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 탄생 (6월 6일)
6월 6일은 창가(創價)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 탄생 1백35주년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여기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의 유덕을 기리면서 제2총도쿄 리더 여러분과 의의있게 협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 현창실에는 마키구치 선생님이 배독하신 어서(御書)가 소중히 보관돼 있습니다. 늘 선생님 곁에 있던 그 어서에는 도처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특히 '광선유포'라고 기록된 부분의 앞뒤에는 굵고 진하게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법화경 제7권에는 이런 글월이 있다. 나의 멸도후 후 오백세 중에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 단절케 해서는 안 된다"라고" (어서 258쪽, 통해), "투쟁견고(鬪諍堅固)라고 기록돼 있는 부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예언한 세상대로 됐지만) 이것은 마치 대해의 조수 간만이 때를 어기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런 사실에서 생각하면 대집경의 백법은몰(白法隱沒)의 때에 이어 법화경의 대백법이 일본국을 비롯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하는 것도 의심하면 안 된다." (어서 264쪽, 통해)라는 등의 부분이다. 그리고 어서 여백에는 '광선유포'라고 붉은 글씨로 직접 써 넣으셨습니다. - 제2총도쿄 최고협의회 (2006.6.4)
* 국제창가학회(SGI) '유럽의 날' (6월 6일)
'일염부제 광선유포'라는 석존 그리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의불칙(佛意佛勅)을 실현하기 위해 마키구치 선생님은 애제자인 도다 선생님과 함께 결연히 미문(未聞)의 대격투를 일으킨 것입니다. 대성인 말씀대로 '광선유포의 신심'을 드높이 내걸고 법화경에 설한 '유다원질(猶多怨嫉)' '악구매리(惡口罵詈)'의 난을 받으며 '삼류(三類)의 강적'을 타파한 것은 누구인가. 마키구치 선생님을 원점으로 한 우리 창가학회 삼대(三代)의 사제 뿐입니다. 여기에 바로 대성인의 진정한 혈맥이 흘러 통합니다. 이 위대한 창가(創價) 사제(師弟)의 길을 이제 세계 1백92개국 지용(地湧)의 보살이 가슴을 펴고 나아가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6월 6일은 국제창각학회(SGI) '유럽의 날'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회원이 창가 아버지의 탄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도다 선생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두 선생님의 직계 제자인 내게도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 제2총도쿄 최고협의회 (2006.6.4)
* 부인부 결성(6월 10일)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청을 높여 일어서야 한다." 이것도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입니다. 지금 우리 벗은 일본, 전 세계에서 신념 있는 소리를 내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6월 10일에는 "창가의 태양"으로 빛나는 부인부가 결성 55주년 가절을 맞습니다. 전국의 부인부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진지하고 진심 어린 대분투, 정말로 수고 많으십니다. 광포에 싸운 사람은 반드시 제천선신에게 수호받습니다. 유사시에 도와 줍니다. 그러므로 싸워야 할 때 싸워야합니다. 우리 제2총도쿄의 벗도 새로운 시대의 선구에 서서 의기가 드높습니다. 제2총도쿄에는 아름다운 이체동심(異體同心)의 단결이 있습니다. 또 간부들도 사이 좋고 명랑합니다. 조화가 잘 맞습니다. 그런 조직에서 싸우는 것은 행복입니다. 예전의 산타마본부가 지금의 제2총도쿄 전신인 '제2도쿄'로서 새롭게 출발한 것은 1971년 11월이었습니다. 올해로 35주년을 맞습니다. 오늘날 눈부신 '제2총도쿄'의 대발전을 당시 도대체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제2총도쿄 최고협의회 (2006.6.4)
* 종문 신사호부 강요 (6월 27일)
전쟁 중이던 1943년 6월 27일, 63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당시 군부정부는 국가신도를 중심으로 사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활발한 절복과 홍교를 전개하셨습니다. 군부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한 종문은 이날, 도다 선생님과 마키구치 선생님을 본산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법주 닛쿄(日恭)가 참석한 자리에서 학회가 '신사호부(神社護符)'를 받도록 강요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일언지하에 거부하셨습니다. "승복할 수 없습니다. 신사호부는 절대로 받지 않겠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훗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용기있는 이 한 마디가 학호의 명운을 갈라놓아 학회를 순난(殉難)의 길로, 사신홍법(死身弘法)이라는 대성인 문하의 영예로운 정도(正道)로 이끌었다. 학회가 없었으면 대성인 정신은 단절됐을 것이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그리고 도다 선생님의 목숨을 바친 투쟁이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학회가 발전했습니다.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사람들이 학회를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 전국대표회의회 (2006.6.27)
성훈에는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라고 지남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종래 일련정종 신자 중에 '누가 삼장사마와 다툰 사람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1942년 총회) 종문은 누구 한사람 삼장사마와 싸우지 않았다. 그럼 정법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1943년 6월 27일. 종문은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을 불러서 법주의 입회 아래 학회에 '신찰(神札)'을 받도록 통고했습니다. 탄압을 두려워해 방법(謗法)을 강요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리를 나오셨습니다. 이튿날도 마키구치 선생님은 법주를 만나 국가 간효에 일어서도록 강하게 호소하셨습니다. 그 8일 후 특별고등 경찰에게 체포당하신 것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에게 분한 기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종파의 멸망이 아니라, 한 나라의 멸망을 한탄하는 것이다. 종조 성인의 슬픔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간효의 때가 아닌가.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겁한 종문은 보신을 위해 종조의 정신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학회만이 삼장사마, 삼류의 강적과 투쟁했습니다. 박해를 견대고 일체를 승리로 이겨냈습니다. 평화를 위해 민중을 위해 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끝까지 외치는 '용기'.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전국최고협의회 (2004.7.31)
종문은 당치 않게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이 체포된 7월, 두 선생님을 '등산정지' '말사(末寺) 참예 금지' 처분. 더욱이 마키구치 선생님을 '신도 제명' 처리했습니다. 같은 7월에 종문 승려가 마키구치 선생님이 안 계시는 댁을 찾아가 가족으로 하여금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퇴전을 권유하도록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종문에 누가 될까 봐 두려워한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종문은 전쟁 중에 신사호부 용인 등, 하고 싶은 대로 방법(謗法)을 되풀이한 끝에 1945년 6월 17일, 대석사에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신사호부를 모신 서원을 비롯해 주요 건물이 소실되고 그 당시 법주 닛쿄는 미처 도망기지 못하고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이 시기에 종문에는 광선유포의 '신심의 혈맥'이 단절돼 있었습니다. 오로지 창가학회에만 엄연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 전국대표회의회 (2006.6.27)
* 중국방문 (1974년 6월)
루쉰 선생의 혁명 투쟁의 마지막 무대가 상하이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인생 총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9년간을 지냈다. 나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1974년 6월), 상하이 루쉰 선생의 옛집을 방문했다. 루쉰 선생이 집필할 때 사용한 책상과 붓, 생전의 원고 등, 유품 하나하나에 혁명 투사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협소한 방에서 사악을 파헤치는 말이 그리고 청년을 고무하는 열성적인 문장이 탄환처럼 쏟아졌단 말인가. 방에는 이런 말이 걸려 있었다. "만약 내가 살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없이 계속해서 배울 것이다." 서거하기 2개월 전에 쓴 문장이었다. - 루쉰선생을 말한다 (하)
* 6월 10일은 세계 제일의 '부인부의 날'. 우아한 부인부의 명랑한 소리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성훈에 "악지식이라 함은 달콤하게 말하고 거짓 아양을 부리며 말을 교묘히해서 우치한 사람의 마음을 잡아 선심(善心)을 파한다."(어서 7쪽)라고 있다. 그 마성의 악지식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엄연히 파절한 것이 창가 여성의 영예이며 존귀한 역사다. 1979년, 광포의 화합습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종문의 책략이 소용돌이칠 때, 호쿠리쿠의 회합에서 한 여성 리더가 늠름하게 외쳤다. "무엇이 바뀌든, 누가 뭐라 하든 우리 스승은 선생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사자후란 묘법의 대원을 향해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부르짖는 정의의 음성이다. 이 울림이 있는 한 학회는 영원히 지지 않는다. 삼세까지 찬연히 번영한다. ( 법련-0706호)
* 대학부 결성, 이사에 취임 (6월 30일)
정확히 50년 전 6월 30일의 일이다. 이 날은 대학부가 결성한 지 2주년을 기념하는 날 이기도 하다. 그 1년 전인 6월 30일. 홀로 ‘총무’를 맡고 있던 나는 이날 창가학회 ‘이사’에 취임했다. 그리고 11명으로 확충된 이사실(理事室)을 대표해 총무가 조직부문과 사무부문의 모든 일을 통괄하며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즉 책임을 더욱 명확하게 하고 ‘집행부’의 중심부로서 전 학회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도다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셨을 때와 필적하는 대대적인 기구개혁이었다. 이때 ‘세이쿄신문’ ‘대백련화’를 비롯한 출판과 기획 그리고 경리 등 많은 부문의 책임자에 청년부 출신이 발탁됐다. 지부와 지구도 은사의 훈도를 받은 젊은 용사들을 등용시켰다. ‘다음 세대는 청년에게!’ 이 은사의 염원이 한층 더 명확한 형태로 되어 청신 (淸新)한 ‘청년 창가학회’가 씩씩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학부 결성 1주년과 2주년의 기념일이 내가 새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거듭 깊은 인연을 느낀다. - 수필 인간세기의 빛 <155>
* 프랑스 학사원 강연 등(1989년 6월)
정확히 20년 전인 1989년 6월. 나는 파리 프랑스학원을 방문해 ‘동서(東西)의 예술과 정신성’을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프랑스학사원은 창립한지 370년이 넘는 전통과 격식을 자랑하는 세계 제일인 영지(英智)의 전당입니다. 강연장에는 아카데미 회원인 일류 식자가 모였습니다. 나는 일언일구에 주목했습니다. 강연에는 내 아내와 야마자키 유럽명예 의장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야마자키 의장은 자랑스럽게 나비넥타이를 야무지게 맨 예복 차림이었습니다. 야마자키 의장은 “제 스승이신 이케다 회장은 유럽 최고봉의 지성(知性)인 여러분 앞에서 최고의 강연을 해주실 겁니다!” 하며 이전부터 그렇게 말 한 것 같습니다. 나는 불교의 ‘연기(緣起)’ ‘공(空)’의 사상과 법화경에서 밝힌 생명의 활력을 언급하며 ‘정신혁명’의 길을 논했습니다. 통역관도 난해한 불교용어를 번역하는 등 정말로 열심히 잘해주셨습니다. 강연 맨 마지막에 예술을 상찬하며 시 한수를 읊고 끝내자, 성대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져 잠시 동안 멈추지 않았습니다. (참석자들은 “불교의 진수(眞髓)를 처음으로 접한 느낌이었다.”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넘친 영지의 말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라는 등 상찬의 말이 잇따랐습니다.) - 신시대 제30회 본부간부회 (2009.6.16)
⊙ 강연장인 학사원회의장 벽에 장식되어 있는 프랑스의 대시인 라 퐁텐 조각상이 내 강연을 지켜보았습니다. 프랑스학사원 회원이기도 한 라 퐁텐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단결하지 않으면 어떠한 힘도 약하다” “보라.” “일치단결의 결과를. 힘을 합쳐야 한다.” 이체동심의 단결이 곧 승리의 힘입니다. 이것이 세계 공통의 진리입니다. 6월이라고 하면, 영국 스코틀랜드의 명문 글래스고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1994년 6월이 떠오릅니다. 올해로 15주년의 가절을 맞이합니다. (세계의 대학 ․ 학술기관에서 이케다 SGI 회장에게 수여한 명예학술 칭호는 현재 ‘256개’에 이른다. 결정통지서를 포함하면 ‘282개’이다.) - 신시대 제30회 본부간부회 (2009.6.16)
* 총무(6월 30일)
5월 3일, 나는 "7년을 마디로 광포의 종을 쳐라." 하고 지도하신 스승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광선유포를 향한 희망찬 전진의 목표가 되는 '일곱 개의 종'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6월 30일에는 학회에서 유일한 '총무'가 되었다. 광포를 위해, 모든 동지들을 위해 결연히 홀로 일어선 것이다. "광선유포는 조직의 힘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강성한 신심을 지닌 '한 사람'의 힘에 의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진정한 사자가 있으면 된다."는 것이 도다 선생님의 결론이다. 여하튼 온갖 비방과 중상을 타파하고 전 일본이 감탄할 큰 발전을 이루고 2년 후인(1960년) 5월 3일, 나는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 성훈에 "사자의 소리에는 모든 짐승이 소리를 잃게 되고." (어서 1393쪽)라는 말씀이 있다. "사자왕의 자식은 사자왕이 된다." 이것이 도리다. 우리 청년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자왕'이 되어라! - 인간세기의 빛 <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