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축구팀의 승리 앞에서
세계 축구랭킹 102위인 오만이슬람왕국 축구팀에게 한국 축구가 3대1로 지는 것을 보면서 지난 해 여름의 월드컵 열기가 떠오른다. 폴란드팀을 이기고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출선 첫 승을 올렸을 때 붉은 악마를 비롯한 전국민의 기뻐하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연이어 16강, 8강,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 냈을 때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던가, 전국을 가득 메웠던 붉은 악마의 함성이 하나 되던 충만감이 떠오른다. 오만 이슬람왕국은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조금 넓지만 인구는 250만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다. 국민소득이 석유생산으로 약 6천불 정도 되지만 전국민의 문맹률이 50%에 가까울 정도로 국가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이다. 아리비아반도 남쪽에 위치한 오만은 시니파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슬람국가로 우리나라와도 약 30년 가까운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이다.
열성 축구팬들은 오만에게 어떻게 한국축구가 질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코엘류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며 열을 낸다. 하기야 약체라고 예상했던 베트남에게도 지고 나서 오만에게 연이어 패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지만 그렇게 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거야말로 傲慢이려니 싶을 뿐이다. 우리가 유럽의 강호 폴란드, 이태리,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했던 것처럼 오만도 한국 축구를 격파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우리가 월드컵에서 맛보았던 승리의 쾌감을 오만 국민들도 맛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을, 그것도 자기들의 수도인 무스카트 종합경기장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들이 누렸을 통쾌함과 행복감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유럽의 축구 강호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이길 수 있어야 하고, 또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패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갖추어지지 않은 땅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축구협회는 코엘류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면서 먼저 그의 책임론을 들고 나온다. 자신들에게 날아올지도 모를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위선의 몸짓임이 보인다. 한국축구팀 감독이 되어 초기에 연전연패하여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히딩크 감독에게 돌팔매질하던 그들의 지난 모습이 떠오른다. 언제나 똑 같은 행태의 반복이다. 역사보다 위대한 스승이 없다고 하지만 도무지 역사에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저 아집과 무책임과 몰염치성을 바라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두가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후안무치함이 낯뜨겁다.
유라시아철도노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될 것이라고 한다. 유라시아횡단철도사업은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사업으로 유엔 산하 아ㆍ태경제사회이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한반도 관통노선을 제외한 시베리아횡단철도, 만주횡단철도, 몽골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 등 4개 노선에 대해서만 다음달부터 시험운행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엄연한 대륙의 일부이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섬나라가 아니다. 아니 섬나라인 영국조차 영불해저터널을 통해 유러스타가 운행하며 대륙의 일부가 되었다. 유럽을 여행해 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너무나 쉽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외국나들이가 아주 오래전부터 비행기표나 선박의 승선권을 예매하고 그 다음에도 복잡한 출국 절차를 밟아야만 가능한 대단한 행사이다. 그러기에 외국이라는 개념이 어렵고 두려운 개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주 가볍게 자신의 차를 몰고 국경선을 넘나드는 유럽에서는 외국 나들이가 제 집 안방 드나들 듯이 자유롭다. 우리에게 있어서 새들만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국경선을 새들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니 그들의 정신과 이념 또한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이념의 철창에 갇혀 섬나라 아닌 섬나라로 고립되어 있다. 여전히 낡아빠진 이념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를 섬에 가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 정말이지 싫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하나의 이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그 독선이 무서울 뿐이다. 축구시합에서 오만에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듯이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황장엽을 받아들였듯이 송두율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옛말에 멍석 깔아주니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념에 날뛰는 사람들을 위해 멍석을 깔아주고 한 번 놀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춤추는 어릿광대, 꼭두각시들의 몸짓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게 해주고 싶다. 한국 축구 골문을 향해 오만 축구 선수의 슛이 화살처럼 날아 꽂히는 것을 바라보듯이, 결코 무섭지 않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나는 세상에는 자유와 동등한 무한의 가치들이 산재해 있다고 믿는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라시아철도를 이용해 영불해저를 통과해보고 싶은 건 나만의 욕심일까......
시사법률신문 51호 게재
첫댓글 37. 패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갖추지 못한 나라는 언제나 소란스럽다. <오만 축구팀의 승리 앞에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