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의 재정문제가 나오면 그 열악함에 대한 강조 못지않게 서구 정부들이 자국의 NGO, NPO, 자원섹터를 얼마나 재정적으로 지원하는지가 거론된다. 그러나 그 나라 정부들의 성향과 NGO와의 관계, 또 NGO의 사회적 역할 등은 막대한 지원금 수치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NGO와 재정'을 토론함에 있어서의 핵심은 한국NGO의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그에 걸맞는 재정안정화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한국NGO의 이미지, 혹은 사회적 역할
NGO의 개념과 범위를 규정하는 데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NGO를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며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을 일컫는다고 정의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학술적인 개념규정과 정의라기 보다 오히려 NGO에 대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NGO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제 3세계를 대상으로 구호, 개발사업을 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아프리카나 인도, 필리핀 등지에서는 북반구 NGO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자국의 문맹퇴치, 보건, 환경 등의 사회개발활동을 하는 단체들을 가리킨다. 그런가하면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아래서 NGO는 반정부기구를 뜻하는 것이라는(정부라는 Government 앞에 부정적인 의미의 Non이 붙었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해석으로 NGO라는 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1980년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사회운동가들이 1987년 민주화이후 적극적으로 결성한 시민운동단체와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화되거나 새롭게 결성된 지역시민단체들, 그리고 구체적인 사안과 이슈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결성된 시민단체들 덧붙여 이미 존재해왔지만 그 의의가 적극적으로 해석되면서 시민운동의 비중을 차지한 YMCA나 소비자단체, 청소년단체들이 'NGO'라는 이름아래 떠오르는 단체의 면면들이다.
이러한 한국 NGO의 '사회적 의미'는 NGO에 대한 시민들의 역할기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2000년 서울지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시민단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물은 설문조사(강상욱, 2001)에 의하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 (33.8%)와 '소외계층의 권익보호'(31.6%)가 '사회서비스 제공'(13.8%)이나 지역사회 연대를 위한 시민참여 활성화(4.2%) 등의 항목보다 훨씬 높은 기대치를 보여주었다. 한국NGO가 사회민주화와 시민사회 성장에 일정한 추진세력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NGO가 정치민주화와 시민사회 성장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지만 역으로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참여를 강화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특한 사회적 이미지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NGO를 다른 나라 NGO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자원섹터 수입의 35%가 정부로부터, 23%가 사적 기부에 의해서 충당된다는(Kendall & Knapp, 1996) 통계가 한국NGO 재정의 14.8%를 지원하는 한국정부가 NGO의 재정지원을 늘려야 하는 근거로 이용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면 각국 NGO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다르고 정부와의 관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전체 재정의 35%를 정부로 받는 영국자원섹터의 유형별 분포를 살펴보면 34.9%가 학교, 20%가 의료 및 사회서비스 기관으로 영국 사회복지제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이 과반수가 넘고 공익적 주창활동을 하는 단체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또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민간단체와의 계약을 통한 복지서비스 제공방식을 점점 선호하는(민영화와 더불어) 서구 복지국가의 추세 역시 영국정부의 재정지원 규모와 무관하지 않다. NGO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규모를 보기 전에 그 내용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시민참여를 통한 재정확립이라는 원칙
NGO의 재정이 시민사회로부터 자발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사회'와 NGO가 성장과 성숙의 정도를 같이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 NGO는 2만 여개, 이중 지난 10년간 결성된 단체가 56%에 이른다.(조희연, 2000)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NGO에 비해 한국시민들의 시민단체 가입률과 자원봉사활동 정도, 기부금의 액수 등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1999년 참여연대와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민 4.7%만이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아름다운 재단에서 실시한 기부지수 조사 <기빙 코리아 2001>에 의하면 우리나라 1인당 평균 기부액은 9만 8천원이다. 71%의 시민이 기부금을 내는 스페인, 65%인 영국, 62%인 캐나다, 55%인 미국에 비하면 한참 낮다. 게다가 한국인의 기부성향은 다분히 종교적인 비중이 크고 동정적, 일시적 성향을 가진다는 분석도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1991년 기준 자원봉사 활동인구는 전체인구의 5.4%로,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46%) 캐나다(43%) 스웨덴(39%)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인프라면에서 서구 국가들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척박한 시민사회 토대에서 한국NGO들이 급성장한 배경에 단체 상근자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상근 운영위원들의 신념과 헌신성과 무보수 자원활동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재정'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이러한 헌신성만으로는 NGO의 장기적이고 자속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혹자는 시민참여의 실질적 토대가 구축되지 않은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회원의 회비와 개인 후원금을 통한 NGO의 재정자립이 불가능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원유미(2002)는 재정자립을 위한 단체들의 주체적 노력에 착목할 것을 제안한다. 16개 단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는 회원사업부서를 두고 회원사업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는 단체가 그렇지 않은 단체보다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단체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와 관심부족'(44.3%) 다음으로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홍보부족(29.5%) 답한 설문조사(강상욱, 2001)를 이와 결합시켜볼 때 시민단체들이 활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지지로 조직을 발전시키고 회원들의 재정적 지원으로 활동을 벌여나가겠다는 원칙을 얼마나 견지하며, 회원모집과 활동에 어느 정도 단체운영에서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시민단체들의 회원사업은 단지 안정적인 회비수입을 통한 재정기반 안정화라는 열매를 줄 뿐 아니라 시민참여가 부진한 사회적 조건을 바꾼다는 적극적인 의미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재정지원의 빛과 그림자
'모든 NGO가 정부지원을 거부해야 한다'거나 '모든 NGO가 정부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획일적으로 결정되거나 주장될 문제는 아니다. NGO가 공익에 복무하는 활동을 하기에 결국은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정부로부터의 지원을 받아도 된다는 정도의 동의수준은 한국 NGO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공동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는 '정부 재정' 지원의 내용과 방식, 절차이고 구체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개별 단체가 단체의 사명과 활동을 고려하여 내부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론적 차원에서 '정부재정지원'이 NGO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우선 NGO, NPO에 대한 정부지원(주로 사회서비스나 국제구호 등에 집중되어 있지만)의 경험이 오래되었고 그 효과에 대한 분석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미국과 유럽의 연구논문들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NGO에 일반적으로 미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측면을 검토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NGO의 현실에서 자원이 생긴다는 것은 단체에 안정성을 주고 운영과 유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지원금으로 하는 활동이 본래 그 단체가 하고자하는 사업과 동일한 경우) 그리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활동을 수행하고 보고서 제출, 회계 등의 업무를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하면서 아마츄어적인 NGO 행정활동이 개선된다는 의견도 있다. 또 재정에 대한 책무성에 충실하게 되면서 운영과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점 등이 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이 NGO에 미치는 영향으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적지않다. 우선 NGO의 정부자원의존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일단 대부분 정부의 지원금은 사업비 명목이기에 단체의 장기적 안정화로 돌릴 수 있는 부분이 적다. 따라서 지원금이 사라지면 단체의 사업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단체의 활동이 전이될 가능성이다.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는 자원이 요구하는 사업과 조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NGO는 단체의 자체 활동계획보다 정부지원금이 명시하는 방향으로 사업으로 몰릴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때때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활동, 단체의 사명에 부합하는 활동과 거리가 있는 정부가 유도하는 방향의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셋째로 NGO의 사명이 전도될 가능성이 있다. NGO는 본래 시민참여 활성화를 통한 시민사회 공공영역의 확장에 기여한다. 그러나 사업의 효율성과 성과를 평가하고자 하는 정부는 NGO가 창출하는 무형의 사회자산(흔히 장기적으로 그 의미가 가시화되는)을 쉽게 무시하기 쉽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지원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NGO는 점차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하여 본래의 사명과는 다른 활동에 집중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변이과정과 더불어 NGO가 정부가 선호하는 안정적인 행정구조를 갖춘 대규모 조직으로 바뀌어 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NGO 재정지원은 이전의 관변단체 지원을 예외로 한다면 1994년 국정홍보처의 '민주공동체 실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행정자치부가 실시하는 '프로젝트 공모사업''이 있고 각 부처별로 매년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보조금, 지방자치단체에서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부의 민간단체 보조금 총액은 1990년 약 844억원에서 1998년 약 2860억원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별도로 지방자체단체의 경우 1998년 한해 시민단체에 14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액수로만 보면 상당한 재정이 시민단체에 투여되는데 이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대표적인 비판이 1999년 행정자치부 프로젝트 공모결과 지원금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가 과거 관변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3개 단체에게로, 나머지가 120개 단체에게 지원된 데서 볼 수 있듯이 재정지원규모와 심사 기준과 절차, 배분의 원칙, 사후 사업 평가 등의 면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공히 대부분의 부처별로 나뉘어져 이루어지는 재정지원 또한 지원의 중복성과 효율성, 자원의 출처인 정부로부터 NGO활동의 독립성을 고려할 때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프로젝트 공모방식이 중심이기에 선별적, 한시적, 한정적 지원이라는 점도 그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지원의 핵심은 NGO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
정부가 NGO를 지원한다는 것의 포괄적인 의미는 공익을 위한 사회활동을 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정부와 기업이 수행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NGO를 혹은 그 활동을 안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NGO에 대한 정부지원의 출발은 NGO들의 활발한 활동을 보장하는 사회적 조건의 창출과 법제도의 확립(자세한 법제도 개혁은 21강에)이다. 이를 위해 NGO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단체 뿐 아니라 기부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과 기부자(기업을 포함하여)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하여 사회적 기부의 활성화와 공익재단 설립을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NGO 재정지원의 방식을 프로젝트 공모사업 중심으로만 가져가기보다 장기적으로 사회간접시설을 충원, 제공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NGO 활동 공간과 활동에 필요한 기자재, 정보통신시설 등을 지원하는 것이나 충분한 홍보활동이 가능하도록 NGO들의 오래된 바람인 우편, 통신요금을 감면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방송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NGO의 재정안정화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시민참여의 사회적 여건조성, 기부문화 활성화, 이를 독려하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와 정부재정지원의 개선(직접지원방식과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장기성 확립과 획기적인 간접 인프라 지원) 그리고 NGO내부의 개선과제(재정원칙, 회원사업의 우선순위, 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 등)가 맞물려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문헌> 박원순(2002)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당대 원유미(2002) 시민단체 재정자립화 방안 연구, 경희대 NGO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강상욱(2001) 우리나라 NGO의 성장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행정학 박사학위논문 조희연(2000)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역사, 현황과 전망, 『NGO란 무엇인가』아르케 Kendall & Knapp(1996) The Voluntary Sector in the U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토론주제> 1. 자신이 속한 NGO의 재정구조를 분석해보자 2. NGO상근자의 임금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는 단체의 예산 집행에서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지는가? 3. 김준기 교수는 서울시 민간단체 보조사업 분석을 통해 자금의 대부분이 시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연성' 민간단체에 지원되었다고 말한다. 정부가 NGO를 직접 지원할 경우 그 방식과 심사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4. 시민들이 시민단체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 개인적/사회적으로 어떤 점이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