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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덕대왕신종 또는 봉덕사종이라고 불리는 에밀레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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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신종이 만들어지니, 그 모습은 산처럼 우뚝하고 그 소리는 용의 읊조림 같아, 위로는 지상의 끝까지 다하고 밑으로는 땅속까지 스며들어, 보는 자는 신기함을 느낄 것이요, 소리를 듣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이곳 경주는 오늘도 날씨가 몹시 흐려.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룡사터를 왼쪽에 끼고 국립경주박물관을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신 선생의 표정이 몹시 구겨져 있어. 게다가 날씨마저 몹시 후텁지근해서 이마에선 저절로 땀이 흘러내려.
근데 길 중간쯤 걸어가고 있을 때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소가 잘 먹는 바랭이풀이 빼곡이 돋아난 풀숲에서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그런 느낌. 그와 동시에 아빠의 머리끝이 이내 쭈뼛하고 섰어. 왜냐구? 커다란 물뱀 한 마리가 아빠 왼발 바로 옆에서 스르륵 하고 풀숲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물뱀이 그렇게도 무서워서? 아니. 물뱀은 살모사나 독사처럼 독을 품고 있지는 않아. 그래서 물려도 큰 상관은 없어. 또한 아빠 어릴 적에 소풀을 베러갔다가 물뱀한테 실제로 물린 적도 있었어. 근데 왜 그리 놀랐냐구? 아빠가 어릴 때부터 가장 징그러워했던 것이 뱀이었거든.
그래. 어쩌면 황룡사터 풀숲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그 뱀이 진흥왕이 보았다는 그 황룡의 자손인지도 모르지. 또한 그 황룡은 자손을 통해서 다시 화려했던 황룡사의 복원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그 말을 하자 신 선생이 콧방귀를 픽, 하고 뀌었어. 일장춘몽 같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듯이 말이야.
참, 그러고 보니 이야기가 너무 엉뚱한 곳으로 흘렀나 보다. 위에 인용한 말은 인왕동(仁旺洞)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29호 에밀레종에 새겨져 있는 글씨야. 종을 치면 마치 '에밀레~ 에밀레~' 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그 에밀레종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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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는 '에밀레라', 즉 '에미 탓이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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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무릇 심오한 진리는 눈에 보이는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하나니,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그런 고로 (부처님께서는)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둥근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때 에밀레종을 바라보던 신 선생이 이렇게 말했어.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옮겨놓은 것은 불경이요,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으로 옮겨놓은 것은 불상이라. 또한 부처님의 목소리를 옮겨놓은 것은 종소리라" 라고. 그래. 에밀레종에 새겨진 글씨처럼 진리라는 것은 사람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말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사람들은 눈을 뜨고도 진리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도 진리를 찾지 못한다고 말했을 거야. 또 진리의 소리가 들려도 사람들의 귀에는 그게 진리의 소리인지 소가 음메, 하고 우는 소린지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불경을 만들고, 불상을 만들고, 종을 만들어, 진리의 실체를 알게 했다는 거야.
"숭실대 정보통신공학부 배명륜 교수는 에밀레종에서 긴 여운이 발생하는 것은 둥근 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면서요?"
"무슨 음향학회 학술 세미나에서 그랬다고 하니더. 그동안 에밀레종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의 비밀은 하대가 오목하기 때문에 공기가 종 내부에 오래 가두어져 도는 맥놀이 현상 때문이라고 그랬다고 했니더. 그런데 배 교수는 종 하부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두께의 둥근 링이 에밀레종에서 나는 소리의 비밀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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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펄 끓는 쇳물에 어린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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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오른편 종각에 매달려 있는 에밀레종은 원래 봉덕사에 있었대. 그래서 지금까지도 봉덕사종이라고 부르는 이도 더러 있어. 또한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 해서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근데 왜 박물관으로 옮겼냐구. 그 사연도 얽힌 역사만큼이나 복잡해.
봉덕사는 신라 제33대 성덕왕이 태종 무열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절로, 경주 북천(北川) 근처에 있었대. 그 뒤 봉덕사가 북천에 묻히게 되자, 조선 세조 6년, 서기 1460년에 영묘사(靈妙寺)로 옮겨 걸었대. 그런데, 그 영묘사도 홍수가 나서 모두 떠내려가고 에밀레종만 덩그러니 남았대.
그래서 지금의 경주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에밀레종을 보관했대. 그러다가 1913년에 경주고적보존회(慶州古蹟保存會)가 결성되었대. 그리고 1915년부터 옛 객사(客舍) 건물을 이용, 신라 유물들을 수집하여 전시했대. 그때, 그러니까 에밀레종은 1915년에 그 객사에 옮겼다가 1975년 7월 2일, 새 경주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긴 거래.
자료에 보면 에밀레종은 높이가 3.75m, 입지름이 2.27m, 두께가 11∼25㎝, 무게가 18.9톤이라고 나와 있어. 그리고 에밀레종에는 이 종을 만들게 된 까닭이 새겨져 있어.
이 종은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였던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려고 했대. 그런데 경덕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재위 7년, 서기 771년에 구리 12만 근(72t)을 들여 완성한 종이래.
그러니까 에밀레종은 2대에 걸쳐 만든 셈이지. 이는 그만큼 이 종을 만들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겠지? 하긴, 그래서 에밀레종에는 그토록 애닯은 사연이 숨어있는 지도 모르지. 펄펄 끓는 쇳물에 어린 아이를 넣어서 종을 만들었다는 그 얘기? 그래. 다시 한번 자세하게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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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톤이나 나가는 에밀레종을 매단 종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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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에밀레종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주조하기 시작했대. 하지만 혜공왕 때에 와서도 계속해서 실패를 했대. 그러자 초조해진 왕궁에서는 국력을 총집결하여 종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 수많은 스님들에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시주를 걷게 했대. 그 소식을 들은 신라인들은 찾아오는 스님에게 시주를 안 할 수가 없었대.
그때, 스님 한 분이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몹시도 가난한 집에 들렀대. 스님이 보기에도 그 집은 시주할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였대. 그래서 스님이 그냥 돌아서려는데, 그 집 아낙이 이렇게 말했대. "하나밖에 없는 어린딸이라도 소용이 된다면 나라를 위해 시주하겠나이다"라고. 그래서 스님은 시주책에 그 아낙의 말을 그대로 적어가지고 서라벌로 돌아왔대.
하지만 종은 계속해서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대. 그때 어느 고승이 이렇게 말했대. "끓는 쇳물에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아이를 넣어야 종을 만들 수 있느니라"라고.
그 말을 들은 스님의 머리 속에 문득 그 아낙이 떠올랐대. 그래서 그 스님은 다시 그 집에 가서 딸을 달라고 했대. 그 아낙도 한번 내뱉었던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딸을 내놓았대. 통곡을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서라벌로 돌아온 스님은 그 아이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갈아입혔대. 그리고 두눈 질끈 감고 펄펄 끓는 쇳물에 그 아이를 넣어버렸대. 그리고 그 쇳물로 종을 만들기 시작하자 단 한번에 종이 완성되었대.
그런데 타종을 하자 자꾸만 에밀레~ 에밀레~ 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그 종을 에밀레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종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로 들렸을까요?"
"에밀레는 '에밀레라'의 준말이었다고 하니더. 즉 '에미 탓이라' 라는 그런 뜻이라고 하니더. 다시 말하자면 그 아낙네가 시주를 하러 온 스님에게 설마, 하며 딸을 시주하겠다고 한 건데, 그게 업보가 되어서 실제로 자신의 딸이 희생되고 만 거지요. 그래서 그 딸이 죽어서도 '에미 탓이라~ 에미 탓이라~' 하며 울었다는 그런 말이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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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 아래는 둥그렇게 패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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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이 설화는 그냥 가볍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야. 종을 만들 때 진짜로 아이를 넣었느니, 넣지 않았느니, 하는 시시비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게 뭐냐구? 그러니까 이 종을 만들기 위해 나라에서 전국에 스님을 보내 반강제적으로 성금을 거두었다는 그런 뜻도 숨어 있다는 그 말이야. 그래. 오죽 심했으면 자신의 딸을 시주하겠다고 했겠니?
에밀레종의 모양은 종의 입에 해당하는 부분에 당초문(덩굴풀 무늬)으로 된 띠가 둘러쳐져 있어. 또 덩굴풀 무늬 사이에도 8개의 큼직한 연화무늬(연꽃을 본뜬 장식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고. 에밀레종 위에는 마악 용트림을 하는 용(龍)이 음관(音管, 소리관)을 칭칭 감고 있어.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탁 띄는 것은 비천상(飛天像)이야. 비천상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형상이란 그런 뜻이야. 이 비천상은 양각된 글씨를 사이에 두고 각각 2구씩, 모두 4구가 연화좌(蓮花座, 연꽃 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어. 그래서 이 모습을 공양상(供養像)이라고도 하지.
이 비천상 주위에는 보상화(寶相華, 불교에서 이상화(理想化)한 꽃)가 마치 구름처럼 뭉개뭉개 피어오르고 있어. 마치 그 아이가 종을 칠 때마다 에미 탓이라~ 에미 탓이라~ 하면서 하늘로 승천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어쩌면 비천상은 그 아이의 모습일지도 몰라. 김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그 쇳물에 비단옷을 입고 빠져드는 바로 그 아이의 모습 말이야.
어때? 이제 에밀레종에 관해서 어느 정도 의문점이 풀렸니? 이제 여름방학도 했으니까, 엄마 휴가에 맞추어 경주에 한번 다녀가려무나. 아빠가 보낸 편지를 들고 경주를 둘러보면 아마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유물 하나 하나가 훨씬 새롭게 보일 거야. 그리고 덤으로 역사공부까지 저절로 될 수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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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년에 이곳으로 옮긴 에밀레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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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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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경주박물관 입장권에 새겨진 비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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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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