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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산행일지 : 전북 장수군 장안산 (아이스 홍시와 연리지)
일시 : 2005년 12월 10(토)
날씨 : 흐림, 눈
간혹 주말 늦게 혼자서 앞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에서 일몰과 뒤이은 어둠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대구시의 야경이 무척이나 좋아 등고선 회원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지난 11월 25일(금) 아침, 출근하여 등고선 홈피에 들렀다가 ‘총무가 대구로 올라오는 어느 날 앞산 야간산행으로 초대한다’고 통문을 돌리고 돌아서는데 경주로부터 “오늘 올라갑니다”라는 전화가 왔다. 다른 두 회원께도 연락하여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는데 약 30분 후 오늘 저녁 8시에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모이기로 했다며 다시 연락이 왔다. 아닌게 아니라 그날 저녁 8시 지방에 가서 다소 늦을지 모른다던 김이돌 회원까지 정확한 시간에 다들 모였다. 우연히 일정이 다들 맞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산행코스를 물었더니 약간은 길게 가졌으면 한다고 하여 청룡산 - 달비골 정상 안부 - 앞산 - 임휴사로 코스를 잡았다. 보훈병원 뒤편 길로 산에 접어들자 밤안개가 신비하게 감싸이고 그리 춥지도 어둡지도 않다. 금도현은 김이돌 회원이 사준 낚시용 모자랜턴이 밝지 않다고 다소 불만스러운데 김이돌은 그래도 쓸만하다며 산행 내내 둘이서 투덜거리는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능선에 올라서자 달서구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에 꽉 찬 반짝거림이 보기에 좋다.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려 청룡산 정상 길에 닿았으나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젓한 안부 길로 들어서자 모두들 편안한 느낌에 한마디씩 거든다. 사실 이 부분은 산책길 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구간이다. 10시경 달비골 정상 안부에 다다르자 자리를 펴고 라면을 끓인다. 두개만 끓여 맛만 보자는 총무의견보다는 그래도 4개는 끓여야 한다는 금도현 의견이 채택되었다. 대파도 없고 김치도 없지만 쏟아지는 별빛을 담아먹는 라면 맛도 좋았다. 앞산정상으로 약간의 고개를 올라 대구시의 야경을 오른편으로 즐기며 정상능선을 가로질러 임휴사로 하산 길을 잡았다. 시간이 늦어지자 가벼운 산행으로 생각하고 말도 없이 집을 나선 김생곤은 마음이 약간은 조급한가 보다. 사실 오늘은 큰집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랜다. 금도현 부인은 새벽에 들어온다고 하니까 아예 찜질방에서 자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란다. 12시가 훌쩍 넘어서 야간 정기산행도 가지면 좋겠다는 말들을 남기고 각자 헤어졌다. 아마도 총무는 집에서 입장이 많이 난처하였나 보다.
이번에는 아침 8시 화원 톨게이트 옆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7시 40분, 김이돌 회원이 또 아파트로 와 함께 정시에 도착하였더니 다들 미리 와 있었다. 잠시 산행지에 대해서 논의가 있어 무주의 적상산이나 다소 편안하고 눈이 없어 보이는 고성 팔영산 의견이 있었으나 겨울 눈산을 보고자 예정대로 장안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 야간 산행 후 교회에서 만난 총무의 모친이신 이분자 집사님께서는 금도현더러 ‘참 희안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시더라는 예기에 다들 한바탕 웃었다. 새벽 꿈에 내가 등산화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메고 있는데 장인어른께서 등산을 말리더라는 내 꿈을 예기하자 오늘 특히 조심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함양에서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북상하여 곧 나다나는 육십령 터널은 우리를 은빛 세상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장수 IC에서 나오니 우측은 논개 생가를 향하고 좌측은 장수를 거쳐 논개사당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장수로 접어들어 읍내에서 논개사당 앞을 지나 덕산리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 고개가 나타난다. 기사 금도현이 바짝 긴장하며 나의 꿈을 상기시킨다. 마주 오는 차가 있어 차가 멈추자 헛발질을 계속한다. 김이돌과 김생곤이 내려서 밀자 천천히 움직였으나 멀리 가지 못해 다시 헛발질이다. 눈이 녹은 곳까지 100여 미터를 뒷걸음쳐서 새로이 출발하여 거의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으나 다시 헛발질, 이번에는 기사만 빼고 모두 내려 밀어 올렸다. 고개 정상에는 눈을 치우던 포크레인의 기름이 떨어졌는지 고장이 났는지 기사가 왔다갔다 한다. 돌아가는 길엔 말끔히 치워놓기를 바랄뿐이다. 고개를 넘어선 내리막길은 볕이 드는 남향이라 깨끗하였으나 총무가 준비해온 지도에 적힌 덕산분교도 없고 덕산리도 없다. 다행히 마주 오는 짐차에 물으니 지금 공사중인 댐으로 인하여 폐교된 덕산분교는 수몰지역이 되고 조금 더 가면 등산 시작점이 있다고 한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니 좌측에 장안산 등산로 입구라는 큰 등산안내도가 붙어 있다. 좀더 아래에 보이는 마을에서부터 등산을 하여야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눈길로 보였고 딱히 확신도 없었기에 여차하면 이곳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출발지점으로 정하였다. 총무가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 라면 물 받아오고 곧 이은 10시 30분 출발.
초입의 인사가 거칠다. 낙엽송이 많은 급경사의 길을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이 마을을 거쳐 오르는 것을 막고자 이리로 입구를 옮겼나 보다. 조금 올라서자 눈길이 시작된다. 다소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지며 우측 2시 방향으로 구름에 쌓인 장안산 정상부가 보인다. 귤을 먹으며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눈길에 대비한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어지더니 간간이 들짐승과 새들의 발자국만 남긴 채 산은 고요하다. 오늘 산행 종일토록 사람의 흔적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11시 30분 경 안부 갈림길로 내려선다. 범연동 2km, 장안산 4km지점을 알리는 이정표는 구겨진 채로 쓰러져 있다. 아마도 범연동 마을에서부터 올라왔으면 시간도 거리도 절약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이 눈에 꽤나 깊이 잠긴다. 금도현이 앞장서고 스패츠를 준비 못한 김생곤은 맨 뒤에 서게 했다.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40여분정도 소요된 2km까지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다. 정상 2km 표시를 지나자 경사가 급해진다. 눈은 거의 무릎까지 잠기고 아이젠을 하였지만 미끄럽고 김생곤 발에는 눈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나 보다.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불고 힘든 길이다. 정상 1km 표시에 이르렀을 때는 힘도 많이 들었고 내리는 눈 탓에 돌아갈 길도 걱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도가도 똑같은 눈 덮힌 모습-사실은 장안산 정상부근에서 보이는 지리산에서 덕유산에 이르는 긴 백두대간의 조망을 기대했었는데-이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하여 김이돌과 함께 이쯤에서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금도현은 계속 가잰다. 김생곤도 말은 안했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나중에 알려주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편안한 능선 길이다. 예쁜 눈꽃들도 눈에 들어오고 겨우살이가 정말 많다. 이런 길을 30여분이나 걸었는데 정상은 없다. 사람도 없다. 내리막이 심하게 시작되는 지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1시30분. 그리하여 오늘은 정상에서의 사진도 없다.
눈발은 잦아들었다. 오던 길을 10여분 내려와 우측으로 바위를 끼고 있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좁은 등산로에서 자리 잡고 식사준비를 한다. 물 끓음이 늦다. 추워서 오돌오돌 떨며 이 추위에 이 고생하며 라면 하나 먹겠다고 좁은 데 비집고 있자니 총무님 모친의 ‘별 희안한 취미’라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남들이 도저히 이해 못하는 취미임에는 분명하다. 밥도 없어 5개 모두를 넣고 가스통을 장갑으로 싸고 끓기만을 기다린다. 오늘은 파도 많다. 적당히 끓자 식사시작이다. 남지도 않을만큼 맛있다. 식후 그릇 닦는 것은 손이 시려 포기했지만 커피는 평소 먹지 않던 금도현까지 동참하여 따뜻하게 한잔씩 나누니 한결 몸이 풀린다. 2시 30분, 식사에 정확히 한 시간이 걸렸다.
다시 하산을 재촉하여 3시 10분에 갈림길에 도착하여 이번엔 좌측의 범연동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용화산에서의 하산길처럼 길이 편안하게 참 좋다. 중간쯤 내려오자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두 그루가 거의 연리목(連理木)처럼 붙어 있다. 나는 그것이 연리목인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와 오늘 조금 전 저자 친필 싸인을 받은 우리 대학 박상진 교수가 쓰신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를 다시 펴들었더니 그것은 연리목이 아니라고 한다. 연리목은 같은 종류의 나무 혹은 계통상 아주 가까운 나무사이에서만 진정한 연리현상이 일어난다고 쓰여 있었다. 나무는 자리를 잡으면 이사를 갈 수 없기에 공간을 나누며 혹은 공유하며 살아야 하는데 두 나무의 세포가 합쳐지는 것을 連理라고 하며 가지가 붙은 連理枝, 나무줄기가 붙은 連理木이 있다. 연리지는 매우 드물어 박교수에 의하면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소나무),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소나무), 그리고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동백나무) 3곳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연리목은 비교적 자주 발견되는데 충남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장동마을의 팽나무 연리목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 팽나무 한 그루를 심었더니 두 그루가 자라 포옹나무로 변하였다고 한다. 아뭏튼 연리지나 연리목이나 그 형태로 보아 종종 감동적인 사랑에 비유되곤 한다. 아들의 아내 즉 22살의 며느리였던 훗날 양귀비와의 사랑놀음으로 희대의 스캔들이 된 56세의 당 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여 시인 백거이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
비익조는 눈, 날개가 한쪽만 있는 새로 암수가 합쳐야 날 수 있는 중국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앞의 책 ‘나무의 영원한 사랑, 연리지’ 부분을 참조하면 된다.
30여분 만에 마을 입구에 이르니 등산로를 나무로 얼기설기 막아 두었다. 문중산으로 보이는 맨 위 무덤의 주인은 통정대부 윤공인데 무덤을 보고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애 형상을 한 한쌍의 동자상 석상이 너무 귀엽다. 50 cm 정도 길이와 20 cm 못되는 폭의 귀여운, 세월의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다. 배낭에 넣어갈까? 하늘 맞닿은 골짜기여서 물도 깨끗하고 앞에는 계곡, 뒤에는 산으로 둘러쳐진 범연동 산골 마을이 너무 평화롭다. 오골계가 거니는 마을 입구 키 큰 몇 그루의 감나무에는 투명한 붉은 색의 홍시들이 주렁주렁 그대로 매달려 있다. 그 모습만도 환상인데 나무둥치를 던져 딴 홍시는 얼음이 사각거리며 그 맛도 그저 그만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300미터 정도 앞에 우리의 애마, 산타페가 있다. 4시, 등산이 일찍 끝이 났다. 아침의 기대대로 내리막 눈길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장수를 지나 대진 고속도로 서상 IC를 나와 국도로 안의, 거창에 이를 동안 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거창시내를 방황하다가 결국 택시 기사에게 물어 6시경 터미널 식당에 들러 동태찌게를 먹다. 값도 싼데 동태찌게와 다른 반찬도 맛이 괜챦다. 화원 IC 부근에서 주말여파로 차가 좀 밀렸다. 저녁 8시 10분 출발지점 도착.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