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즈 파스칼은 클러몬트-페란드(Clermont-Ferrand)라는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1623년 6월 19일에 3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그가 세 살밖에 안되었을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 가족 모두 파리로 이사했다.
그의 생애 동안 건강은 극도로 약했지만, 재기 넘치는 지성을 타고났었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는 파스칼이 수학을 배우면 심적으로 매우 어려워할 것으로 우려하였으나, 오히려 수학만이 그의 유일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4세에 파스칼은 매주 수학강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학자들의 주별 모임이 후에 ‘프랑스 과학원(French Academy of Science)’으로 발전하게 된다. 단지 16세에, 파스칼은 원뿔곡선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 논문은 동시대 수학자들로부터 아르키메데스 시대 이후 ‘수학 분야에 가장 위대하고 가치 있는 기여를 한 논문’으로 갈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원뿔곡선에 대한 현대적 접근방법의 기초가 되었다.
파스칼의 계산기
블레이즈 파스칼은 항상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및 수학을 추구하였다. 아직 십대였을 때, 그는 계산하는 첫 기계, 즉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대수기계를 발명하였다. 이 기계는 각각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가진 일련의 바퀴로 구성되어 있었고, 바퀴들은 여러 개의 기어로 연결되어 있어, 한 바퀴가 1회전하면 그 옆 바퀴는 십 분의 1만큼 회전하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이 기계는 세무법원의 판사인 아버지에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점차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파스칼의 계산기는 오늘날의 계산기와 컴퓨터의 발달을 가능케 한 디딤돌이 되었다.
크리스천 신조
1646년에 파스칼은 얀센파에 가담하였다. 얀센파는 선행보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칼뱅주의에 동조하는 프랑스 내의 카톨릭의 한 파이었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한 빈 공간(God-shaped vacuum)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파스칼은 창세기에 묘사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대영백과사전은 ‘파스칼은 인간의 가증함은 오직 타락의 결과로서만 해석될 수 있고,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은 첫 아담이 없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두 번째 아담인 것처럼, 자신에게도 두 번째 아담으로 믿었다’ 고 기술하고 있다.
이 적하기(積荷機; loader)의 앞에 있는 삽(shovel)을 작동시키는 데 사용되는 유압 장비는 파스칼의 발견에 근거한 것이다.
명확한 신념을 소유한 크리스천 파스칼은 계속해서 과학과 수학에 종사했다. 파스칼은 기압계를 사용한 실험을 통하여 오늘날에는 매우 익숙한 사실들을 증명하였다. 즉, 기압계의 수은주의 변화를 관찰하면 알 수 있듯이, 기압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감소하며,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도 변한다는 사실들을 증명하였다. 또한 파스칼은 유체정역학과 유체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용기에 담긴 액체에 압력이 가해지면, 그 압력은 그 압력이 부하된 면적에 관계없이, 또한 거리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사실은 ‘파스칼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스칼이 설계한 유체 압축기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유체에 관련한 이러한 실험 도중에 주사기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싸이클로이드(한 원이 직선을 따라 구를 때, 그 원주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싸이클로이드에 관한 수많은 물리적/수학적 발견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개된 미적분학의 발달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확률론
파스칼은 페르마(Fermat)라는 수학자와 함께 확률이론에 대해 연구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를 통해 그들이 확률이론의 창시자로서 동등한 역할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연구는 다양한 도박장에서 수행되었지만, 그 이론은 엄청난 적용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이론은 모든 보험상품(설계)의 기초가 되었으며, 입자의 거동을 묘사할 때 확률을 사용하는 양자 물리학 등, 수많은 과학의 여러 분야에 유용한 이론이 되었다. 파스칼은 확률계산에 유용한 ‘파스칼의 삼각형‘으로 알려진 간단한 도식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파스칼의 삼각형은 매우 간단하게 작성된다. 삼각형의 각 숫자는 바로 위에 있는 두 숫자의 합이다. 그것은 단 두 개의 결과만을 갖는 사상(event)의 확률을 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여기에는 동전 던지기(앞면이냐 뒷면이냐) 또는 아이 낳는 것(남자냐 여자냐)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동전을 세 번 던지면 8개의 경우의 수가 있다: HHH, HHT, HTH, THH, TTH, THT, HTT, TTT.
삼각형의 세 번째 행을 보면 숫자가 1, 3, 3, 1이다. 이것은, 모두 앞면 또는 모두 뒷면을 얻을 경우의 수는 단 한 번이며, 앞면이 두 번 뒷면이 한번, 또는 뒷면이 두 번 앞면이 한번 나올 경우의 수는 3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확률로 환산하면, 가능한 결과의 확률은: 3H - 1/8(8번 중에 한 번의 기회); 2H1T - 3/8, 2T1H - 3/8, 3T - 1/8
네 번째 행을 보면, 네 명의 자녀를 둔 가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딸 하나와 아들이 셋인 경우가, 딸이 없고 아들만 네 명인 경우보다 가능성이 네 배이다. 반면에, 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인 경우는 6배이다. 자녀가 4명인 가족이 모두 아들이거나 모두 딸인 경우는 16번 중의 한 번이다. 등등.
회 개
파스칼은 도박이 열리는 많은 파티에 참석했으며, 불행히도 이런 생활방식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1654년 마차가 튕겨 나가는 사고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그의 말은 죽었으나 그 자신은 무사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보존케 하셨음을 확신하고, 그 당시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즉, 31세부터, 39세에 죽을 때까지 그는 오직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 소망은 사람들의 생각을 구원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온 그 당시에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확신! 기쁨! 평화! 나는 하나님 이외에는 세상과 모든 것을 다 잊는다...” “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킨다.”
파스칼은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종교적 저술에 헌신하였다. 그는 ‘시골뜨기의 편지(Provincial Letters)’로 알려진 그 유명한 18개로 구성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비평가들에 의해 현대 프랑스 산문의 시초로 간주된다. 파스칼은 또한 탁월한 저서 ‘팡세’(불어로 ‘사상’을 뜻함)를 저술하였다. 팡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자신의 신념에 대해 논한 책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신의 지혜로는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기록하기를 ‘믿음은 감각적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해 주며, 그것은 나타난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은 단순한 창조자 이상이심을 알았다. 즉,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개개인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파스칼은 구원문제에 확률의 개념을 적용한 ‘파스칼의 내기’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스칼의 내기는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된다. “크리스천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손해 볼 것은 무엇인가? 설사 그가 죽어서 하나님도 없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었다라고 판명되더라도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사실상 그는 믿지 않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도 계시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그의 무신론자 친구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파스칼은 기록하기를 “나는 나를 위해 고통 받고 죽으신 나의 구원자를 향해 팔을 펼치고 있다.” 파스칼은 파리에서 1662년(39세) 8월 19일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부단히 병고에 시달린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이 헌신된 크리스천은 과학, 수학 및 문학에 지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