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순간 / 피에로 페루치
정말 못 생긴 아이였다. 5개월 정도 된 아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와 얼굴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얼굴의 불균형으로 그 아이는 작은 노인 같았다. 신이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와 친지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들은 아이 주위에서 춤추듯이 걸어 다녔고, 너무나 아이를 귀여워하며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그 아이는 눈빛과 미소로 응답했다. 아이는 아주 탁월한 표현력과 감정의 척도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누구도 그 아이를 분유 광고 모델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눈을 통해 본 그 아이는 완벽했다. 그랬다, 그 아이는 정말 못생겼다. 아니,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였다.
완벽함과 완전함
미학적 경험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소나타나 소네트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완벽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줄 것이다. 거기에는 균형과 완성도를 느끼게 하는 리듬, 울림, 대비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불완전 속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아이의 경우처럼 때때로 아름다움에는 형식적인 완벽함이 전혀 내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일반적으로 대칭적인 얼굴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컴퓨터로 왼쪽이나 오른쪽 얼굴을 단순히 겹쳐놓고 완벽하게 대칭적인 얼굴을 만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인위적인 얼굴보다는 비대칭적인 실제 얼굴을 더 아름답게 여긴다. 바로 불완전함이 갖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설명해주는 예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내면의 완벽함과 완전함의 의미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아름다움의 경험은 종종 완벽함이나 완전함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평들을 쏟아놓는다. 우리는 모든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주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결핍의 감정도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이것 역시 일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닌다. 항상 무언가가 부족함에도 스스로 정말 만족스럽다고 말해보자. 그러면 불안이 사라진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통이 숨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매순간 감사하고 충만해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
감사의 조건은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경험의 절정'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편안함과 행복,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대립과 싸움의 중재,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직관력이나 또 다른 인식의 확장 등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에 관해 묘사했다. 그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의 일체감 혹은 동일화 상태, 강한 집중력, 시간의 망각, 깊은 충만함, 이완, 모든 일은 저절로 일어난다는 생각의 상태 등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의 경험, 특기 가장 강렬했던 경험들은 이 두 가지경우에 포함되거나, 최소한 아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미학적 경험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출발한다. 밀밭에서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를 묘사하는 붓이나 하프가 플루트가 내는 소리나 산 속 호숫가에 비친 소나무 같은 것들 말이다. 이 모두는 내게 아름다워 보인다. 내 경험의 한가운데에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끝나기도 한다. 낙천적인 느낌이나 행복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주 정당한 일이라는 느낌만이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경험의 두 가지 유형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한다'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최상이며, 다른 어떤 장소, 어떤 조건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카파도기아에 갔을 때였어요. 거기서 붉게 물든 석양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때 나는 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순간은 다른 어디에도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눈을 뜨고, 숨을 내쉬고, 일어나서 걷고... 무슨 일을 하든 존재한다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이 경우에 아름다움은 더 이상 구체적이지 않다. 일어나는 일들은 서로 뒤바뀔 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의 기본적인 정의는 이런 개별적인 사건, 승리나 패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행복이나 불행 등과 연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구체적인 정황이 아니라 본질적인 현실의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오케이? 오케이!
영어로 오케이라는 표현은 그리스 뱃사람들이 쓰던 '올라 칼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라는 뜻인데 '모든 게 잘 되어간다', '다 좋다'라는 의미가 된 것이다. 아름다움의 또 다른 경험, 예를 들면 종교적 경험이나 명상의 체험에서도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아니면 죽음 직전에서 다시 건강을 되찾은 사람의 경험도 여기 포함된다. 그들은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느껴서 알게 된다. 유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감정이 아이가 엄마 품에서 느끼는, 완전한 안정감과 행복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고, 자신을 신뢰하며, 자신과 완벽한 공존관계를 맺고, 자신을 보살펴주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사랑받는다는 감정 말이다. 이런 감정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낙천적인 성격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할지라도 이런 낙천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상적인 선함과 충만함의 경험이 아름다움의 인식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서른 살의 건축가 마르첼로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밤새 일했고, 그가 일하는 동안 내내 눈이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일을 마친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온 세상은 하얗고 고요했다. 밤새워 일한 만족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충만함의 감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작가든 건축가든 매춘부든 대학교수든 누구에게도 차이가 없는 그런 감정이었어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삶의 아름다움과 충만함이 느껴졌죠. 눈 속에서, 그 하얗고 고요한 세상 속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내 안 깊은 곳에서 떠오른 겁니다.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거기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죽을 만큼 아름다워라
종종 이런 완벽함의 감정은 사랑과 관련이 있다. 사랑은 이런 경험에 더욱 쉽게 다가가게 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게 도와준다. 불완전한 미완성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적으로 보이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과는 거리가 먼, 내 얼굴도 아름다워보인다. 까다로운 성격의 나라는 사람도, 갈라진 길이나 아주 시끄러운 소음도, 모든 우주의 조화를 이루는 데 제 몫을 하고 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한 청년이 태양이 눈부신 어느 날 여자 친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 한창 사랑이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당시에 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공기는 신선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어요. 일상적인 도시 풍경이 이어졌죠. 크고 작은 차들, 공장과 아파트, 고아고 벽보, 공터, 공놀이 하는 아이들...... 그 모든 것이 시간을 초월해 있는 것 같았어요. 햇빛이 눈부신 여름날 오후 모든 것이 완벽했지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한 여인은 아들이 어렸을 때를 회상했다.
"노을이 지는 순간이었어요. 석양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죠. 아들은 친구와 함께 마당에서 뛰놀고 있었어요. 두 아이들은 삶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죠. 나는 아들 친구의 엄마와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그때만큼 아름다운 시절은 없었을 거예요. 말이 필요 없었어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두 아이들은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었어요."
'죽을 만큼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오케이'라는 표현도 죽음과 연관이 있다. 아름다움을 찬찬히 살피고 나면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본 것처럼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더 이상 일상적인 메커니즘과 불안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과 기대감이 느슨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전혀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기쁨이 솟아날 테니까. 죽음이 떠오를 만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순간 죽어도 좋아."
-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웅진씽크빅,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