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 14일 광주시 전남도청
-이번에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한경수 대장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재 무장시위대와 대치가 벌어지고 있는 광주에 대해서는 평화적인 해결을 강조......
해병대 장교, 부사관들과 시민군들은 라디오 주변에 둘러앉아 아나운서의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안되는 시간에 시작된 라디오 방송의 내용을 듣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일단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작년 12월에 군사반란을 획책한 세력을 제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를 설치해 민주주의에 입각한 개혁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국보위가 실시한다는 개혁의 내용은 포괄적이었다. 작년의 군사반란으로 불명예를 입은 군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반국가적인 단체를 제외한 사회단체와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며, 하루 빨리 헌정을 회복한다는 것이 개혁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리고 1년 이내로 비상계엄을 해제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광주와 관련해서는 시민 수습위원회와 접촉한 뒤 일주일 내로 광주에 대한 계엄군의 포위를 풀어 식료품과 생필품의 반입을 허용하도록 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가능하면 제한적으로 시·도 간의 이동을 일주일 내로 허용하도록 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거 뭔 일이당가? 갑자기 포위를 풀어버린다니? 시방 갑자기 미쳐버린거여 뭐여?”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은 광주의 포위가 풀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광주를 포위한 계엄군들이 쥐새끼 한 마리가 시 외곽으로 나가도 무조건 발포를 할 텐데, 이번 발표는 시민군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합니다. 라디오에 나오는 발표도 그렇고 광주에 대해 평화적인 해결을 강조한다니... 2주일 넘게 광주가 포위된 상황이면 군부에 지극히 불리한 상황인데...”
해병대 야전소대장 전현빈 중위는 불안감을 표하였다.
“참 미치겠군. 도대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뭔...”
김정수 중령은 혀를 찼다.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고,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이 있으면 신문사 사이트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IT 기술이 발달한 2000년대 초가 아닌 아직 개발도상국의 티를 벗지 못한 1980년대였다.
“...으응?”
건물에서 경계를 서던 시민군 하나가 뭔가를 본 듯 손으로 도청 앞 분수대에 떨어진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컨테이너는 하얀 낙하산과 함께 눈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다. 분수대 주변으로 또 낙하산이 내려앉았다. 처음에 한두 개 내려앉던 낙하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뭐야? 저거.”
해병대원들과 시민군들은 회의를 중지하고 밖으로 우루루 몰려나갔다. 도청 앞 광장에 나온 해병대원들과 시민군들은 낙하산이 내려오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10여 대의 태극마크가 그려진 수송기들이 뭔가를 낙하산에 매단 채 투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까 대공경계를 서는데 수송기가 발광신호를 보내면서 뭔가를 투하하던데요? 공격하기 말라고 신호를 보내길래...”
시민군들은 큼지막하게 보이는 컨테이너로 다가가 총을 겨누고는 조심스럽게 컨테이너를 열었다. 컨테이너가 열리자 ‘삼양라면’이라는 상호가 선명한 박스가 드러났다. 시민군은 박스를 꺼내 박스를 뜯어보았다. 박스에서 나온 건 구멍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라면이었다.
“뭐야?”
“저거 라면 아닙니까?”
“라면이 맞긴 한데... 오랜만에 보는 예전 삼양라면 상표가 참 촌스럽구만?”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서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서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 채경식 상사는 봉지라면 한 개를 집어 봉지를 뜯고서는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상황실장님! 생수통 입니다!”
“이거 쌀 아니여?”
“옴마야, 이거 보소. 월남전 때 허벌나게 먹었던 씨레이숀이 있는디?”
광장의 시민군들은 주변에 떨어진 컨테이너 박스를 앞에 두고 환호성을 질렀다. 컨테이너 박스가 투하되었다는 놀라움이 채 가시기 전. 헬기 한 대가 금남로를 가로지르며 뭔가를 시내에 살포하였다. 시내에 때 아닌 눈발이 떨어지자 시민군들과 시민들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들엇다.
김정수 중령도 앞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읽어보았다. 전남북계엄사령관의 도창과 함께 까만 글씨로 중요한 내용이 씌어져 있었다.
친애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저희 군부는 광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하여 시내에 비상식량과 생필품을 긴급으로 투하하였습니다. 지난 4주일 동안 전두환과 하나회 세력의 폭압 아래 고통스러워하신 광주시민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기 위해 물자를 투하하였지만 이게 광주시민들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국민의 군대 국군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점에 대해서는 고개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민들이 하루 빨리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광주시내에 대한 포위를 풀고, 지난 4주간의 일과 관련하여 왜곡된 사실을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태와 관련하여 광주 시민들께 가해질 위해나 법적 책임은 절대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남북계엄사령관 윤종신 중장 백
“...윤종신? 설마 가수 윤종신은 아니겠지?”
“...”
1980년 6월 14일 서울특별시 중구 중앙청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된 중앙청 건물은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별들의 전쟁으로 시끌벅적 하였다. 허가받지 않은 기자를 저지하는 영관급 장교, 서류뭉치를 들고 낑낑대는 소장, 중장 앞에서 기합을 받고 있는 여단장들, 계단을 오가는 장성들.
각자의 일로 바쁜 장성들은 별 네 개의 장성을 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커다란 구령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였다. 나이가 들어보이는 장성은 경례를 하는 장성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참모들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하였다.
“충성!”
장성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장성들이 일제히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였다. 별 네 개의 장성은 장성들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신에게 배정된 상석에 앉았다.
“거 참. 다들 왜 이러나? 어제 전두환이 엎었는데 좀 쉬엄쉬엄 해. 내가 박통도 아니고 뭔 경례를 일병들 하는 수준으로 하는 거야. 그리고 기자들 막지 마. 기자들이 소설을 쓰면 모를까. 뭐 하러 무리하게 막아. 내가 대통령 되려고 쿠데타 벌였어? 박통처럼 유신 하려고 쿠데타 벌였어? 그게 아니잖아. 우리가 언론에 천명한 거 몰라?”
이번에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한경수 대장은 밉상을 지었다. 국보위가 설치되어 한경수 대장 자신이 국보위의 의장이 된 뒤 일부 장성들이 상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들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보위를 설치하면서 국보위는 설치된 지 10시간 만에 수십여 개의 결정을 하였다. 중요한 것만 따지자면 사회단체와 정당의 활동을 보장하고, 지난 쿠데타 때 불명예를 이븐 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군에 명령을 내려 광주 시내에 식량과 생필품을 투하하도록 명령하였다. 근 1개월 간 계엄군의 포위전으로 광주 시내의 식량상황이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수십여 개의 사안이 결정되는 가운데 이번에 발생한 쿠데타에 가담한 일부 장성들이 한경수 대장의 신임을 받아 진급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과잉충성을 하였다. 한경수 대장이 명령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큰 소리로 거수경례를 하는 식으로 말이었다.
일부 장성들의 행동은 한경수 대장의 입장에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 쿠데타를 권력 장악을 위해 벌인 것이 아니거니와, 국보위라는 조직을 통해 청와대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이번 일이 마무리되기만 하면 군복을 벗고 논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싶었다.
“지금 광주와 관련한 일은 잘 되고 있어? 윤종신 이새끼가 지금 잘 하고 있는 지나 몰라. 저번에 병력 이동할 때 해병대 보다 늦게 움직이더니만. 쯧쯧.”
한경수 대장은 먼저 광주의 상황과 관련한 것을 물어보았다. 지난 쿠데타 때 향토사단을 지휘했던 윤종신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전남북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뒤 자신이 명령한 것을 잘 수행하고 있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긴급히 명령을 내려 공군 수송기 편으로 광주 시내에 물자와 전단을 살포하고 있답니다. 물자를 임시로 마련한 탓에 윤 장군님께서 더 많은 물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 윤종신 이새끼가 뭘 할 줄은 아는구만? 전남북계엄사령부로 좌천시키길 잘한 것 같군. 생각 같으면 내가 자리를 내놓고 윤종신을 육본으로 좌천시키면 좋으련만...”
“...”
“내가 뭐 잘못했냐? 일 처리 개판으로 한 놈을 육본으로 좌천시키겠다는데 무슨 불만이야? 불만 있나? 정 마음에 안 들면 임동원 장군을 당장 중앙정보부장으로 좌천시키고 싶은데... 하하하하!”
한경수 대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이봐 안 장군. 지금 장군을 광주로 보내서 광주 시민수습위와 접촉하게 해볼까 생각 중인데. 준비되는 대로 광주에 갈 수 있겠나? 전두환이 관련한 것도 있고, 미래에서 왔다는 자들을 한번 보고 싶은데......”
쿠데타를 계기로 장성이 된 안영범 준장은 안경 너머 한경수 대장을 바라보았다. 쿠데타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안영범 준장은 이번에 또 중요한 일을 맡게 될 판이었다. 이종찬 예비역 대장과의 만남이나 연대 병력을 이끌고 서울 시내로 쳐들어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중요한 일이었다.
“제가 광주에 간다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각하?”
“해야 할 일? 별다른 거 없네. 가서 광주시민들 안심시키고 시민군들하고 접촉해서 전두환이 빼내고, 미래에서 왔다는 자들과 접촉하는 것 정도네.”
“그렇다면 제가 가서 할 일은...”
안영범 준장은 운을 뗐다. 광주에서 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막중하였다. 특히 전두환과 미래에서 왔다는 자들과 관련한 것은 다른 사안들 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안영범 준장이 더 깊이 생각하려 할 때 한경수 대장은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미래에서 온 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할 생각이네. 그들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끔찍한 일은 앞으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야. 광주에 미래에서 도래한 자들이 있다는 걸 안게 불과 몇ㅇ시간 전인데, 31사단 정웅 소장을 통해 이를 알게 되었네. 지금 31사단이 세 개 공수여단의 작전을 통제하고 있어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걸세. 상당히 중요한 일이네.”
“...”
일동은 경악하였다. 광주에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그 미래에서 온 자들의 존재를 중앙정보부가 아닌 후방의 보병사단을 통해 알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한경수 대장은 태연하게 생수를 들이키기만 하였다.
“이봐 김 소장. 김대중이나 함석헌, 김영삼씨와의 접촉은 잘 되고 있나?”
“잘 되고 있습니다. 대신 김영삼씨가 가택연금 해제를......”
장성들은 다음 주제로 넘어가 이를 가지고 회의를 하였다.
1980년 6월 14일 광주시 학동
“어이구! 왔능가? 빨랑 들어와!”
화순댁은 김정수 중령을 보자 빨리 들어오라며 그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당의 이웃 주민들과 화순댁의 딸들은 김정수 중령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김정수 중령은 집 안으로 들어가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이봐 총각. 갑자기 오라서 해서 미안헌디 이해 좀 해 주씨요. 내 딸년이 남자가 생겼다고 말이여. 혜선이 아버지가 이거 봤으믄 참...”
“네, 알겠습니다...”
지난 시위 때 죽은 남편 생각에 화순댁은 눈물을 흘렸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딸년 때문에 매일같이 화를 냈던 남편. 남편이 살아서 이걸 봤으면 얼마나 기뻐 할런지. 남편 생각에 가슴 한켠이 쓰렸다.
“정수씨. 뭐 드실래요? 별거 없지만 저희 어머니 성의 생각해서 드세요.”
“네, 누나.”
김혜선은 전과 달리 김정수에게 ‘장교님’이라고 하지 않고 정수씨라고 하였다. 둘의 사이가 연인 사이로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김정수의 자리에 막 쪄진 떡이 올라왔다. 직사각형 모양의 새하얀 백설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 김정수의 피부를 자극하였다.
문득 시간여행을 하기 전 세계에서 효주를 잘 부탁한다며 장모가 백설기를 사다준 게 생각났다. 그 백설기가 집에서 직접 찐게 아닌 대형 마트에서 사온 것이지만 맛이 있었다. 백설기의 단 맛에 김정수는 장모에게 감사하다고 하고는 효주누나와 같이 맛있게 백설기를 먹었다.
한동안 백설기를 쳐다보았다. 백설기에 장모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김정수가 효주누나 집에 찾아갈 때마다 친아들처럼 반가워하던 장모. 김정수가 파병 간다고 할 때 장모는 파병 잘 갔다 오라며 김정수를 위로해 주었다. 이제는 그런 장모를 보지 못하는 건지. 울컥하였다.
“언니! 저 사람이 그 장교님이야?”
부엌 한켠에서 음식을 마련하던 김혜선은 김영선이 김정수 중령을 가리키자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처녀 언니에게 드디어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소 남자에 관심이 없던 언니에게 말이다. 게다가 언니에게 생긴 남자가 언니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저 사람 괜찮은 거 같은데? 근데 괜찮아? 언니보다 어릴 텐데?”
“왜. 내가 어린 남자한테 시집가면 안 돼?”
남녀가 결혼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아야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김혜선은 어린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김영선의 입장에서 김혜선의 이런 모습은 뭔가 이상하였다. 서른이 된 노처녀라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언니. 나한테 저 사람 주면 안 돼? 솔직히 언니하고 저 사람이 결혼하면 저 사람이 많이 아쉬울 거 같은데...”
“으응? 뭐라고?”
김혜선은 김영선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김정수를 달라니? 김영선이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건지 당황스러웠다. 김영선은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언니. 내가 지금 몇 살인지 알지? 대학교 어디 다니는지는 알거고.”
“근데?”
“솔직히 언니 학력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저 사람이 많이 아까울 거 같아. 차라리 나이가 어리고 학력이 좀 되는 내가 저 사람하고 결혼하면 저 사람이 아깝지는 않을텐데...”
탁!
말을 하는 김영선의 뺨으로 손바닥에 작렬하였다. 김영선은 시뻘개진 뺨을 손으로 가리고는 화가 난 김혜선을 바라보았다. 김혜선은 분노의 눈빛으로 쓰러진 김영선을 내려다보았다.
“너 뭐라고 했어? 내가 학력하고 나이를 생각하면 많이 딸린다고? 아직 대학 졸업도 안한 게 내 애인한테 관심을 가져? 너 미친년이지? 대학교에서 그딴 거 배우고 왔어? 남들처럼 도청에 있는 사람들 돕지 않고 내 애인한테 관심 갖는 거야? 야 김영선. 너 정수씨 한테 관심 가지면 가만 안둘 거야 알았어?”
“언니...”
“망할 년!”
김혜선은 주걱을 바닥에 던지고는 방으로 숨어들었다. 자리에서 음식을 먹던 김정수 중령은 김혜선이 갑자기 방에 들어가자 김혜선이 들어간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김혜선이 구석지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누나? 무슨 일이에요? 아까 누구하고 싸우던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김정수 중령은 김혜선의 바로 옆에 앉고서 손수건을 건넸다.
“마... 망할 년이... 내가.. 정수씨 하고... 결혼... 하는게... 내가... 아깝다고... 이... 망할 년이...”
“...”
김정수는 김혜선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누나. 울지 마세요. 저는 누나를 사랑하니까요. 누나도 저를 사랑하고요. 저는 누나한테 아깝지 않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게 죄지 누나가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게 죄가 되지는 않잖아요.”
“저... 정수씨...”
눈이 빨개진 김혜선은 김정수를 끌어안고서 입술을 맞추었다. 김혜선의 기습적인 키스에 김정수는 당황하면서 김혜선의 목을 끌어안았다.
1980년 6월 14일 광주시 광주공원
“야, 전현빈! 너 혼자 먹냐? 같이 먹자!”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던 전현빈 중위는 누가 자신을 부르자 뒤를 쳐다보았다. 해병대 보급중대장 이하나 대위가 웃으면서 국밥집에 들어와 있었다. 이하나 대위는 케블러를 탁자에 올려놓고는 전현빈 중위의 맞은편에 앉았다.
“중대장님.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같이 먹자...”
“그냥 ‘먹자고요?’라고 해. 정수 대신 나하고 사귈까 보다.”
“예?”
전현빈 중위는 국밥을 먹다 이하나 대위가 예상에 없는 발언을 하자 숟가락을 탁자 아래로 떨구었다. 예상에 없는 발언을 할 사람은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국밥을 시키고는 주전자를 통째로 들어 입에 들이부었다.
“생각해 보니까. 정수는 언니뻘 되는 여자 때문에 어렵고, 진구는 너무 어려서 같이 사귀기에는 부담스럽더라. 그래서 떡대 있고 몸이 되는 니 하고 사귀고 싶은데. 어때? 나하고 사귀기 싫으면 내가 언제 야동 보여줄게. 야동 보니까 씨야 남미정 닮은 얘가 나와서 섹 하는거 나오더라. 그거 니가 보면 아주 활홀할텐데.”
“...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아줌마가 갑자기 미친 건지 아니면 뭘 잘못 먹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골라 하였다. 송혜교 같은 외모에 여고 일진 같은 말투. 전에도 이하나 대위에게 많이 당해봤지만 이번 것은 초강력 벙커버스터 수준이었다.
근데 씨야의 남미정 닮은 얘가 나와서 19금 짓을 한다는 말은 무슨 소리? 이하나 대위가 아무래도 지금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갑자기 왜...”
“내가 아까 말 안했냐? 내가 니 좋아한다고. 야, 너는 내가 이렇게 고백하는거 행운으로 알아라. 세상에 키 작고 송혜교 같은 미모를 가진 여자가 남자한테 저절로 굴러가다니. 좋지 않아?”
물을 한잔 들이키고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하나 대위는 국밥이 나오자 숟가락을 들고는 한 숟가락을 퍼 입에 넣었다.
‘이 아줌마 미친거야 뭐야?’
첫댓글 공주... 거기서도 군이 총을 쐈던가요? ㅡ.ㅡ
그게 무신 말씀인지... -_-
처음에 뉴스 보도에서 공주..라고 써있는데요..
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