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주신 것은 아닙니다.
내가 원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가장 큰 선물을 공짜로 받았습니다.
이 귀한 보물을 없어질 돌비가 아니라 심비에 새겨주신 은혜에 감격한 찬양이 마음 깊숙이 솟기를 원합니다.
형제님!
그동안 주안에서 잘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보내드린 사랑의 십자가 회지는 잘 받아 보셨겠지요.
마음을 나누고 기도할 제목들..함께 동역 하는 형제님 되시길 바라구요.
여전히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시는 형제님을 읽을 수 있는데요?
많이 안타깝네요. 제 마음 같아서는 천주교 신앙을 다 덮고 새롭게 마음을 열어 믿었으면 하지만 어찌 사람의 힘으로 물이 든 자욱을 깨끗이 지울 수 있겠는지요.
성령께서 형제님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사 배우는 말씀들이 그런가 하여 믿어지고 참 평안,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많은 질문 중 먼저 개신교에서 여러 종파로 나뉘면서 어떤 것은 이단이라 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마디로 66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않고 나름대로 교리를 만들어서 인본 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시리는 나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자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다는 이 원리에 위배되는 어떠한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다른 사람, 어떤 신에게서는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으며 사하게 하는 권리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 권세 안에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놀라운 길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을 들고 그럴듯하게 가르치나
말 그대로 끝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이 우리 손에 있어도 그 말씀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고 인본적 방법으로 사람들의 눈에 마음에 좋게 가르쳐 사람을 많이 모으는 기업처럼 교회를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진리가 무엇인 지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무언가 절대자를 찾고는 싶으나 또 교회란 간판만 있으면 멋모르고 출석하다보니 그들이 말하는 것이 정말 진리인 줄 알고 따릅니다. 이러한 애매한 규칙아래 내 의지가 아니라 참 진리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인지...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한 것을 알게 하시지요.
이 이단의 교리에 빠지는 자들을 보면 많이 배운 자들이 더 쉽게 물들어 열심을 내는 모습이 허다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신을 찾게 해두셨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이 땅에서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의지하고픈 자연스러운 현상을 갖고 삽니다. 하다 못해 나무에게 돌, 자연 만물에게 절하며 자신의 마음을 의지하려 하지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와 눈을 열어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누구는 믿게 하고 누구는 못 믿게 하느냐 항의하겠지만 우리 피조물은 조물주 되신 하나님께 그런 항변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토기장이가 만든 대로, 쓰게 하심대로 따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노력, 공로가 아닌 전적인 은혜라는 것.
그래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 보내신 이를 믿게 하시며
그를 알아 가는데 필요한 것을 배우고 익히게 하시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는 지를 분명히 가르쳐 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말씀가운데서 보이시며 계획하신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신 것을 다 기록하게 하신 것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세계의 역사이며 인류 전체를 통틀어 한 점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논리적 근거로 설명하며 바로 깨달아 알 수 있을 때 무엇이 이단이며 교회라고 하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문자적 해석으로 인간의 복을 비는 관점, 윤리 도덕적이며 인본주의적 사고 관에 의해 진리를 왜곡되게 가르치는 교단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것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게 하시는 것도 성령께서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듣게 하시고 바로 깨닫게 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답이 성경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을 잘못함으로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잘못 생각하는 오류가 있으니...
제가 처음엔 고신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통교리라 하여 말씀을 배우고 자랐지요. 고등학생이 되면서 장로교 합동측으로 옮기게 되었었고 그러다 보니 같은 교회라 하여도 실천하는 면에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 이전의 나의 신앙생활은 무엇이며 또 다른 말하자면 고신에서 죄의 시 하던 일을 자연스럽게 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는 것인가 하여 많은 회의가 있었지요.
그러면서 감히 그 많은 말씀을 파헤칠 수도 없고 자연히 그 분위기에 젖어 고신의 엄격함보다 얽매이는 것이 덜 있어 좋다는 생각으로 묻혀서 신앙을 키워 왔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이 십자가 전도단에 연결되어 졌고
지금 섬기는 저희 교회 소속은 대신 측이지만 실제 말씀의 뿌리는 하나님께서 남다르게 그동안 자라온 교회에서 가르쳤던 그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해석의 사건 위주의 성경관을 완전히 깨게 되는 진리를 공급받게 하셨는데 지도자 목사님을 통하여 너무도 귀한 말씀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가 아닌 가르침과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되고 이러한 확신할 수 있는 증거들을 보면서 많은 교회들이 안타깝게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거창하게 커 가고 있으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말씀 속에 숨겨진 복음의 비밀은 무시한 채 잘 믿는 다고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음을 봅니다.
실제 제가 자라오면서 배웠던 말씀들은 정말 인본 적인 해석으로 가득 찼으며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행해야 마음이 편하고 안 지키면 벌받는 다는 식의 틀 아래 많이 묶여서 주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나는 믿어지는데 저 사람은 왜 안 믿어질까? 하는 답답함을 안고 있으나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요.
그것은 성경 전체를 모르고 우선 보이는 부분의 사건만 보아 제대로 그 말씀이 쓰여진 배경과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를 분별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만 가득했습니다. 어릴 적 선생님들도 이유를 물으면 그냥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덮어버리며 천국 가서 물어보자는 둥..제대로 답변을 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시점에서 이러한 막연한 대답이 아니라
너무도 분명하게 진리를 증명하여 보이며 그 속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이 심령 깊이 감동과 깨달음 속에 두신 기쁨은 진리를 맛본 자 만이 느끼는 보배란 것을...
형제님께서도 이러한 자리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니 참으로 귀한 것을 얻으시는 복을 얻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제 같은 경우는 모태신앙에서 참 거부할 수 없는 믿음의 터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형제님처럼 못 믿어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몰라서 믿지 못한 것이지 안 믿어져서 못믿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제 보면 거저 믿게 하시는 큰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키와 생각이 자라나면서 많은 과정을 겪는동안 형제님들이 고민할 수 있는 이유들을 조금씩 보게 하셨고 참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는 복이 아무에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감사하게 하십니다.
지금은 이해 안되어도 자꾸 듣게 하시고 분별하는 지혜를 성령께서 형제님의 마음 속에 부어 주신다면 '아~ 그런가' 하여 진리를 깨달아 가는 기쁨에 박수를 치고' 아멘!' 할 것입니다.
형제님께서도 천주교라는 교리에 발을 조금 들여놓으셨던 터라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더 비교가 되면서 궁금하리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금 나아가다가도 또 막히는 담을 만나게 되고..
정확히 말해서 천주교는 이단입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천주교의 모순은 정말 확 드러납니다. 주님보다 우상시 하는 마리아(사람)를 섬기는 것부터 잘 못된 것이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시는 신약의 과정에서 마리아는 약속대로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신 주님을 잉태하기 위한 예비 된 육신의 어미일 뿐 그도 역시 죄인이며 예수님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선택된 자로 복 있는 여인 중에 하나란 것이지 이를 우상시 하고 더 높이며 기도 받으실 대상을 바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단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계속하다보면 사람이 만들어낸 논리가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란 허구성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두 종교를 두고 지금도 혼란 속에 있음은 언젠가 이로 인하여 형제님에게 이런 고민을 하는 자를 본다면 확실히 복음을 말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가는 과정이라 믿고싶습니다. 아직은 배움의 과정에 있으니 모든 것이 한번에 다 소화되기란 어렵겠지요.
그동안 드린 자료들을 또 읽고 보고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시기를 꼭 기도하십시오.
사람의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질문은 천주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문자 적 개념은 같습니다. 천주교에서 깊이 어떻게 가르치는 가를 저는 사실 잘 모르겠거든요.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으면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말씀드리겠구요.
지금은 제가 알고 있는 관점에서 조금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삼위 일체 교리는 기독교에서도 깊이 다루기를 기피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삼위 일체를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여 모두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이것이 좀 궁금해서 여쭈었더니 몸은 하나인데 하는 일은 삼위로 나뉘어져 일하신다고 하면서 더 이상 몰라도 된다 그러더군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며 신앙의 깊이가 들면 들수록 이렇게 하시는 사역을 말씀 가운데서 찾게 되고 이론 적인 부분이 실제로 느껴지며 굳이 말로 따져서가 아니라 말씀 속에 비추시는 것을 통해 그 사역하심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답니다.
크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홀로 스스로 계셔서 자존 하시다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방법을 보여 주시는 것으로 독생자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하셨지요.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골로새서 2: 16절에 보면 바로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창 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던 한 몸을 이루신 주님을 구약에서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수 차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이 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신 다는 확증을 몸소 보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시겠다 하심대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기도하던 자들에게 성령강림을 체험케 했고 예수님이 승천 후 지금까지 사역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역하심이 위는 다르나 몸이 하나라는 것.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내시며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알아가게 하셨고
아들을 본 자는 나를 본 것이나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생각에 그려지는 모습으로 측량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기 때문에 점 하나에 불과한 우리의 잣대로 계산하기 어렵다는 신학적 문제가 있구요. 우리가 단지 알 것은 그 증거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몸 된 지체로 자라나게 하시는 것과 머리되신 주님이 지령하는 것에 따르는 몸 된 지체라는 개념.
내가 주인이 아니요, 나란 존재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손과 발, 핏줄 하나에 이르기까지 각기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는 지 모르지만 성도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가 된다는 교회의 원리를 통해 일체라는 개념을 조금 이해 해 보면 어떠할 런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 같이 우리도 그 안에 있게 하심으로 하나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원리는 이렇게 하나님(성부), 예수님(성자), 성령님이 삼위를 가지고 사역하신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되겠구요. 하나님 나라를 다 이해한다고도 말 할 수 없는 어리석은 우리임을....
영원한 나라에 가면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통치한다고 말씀하지요. 이것을 보아서도 하나님과 일체 되심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유일 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이 유일신이란 말도 일체를 보여주는 말이 되겠지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예수그리스도로 종결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나라에서 만 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 돌려드리는 영원한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임을...
성경을 읽으시면 때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구절을 많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거룩하시고 영화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그 얼굴을 본 자는 죽는다고 했지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역하심이며 주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좌정하여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금 정리해 봅니다.
제가 아는 것을 짧은 지면으로 다 표현 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대략적인 중심은 그러합니다.
조금은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 다음 세례와 침례는 무엇이 다르며 세례를 주장하는 개신교와 침례를 주장하는 개신교의 차이는?
이것은 세례를 주는 형식면에서 주장하는 교리가 조금 다를 것인데
침례를 하던 세례를 하던 그 방법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먼저 아셨으면 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베드로가 온 몸을 씻겨 주기를 원할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어도 된다고 하셨듯이
침례는 온 몸을 담그는 방법이고 세례는 머리 위에 물을 뿌리는 방법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엔 바리새인처럼 율법대로 행한다고 해서 의로운 것이 절대로 아니며
형식을 잘 갖춘다고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굳이 사람에게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럴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고 이것은 구약 성경에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확증하는 방법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하시는 과정 속에 우리가 진정한 세례의 의미를 깊이 새겨두어야 하는데
세례의 개념은 물에 잠긴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물에 몸을 담그셨음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예표한 것이며 다시 물위에 오르심은 죽었다 부활하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홍해를 건너는 사건도 바로 이와 같은 비밀이 숨어있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물 속을 걷게 하심은 장차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실 것을 숨겨둔 예표이며 홍해를 통과하고 땅에 오르심은 부활하신 주님을 예표 하는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이렇듯 보이는 사건자체로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그 세례, 침례를 통해서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십자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예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므로 그전에 모든 죄가 소멸되면서 그 뒤에 지은 죄는 어떠한 절차로 면죄부를 받느냐고 물으셨는데
이것도 위에 말씀 드린 세례의 의미를 연관시켜 생각해 본다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겠지요.
세례식을 통해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세례를 통해 죄인 된 날 위해 십자가 지신 그 고통을 기억하고 또 그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소망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이를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죄 사함은 예수를 구주라 고백하고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신 주님께 회개기도를 드릴 때 다시는 그 죄를 묻지 않으시는 사함이 있습니다.
오직 죄 사함은 주께 있고 주님의 자녀 된 자들이 예수 이름 의지하여 구할 때
이미 이천 년 전에 인류의 모든 죄 짐을 다 지시고 시. 공을 초월하여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지시고 단번에 희생의 제물로 드려 주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다시 죄를 지어보자 시험하듯 하면 안되겠지요. 이 땅에서 지은 죄에 대한 보응은 이 땅에서 다 받습니다.
그러나 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는 지옥으로 보내시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 자는 율법이 정죄 하는 죄란 것에 저촉되어 지옥 간다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여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신 것을 영원토록 찬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하라 하심은
이러한 어마어마한 복음의 비밀을 갖고 있는 믿음의 자녀이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죄악 된 세상, 아담과 하와이후 저주받은 땅입니다. 수고와 슬픔 뿐이라 했지요.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라하신 커다란 비밀을 믿고 알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입을 열어 찬송만이 있게 하실 이유를 아시겠는지요.
그 다음 천주교에서는 이혼을 하면 조당이라는 것에 걸려 종교생활을 할 수 없다구요?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혼을 하여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지?
이러한 것도 구약의 율법에 비추어 보면 죄가 되겠지만, 예수님의 법, 신약의 은혜의 법안에서는 뭐라 말을 못합니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이혼하자 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께서 배필을 정하여 주시며 가정을 이루게 하신 목적을 먼저 잘 알아야합니다. 잘먹고 잘살아 이 땅에 모든 것 심으라고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란 울타리를 통해서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익혀가게 하셨습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신부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주신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식을 통하여 갖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요, 인간이 가지는 자그만 이 일에도 희생, 사랑의 수고가 따르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며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내 놓기까지 보여주신 사랑은...이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가정을 통해 만나게 하신 섭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인간의 사랑과 같이 기분에 따라, 환경에 따라 헤어지고 끊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호세아>서에서 보여주는 말씀처럼 바람난 아내를 버리지 아니하고 수없이 찾아 나서서 데려오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비유하여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과 이 생을 살면서 가정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에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워가는 귀한 교회의 기초가 되는 소중함도 배워가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죄의시 하여 평생 그 일에 매달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이러한 아픔을 통해 오히려 더욱 감사할 수 있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평생을 같이하겠다고 맹세한들 환경, 여건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랑, 만남에 반하여 주님께서 친히 죄인 된 자를 불러 당신의 피값으로 사신 신부로 삼으시고 의의 옷을 입히셔서 그 품에 안기게 하신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허물을 탓하지 않으시고, 끊고 버리시는 아픔을 주시지 않으시는 신실하시고 참 사랑되시며, 영원한 신랑되신다는 깊은 뜻을 알게 하는 인생사입니다.
죄를 정하자면 율법은 죄가 무엇인 지 가르쳐 주는 거울이 되지만
이 율법을 어겼다고 천국 못 가는 것은 아니란 겁니다.
예수 안에서는 이러한 율법에 저촉되더라도 다 덮어 주신 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인간이 정한 윤리, 도덕법과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뒤로는 구약에서 보이는 율법이 우리를 얽매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어떠한 일일지라도 모두가 선한 것이 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우리가 생각할 때 옳다고 여기는 일도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일에 우리는 변명할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게 하신 것만으로도 은혜요, 죄악 투성이인 우리의 허물들이 주님의 세마포로 덮으신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 깨끗하다,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겪게 하시는 일입니다.
잠시 맛보는 연습인만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나타나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정죄 함 받을 수밖에 없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안에 거하게 하셨으므로 그 어떠한 것으로 정죄 받지 않습니다.
다만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율법에서 말하는 죄란 것에 저촉되게 하셔서 그로 말미암아 심판대에서 지옥으로 갈 죄목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 함이 아니라 오히려 덮어주시고 죄악가운데 거하게 하셨던 것으로 더욱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이란 것을 알게 하시고 죄에서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 땅에 살면서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배워 가구요.
그 사랑의 확증이 나를 구원하신 증표요, 그것이 믿어진다면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겠지만 시간을 두고 깨닫게 하실 은혜를 구하시며
날마다 배운 말씀과 성경 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말씀을 대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궁금함과 깨닫게 하시고자 기회를 열어 자꾸 듣게 하시고 알 수 있도록 지혜를 부으시는 것은 참으로 좋은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기회 되는 대로 이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이 가장 값진 일이란 것을...
오늘 서신은 여기까지 답하기로 하구요.
창세기 공부는 다음 서신에 계속 하겠습니다.
형제님의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이시며 깨달아 알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원하오며
성령하나님께서 형제님의 마음과 생각과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