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 쯤은 '경주 최부잣집'에 관한 얘기를 들어 봤을것입니다. 소유한 논밭만도 300만평이 넘었고 한 해에 벼 만석을 소작료로 거둬들일 정도로 엄청나게 큰 부자였습니다.
'경주 최부잣집'은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부터 광복직후 모든 재산을 바쳐 대학을 설립한 '최준'까지를 일컫습니다.10대에 걸쳐 무려 300년간이나 부를 이어온 것입니다.특별한 비결이 있었을까요? 최부잣집 가훈에서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경주 최부잣집 家訓
첫째. 과거를 보되,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만석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최국선의 아들 최의기는 전체 소작료 수입이 1년에 만 석을 넘지 않도록했다.때문에 최 부자의 토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소작인이 내야하는 소작료는 줄어들어 농민들은 땅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최 부자에게 소개를 해줬다.적정 이윤에 만족했고 소작인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었기에 최 부잣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실제로 최 부잣집의 수입을 헤아려보면 한 해 이익을 만석으로 한정지어 연간 만 석씩 300년 동안 300만 석의 수입을 올린셈이 된다.욕심을 부려 한 해에 2만 석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면 50년을 쳐도 100만 석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와 소탐대실이 됨을 알 수 있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현종 신해년(1671년)삼남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최국선은 집의 헛간을 헐도록 명했다. 그리고 집 앞의 바깥마당에 큰 솥을 걸고 연일 죽을 끓이도록했다."모든사람이 장차 굶어 죽을 형편인데 나혼자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하겠느냐.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하라.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혀 주도록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흉년'은 부자가 더 욱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최 부잣집은 노비와 소작료라는 '도움'이 있었기에 자신의 부가 가능했음을 알고있다.그래서 담보서약 문서를 불태우고 소작료를 대폭 탕감하는 등 어려울때일수록 적극적으로 구휼을 베풀었다.이 때 기업이 그 이익을 사회에 돌려주지 않으면 결국 그 기업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