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ontimes.kr 에서 전재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절대권력이 나를 좌지우지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운명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운명적인 '필연'도 그런것들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운명적인 '필연'은 컴퓨터를 알게된 일인 것 같다.
십 이년 전의 일이다.
아이들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거실로 꺼내놓은 컴퓨터를 쳐다보다가 아이들이 그렇게 빠져드는 이유를 알고 싶어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빠져드는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도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
컴퓨터의 발달은 우리의 생활패턴을 새롭고 편리하게 바꿔 놓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는 않은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지난 밤 동안 세상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컴퓨터를 통해 확인을 해야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아침일과를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
친구들과 전화로 밀린 수다를 떨거나 이웃집 아줌마들 하고 차를 마시며 남편 흉을 보기 보다는 인터넷을 켜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게 훨씬 재미있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들어 있어서 묘한 흡인력으로 나를 빨아 들인다.
돈을 송금하러 은행에 가는 일도, 청탁받은 원고를 전해주는 일도,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는 일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다 해결이 된다.
백화점 쇼핑은 물론 외국에 있는 친구와 화상 통화도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엄마들은 인터넷을 통해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어제 저녁에 놓친 드라마도 재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다운받아 볼 수가 있다.
컴퓨터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점점 집 밖에 나가기 싫어진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윈스턴이 되어가고 있다.
1984년 세계는 엄청난 핵전쟁 후 세개의 초 국가로 나뉜다.
영미 대륙의 오세아니아와 동구권과 러시아의 유라시아, 그리고 우리가 속한 이스트아시아.
오세아니아의 국민인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성에 근무하는 하급직원이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그가 하는 일은 상부에서 지시하는 모든 것의 기록을 지우고 증발시키는 일이다.
이곳의 개인은 빅브라더의 지시에 의해 어느 한순간에 증발 한다.
어떤 개인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그에 대한 모든 기록 역시 다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의 존재는 그냥 잠시 사람들이 착각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윈스턴은 빅브라더 그림 액자의 눈동자 속에 박힌 카메라를 통해 감시를 받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텔레스크린이 항상 윈스턴을 감시하고 있어 그는 모든 것을 지배 당하고 있다.
윈스턴이 하는 일은 '빅브라더는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자는 진리를 지배한다'는 논리로 세상의 언어를 빅브라더에게 맞도록 바꾸어 버리거나 아예 없애 버리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윈스턴은 자연스레 빅브라더의 감시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현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본인도 모르게 찍혀버리는 몰래카메라, 아이디카드가 달린 출입증,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 위치추적기....
거기에 우리를 꼼짝못하게 끌어들이는 컴퓨터의 흡인력.
우리의 기존 상식으로는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컴퓨터에서 통용되는 신생 언어들.....
모든 것이 윈스턴의 시대와 너무 닮아간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는 컴퓨터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슬슬 든다.
문명의 이기라는 이름으로 나를 유혹하고 이제는 나의 사고까지 지배해 버린 컴퓨터!
21세기의 빅브라더는 나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뭉게버리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슬그머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컴퓨터를 떨치고 과감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손은 지금도 마우스를 놓지 않고 인터넷 싸이트를 넘나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