또 스위스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에 의해 성취된 질서와 세련성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이들은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고 또 설득적인 선전적 기교도 없이 대중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객관적이고 비개성적인 표현을 통해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그래픽적 표현을 추구했다.
사이키델릭풍 (Psychedelic Movement)
뉴욕파(The New York School)라고도 일컫는 사이키델릭풍은 전체적인 정치 풍토를 혐오해온 재능있는 디자이너들이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옴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는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 여성해방운동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포스터 문화'로 집중되는데 반체제운동,록 음악, 환각제 복용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문화풍토를 표현했던 그래픽 운동은, 아르노보의 흐르는 물결모양의 곡선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어느 전시회가 유행시킨 옵 아트(Op Art)운동에서와 같은 색상의 강력한 시각적 진동, 대중문화로부터의 이미지 혹인 팝 아트에서 널리 행하고 있던 연속적인 색조 이미지를 고도의 흑백대비로 축약시키는 것과 같은 조작에 의한 이미지의 재생등 여러 가지 원천을 끌어들였다.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용어가 붙는 디자인 경향은 원래 스위스 양식(Swiss style)속에서 교육받고 형태언어를 확대사킨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의 작품경향은 웨이트(weight)에 있어서 대비를 이루는 활자의 이용, 그리드를 설정해 다시 그것을 깨뜨리는 것, 전체의 공간을 일종의 긴장의 장으로 규정하는 등을 내용으로 한다. 또 대각선의 괘선(rule)과 띠(bar)가 활자와 함께 흔히 사용되며, 때로는 다다니즘의 포토 몽타쥬 기법이 채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직관성과 유희성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반영된 것도 이 시기다.
포스트모더니즘 그후......
데스크탑 컴퓨터가 폰트디자인 소프트웨어, 페이지 메이크업 프로그램과 더불어 등장한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시대에서는 모든 개념상 한계가 타파되기에 이른다. 이 시대의 타이포그래피는 변덕스러움과 무한대의 개인적인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퍼 들은 모호함을 즐기고 유보적인 어조와 다의적인 의미를 선호하며 결정적인 대목은 아주 잘 다듬은 문장속에 미루어 숨기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가 담론으로서의 가치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바로 디자이너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수용자 입장의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스타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라 불려지는 이 시기는 그간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여겨졌던 '국제적 양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시기는 또 1980년대 미국 중서부 미시간주에 위치 한 크랜부룩 미술학교에서 비롯된 직설적인 의미보다는 함축의미가 담긴 '크랜부룩 스타일'이 새로운 그래픽 형태로 다져지기 시작한다. 이는 폭넓은 '문화 읽기'를 통한 담론의 이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