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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애스트로맨 원문보기 글쓴이: 애스트로맨
페이스 위주인 아만바히. ‘내 그림자(5.10c)’를 오르는 윤길수씨.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루트 명에 녹아나 있다.
윤길수씨가 2011년 개척한 13개의 페이스 루트.
“정지한 자만이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수봉을 누비던 산악인들이 겉으로나마 잠시 헤식은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인상을 받는 어제오늘이다. 상대적으로, 필연적이고도 도리 없이 움츠러들었던 이들이 서서히 기를 펴고 일어나는 현상을 요즘 목격한다.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급속도로 세를 불린 인터넷 산악회의 아줌마 아저씨 부대가 인수봉을 점령(?)하리라고 예견했다. 이후의 해프닝을 일일이 예를 들어가기도 바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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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간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법도 없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해까닥 상황이 달라질 까닭도 없다. 등반 저변이 넓어졌다고 보는 긍정론도 있음을 상기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등반인구 고령화를 제대로 한몫 거들며 줄곧 하산하는 청춘들의 마음가짐이 아쉽다. 애당초 어려움과 위험을 멀리하고 자란 세대라는 궁색한 추론이 설피다. 마음의 문제다. 역으로 돌아보면 그 이유가 명명백백하다. 물신화의 범주에 포함된 재미와 자극에 깊이 젖어 산 여파로, 힘들고 어려운 일에 노이로제 증상을 보인다는 세간의 평이 신랄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젊음들이 실내암장의 문을 두드리는 횟수가 증가 일로라는 점이다.
깔끔하기로는 스포츠클라이밍이 최고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여가를 선용하고, 근력과 유연성을 더불어 키울 수 있어서 좋다. 비만 사회에 걸맞는 다이어트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안전에 기반을 둔 어려움의 추구만으로도 내 아이가 달라졌다는 꼴로 대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연접해 얻는 자기극복 철학과는 적정 거리를 둔다. “말처럼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무서운 식욕, 죽음도 불사하며 세상 뒤엎던 기개의 천하잡놈은 어디 가고 나긋나긋한 남자들만 오글거리는 세상”이라는 문정희 시인의 표현대로 부드러운 산악인 시대가 점진하고 있나.
단, 이 분은 예외로 한다. 1987년 설악산 천왕문 바람길 개척을 시발로 전 국토를 돌며 14개 바위에 길을 내고, 더불어 자유등반 사조와 정신을 전파한 이. 링아나운서 식으로 소개하자면 178cm의 키에 65kg 몸무게, 리치는 무진장 긴 윤길수(55세)씨다. 애스트로맨 암장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는 그는 자연과의 소통을 이루기 위한 방도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선용한다. 센스 있는 독자라면 아! 하고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칠 것이다. 교회에서 종교를 체험하게 한 후 절로 데리고 오는 식이다. 실내 암장을 매개로 등반에 재미를 붙이게 한 후 자연으로 인도하겠다는 노심(勞心)이다. 미래를 밝힐 번득이는 아이디어의 창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유독 젊은 등반가들이 애스트로맨으로 몰리는 이유는 등반을 통한 인공과 자연의 양립이 바른 목적 뒤에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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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인 줄 알았다. 172cm의 키에 굴곡 있는 몸매여서.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어요”라는 이수항(25세•애스트로맨)씨의 자기소개가 맑은 눈망울의 느낌이어서 또렷하다. 남자친구인 김우경(25세•애스트로맨)씨 또한 그만한 시간을 들여 함께 줄을 묶었다고 강조한다. 취재의 포커스를 윤길수씨에게 두었으니 비주얼 갖춘 조연 발탁은 주연의 의도대로 무난했다.
8월 하고도 중순의 태양은 땅을 끓게 했다. 더운 바람이 사아- 사아- 불자 하나의 장면을 얻는다. 이국의 하늘을 향해 열린 초록 바다를 함께 거닐던 기억이다. 그 무대였던 강화도의 작은 포구를 다시 만났다. 번다한 작은 항구의 후면에는 살림집들이 여전히 조용히 포개져 있다. 시선은 그 사이를 곧장 치고 올라 가장 높은 곳에 닿는다. 그 끄트머리에 그때처럼 하얀 집이 서 있다. 너무 새하얘서 꼭 어제 만든 집 같다. 추억은 그만큼 또렷하다.
아만바히 암장은 KT&G(한국담배인삼공사) 강화수련원 뒤로 차곡차곡 등고선을 쌓아올린 길상산(374m) 중턱에 자리한다. 생경한 이름의 이 암장은 강화도 방언으로 엄마를 뜻하는 ‘아만’과 바위의 고어투 표현인 ‘바히’가 만나 탄생했다. 풀어 설명하자면 ‘엄마바위’. 암장 개척 당시 중병으로 입원 중이던 모친의 쾌차를 바라는 의미에서 윤길수씨가 붙인 이름이다. 그만한 이유로 이 암장에는 ‘마마순선’을 비롯하여 ‘엄마의 눈물’, ‘내가 기다릴게요’ 등 애틋한 루트명이 여럿이다.
5분을 올랐을 뿐인데, 땅이 땀으로 젖는다. 초장에 터진 조망은 뭍으로부터 가까운 바다 위에 둥그런 모래땅을 떠올렸다. 저런 것이 모랫등인가, 하고 오래 바라보았다. 멀리 나간 바다는 수평으로 전진해 오지 않고, 모래땅을 둘러싸면서 천천히, 조금씩, 야금야금 모래를 지워나갔다. 그 풍광을 배경으로 두르고 산을 올랐다. 10분만에 작지만 옹골찬 바위가 본색을 드러냈다.
이곳에, 딱 그 자리에 소나무 그늘이 없었던들 우리는 반쯤 돌아버렸을 것이다. 남향의 바위를 가차 없이 공격하는 태양은 그렇게 격노했다. “저 루트 해봐도 되나요?” 성(性)에 대한 함의는 앞뒤가 잘려 있어 눈치껏 알아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간의 인기를 끌었던 박카스 CF 카피 “우리 쉬었다 갈까?”의 본뜻이 쉬었다만 가자는 것이 아니기에 “이 더위에…”라며 의심했다.
“진짜 하려고?” “네에~!” 로프를 잘 풀어놓고 여민 매듭을 재차 확인하는 모습을 보니 등반을 잘 배운 티가 났다. 더군다나 쉬운 루트에서 시작해 오늘의 목표인 5.11급 코스로 묵묵히 점진해가는 방식이 자기를 내보이지 않아서 좋다.
어려운 대목이다. 1년차 클라이머가 추락을 감지한 상태로 자기 무릎 밑에 있는 스탠스를 한 번에 찾는다는 건. 얼치기 등반자라면 그 경지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훈수로 거들지만 마음 가는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 시야를 가린 오버행에서 콩알만 한 스탠스에 발을 올리려는 시도는 기술적인 배경막 구실에 그쳤다. 잘 보란 듯이 시범등반에 나선 윤길수씨는 설탕 두 술, 조미료 몇 그램 등을 일일이 따져 만든 아내의 요리가, 병 주둥이에 흘러내린 참기름 핥던 혀로 간까지 맞춘 어머니의 음식 솜씨보다 못한 내력을 몸으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가 죄 그렇다는 건 결코 아니다. 더 부연설명 없이 새내기 등반가에겐 열정 이상의 스승이란 없다. 수십 번 떨어져도 오르겠다는 그 포부대로만 하면 된다. 오후가 되자 험난했던 오버행의 정점을 탈환(?)한 두 젊음의 얼굴은 붉게 타올랐으나 청량했다. 정지해 있는 자만이 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아만바히의 두 클라이머는 이 암장보다 오래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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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여름은 내 뜨겁고 푸르다. 꽃 진 자리마다 알 수 없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푸른 이파리들이 태양과 맞서 내달렸다. 물이 차오를 때쯤 해가 수평선에 걸렸다. 그리로 태양이 빗겨나자 벽은 음영을 둘렀다. 이들에게 자연이라는 호명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갈 것이다. 다시 등반을 준비하며 연신 웃음을 놓지 않으니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된 거다. 실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 마음에는 경쟁도, 우월도, 자랑도 없으니 오직 자연과 내가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다. 튼튼한 교양과 예절 인식의 바탕 위에서 등반하는 클라이머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고, 한층 신뢰가 가더라는 뜻으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 잘 나고 등반 잘하는 클라이머는 많다. “남들이 말하기를 저는 힘과 유연성이 좋대요”를 수십 번 오른 루트 앞에서 책 읽듯 외는 등반가는 질색이다. 우승자라고 고개 뻣뻣이 세우다가도 카메라가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를 선서하는 이를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 이쪽에서는 성원도 사랑도 하지 않았거늘 저 혼자 멸사봉공하겠다는 인사식 멘트여서 더욱 그렇다.
문제는 내면이다. 비록 시작은 실내일지언정 그 결과는 푸른 창공을 호흡할 수 있는 대자연이어야 한다. 젊음들의 당찬 도전의 함성이 메아리칠 때 등반계의 장래도 밝아질 수 있다. 그 바닥을 다지기 위해 아만바히 개척에 나섰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 윤길수씨의 마음이 넓다. 지난했던 그의 등반 인생을 돌이켜보니 더욱 선명하다. 나간 물이 들어오는 서해의 낙조는 덤으로 아름답다. 등반을 마치고도 두 젊음의 깔깔대는 소리가 영락없이 푸르렀던 윤씨의 젊은 시절을 닮았다.
아만바히 암장
마니산과 잇대고 있는 길상산(374m) 중턱에 위치한다. 채석장이었던 곳을 윤길수씨가 지난 2011년 봄 낙석을 정리한 후 13개의 페이스 루트를 개척했다. 인근의 함허동천 암장과 더불어 강화도를 대표하는 암벽등반 대상지다. 페이스 루트가 주를 이루며 난도는 5.8~5.11급이다. 암장의 높이는 20m고 폭은 50m. 남향이라 초겨울까지 등반이 가능하고, 암장 앞에는 넓은 터가 있어 야영이 가능하다. 식수는 바로 옆 계곡물을 이용한다. 계곡이 말랐을 경우 출발지에서 준비한다. 암장까지 5분 거리. 낙석의 위험이 있으니 헬멧은 꼭 착용하고 확보자는 등반자가 두 번째 볼트를 통과하면 벽에서 떨어져서 확보를 본다. 암장 인근에는 자기확보가 가능한 볼트가 박혀 있다.
접근-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올림픽대로 성산대교(김포공항) 방면으로 25.1km 이동한 후 김포한강로 고속화도로(13번 국도)를 타고 500m 직진한다. 운양 삼거리에서 왼쪽의 양곡로를 타고 3.5km 이동, 초지대교 건넌 다음 가천의대쪽으로 진행한다.
가천의대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에 KT&G 강화수련원이다. 주차는 수련원 인근에 한다. 수련원을 관통해 오르면(정상 방향) 등산로 초입이다. 10분 정도 외길을 따르면 아만바히암장이다.
등반-작지만 당차고 알토란같은 루트가 많다. 인기 루트로는 ‘엄마의 눈물(5.10c)’,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 ‘수많은 저 별들도(5.9)’, ‘마마순선(5.10a)’ 등이다. 한갓진 암장으로 페이스 등반을 익히기 좋다.
장비-2인 1조 기준, 60m 로프 1동, 퀵드로 10개 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