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Wall Street Journal 2010-2-17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의 미래는 일당독재 체제인가
Cambodia's One-Party Future
기고 : Brendan Brady (동남아시아 전문 프리랜서 언론인)
야당의 토대 상실과 중국의 비호가 캄보디아 다당제 민주주의의 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
(프놈펜) --- 캄보디아 사법부는 지난 1월 27일 제1야당 총재인 삼 랑시(Sam Rainsy) 의원에 대해, 베트남 국경 근처 마을의 논에서 "베트남과의 국경표식을 뽑아낸 일"과 관련하여, 궐석재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야당 정치인들과 인권단체들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 재판에 대해, 노골적인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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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uropean Press Photo Agency) 캄보디아 야당 관계자들이 망명중인 삼 랑시 의원의 발언을 시청하고 있다. |
삼 랑시 의원의 이름을 그대로 당명으로 사용하는 삼랑시당(SRP)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야당이다. 현재 SRP는 총재가 부재중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활동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삼 랑시 의원은 과거에도 유사한 판결을 받기 전 국외로 망명했고, 이후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과 교섭하여 국왕사면령을 통해 백지화시킨 후 귀국한 바 있다.
하지만 삼 랑시 의원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야당의 활동은 과거보다 크게 위축되고, 그의 지도력 역시 부분적으로는 비판을 받으면서, 암담한 상황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삼 랑시 의원의 투명하고 민주적 통치라는 의제에 부응하여 이미 한 차례 움직였던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도, SRP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는 SRP가 원래의 친-민주주의적 토대에 대한 친화력을 상실하고, 집권당과의 대립에 있어서 감정적인 민족주의적 논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캄보디아 인권센터"(CCHR) 오우 위락(Ou Virak)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SRP는 과거보다 반동적이고, 그들이 가졌던 핵심적인 민주적 메세지들도 상실했습니다. 그들은 과거보다 확실하게 약화됐습니다. 만일 언론의 이목을 끌기 위한 대립적인 이벤트만을 계속해나간다면, 그들의 장래 역시 상당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
지난 2월 2일 발표된 미국 "국제공화주의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 발표 보고서에도 오우 위락 소장이 지적한 내용들이 반영됐다. 이 보고서는 캄보디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관찰할 때, 정당들 사이의 말싸움보다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에 더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삼 랑시 의원에 대한 비판자들은, 최근 그가 베트남 국경의 마을에서 농민들을 돕는다면서 국경표식을 뽑아버린 일이 대중적 스턴트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그에게 징역 2년형이 선고된 것이다. SRP는 정치적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베트남의 명백한 캄보디아 영토잠식 문제를 더욱 이슈화시켰고, 훈 센(Hun Sen) 총리와 그 참모들이 자신들의 강력한 이웃국가에게 영토를 "임대"해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캄보디아 영토잠식 문제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국경지역 및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에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고립된 소수였다. 반면 작년 한해 전국적으로 수천명에 달하는 캄보디아 국민들이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했다.
삼 랑시 의원이 부재중이긴 하지만, SRP는 현재도 대중적인 지도자를 갖고 있는데, 바로 부총재 무 서쿠(Mu Sochua) 의원이다. 그녀는 자주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문제를 청취하고 대화를 나누는 캄보디아에서는 극히 소수의 정치인에 속한다. 또한 집권당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으로 인해 일정한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SRP의 쇠락을 구해내지는 못한다.
SRP의 쇠락이 캄보디아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이해하려면, 캄보디아 민주주의 전개사에 있어서 야당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1991년 유엔(UN)이 후원한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어 "국제연합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가 활동을 시작하자, 삼 랑시 의원은 1992년 프랑스에서 캄보디아로 귀국했다. 유엔은 이 평화정착 과정에 약 20억 달러의 비용과 2만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했지만, 1993년까지도 국내 각 정파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평화체제밖에는 구축할 수 없었다.
삼 랑시 의원은 당시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친-민주주의 운동의 전위였다. 1995년 그가 최초로 자신의 독자적 정당을 건설했을 때도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정강정책의 우선순위에 배치함으로써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성을 보여줬다. 그는 또한 자신의 운동이 이 이념을 공유하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SRP는 직권남용에 대항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수준 향상과 모든 이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싸우는 데 상당한 수준의 목소리를 제공해줬다.
하지만 이제 심지어는 이러한 제한적 수준의 집단적 성채마저도 깨지려 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삼 랑시 의원이 망명중이라는 이유때문만도 아니다. 지난 20년간 캄보디아의 집권당에 대해 가장 강력한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한 것은 서구사회의 원조 기부처들이였다. 이러한 기부처들은 행정 및 인권에 관한 표준들을 조건으로 걸고 매년 수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장치는 이제 변하게 됐다. 바로 중국이 캄보디아의 개발에 관한 후원자로 나서면서, 투명성과 권리보호를 요구하는 서방 국가들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09년 12월 캄보디아 정부가 중국 정부의 의지대로 "위구르인 망명신청자 20명을 중국으로 송환시킨 일"에서 극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2006년의 헌법개정을 통해 집권을 위한 의석수를 감소시켜 놓음으로써, 야당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데도 그 부분적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는 점점 더 이웃의 일당지배체제 국가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캄보디아의 유아기적 다당제 민주주의는 협박과 폭력에 의해 상처를 받긴 했지만, 경쟁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만큼은 남아있었고, 군소 정당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제1 야당조차 재갈이 물려지고 있다. 중국이 동남아시아에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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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랑시 의원의 가치는 캄보디아 정치에서 야당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프놈펜에서 살 때는 사람들이 삼랑시의원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곤했었는데 지금 씨엠립의 시골지역은 무비판적으로 훈센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가끔 정치적인 문제를 지적하면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이 사람들의 마음은 훈센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캄보디아 야당의 힘든 분투를 고대합니다.
시골쪽으로 갈수록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제대로 캄보디아 현정부를 비판하는 뉴스를 제공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