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깔 빼기" - 내기 한판의 결과는 ?
국회의원이든 군수든 선출직들은 출마를 하기 전 통과의례 같이 겪어야 하는 1차 관문이 자신이 원하는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느냐가 문제다. 이완구 의원은 96년 당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 공천을 받는데는 경쟁자도 없었고 쉽게 1차 관문을 통과 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에서 자민련으로 입당 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조부영 당시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치열한 공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완구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완구 의원이 공천 받는것을 100% 자신한다고 했고 물론 조부영 사장 측근들은 자신들이 100% 자신한다고까지 장담하다보니 그 신경전은 팽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신경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도를 넘기 시작했는데 청양연락소의 정연옥 여성부장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걸려 왔다. “조부영 사장 측 청양 여성책임자를 만났는데 누가 공천을 받는지 내기를 하자고 하는데 그 조건이 상대의 눈깔을 빼기로 하자는 것”이라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전화였다.
나는 심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기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없다는 직감과 함께 무조건 자신있게 내기에 응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혹시나 공천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확신이 있었다.
결과는 이완구 의원이 공천을 받았고 조부영 사장은 비례대표로 정리가 되자 “우리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눈깔을 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 삼아 얘기도 했지만 공천이란 이렇듯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사실을 새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완구 의원은 자신이 공천받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인데 정작 가슴 아파하고 고민한 것은 지방선거에서 군수와 도의원에 대한 공천을 주는 문제에서 늘 괴로워 했다.
95년에 실시된 첫 지방선거에서 이완구 의원은 청양에서 명환철씨를 (상대는 정원영씨), 홍성에서는 정갑영씨 (상대는 이종근씨)를 공천 했다. 이때 선거는 작대기에 자민련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자민련 바람은 대단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이완구 의원이 첫 지방선거 결과로 받은 충격은 낙선한 당사자들은 차치하고 너무 컸다.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당시 이런 선거 상황에서 국회의원에 꼭 출마를 해야 하나라는 궁극적인 고민에 빠져들어 한동안 선거운동을 중단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98년 제2기 지방선거에서는 청양에서 정원영 현 군수를 공천했으나 홍성이 문제였다, 이상선 충남도 국장을 공천할 것으로 삼척동자도 알 정도였으나 공천 결정을 하기 몇 달 전에 이상선 국장이 중풍으로 쓰러져 부득이 이종근 당시 군수를 공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양과 홍성에서 선거전은 싱거울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도 정원영,이종근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리라 생각했고 여론조사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문제가 터진 것은 후보등록 당일이었다. 청양은 예측대로 압승을 했지만 홍성의 이종근 후보는 홍성신문 이사직 문제로 후보등록이 무효가 되고 무소속의 이상선 후보가 단독 출마해 당선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일로 인해 선거후 이상선 군수와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는 계기가 됐다.
2002년 지방선거는 홍성. 청양 정치사의 중대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후보자 경선이 실시됐다. 당시 전국적인 분위기 자체가 경선 분위기로 좁혀지는 시대적 흐름이 급격히 부상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홍성.청양은 상황이 복잡하게 얼키고 있어 그 해법을 어떻게 찾느냐가 이완구 의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고 군민들도 이완구 의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 였다.
홍성에서는 군수 출마를 희망하는 모든 후보자들이 이완구 의원으로부터 공천을 받기 위해 눈도장 찍기부터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후보자중 전용신 사무국장은 이완구 의원이 처음 국회의원 선거전을 치를때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한 소위 말해 이완구 의원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자타가 공인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러다 보니 전용신 국장을 비롯한 가족과 핵심 측근들은 공천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완구 의원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은 전용신 사무국장이 당선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공천을 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홍성신문 여론조사에서나 이완구 의원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후보자들중 최하위권에 늘 머무르고 있었다, 이때 이완구 의원이 괴로워 하는 모습은 츠근할 정도로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시시각각으로 선거일은 다가오고 무엇인가 결정으로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 이완구 의원은 “최선을 다해 운동하고 떨어져도 할수 없다, 의리를 봐서라도 전용신 국장을 공천 해야 겠다”는 결심을 내게 내비치며 어떻겠냐고 말씀 하셨다.
“의원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와 취지는 충분히 이해 합니다, 그러나 공천을 주고 의리 있다는 명분을 얻을지는 몰라도 낙선했을시 받을 전용신 국장의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 선거를 치루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으로 인한 재산적 손실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전용신 국장을 위하는 일은 공천을 주는것이 아니라 출마의 뜻을 접도록 하는게 전용신 국장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만류 해야 했다.
그러나 전용신 국장은 뜻을 꺽지 않았고 이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중에 생각해 낸 결론은 경선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용신 국장이 당선되는 유일한 길은 경선을 통해 후보자가 되면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선거전에 뛰어들 수 없으니 설사 뛰어든다 하더라도 군민들의 비판으로 인해 전용신 국장을 당선 시킬수 있다”는 건의를 했다.
문제는 전용신 국장이 경선안에 대해 수용하느냐와 또 다른 후보들이 이완구 의원의 사무국장과 경선을 하는 것은 짜고치는 고스톱판에 들러리를 설수 없다고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 했다. 후보자 모두가 수용할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 문제 였다, 이래서 나온안이 당원 50%와 일반 군민 50% 참여안이었다.
이 안에 대해 모든 후보자들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히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다만 경선은 당원들로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전용신국장으로부터 나왔지만 대승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이렇게 정리가 되면서 각 후보들은 이완구 의원앞에서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은후 활짝웃는 표정으로 홍성신문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것이다. 이때 사진을 함께 찍은 후보는 전용신, 이종근, 채현병, 이종건 후보였다. 쉽게 풀리는가 싶더니 이틀후 이종근 후보가 전격적으로 경선불복 선언을 한 것이다.
경선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던 이종근 후보는 경선에서 1등을 못하면 본선에 나서보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으나 왜 경선을 불복했는지 그 속내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청양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시환, 이형집, 정원영, 김성관 후보가 경선에 참여 하기로 서명까지 했다가 정원영씨가 이종근씨와 마찮가지로 전격 사퇘해 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루느냐에 온갖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여 불공정 경선 시비가 나오면 문제는 걷잡을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완구 의원도 경선 준비과정에서 조그마한 허점이라도 없는지 시시각각으로 챙기다 보니 신경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각 후보측에서 2명씩 참여한 경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모든 경선절차를 토론하고 결정했다, 물론 나중에 불공정 경선 시비를 없애기 위해 하나의 안건이 통과 될 때마다 일일이 서명을 받아놓을 정도 였다. 그리고 당원 50%와 일반군민 50%는 경선준비위원들이 여관방을 잡아 놓고 무작위 추출, 경선전날까지 통보하여 혹시나 염려되는 금품 매수 기회를 최소화 했다.
2002년 4월19일 먼저 청양에서 경선을 했다, 총선거인단 1,500명중 899명이 참여해 김시환 후보가 437표로 당선되고 이형집 후보 269표, 김성관 후보가 188표로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야 했다.
홍성은 4월27일로 1,292명의 선거인단중 580명이 참여, 전용신 후보의 222표보다 23표 많은 245표를 획득한 채현병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게 됐다. 이종건 후보는 111표를 얻는데 그쳤다.
염려했던 불공정 경선이란 시비는 다행히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선에서 탈락한 전용신 국장과 청양 김성관씨의 반발이란 후유증은 영원히 치료할수 없는 처지로 흘러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경선이 홍성,청양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뒤안길에서 온갖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이완구 의원의 가슴은 숱검댕이가 다 돼 버렸던 것이다. (2009.4.17 시골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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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경선이구요. 제 아래 동생들이 경숙, 경옥, 경미 랍니다. 근데 저(경선)에게 승복을 하지 않느 거 있죠. 경선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 말썽꾸러기 내 동생같다 흉 볼 겁니다 ㅎㅎㅎㅎㅎ
정말 신경 많이 쓰이셨겠어요.
지인과 도리를 무시하며 선거를 해야하는 매정한 선거전은 정말로 피말리는 일인데, 뒤안길이 아쉬움으로 남는일이지요,
모무현:정몽준 국민경선이 있기전에 지사님께서 국민경선제도를 혹시 최초로 하신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것이 빠졌네요.. 그때 눈에서 불이 나올정도 셨던 지사님 말씀 "직원들 모두 다 사표 받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중립을 지키지 않고 잘못되면 모두 사표를 수리 하실 작정이셨던 겁니다. 원칙에 위반하는 것은 한치도 용납을 않하셨죠..
어떤결정을 하셨든 반발하고 불평하는 일은 생기라라 봅니다... 훌륭하신 결정에 한표~~~
잠못 주무시고 고민 하셨겟네요.