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는 것은 항공기 조종사와 객실승무원들에게는 결코 낭만적일 수 없는 절실한 존재이다. 항공기는 기체 앞쪽으로 불어오는 정풍(正風)을 적절히 이용하여 부양력을 얻으며 이륙, 또는 착륙하는데 그러나 멀쩡한 맑은 하늘에 종종 난기류(난류, Turbulence)라는 것이 갑자기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고선 항공기를 마구 흔들어댄다.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난기류란 공기의 흐름이 불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이때 항공기는 순간적으로 덜컹 하면서 중심을 잃고 때로는 고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난기류는 ①열대성 저기압에 의한 난류, ②적란운(CB)에 의해 생기는 난류, ③청천난기류(Clear air turbulence), 그리고 ④후류요란(Wake Turbulence) 등 네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①,②는 항공기에 장착된 기상레이다로 사전에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고, 또, 그냥 지나가더라도 기체가 흔들릴 뿐 크게 지장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④는 항공기의 제트후류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일정한 기간거리만 유지하면 문제될 게 없는데 ③이 가장 골칫거리이다. 멀쩡한 날씨에 아무런 징조도 없이 느닷없이 깜짝쇼를 벌이는 “하늘의 바람귀신”처럼 나타나는데 일명 “에어포켓(Air Pocke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기덩어리가 큰 폭으로 각각 다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덩어리끼리 서로 충돌할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고도 7,000~12,000m 상공에서 제트기류 주변에서 빈번히 나타나는데 때로는 산맥 부근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청천난기류는 육안은 물론, 레이더로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에, 피하기도 어려운데 그러나 신틸레이션(Cintilation)계측기 등 광학적으로 난류를 측정하는 장치를 사용하면, 멀리서도 검지할 수도 있다고 이 장치가 설치되어 나올 듯하다.
청천난기류를 만나게 되면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급강하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고도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심한 경우 그 폭이 상하 60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항공기를 타면 매회 반복하는 주의사항으로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더라도 착석 중에는 그대로 벨트를 매고 있어달라는 것인데 이건 승무원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상책이다. 벨트를 푼 채로 잠들었다가 갑자기 요동치는 난류 속으로 들어가면 때로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실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고 있던 승객이 객실 천장에 부딪혀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썩 즐거운 이야기도 아닌데 매회 지루하게서리 항공사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항로에서 이렇듯 난기류를 발견하면 즉각 해당공역을 맡고 있는 관제기관에 연락을 취해 고도 변경을 요청하고 관제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조종사의 요구대로 운항고도를 바꾸도록 허가해준다. 그러나 청천난류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구름이나 천둥 등 일반적인 기상현상과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까닭에 현대 과학의 총아라고 불리는 기상레이다에도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 청천난류는 조종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기상현상으로 때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되기도 한다. 항공기가 일단 이런 난류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속도를 줄여 최대한 기체 진동을 방지하는 한편 그 지역을 빨리 벗어나는 길 외에는 달리 대책이 없다.
모든 조종사에게는 이런 난기류를 만나면 지상관제소로 보고토록 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이 방법 외에는 달리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후류요란은 항공기가 지나간 뒤 발생하는 일종의 인위적인 기류로 관제기관은 애초에 동일한 고도라면 앞뒤 항공기의 기간거리를 10마일 이상 분리하여 순항시켜 이에 대한 피해를 방지한다.
터뷸런스 현상이 가장 잦은 곳은 호주와 뉴질랜드 지역을 오가는 항로라고 한다. 대한항공에서 99년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2년 반 동안 장거리 국제노선을 중심으로 터뷸런스 발생사례를 분석한 결과, 서울 뉴질랜드노선에서 운항편 중 5.5%가 터뷸런스를 겪어 가장 잦았다고 한다. 또 적도를 통과하는 호주지역 노선도 각각 3.8%, 3.5%의 터뷸런스 발생률을 보였다. 이는 59개 국제노선 전체 평균(1.8%)보다 2~3배 잦은 수치다.
오클랜드행 비행기의 경우, 실제로 2000년 4월 심한 터뷸런스를 만나 승객 21명과 승무원 2명이 다친 적도 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화장실에 가려고 걷던 중이거나, 안전띠를 매지 않고 앉아 있었던 승객이다. 이 밖에 주로 편서풍 영향을 받는 도쿄(0.5%)나 홍콩(1.1%)은 평균치보다 낮지만, 단거리임을 감안하면 역시 난기류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12월 28일, 승객 374명, 승무원 19명을 싣고 도쿄 나리타공항을 출발하여 호놀룰루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UA826편 B747-400기가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고도 31,000피트에서 바람귀신인 창천난기류를 만났다. 기내에는 벨트착용 사인이 켜졌는데 항공기가 중심을 잃고 순간적으로 300m나 강하하는 바람에 많은 승객이 부상당했다. 항공기는 급거 출발했던 나리타공항으로 긴급회항했으나 결국 32세의 여자승객 1명이 뇌출혈로 사망하고 74명의 부상자를 냈다. 당시 언론들은 떨어져나간 천장과 산소마스크가 매달려 있는 광경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사고는 근래 일어난 최대 터뷸런스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장은 각종 운항관련 정보를 통해 난기류가 예상되는 공역을 통과하지 않고 피해가도록 노력하지만 특히 미국계 항공사들은 정시성을 중요시여기기 때문에 굳이 난기류가 예상되는 코스라도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제 시간에 출발했는데 도착이 늦어졌다 하면 대부분 난류를 피해 고도나 코스를 바꾸면서 날았기 때문으로 봐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