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곡리(阿谷里)
아곡리는 아곡과 사호 두 마을로 이루어졌다. 원래 서이면 지역으로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에 북문(北門)·소곡리(小谷里)·하남(河南)이 나오는데 모두 아곡마을이다.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아곡리·하남리·거산리·석교리·한사리(閑沙里)가 나오며 1914년 아곡리로 묶어 황룡면 관할이 되었다.
ㅇ 아곡(阿谷)
원래 아치실(소곡, 小谷)·북너매(북문, 北門)·하남(하남, 河南)이 각기 다른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한 마을로 합해졌다. 아치실에는 옛날 배씨와 홍씨가 살았다는 구전이 있으며 인제이씨가 1450년 5년 후에 밀성박씨가 입향하고 1520년경 행주기씨가 들어왔으며 그 외 성씨는 1900년 이후에 들어왔다. 북너매는 인제이씨가 아치실에서 옮겨갔으며 상하남은 행주기씨가 일제때 5호정도 살았으며, 중하남은 밀성박씨가 처음 터를 잡아 15호까지 살았는데 지금은 7호가 살며, 하남은 밀성박씨 재실이 있고 2호가 살고 있다. 아치실 전체에 약 65호가 살다가 6·25를 만나 약 25명이 죽고 2호 외에 전 가옥이 소각되었다. 다시 65호 정도 살았는데 현재 52호가 거주하고 있다. 동명유래 : 아치실이라 부르며 아곡(莪谷)→아곡(鵝谷)→아곡(阿谷)으로 표기한다. 상잘은 상절의 변음. 북너매는 명종대왕이 박수량 선생에게 하사한 청백당의 북문이 있었던 곳이라 하며 하남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치실은 꿩과 관계있다고도 하나 작은 골짜기란 뜻인 것 같다. 인물 : 박연생(충무시위사 대호군)·박전(통정대부)·박평(봉사)·박문아(어모장군)·박수량(호조판서)·박은우(진안현감)·기효간(남문창의)·박상근(거창현감)·박상의(주부,국지사)·기양연(교리)·기우만(의병장)·기삼연(의병장)·기산도(항일의사)·기승도(세무사)·기춘도(그랑프리참사랑대표)·박학구(효자)·박래옥(검찰사무관)·김극수(면장)·김창규(박사)·박종현(체신부 공무원, 녹조근정훈장)·박경열(경영학박사, 교수)·김인규(장성내무과장, 삼양제사사장)·김상갑(초등교장)·김상현(전대교수)·김상남(육군중령)·조복래(장성군의회의장). 유물유적 : 박수량 유적 : 명종이 하사한 99간 청백당터와 부조묘가 있다. 행주기씨 제실, 홍길동생가터 홍길동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구전이 있다.
ㅇ 사호(沙湖)
원래 서이면 지역으로 한새골·싸오랭이·대판이·거르매 마을을 합하여 사호라 한다. 옛날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1912년 <행정구역명칭>에 거산리(巨山里, 거르매)·석교리(石橋里, 대판이)·한사리(閑沙里, 한사골)가 나온다. 해방 후 56호(한새골 15·싸오랭이 10·대판이 12·거르매 19)가 살았는데 6·25때 인명피해는 없이 가옥이 전소되었다. 이듬해부터 대부분 다시 들어왔으나 40호(한새골 13·싸오랭이 8·대판이 8·거르매 11)가 살다가 현재 56호로 늘었다. 한새골에는 울산김씨가 120년전에 들어온 후 인동장씨·장흥고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왔으며 사오랭이는 밀양박씨·함평이씨가 살다가 떠나고 이천서씨(70년간) 광산김씨·밀양박씨·김녕김씨·전주이씨·문화유씨가 살고 있으며, 대판이에는 100년전 남원양씨가 들어온 후 김녕김씨·밀양박씨·울산김씨·전주이씨·선산김씨 등이 들어오고, 거르매는 행주기씨 등이 살다가 떠나고 광산김씨(70년간) 인제이씨·행주기씨·연안차씨·김해김씨·금성나씨·풍천임씨 등이 살고 있다. 동명유래 : 사호 -한사의 사(沙)와 호사의 호(狐)에서 따왔는데 호(瑚)로 변했다고 한다. 한새골- 황새골, 싸오랭이 -사나운 호랑이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대판이(대평이) -석교를 놓기 전에 판자를 걸쳐 놓았던지 또는 들 가운데란 뜻인 것 같다. 거르매 -거쳐가는 곳, 쉬어가는 곳, 일명 걸맹이. 인물 : 김행훈(농협장)·김진오(대한주택공사과장)·김영철(광주북구의원). 기타 : 황룡 초등학교(1934 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