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기행
날씨는 오전부터 왜 이렇게 날씨가 더운지 작년보다 올해가 더 더운 것 같다.
오전에 임원으로 갈까 하다가 오래 전부터 계획을 한 영월로 가기로 하였다.
경북김천에 있을 때부터 언제가 한번 영월을 꼭 가고 싶었다.
영월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선역사 기록에 나오는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곳과 그의 무덤인 장릉 에 한번 가고
싶었다. 항상 마음속으로 가보아야 하지하고 계획만 하던 차에 날씨는 덥지만 9/40분에
동해를 출발하였다.
계획된 방향은 2가지 방향인데 하나는 도계- 태백 - 상동 -영월 코스와 동해-강을-장평-
평창-영월에 이르는 2가지 코스인데 강원도의 맑은 산골의 정감을 느끼면서 가는
태백코스를 택하였다.
태백까지는 길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쉬었다. 그러나 태백에서부터 초행길이라
길가 상회에나 그곳 사람에게 물어가며 갔다.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자동차 에어컨을 틀고
갔지만 얼굴에는 연신 땀이 흘러 별로 소용이 없다.
허기야 3년 전에 에어컨 가스를 주입하였으니 그 동안 가스가 모두 빠져나갔을 것이다.
오전에 출발하면서부터 아내는 두털 걸린다. 단풍지는 가을에 가면 좋을 텐데 이 더운
여름에 여행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고 중얼거린다.
나도 가만히 생각하여보니 성급한 마음이 앞서 출발한 것 같기도 하다.
허지만 이렇게 태백을 지나 상동이 가까운 거리인데 돌아가기도 쉽지 않고 가자고 한 내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
아내는 속이 편치 않는다고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늘도 출발할 때 나에게만
식사를 하라고 성화를 부리면서 차려준다.
나도 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내의 자상하고 지극한 정성을 물리칠 수 없어서 아침을
모두 비웠다. 그런데 아내는 차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위장이 편치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평소에도 위장이 편하지 않아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내인지라 오늘은 그래도 평소에 좋아
하는 민물 메기 매운탕을 사주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영월에서 빨리 오라는 사람도 없고 빨리 가야한다는 목적도 없는 터라 중간 중간에 쉬면서
영월로 갔다.
상동으로 가는 국도 옆 깊은 계곡에는 흐르는 맑은 물은 얼마나 투명한지 수정 같다.
한국의 모든 산천의 계곡 물이 이렇게 깨끗하게 흐르며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 역시
이렇게 맑다면 타인을 미워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최근 도시부근에 흐르는 오염된 물을
볼 때 인간은 자기 이기주의적인 탐욕이 얼마나 땅을 황폐시키는 잘 모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보고 느끼고 감상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를 넘었다. 배속에는 허기가 스며든다.
영월 입구에 물레방아 집이라는 매운탕 집에서 점심을 청했다.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민물 매운탕도 입맛이 없는지 절반정도만 먹고 수저를 놓는다.
아내의 입맛을 돋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아
걱정이다. 아내의 신체는 점점 야위어만 가서 걱정이다.
부부로 만나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욕심이 있다면 건강하게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분복 이거늘 어찌 고르지 못함일까?
영월 가는 도중 상동을 지나 영월 입구 근처에 김삿갓 묘라는 이정표가 눈에 뛰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김삿갓의 한시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김삿갓의 소설과 생애가 담긴 여러
가지 책을 본지라 나도 김삿갓의 생애와 그의 詩 를 알게 되었다. 그는 글과 시에 능하였
을 뿐 아니라 . 선조 할아버지가 나라에 대한 불충 불의 한 죄명에 대해 자신 조상에 깊은
연민에 빠져 자신을 학대하며 평생을 산천을 방랑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한을 풍류 시를
읊으며 한 시대를 해학과 질책과 조조를 남긴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현생을 살아 있다면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이고 위대한 시인과 한잔의 술을 나누면서......
그는 이미 죽은 오래되어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간지 오래 되었건만 그래도 그의 시는 남아
시를 아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나도 그저 김삿갓 풍류의 한시를 좋아하기에 이렇게 영월에 가는 도중에 그의 사후 무덤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회 깊은 것이다.
김삿갓의 무덤은 영월 부근인데 국고를 따라 6km를 따라가다가 소로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조그만 하게 자리 잡은 그의 무덤이 있다.
지금 있는 이 무덤은 그의 둘째 아들인 균이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반듯한 상석도 없고 어느 사람처럼 망부석도 없이 자연석으로 상석을
치장을 하고 후세에 세워 을 名碑 에는 김병연 지묘 라고 쓰여 있다.
참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세월은 한없이 흘러가건만 그래도 풍류의 시인인 김삿갓이라는
별칭의 시인을 아직도 후세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에 남아 다시 찾아보는 시인 묘이다.
그의 시중에는 이런 시가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섰으니
산은 푸르고 돌은 하얀데 사이사이 꽃 이러나
만일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하면
수풀사이에서 우는 새는 는 어찌 하오리
참으로 산천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시다
전 같으면 이곳 영월 첩첩산중에 있는 김삿갓의 묘는 한날 보잘것없는 곳 이였지만 최근에 주민들은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들어가는 길목에 그의 시를 돌에 새겨 놓았다.
도로변 실개천에는 옥수 같은 계곡 물이 흘려야 하지만 생활 오수로 황토 빛 물만 흐른다.
김삿갓 묘를 뒤로 하고 올 가을 단풍이 질 때 다시 들려보리라 생각하고
영월로 들어선다. 먼저 단종의 능이 있는 장릉 에 가보기로 하였다.
장를 주차장관리 요원들은 푹푹 찌는 여름날에 연신 땀을 흐리면서 주차비를 징수한다.
장능 입구에서 바로 능가는 길로 들러서니 따가운 여름 햇볕은 장승처럼 높이 솟은 소나무
그늘로 시원하다. 능은 생각보다 작다. 한낱 어린 소년의 무덤이겠지만 그래도 왕으로
추존 되어 상석. 인물석 마석 등대 석들이 줄을 서있어 오랜 세월을 지켜준다.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이 광기 어린 권력 욕망에 밀려 피하고 피하다 한양천리 멀리 이곳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죽음의 사약을 마시고 죽은 가여운 인생이다.
권력과 부귀영화가 무엇이 길래 권력이 무엇이 길래 어린 조카 마저 죽여가며 그 것을
차지 해야하는지 사람의 욕망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 여전 한 것 같다
능의 장원 안에는 단종의 복위와 그의 시신을 거두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패들이
있다. 참으로 사단은 교묘히 숭배를 받는다.
그의 제단으로 가는 길옆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벼슬의 사람이 살아 던 객사가 있다.
객사는 그대로 건만 그때의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남지 않았구나
그래도 참봉은 수하에 90명의 군졸이 이곳을 지켰다고 하니 능 참봉 벼슬도 대단하다.
세월의 녹슨 시류는 불과 547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 몇 천년 전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날씨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덥다.
이제 다시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로 가보기로 하였다
청령포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다.
청령포강 입구에는 매표소와 도강하는 배를 타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강을 건너면서 약 547년에 이 강을 건너던 단종을 생각하면서 건너 가본다.
그때 어린 나이에 이 강을 건널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곳 청령포는 정말 천하의 유배지이다. 뒤로는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주위에는 흐르는
강물이 막고있으니 군졸이 지키는 한 마음놓고 출입 할 수 없다.
단종이 처음에 유배되어 살았던 집은 불타 없어지고 새로 지은 한옥에는 당시를 재현하는
인형들이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시종이 사는 방과 단종이 거처하던 방들이 재현되어 있다.
한옥 앞에는 임금 수라를 짓든 초가집도 재현되어 있다.
한옥을 돌아보면서 이곳 청령포 안에는 지금도 소나무 숲은 여전하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짖어 젖을까?
유배지 한옥 앞에는 허리 숙인 소나무 한 그루 오늘도 여전히 읍 한다.
당시에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며 우거진 깊은 숲 속에 얼마나 무서워 슬까?.
칠 흙같이 어둡고 정적마저 죽어버린 고요함에 솔바람만이 황초 불을 흔들 때 단종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고립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운명에 얼마나 가슴
조이며 지내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 소나무 숲은 지나 망향 탑을 찾아본다. 깎아진 절벽아래는 강물이 굽이 흐르는데
그 옛날 왕위에서 쫓겨나 사랑하는 아내마저 강제로 이별하고 이렇게 멀리 그리워
울며 한 자락 구름 위에 애타 는 사연을 띄어 한양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 을 지도 모른다
서로가 의지하고 위로하며 살아온 님을 이곳 망향 대에 올라서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그립고 그리워 눈물지었을 것이다.
어둠침침한 숲 속을 지나 내려오니 금 표 비석이 서 있다.
이 비석은 왕이나 백성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표이다. 그 때는 이 비석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이제는 한낱 늙고 늙어 온 비석에는 글씨 마저 희미하고 부서 저 버릴 것만 같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은 소나무 아래는 떨어진 솔잎만 그 옛날의 역사만이
기억하는지 물어본다.
2000/6/20 남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