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설악의 눈보라 속...
우리는 설악 산행의 통과의례로 산행 전에 꼭 노루목을 찾는다.
그리고 십 동지묘의 만수 형과 종철 형. 준보 형의 영전에 절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저 산이 우리들을 주를 때... 어음보다 차가운 우리 정열 태우러..., 하던 만수형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말 속의 ’아름다운 산, 과 ‘얼음, 이 바로 십 동지 묘에 절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설악산과 토왕폭 이어서 우리는 그 산과 빙폭의 부름을 받고 또다시 설악 으로 달려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다시 설악 을 찾아간 우리의 절을 받은 것은 노루목 산기슭에 돋아난 잔디의 돌기가 아니라, 십 동지 묘 속에 간직된 ‘영원한 동정, 이었다. 왜냐 하면 묘에 재배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토왕폭 은 동정의 순수함과 열정을 가진 총각에게만 제 몸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동정을 간직한 총각들은 토왕폭 뿐만 아니라 범 봉. 천화 대. 석주길. 공룡능선, 용아 장성. 곰길. 적 벽 등 설악 에 있는 여러 처녀지들과 사랑을 나누는 산행을 통해 서로 한 몸으로 영원히 결합됐다.
그 사랑을 노래하는 순간을 위해, 그 아름다운 산이 우리들을 부를 깨 산 에 가서 다함께 어깨 rue고 노래 불러 총각이 되자는 뜻에서 만수 형은 그런 노래를 만들었고 또 새로 낸 암벽코스에‘총각길, 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만수형의‘아름다운 저 산, 에 필적 하는 산 노래가 있다.
“산이 생명이라고 웃던 그 친구/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다 그 친구/눈덮인 설악산아 대답해 주려마/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
1977년 토왕폭 을 초등한 박영배 씨의 18번 산 노래다.
물론 나는 박 씨를 알기 전에 이 노래를 알고 있었으며 가끔 흥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야말로 박 씨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를 박 씨에게서 처음 들은 날. 나는 어느 총각 산 후배를 산에서 잃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박씨가 소속한 크로니 산악회의 박석정씨가 서울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등반 도중 추락해 숨진 것이다. 그를 떠나보낸 아픔을 달래기 위한 술자리에서 나의 ‘아름다운 저 산, 이라는 노래에 화답한 박씨의 노래가 바로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 였다. 종교를 갖지 않은 나도 그 노래를 듣는 순간에는 종교적 희열에 몸을 떨었다. 동시에 그 노래의 가사 대로 눈보라 속에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박씨가 함께 가자는 겨울의 토왕폭 과 아이거 북벽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나의 토왕폭 등잔은 박씨의 노래가 이끈 것이다.
39 겨울 산간학교
‘노루목 산모퉁이를 돌면 고개 드는 토왕폭/너는 언제나 낯익은 웃음을 보내지만/네 목소리를 기억할 수 없구나/무엇이라 얘기 했던가,이 겨울 오히려 네 가슴에 얼어 박힌 그 한마디의 슬픈 순수가 하얗게 얼어 섰구나,,,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찬 어깨 여위어가다 그 하얀 몸 형체도 없이 사라져/다시 하나의 소리로 돌아갈/너를 알아보지 못하고/우리는 설악 을 떠난다,
우리의 설악 산행은 언제나 토왕폭 을 뒤돌아보며 마무리 짓는다. 설악 에 들어갈 때는 승용차나 버스의 왼쪽창가에 앉아 토왕폭 을 바라보고, 산행을 마치고 나올 때는 그 반대편 창가에서 높이 솟은 함지덕 봉우리가 시야를 가릴 때까지 토왕폭 에 눈길을 주며 설악 과 이별하게 된다.
내가 토왕폭 을 처음 만난 때는 1970년 한 여름이다. 첫 설악 산행에 나서 노루목 십 동지묘 의 이만수. 김종철. 오준보 선배의 무덤에 절하고 뒤돌아보았을 때 토왕폭 은 곧은 소리를 내며 토왕골 의 깊숙한 골짜기 로 물줄기를 끊임없이 쏟고 있었다.
다음해 겨울, 그러니까 71년 12월 하순께 외설악 일대에서 제2기 겨울산간학교가 문을 열었다. 연세대 산악부의 정원양(현 강원대 교수). 김성혁(현 숙명여대 교수)씨와 함께 그 산간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하얗게 언 겨울의 토왕폭 과 재회했다.
우리가 매달리기에는 너무 높고, 우리가 소리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겨울의 토왕폭 을 바라보며 나는 앞에서 읊은 졸시‘토왕폭, 을썼다.
겨울산간학교는 토왕폭 사나이들의 영원한 모교로 부를 만했다. 학교를 다닐 땐 몰랐지만 졸업생 대부분 이 토왕폭 사나이로 거듭 태어났기 때문이다,
토왕폭 제2등을 이룬 부산합동대의 권경업. 이종양씨, 제3등의 손필규 씨, 공주 바자울 산악회의 조덕형 씨 등이 산간 학교 동기였다.
70년 졸업한 1기생으로는 77년 한국인으로는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고상돈 씨(79년 알래스카 매킨리 봉 등정 후 하산하다 추락사)와 최근까지 한국산악회 전무를 지낸 박봉래 씨 등이 있다. 이처럼 산간학교는 개교와 동시에 최고의 등산학교 로 자리 잡았다.
당시 한국 산악회장 이었던 국어학자 이숭녕 박사와 산악의학 분야 권위자인 이기섭 박사가 직접 설악 의 교육현장까지 달려와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을 정도로 교육자나 피교육자 모두 등산교육 에 열성이었다.
윗글은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3개월간 연재되었던 박인식님의 '설악에 살다'입니다 총 54회로 연재된글입니다. 박 인 식(소설가.전 사람과 산 발행인) 필자 약력 ; 1952년 경죽 청도 출생 연세대 졸업 조선일보 ‘월간 산, 기자 월간 ‘사람과 산,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전 연세산악회
첫댓글 지니님^^ 궁금한게 있는데 책한권을 페이지데루 매일 올리시는 건가요?? 지성이 대단하셔서 말이죠^^ 혹 타자로 올리시는건 아니시죠? 그렇다면 우악~~간혹 대충읽었는데 오늘보니 참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체험기를 통해 상식도 알게되구 좋아서요^^
윗글은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3개월간 연재되었던 박인식님의 '설악에 살다'입니다 총 54회로 연재된글입니다. 박 인 식(소설가.전 사람과 산 발행인) 필자 약력 ; 1952년 경죽 청도 출생 연세대 졸업 조선일보 ‘월간 산, 기자 월간 ‘사람과 산,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전 연세산악회
그렇군요^^ 답글 감사드리고 그럼 끝까지 이곳에 연재 하실거죠? 이왕 내치셨으니 끝장을 보셔야 겠지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수고로움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