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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시 본당 모델: 대구대교구 고산본당 공동체
- 69) 이하에 소개하는 고산성당의 사례는 2004년 12월 15일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주최한 환경문화원강좌에서 정홍규 신부가 발표한 “새하늘 새땅, 교회의 녹화” 등을 참고하여 소개하였다.
담장 허물기
대구대교구 정홍규 신부는 1990년부터 “푸른평화” 운동을 시작한 이래 생태 복음화 영역에서 선구적으로 활동해 왔다. 정 신부는 2002년 2월에 대구 지역 고산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성당 담을 허무는 일을 공동체와 더불어 실행한다. 고산본당은 5백 평쯤 되는 대지에, 약 천삼백 명의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현재 한국 교회의 도시 본당 가운데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공동체이다. 마을 사람들은 큰 도로에서 주거 단지로 들어가기 위해서 매호천이라는 하천을 건너야 한다. 성당은 이 하천에 놓인 다리 앞에, 마을을 기준으로 하면 하천 건너편 대로 쪽에, 세워져 있다. 이를테면 성당이 매호천 주변 지역 주거지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출퇴근이나 일을 보러 다닐 때, 혹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학교를 나닐 때, 모두 성당 앞으로 해서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성당과 지역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주민들이 성당을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담장을 허물기로 뜻을 모으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체 모독이나 도난, 혹은 성당 안전 문제로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그리고 수도자들 편에서 담 허물기를 꺼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담장을 허물고 나서 2005년 봄 현재까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상당수의 신자들이 설령 도난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불행들이 다시 담을 쌓아 올리게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도자들의 생활 공간을 위해서는 좀 더 섬세하게 고려할 측면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수도자들이 거주하는 건물에서 도로와 면하여 있는 쪽 창을 자유롭게 열기 어렵거나 하는 일들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담 허물기 기획은 대구시의 도시 정책과 부합하였기 때문에 예산을 전액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체는 담장을 허문 자리에 쥐똥나무와 오죽을 심었고, 성당 입구와 아래에서 소개할 “소박한 가게” 옆에는 큰 느티나무를 심었다. 정홍규 신부는 담장을 허문 뒤로 성당이, 도시 속에서 그린벨트가 그런 것처럼, 지역사람들이 생기를 얻는 숨구멍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담장 허물기는 과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더 이상 신자들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향하여 마주보고 미사를 드리도록 혁신하고, 제대와 신자들 사이에 설치한 울타리를 제거한 정신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의회는 이를 통하여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결단과 세상에 열린 영성을 표현하였다. 정 신부는 이와 같은 성당 담 헐기를 통하여 공의회의 세상에의 자기 개방과 세상과 더불은 소통 정신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보다 더 충만한 형태로 구현시켜 가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 신부 자신이 이 시도의 영성적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성과 속의 분리’를 극복하고 그리고 종교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즉 ‘일상의 성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헐기였다. 이 헐기는 종교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닫힌 구조에서 아래로부터 열린 구조라고 보면 좋겠다.”
살리는 물 생산 프로젝트
정홍규 신부는 “자연에는 폐기물이 없다”고 말한다. “똥”에 관한 그의 이해는 배설물에 대한 우리의 영성적 인식의 깊이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는 이렇게 진술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똥은 자원 그 자체이다. … 인분이야말로 밥상의 상치이고 밥이고 논이고 피이고 살이고 박하향이고 사과였다. 인분이야말로 가장 좋은 퇴비 아닌가? 문제는 인식의 문제이다. 똥이 더럽다는 생각의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 신부는 자연이 우리에게 똥에 대해서 과거 선조들이 지녔던 건강한 인식을 회복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정 신부는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인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목한다: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모두 뱃속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뒤로 나가지 않느냐?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다”(마르 7,17-22 참조). 이를테면, 사람의 몸의 현상으로서, 사람을 살리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사람을 살리고 우주를 살리는 것으로 쓰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불의를 모의하고 악을 품으며,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사회와 민족과 땅과 하늘을 신음하게 만드는 사람의 파괴 행위는 사람과 우주와 하느님을 모두 욕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똥에 대한 경제적 접근 역시 주목된다. 예컨대 물과 전기가 끊기게 되면 도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수세식 화장실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구조이다. 똥이 그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똥을 강물 속에 내 보냄으로써 오염이 되고, 똥의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메탄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그 똥을 처리하는 분뇨처리장은 수십억씩 세금을 까먹는다.”
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생활로 구현하고 위에서와 같은 경제적 소모 형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산성당에서는 대안 화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BMW 화장실이 곧 그것인데, B는 박테리아(Bacteria), M은 미네랄(Mineral), W는 물(Water)의 영어 첫 글자이다. 이를테면 BMW는 자연의 정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실현하여 얻게 되는 “생물활성수”를 가리킨다. - 70) 생물활성수 생산공정: BMW기술의 핵심은 부식전구물질(腐植前驅物質)을 이용하여 박테리아를 페놀계로 유도하는 데 있다. 페놀계로 유도된 박테리아는 페놀계 대사산물을 분비하는데 이때의 대사산물은 유기폐수 속에서 거대분자화(巨大分子化)하여 폐수를 세 층으로 분리시키고 이에 의해 폐수는 부식토와 유사한 성분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여기서 미생물 촉매작용을 하는 것으로 바이오리액터를 이용하는데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경석과 부식펠렛, 그리고 산기장치(散氣裝置)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4개의 폭기조와 3개의 자연암석조, 즉 7개의 조로 구성된 BMW플랜트는 첫째조의 바이오리액터를 통과함으로서 박테리아가 페놀계로 유도되고, 유도된 박테리아는 폭기조와 자연암석조를 반복적으로 거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호기성(好氣性)박테리아뿐만 아니라 혐기성(嫌氣性)박테리아까지도 훌륭하게 배양된다. 처리 앞 단계에서는 경석을 다량으로 투입시킴으로써 박테리아의 번식을 도모하고 마지막 조로 갈수록 화강암의 배율을 증가시킨다. 이는 막대한 양으로 불어난 박테리아가 마지막 단계로 갈수록 먹이=폐수가 고갈됨으로 인해 아사(餓死)하게 되고 그때에 분비되는 약산성 대사산물과 미네랄을 추출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처리수는 미네랄(일반하천의 100배 이상)과 미생물 대사산물이 풍부한 물로 재탄생되는데 이 물을 생물활성수(生物活性水)라고 부른다. http://ecopeace.or.kr에서. 산처럼, 352-3 참조.
이 생물활성수는 균을 활용하면서 자연의 정화 과정을 그대로 통합시킨다. 공정 과정에 들어가는 것은 화강암, 경석, 인분 그리고 사슴이 먹는 고농도의 흙, 거품장치 등이다. 고산성당에서는 하루에 100리터의 활성수가 생산되어 나온다. - 71) 가톨릭신문은 2004년 8월 29일에 이에 관한 소식을 실었다: http://catholictimes.org /news/news_view.cath?seq=24122를 보라.
이 생물활성수 공법은 정홍규 신부가 일본 민간 농민운동가에게 배워서 한국에 도입하여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국내에 스물아홉 곳에 설치되었다. 뒤에서 살펴볼 오산 자연학교에도 인분으로 생물활성수를 만들어 내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 72) http://ecopeace.or.kr에 소개된 22개 플랜트의 시설지와 년대 등에 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순서 장소 플랜트이름 가동시기 비고
1 경주 BM 농장 97.07 국내 최초, 경작축산 모든 영역 이용
2 충남 흥성 풀무원학교 98.06 교내 실습 및 주위 농가와 공동 사용
3 충남 홍성군 홍동면 99.10 정농회 관계 플랜트
4 경기 양평군 옥천면 00.04 양평군 운영
5 경북 영천 채신농장 00.05 양돈
6 제주 푸른생명 공동체 00.06 경작 축산 모든 영역 이용
7 경남고성 올리베따노수도원 00.07 수도원서 무료 공급
8 북제주군 현림면 이시돌 목장 00.08 악취 제거 및 젖소 육우
9 전북 무주군 안성면 01.06 무주군 보조사업
10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01.07 양평군 보조사업
11 춘천시 우두동 02.01 춘천시, 춘천농협 보조사업
12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03.06 양평군 보조사업
13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03.10 화천군 보조사업
14 경주농업환경농업 교육원 03.06 농업중앙회 경북지점 보조사업
15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03.09 양평군 보조사업
16 충남 아산시 음봉면 03 아산시 보조사업
17 전북 남원시 실상사 03.07 화장실 인뇨처리
18 양평군 양동면 고송리 03.10 양평군 보조사업
19 경남 마산 생그린푸드 03.10 식품폐수 처리 플랜트
20 영천 오산자연학교 03.11 국내최초 인분 처리
21 제주도 수누름 04.03 경작 등에 이용
어른의 경우 이 물을 먹을 수도 있을 만큼 정화가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나 소박한 가게
고산본당은 2004년 5월 스승의 날에 “언제나 소박한 가게”를 열었다. 이 가게는 본당의 소공동체들이 돌아가면서 운영을 맡고, 살림살이에 달관한 여신자들이 이 가게를 돌본다. 이 가게 자체가 마을의 담소 자리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작지만, 아름답게, 전혀 고물상 같게가 아니라, 전원 속의 휴식처처럼 마련해 놓았다.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집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기증하면, 그 기증한 물건들을 싸게 팔아서, 이익금을 이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순환적 생명경제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 신부는 소박한 가게의 시민사회적 토대가 아파트 단지 속에 아름다운 동네를 만드는 지역공동체 형성 운동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이 가게의 영성적 토대와 관련해서 정 신부는 이렇게 진술한다: “소박한 가게의 영성은 예수께서 행하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나온다(마르 6,30-44).” 그는 이 기적이 빵의 양적인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이 가게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공동체로 모여서 나누고 감사하고 그리고 남은 빵조각과 물고기를 리사이클 즉 버리지 않고 모으”는 나눔과 감사의 정신 위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다시 모아들인 것을 가지고 고산본당 공동체는 지구에서 8억 명이 굶주리고 북한에만도 350만 명이 굶주리는 현실에 직면하여 그들을 찾아가 돌보고 있다. 아껴 쓰고 다시 쓰며 절약한 것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의 진정한 실체이고, 이 운동의 영성적 토대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산본당 공동체는 이 가게에 “언제나 소박한”이란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정 신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박’이란 삶의 양식은 소비사회에 대한 해독제이며 ‘자발적 소박’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적 항체이기 때문이다. 풍요 속에 마음의 빈곤은 존재 진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더 쓰고 더 가지고 더 누리면 누릴수록 행복하지 않음을 우리는 느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는 이 말씀은 비움이 없이 나눔이 없고, 나눔이 없이는 섬김이 없다는 말이다.”그는 자발적 가난과 소박이야말로 무차별 약탈 아래 벌어지는 전 지구적 생명 파괴와 과잉 욕망으로 인한 죽임의 문화를 극복하는 살림의 길이 된다고 역설한다.
고산 생명의 공동체
위의 가게는 재활용(reuse, recycl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고산본당이 2004년 단오절에 푸른평화와 연대하여 개장한 “고산 생명의 공동체”는 유기농 직거래 “장터”를 지향한다. “푸름과 다름”이라는 이름 - 73) 늘 “푸름”을 지향하고 또 이것을 매개할 장터이자, 하느님의 창조 안에서 모두가 고유하게 “다름”을 간직한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배척이나 질투의 원인으로가 아니라 경축과 풍요의 원천으로 작용시킬 사람들의 나눔터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어울릴 듯싶은 이 마켓은 성당 건너편 매호천 옆 건물 1층 61평을 매입하여 열었다. 그리하여 단순히 먹거리만이 아니라 생명의 정보도 함께 교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작고 아름다운 “나눔자리”를 창출해 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자금은 생활협동조합방식으로 출자자들을 통하여 모았고, 생산자도 출자하였다.
이곳은 기존의 마켓과는 달리, 유기농 식품과 반찬가게는 물론, 카페 강의나 찻집, 대안 생리대센터, 생태교실(매주 수요일), 그리고 환경센터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현재 대구시 수성구청과 연대하여 마켓 앞에 있는 매호천을 배경으로 미니 생태공원도 만들고 있다. - 74) 이 프로젝트는 주임사제가 다른 본당으로 옮겨 간 이후 취소되어서 공원 기능을 갖춘 형태로 정비되지 않았다. 정 신부가 진술하듯이, 이 마켓은 동네 광장으로 기획되고 또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
정홍규 신부는 유기농 마켓을 만든 영성적인 이유를 미사와 영성체의 생활화에서 찾는다. 그는 교회가 그동안 미사와 성체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도 신자들이 일상에서 성체를 발견하고 영성체의 의미를 구현하도록 도와주지 못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특히 이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수께서 바라시는 영성체의 의미를 하루하루 먹는 밥의 우주적 의미와 통합하고, 이것을 다시, 생산하고 나누는 삶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신자들의 신앙 생활 자체가 “식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종교,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 자체가 밥을 중심축으로 하여 하느님의 다스림을 향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밥을 나누신다(마르 14,22-25; 마태 26,26-29; 루카 22,14-20). 그리스도교 전례와 신앙 생활의 정점이라 할 미사는 바로 이 식사 사건의 기억이자 실행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와 예수님의 일치를 사건화한다. 더군다나 이 일치는 추상적인 일치가 아니라, 위에서도 시사한 것처럼, 밥을 먹으며 이루는 실질적인 일치이다.
실로 우리가 먹는 밥은 지극히 영성적이다. 햇빛과 바람, 땅의 기운과 물, 농부의 땀과 손길, 장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의 정성, 그리고 함께 모여 나누는 사람들의 감사가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에 닿는 아름다운 순간이 식사를 통하여 구현된다. 이때 밥알 한 알 한 알이 식사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미 우주의 광대함에 깃든 하느님의 손길과 성령의 섭리를 되살리고 증거하는 전령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정 신부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매일 먹는 밥을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우주적인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이다. 그는 말한다: “밥을 먹는 것은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우주의 기운도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은 전례이며 의례이며 찬미와 감사이다. 밥을 먹는 것은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께 가는 길이며 사랑이며 제사이며 믿음이다. 고산 생명 공동체의 자리매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데, 이같은 인식의 전환은 천지만물의 은혜가 깃든 밥을 천천히 모시고 밥으로 찾아오시는 생명의 주인을 공경하며 함께 나누어 먹는 일에서 출발한다. 정 신부는 고산 생명의 공동체에 출자한 조합원들은 바로 이런 일치를 뒷받침할 경제 구조로서 작은 인격적 경제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고산 생명의 공동체가 오늘날 빗나간 웰빙 바람과 다른 차원을 갖는 것은 이같은 주체적 영성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 운동의 뿌리는 단순히 소비자로 인식되는 사회나 가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이 모든 인간 주체들의 뿌리로서 하느님에게까지 가닿아 있다. 바로 이런 뿌리 의식과 뿌리에 닿은 실천 과정이야말로 유기농 식품을 사용하면서 조합원이든 소비자이든 “생명가치”에 따라서가 아니라, 가격에 따라서 움직이는 소비주의식 웰빙 행태를 철저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는 전체 공동선이나 공동체를 키우는 “연대적 유통”을 지향하면서, 이를 통하여 새로운 “하느님 찬양”을 단순히 입으로가 아니라 생활로 실천할 것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교회가 우리농 운동을 하고 생협운동을 하며 고산본당이 생명 공동체를 실현해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호혜경제의 실천을 복음화에 통합하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경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정 신부는 현재의 상호 경쟁주의에 근거한 소비주의 경제틀에 대한 대안을 계에서 보는 가운데 “호혜”의 정신을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호혜 경제 구조는 일종의 인격 교환과 생태적 공경 위에 기초한 작은 경제 틀거리로서, 여기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과 생산량을 함께 결정하는 가운데, 품위 있는 생활과 생명의 즐거움을 공유해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생태 위기를 치유하는 길은 멀리, 혹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 있고 우리 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산본당의 생태 복음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에 소개한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담장 허물기,” 곧 지역 사회 속의 신앙 공동체 구현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생태 복음화 원리 가운데 특히 “지역과 시민 사회와 함께 실천하는 생태 영성” 차원을 역동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75) 이 모델은 주임사제가 바뀐 이후 현재 부분적으로 수정되었다. 물 살리기 프로젝트 등이 일부 수정되거나 폐기되었고, 위의 프로그램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성당 마당에 설치되었던 태양광 가로등 같은 시설도 뽑혀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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