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1월 4일날 오후 1 시 30분발 파리행 대한 항공기를 집사람과함께 타게되었다
하루 전날인 11월 3일 여행가방을 챙겨서 고속뻐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딸아이와 합류하여 서룰에서 일박을 하고 사위의 승합차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밟었던 것이다.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평범한 절차라고 하겠다.
사실은 딸아이가 손자를 데리고 파리에 음악 공부 유학을 떠나게 되어 이를 도와주려는 생각에서 파리행을 결행하게 되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보다는 평이한 일상탈출을 해보고저하는 나의 욕구가 딸아이를 돠와주겠다는 생각보다 더 컸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뒤늦게 외국유학을 떠난다는 어려움에 주저하는 딸아이를 격려해주고 부추기기 까지 하였으니 .
경노우대의 나이에 해외 여행을 하려고하다보니 사전에 , 당연이 주의 하여야만 하는 사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발생하는 해프닝의 연속이였다.
해외 여행을 여러 차래 하였다고는 하나 그때마다 광관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행동을 하였지 내의지로 여행하는것은 처음이니까 , 그것도 관광시에는 짐이 간단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파리에서 자취생활을 하려고 가는 짐이고 보니 줄이고 줄여도 짐의 종류나 수량이 만만치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여 3 층 출국장 통로에서 짐수래를 밀고 KAL 부스를 찾아가다가 충돌사고가 발생 , 고개를 숙이고 의도적으로 상호충돌 사고를 이르켰다고나 할까 고개를 들고 보니 오왕근이가 아닌가 뒤를 이어 이영직, 김태룡 부부가 웃으면서 오고 있지 않은가, 하루에도 수만명이 출입 한다는 공항통로에서 지인과 마주치는 우연이었다. 중국 관광을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햇프닝의 시작은 지금 부터 이었다.
인천공항이 전보다 달라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전에는 출국전에 일만원 짜리 공항세 카드를 사야 했는데 지금은 비행기 티켓에 포함되어 그런절차가 필요 없다고 하여 내심 잘된 일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리고 본래 탑승자 일인이 가지고 갈수 있는 짐의 량은 부치는 짐이 20 Kg 까지이고 휴대하고 탈수있는 짐은 10 Kg 까지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일행은 손자까지 4 사람으로 4 사람이 가지고 갈수있는 짐은 최대 120 Kg 인것이다. 그런데 짐의 총량은 소형가방 까지 합처서 180 Kg 이나 되니, 사정을 하여 큰 덩어리 7 개중 5 개를 부치고 2 개를 끌고 가기로 하였다.
출국심사 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여권 티켓등 서류를 내보이면서 들어가려고하는데 비치되어 있는 앉은 뱅이 저울 옆에 서있던 직원이 짐좀 저울에 올려 놓아보라고 한다. 큰 가방두개가 당연히 각각 20 Kg 이 넘다보니 ,담당 직원 왈 기내에서 선반에 올려 놓는데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비행기 회사에서는 12 Kg 가넘는 짐은 휴대를 금하고 있으니 부치라고하는 것이다.
짐 부치는 곳으로 부랴부랴 다시와서 부치겠다고 하니 짐을 올려 놓아보라고 한다 , 그러면서 4 사람의 서류를 보더니 아까도 131 Kg (기준 80kg 에서 51 Kg 이나 초과 된것임)이나 부쳐주었기 때문에 이것은 별도의 돈을 내야만 된다고한다.그리고 자그만치 1 Kg 당 2 만원이라고 한다 ,그렇게되면 2 개의 짐을 부치는 값이 80 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서 4 사람이 짐을 나누어서 들고 가라고 친절하게 직원이 알려준다.
대기의자에 가서 서둘러서 짐을 여러개로 재포장하여 갯수를 늘려 가지고 어른들은 세네개의 봇달리를 주렁주렁 들고서 일차관문을 통과하는데는 성공을 하였다 .
다음 단계인 X-Ray 투시 검사에서 또 걸리고 말았다, 자취생활 필수품으로 가지고 가는 칼 가위 등이 적발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무기가 될만한 날카로운 물건들은 부치는 짐속에 넣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서 주의를 한다고 하였으나 짐을 재포장하는 등 법석을 떠느라 이것들이 휴대 짐으로 뒤바뀌어 들어 왔던 것이었다.
칼등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짐 부치는 창구로 갔드니 별도의 조그만 봉투에 넣어서 부쳐 주었다.기본 상식도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북새통을 치는 바람에 돌발사고에 대비 하여 한시간 반이나 일찍 수속을 시작 하였음에도 부리나게 탑승게이트에 이르니 벌써 한참이나 탑승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내가 탑승한 비행기 기종은 보잉 747-400 대형비행기로 비행기의 좌석이 거의 만석이 된것을 보고 역시 세계 13 위의 국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서쪽 구라파 쪽으로 낮시간에 가는 비행기는 해를 등지고 가게 됨으로 계속 낮시간을 비행한다.
창밖에 펼처지는 몽고의 대 초원 지대를 바라보기도하고, 소련과 몽고의 국경지대인 소련의 일루쿠츠크 지역 고산지대의 눈덮인 장관을 바라보기도 하고 ,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살포시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바라다 보기도 하면서 ,
잠을 자다가,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두차례의 기내식과 각종 음료수의 써비스를 받다가 하면서 , 장장 12 시간의 논스톱 비행끝에 서울과는 16 시간의 시차가 있는 파리시 외곽 어둠이 내린 드골 고항에 도착했다.
파리 공항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가이드 격인 내가 모든 서류를 지참하여 가지고 오다가 짐가방에 대한 북새통을 떨고난 후에 만일에 대비 여권을 각자가 보관키로 한것이 탈이었다.
파리공항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수많은 탑승객들이 다 빠저나가고 담당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까지도 들고 가던 온 짐을 풀어헤치고 뒤젔으나 한사람의 여권을 찾을수가 없었다,
평상시 생활할때 귀중한 물건이라고 하여 늘상 보관하던 곳에서 좀더 잘모셔 놓겠다고 옮겨놓게 되면은 잘못찾고 헤매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이번 여권의 경우도 분실한것이 아니고 깊숙히 잘모셔 놓은 곳을 잊어 버리고 엉뚱한곳을 찾느라 일행이 사색이 되어 당황을 한것이었으며 결국은 뒤늦게 찾어서 무사이 통과는 하였지만 ,
이번 여행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실수하기 쉬운것은 한가지도 빼놓지 않고서 섭렵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파리 공항에는 인터넷을 통하여 미리 약속한대로 우리를 픽엎 하기위하여 사람이 나와 있었고 인터넷을 통하여 계약한 집에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파리에서 37 카페에 들어와 실제로 글을 읽어보고 글을 올리게 되니 지구촌을 실감하였다
출입국 수속에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네 상황에 직면하여 훌륭하게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었는데 태용이 아직도 늙지 않았어, 가족들과 함께하는 파리의 즐거운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오게나 다행히 인터넷으로 이렇게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고 고맙네 부디 건강히 ....
그간 많이 배웠군. 이제는 혼자 여행가도 두려울 것 없겠네. 나도 페키지 여행 만 했으니 이제 부터는 내가 가이드 역할도 해보아야겠는데. 정말 죽마고우 태용이 돌아와서 많이 가르쳐 주기바라네. 효자녀 효손녀들 두니 친구가 호강하네. 듣기 좋고 보기 좋네. 몸건강하길 기원하네.
첫댓글 파리까지 가는 동안 수고가 너무 많았군. 그래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많은 즐거움과 아름다운 추억을 가꾸길.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에 유념하길. 한국의 11월7일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냉기는 있지만 깊어가는 가을 맛은 제맛이거든.
강태용, 좋은 여행을 했군 그래. 너욱이 공항에서 친구들을 만났다니 얼마나 반가웠겠나. 특히 입출국 수속을 직접 하면서 겪은 경험들 재미 있고 나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아. 특히 따님이 음악 유학을 떠났다니 축하하네. 그리고 꼭 성공하기를 기원 하겠네.
출국과정에서 고생과 수고 많이 했어.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생각해야지. 딸의 성공적인 유학 기원하며 축하해, 계획된 모든 일정 잘 마치고 안정된 귀국 바람.
출입국 수속에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네 상황에 직면하여 훌륭하게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었는데 태용이 아직도 늙지 않았어, 가족들과 함께하는 파리의 즐거운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오게나 다행히 인터넷으로 이렇게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고 고맙네 부디 건강히 ....
위로와 격려를 하여준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11,6(토)오후 "동학산장" 우리모임에 잘 다녀왔다. 태용이가 없는 빈자리가 크더라... 권철호도 우리를 보러 일부러 나와 만나보고,대전친구들한테 대접 잘 받았고...빠리에 있는동안 좋은추억 만들고...유학간 딸이 언젠가 금의환향 하기를 기원하네...
요사이 좀 적조하다 싶었는데 파리행 때문이었군. 피아노 전공한 딸이 유학을 가는 거구먼. 얼마간이 될지 모르지만 파리에서의 자취생활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네. 부디 건강하게 재미있게 지내다 돌아오기를 기원하며,와서 서석칠우회에 결과보고 있기를...
그간 많이 배웠군. 이제는 혼자 여행가도 두려울 것 없겠네. 나도 페키지 여행 만 했으니 이제 부터는 내가 가이드 역할도 해보아야겠는데. 정말 죽마고우 태용이 돌아와서 많이 가르쳐 주기바라네. 효자녀 효손녀들 두니 친구가 호강하네. 듣기 좋고 보기 좋네. 몸건강하길 기원하네.
남의 사돈 파리 생활 어떤지 처음에는 다 그런것야 하는 생각이 나네 눈에 아름다움 보다 내면의 실상을 자주 올려 주구려 그곳에 있는 식구들 건강하길 비네
읽어주고 격려해주어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곧이어서 이곳의 일상생활에 대한 글을 올려서 파리 유학을 꿈꾸는 사람에게 참고가되도록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